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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8일 화요일[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독서와 복음묵상

140612 김종업 [rlawhddjq] 스크랩 2020-09-08

2020년 9월 8일 화요일[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9월 8일 토요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제1독서 (미카5,1-4ㄱ)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 없지만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그의 뿌리는 옛날로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

 

본절은 종말에 한 위대한 왕이신 메시아의 탄생과 그가 행하실 구원 사업에 대한 예언이다이를 시작하는 본문에는 그가 태어날 장소로 베들레헴이 언급된다여기서는 베들레헴의 연약함을 강조한다그러나 이는 메시아가 오실 장소가 되는 그 땅의 영광스런 미래를 보다 강조하여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그런데 원문은 ''에 해당하는 '웨앗타'(weathah)가 가장 먼저 나온다이것은 직역하면, '그러나 너는'(But you)이 된다여기서 '그러나'에 해당하는 접속사 '와우'(wau)는 앞선 내용과 5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원문을 감안하면앞선 4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스라엘의 왕 혹은 오실 메시아가 모욕을 당할 것이란 내용이며본절은 메시아의 위대하심과 그 근본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 둘은 모두 메시아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지만, 4장 14절은 메시아의 구원 사업 말기에 당할 모욕에 관한 것이고, 5장 1절은 메시아의 기원 및 탄생에 관한 대조적 내용이므로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본절을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접속사에 이어지는 단어는 인칭 대명사이다이 인칭 대명사 다음에 이어지는 베들레헴과 에프라타라는 두 고유 명사가 동일 대상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은그만큼 가리키는 대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인 대상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고유 명사보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인칭 대명사를 먼저 사용한 것은 예외적 어순이다이렇게 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여기서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강조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8km 지점에 위치한 유다 산골의 마을이다. '베들레헴즉 히브리어로 '베트 레헴'(beth lehem)은 '빵의 집이라는 의미이다이것은 그 땅의 토지가 비옥하여 각종 과일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토양 조건과 관련된 이름으로 풀이된다.

베들레헴은 지질학적으로만 아니라 신앙적인 차원에서나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읍으로 여겨졌다구약 성경에서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해 이주하는 도중에 그의 아내 라헬이 벤야민을 출산하고 죽은 장소로 처음 공개된다(창세35,19).

이곳은 유다의 자손 페레츠 가문이 살았으며(1역대4,4), 구약 성경의 여덟 번째 정경인 룻기에서 다윗의 증조부 보아즈가 살던 곳으로(룻기2,4),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며 메시아를 예표하는 왕으로 일컬어지는 다윗의 고향으로도 소개된다(1사무16,1;17,12).

 

그런데 본문에서는 베들레헴이라는 지명과 함께 에프라타라는 지명이 같이 열거된다이 두 지명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있다.

먼저 베들레헴은 작은 성읍을 언급한 것이고에프라타는 베들레헴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라고 보는 견해이다그러나 창세기에서 야곱이 유언중에 베들레헴을 에프라타와 동일한 장소로 정확히 동격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창세48,7) 이 견해는 받아 들이기가 힘들다.

 

그 다음 베들레헴은 지정학적 지명이라고 한다면에프라타는 사회학적 지명이라고 보는 견해이다실제로 에프라타의 이름은 칼렙의 두번째 아내의 이름이고(1역대2,19) 칼렙의 자손 중의 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1역대2,52). 따라서 베들레헴 지역을 이들의 이름을 반영하여 칼렙 에프라타라고 부르기도 한다(1역대2,24).

하지만 에프라타를 반드시 이런 사회학적 의미를 갖는 지명으로 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왜냐하면 베들레헴이 '빵의 집이라는 풍성함의 의미를 갖는 지명인 것처럼, '에프라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프라타'(ephratha)도 '열매를 맺는이라는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에프라타를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 보는 견해이다.

 

한편 이 두 지명에 대하여 잘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보잘것없지만이라는 서술어가 사용되었다에 해당하는 '차아르'(tsair)는 '둘째의','작은'(창세19,38),'미천한'(시편119,27) 이란 의미이다이 단어는 후반절의 '아득한 시절'(영원이라는 의미의 '올람'(olam)이나 '옛날'(태초)이라는 의미의 '케렘'(qerem)이라는 단어와 대조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본절은 풍요로움과 미천함이라는 두 이미지가 대조를 이루고 또한 영원함과 보잘것 없음이 대조를 이룬다이러한 대조는 몇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이스라엘이 죄와 불순명으로 인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나이후 베들레헴에서 나신 메시아에 의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메시아의 출신지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장소이지만그가 다스릴 곳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전 우주적 장소가 될 것임을 나타내는 곳으로도 볼 수 있다.

셋째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낮은 곳으로 육화하시지만궁극적으로 그의 구원 사업과 승리로 인해 영원히 영광을 받으실 것임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 위해 오시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여기서 '다스릴 이'에 해당하는 '모셸'(moshel)이 하느님을 주어로 사용될 경우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된다(창세1,18).

