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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신부님의 강론에 대한 단상

138273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0-05-15

 

어제 한 신부님과 전화로 많은 시간 강론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제 오늘 인터넷에서 교회의 문헌과 개신교의 자료 등등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했습니다. 솔직히 민감한 주제입니다. 왜 신부님과 신자가 강론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합니다.

 

두 달 전에 이 신부님 외에 다른 신부님께서 개인적으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분과도 온라인에서 이런저런 궁금한 게 있으면 알려주십니다. 모 교구의 신부님이십니다. 요즘은 온라인 때문에 이런 면이 참 좋습니다. 그분이 우스개소리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제가 강론의 부담만 없으면 사제 생활할 만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강론의 어려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아니더라도 저는 신부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강론을 잘하시는 신부님도 계시고 못하시는 신부님도 계십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도 다 은사가 다 다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부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신부님이 강론을 다 잘 할 수가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신부님을 주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어제 신부님과 나름 토론을 하면서 이런 결론을 하나 제가 내렸습니다. 사제를 통해서 말씀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신부님들이 강론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복음의 기쁨에서도 교황님께서 강론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셨고 또 강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훌륭한 강론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저는 언어를 지도하는 사람입니다. 언어를 지도하는 사람으로서 하나 체득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이건 거의 확실한 사실입니다. 제가 아무리 일일이 꼼꼼하게 영어 이론을 설명을 하고 해도 전적으로 지식만 전달해 주면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것도 한계점이 있습니다.

 

그 한계점을 넘어서는 방법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 스스로 고민을 해서 자신이 직접 언어로 표현을 해야 언어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번역과 해석을 해 줘도 그건 강의를 들을 땐 아주 흡족해 하지만 그게 오래 가지 않습니다. 막상 자기가 다시 하려면 제가 했을 때 했던 언어의 표현이 잘 되지 않습니다.

 

다음 강의 때 테스트를 해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언어적인 감을 이용해서 그걸 스스로 자신이 생각해 표현을 하도록 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면 실력이 향상되는 걸 학생 스스로가 느끼고 저도 확실히 느낍니다. 왜 제가 이런 걸 예로 드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식도 자기 스스로 고민을 해야 그게 자신의 머리에 남는 것처럼 신부님의 강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가장 훌륭한 강론은 모든 걸 다 처음부터 입에 다 떠먹여주는 강론이 좋은 강론일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잘못하면 그냥 듣는 순간 귀만 즐겁게 하고 마는 그런 강론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훌륭한 강론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신자도 반성해야 합니다. 만약 훌륭한 강론을 들었다고 했을 때 그 강론을 다시 한 번 더 묵상하고 되새기고 또 기록으로 남기는 신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아무리 훌륭한 강론을 들어도 그 순간만 감동하는 강론으로 남는다면 그런 강론도 별 유익한 강론이 되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훌륭한 강론은 뭔가 한번 강론을 통해서 신자들이 신자 스스로가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게끔 유도를 할 수가 있는 그런 강론이 가장 훌륭한 강론이 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런 강론이 바로 영혼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강론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부님만의 노력으로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신부님과 신자와 공동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미사 참례 전에 충분히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고 미사에 임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냥 한두 번 봉독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수준으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곰곰이 읽고 묵상을 하며 그 말씀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하느님께서 주시는지 그걸 고민하고, 고민하고 묵상했을 때 그런 와중에 신부님의 예리한 묵상 포인트를 강론을 통해 핵심을 짚어주셨을 때 살아 있는 강론이 될 겁니다.

 

정말 강의도 마찬가지이지만 강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가장 훌륭한 강의는 핵심을 잘 말하는 강사가 훌륭한 강사입니다. 강론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핵심을 잘 언급하셔서 실제 그걸 통해서 생각하게끔 하는 강론이 아주 훌륭한 강론일 겁니다.

 

제가 봤을 때 우리는 신부님 강론의 생존 시간이 미사를 마치고 성전을 나갈 때까지만 유효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논리로 제가 말씀을 전해드린다고 하더라도 신부님의 강론 준비에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란한 말로 신자들에게 마음에 와 닿은 강론을 하시는 것보다 적은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가슴에 남는 강론이 되는 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신자도 그냥 아무런 묵상 준비도 하지 않고 미사에 임하는 것은 어쩌면 반쪽자리 미사의 은혜를 입고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원래 말씀의 전례가 전례적인 의미에서는 군불을 지피는 과정이라고 비유를 하시는데 군불이 잘 지피지 않으니 성찬의 전례에서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게 됩니다.

 

실제 예수님의 몸을 영하지만 그게 실제 예수님의 몸이다고 해도 그냥 영했을 때 예수님의 살이 녹아 스며드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 준비 없이 영하는 성체는 과연 우리 몸에서 어떻게 변할지는 스스로 한번 묵상을 해봤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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