그러나 이 단어는 하느님에 대해서보다 오실 메시아에 대해 더 많이 사용되었는데 자신의 어깨에 왕권이 놓인 분으로(이사9,5),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2사무23,3),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예레30,21) 등으로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다.

 

한편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그 분이 누구로부터 올 것인지를 명시적으로 밝힌다.

여기서 '너에게서에 해당하는 '밈메카'(mimmeka)는 '분리','이탈','기원등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전치사 ''(min)과 2인칭 단수 접미어가 부착된 것으로,'너로부터라는 의미이다그리고 ''는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즉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너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표현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이것은 복음서의 진술을 통해 확인되는 것처럼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를 위하여로 번역된 ''(ly)는 '~에게혹은 '~을 위하여라는 의미를 갖는 전치사 ''(le)에 일인칭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이다이 경우 ''는 본절의 화자이며 메시아를 보내신 파견자이신 하느님이 된다.

 

그렇다면본문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인데그분께서 세상에 오시는 목적이 하느님을 위해서 즉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임을 강조하는 예언이 된다.

또한 본문의 '나오리라는 표현은 메시아의 출생 혹은 세상에 오실 때와 관련된 본절의 문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해당하는 '예체'(yetse)의 원형 '야차'(yatsa)는 밖으로 나간다는 장소적 이동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생물의 번식이나(창세1,24), 사람의 출생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창세38,28.29). 여기서는 '탄생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의 뿌리는 옛날로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절에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 탄생과 관련하여 베들레헴이라는 장소적 배경을 강조하였지만본문에서는 오실 메시아가 탄생 이전 태초부터 존재하셨다는 시간적 배경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서로 대구를 이룬다.

또한 앞절은 메시아의 인간 세상에서의 강생이라는 제한된 현현에 대하여 국한하여 묘사한 것이라면본문은 메시아의 우주적 기원에 대한 설명이라는 보다 더 큰 존재 규명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본절이 그리는 메시아는 한계를 갖는 인간이면서 한계가 없는 권능한 신적 존재이기도 하며또한 인간 세계의 시간에 의해 제한을 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모든 시간 개념을 뛰어넘는 영원한 존재임을 나타낸 것이다.

 

오늘 우리가 메시야 탄생에 관한 비밀을 예언한 미가서를 묵상하는 것은 영원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메시야를 보낼 하느님의 계획이 다윗의 가문안에서 구체적으로 성모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미카'란 '누가 주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미카야'의 단축형이다미카의 고향 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아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략할 때 먼저 유다의 평원지대를 침략했으니틀림없이 이곳을 거쳐갔을 거라고 본다

미카는 고향에서 아시리아 침략군의 진군을 보면서 국가적 재난이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다가가고 있음을 확인한다(1,8-16; 3,12).

 

미카는 소예언서의 예언자들 가운데 호세아와 아모스와 더불어 8세기에 활동했던 마지막 예언자이다  열두 소 예언서에서 6번째 책인 미카서는 하느님과의 수직 관계를 강조한 호세아서와 이웃과의 수평 관계를 강조한 아모스서의 메세지를 고루 포함한다.

오늘 9월 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미카서 5장 1-4절이 독서로 채택된 것은 새로운 통치자가 베틀레헴에서 탄생하리라는 메시아 신탁 때문이다.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영신적 메시아로 오시기 위해 성모님의 살과 피를 취하신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는 이 세상에서는 성모님의 탄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너 에프라타의 베틀레헴아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5,1~4참조)

 

이 신탁은 메시아를 다윗 가문과 연결시킨 사무엘서의 전통(1사무16; 2사무5,2; 7,8)과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이사야 예언서의 전통(이사7,10~17)이 합쳐진 형태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것을 예수님의 탄생과 연결한다(마태2,6; 참조요한7,42).

메시아 시대가 오면야곱의 남은 자들이 민족 가운데서 크게 성장하여 수많은 민족을 굴복시킬 것이다(미카5,6~8).

그날이 오면주님께서 마술사점쟁이아세라 목상을 비롯하여 온갖 부정한것들을 없애 버리시고 이스라엘을 완전히 정화하실 것이다(미카5,9~14).

 

 

 

 9월 8일 화요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복음(마태1,1~16.18~23)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6)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복음에는 두 군데 나온다.

루카복음에는 3장 23~38절에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에 이르기까지 77(=7x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마태오복음에는 1장 1~17절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까지 42(=14x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 모두 객관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보다는주관적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힌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예요하느님의 후예임을 강조하며(3,38),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요다윗의 후예인 메시아이심을 강조한다(1,1).

 

B.C.1750 년경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리라.'(창세12,3; 22,18)고 말씀하셨는데예수님께서 바로 저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시다.

또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B.C.1010~970년경 통일 국가 이스라엘의 2대 임금으로 재위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위대한 성군 메시아(희랍어; 'Christus')가 탄생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예수님께서 바로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족보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말고 다른 부인 4명이 등장한다.

타마르(3라합(5)

위 두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가나안 원주민이다.

(5)~모압 출신 여자 바쎄바(6)~우리야의 아내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기 전에 본디 이방인 동네 히티트 출신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다.

그러니까 네 부인은 자신이 이방인이거나 남편이 이방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마태오 복음사가가 일부러 이런 부인만 골라서 올렸는지도 모른다.

네 부인들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매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타마르는 자식없이 남편과 사별한 다음에 기상천외하게도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한다.

라합은 예리고의 소문난 창녀로서 살몬과 관계하고룻은 보릿가리 옆에서 잠든 보아즈를 유혹하여 결혼하고바쎄바는 자신을 범하고 자기 남편을 전사케 한 다윗과 결혼한다.

이렇게 네 여인들은 제각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윤리적도덕적 관점에서 이 여인들의 불륜을 나무랄 것이다그러나 유다교 율사들은 그런 일들을 달리 풀이 했다.

곧 다윗의 가계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 가셨다고 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인들은 하느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인 셈이다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로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에수님을 잉태하고 낳는다(마태1,18~25).

 

그렇다면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의 부도덕을 정당화합리화미화하시고 계시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실수허물로 가득찬 인간사(세속사)를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

말하자면()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 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 조상들의 혈통족보계보도 그리 깨끗하지도산뜻하지도거룩하지도 못한 구석들이 있다그렇다고 예수님의 피가 더러우냐 하면그렇지 않다.

그러한 부족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인간의 역사도 내치지 않으시고 구원의 역사로하느님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번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시고신실하게 지켜 나가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장 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가 아니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부의 자연 생산력이 아닌출산전()도 출산시()도 출산후()도 동정녀(평생)이신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루카1,28)에 해당하는 '케카리토메네'(kecharitomene; you who are highly favored)는 '거저주다', '은총을 베풀다'를 뜻하는 동사 '카리토오'(charitoo)가 여기서 현재 완료 수동태 분사로 쓰여서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호의를 입은 상태가 이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동정 마리아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가능하도록 믿음을 고백했다는 사실은 성모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다윗 가문의 후예라는 말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여기서 '남편'으로 번역된 '안드라'(andra)는 원형 '아네르'(aner)의 목적격 단수로서 정관사 ''(ton)과 함께 '톤 이오세프'(ton Ioseph)와 동격으로 쓰였다. '아네르'(aner)는 여성과 구별된 '남성', 아내와 구별된 '남편', 그리고 미성년자와 구별된 '어른'이라는 명사인데여기서는 '남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요셉'에 해당하는 '이오세프'(Ioseph)는 '더하다'(to add)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인명 '요쎄프'(yoseph)에 대한 희랍어 음역이며족보상 예수님의 아버지지만혈통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마태1,18)에게서 출생했기 때문이다(마태1,18~25).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오 복음 1장 2절부터 16절 상반절까지는 모두 남자가 그 아들을 낳는 것으로 기록되었지만본문에 이르러서는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시지만육체적으로는 그들과 관계없이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의 후손이라는 사실과하느님께서 하와에게 하신 예언('여자의 후손'; 창세3,15)과 이사야가 한 예언('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사7,14)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까지 '낳다'라는 표현인 '에겐네센'(egennesen)이 능동형이었는데본문에서는 '태어나셨다'에 해당하는 '에겐네테'(egennethe)가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마리아는 자의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된 메시야를 육체적으로 낳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사가는 단어 하나의 선택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느님의 역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로 번역된 '엑스 헤스'(eks hes; of whom)에서 '엑스'(eks; of)는 '(공간적으로)안에서 밖으로'라는 의미로서 분리와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며, '헤스'(hes; whom)는 관계대명사 '호스'(hos)의 여성 소유격 단수로서 본절 상반절의 '마리아스'(Marias)를 받고 있다따라서 '엑스 헤스'(eks hes)는 문자적으로 '그녀로부터'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불리는'으로 번역된 '레고메노스'(legomenos; is called)는 '말하다'(to say)는 의미를 지닌 동사 '레고'(lego)의 현재 수동태 분사 남성 단수 주격으로서 앞에 있는 정관사 ''(ho)와 함께 형용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즉 '호 레고메노스 크리스토스'(ho legomenos Christos)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그리스도라고 말해지는(일컬어지는)'이라는 뜻이다.

이 시점은 예수님께서 출생하던 당시가 아닌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을 기록하던 초대 교회 시대인 것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나자렛 예수님이 바로 유다인들이 그토록 대망해 오던 메시야즉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며 선교했으며(사도 5,42; 17,3; 18,5.28), 자연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했던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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