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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19년 7월 18일 (목)연중 제15주간 목요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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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상상의 천국여행 시리즈 2

129914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19-05-24

 

 

상상의 천국여행 두 번째입니다.

 

연옥에 온 사람이 자신이 왜 연옥에 왔는지를 알고서는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봤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당연히 이성을 가진 존재인데 그럼 생각과 판단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하며 자신이 연옥에 온 이유를 알고는 있지만 이건 좀 지나친 거 아닌지 해서 조금은 억울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연옥에 있는 관리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따져 물었습니다.

 

판단과 단죄는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다는 걸 알지만 인간이라면 그 정도는 지을 수 있는 죄가 아닌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연옥의 관리자가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여기 연옥은 이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정화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곳이요.

 

연옥도 종류가 엄청 많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만이 정화하는 곳이 있고 시기, 질투를 많이 하며 살은 사람은 또 그런 사람들만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나도 처음엔 당신처럼 왜 내가 연옥에 오긴 왔지만 왜 와야 하는지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 나는 조금만 여기서 생활하면 곧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으면서 정화가 서서히 돼 가는 과정에서 느낀 걸 말씀드리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래요 당신의 말씀처럼 우리는 지상에 살면서 나약한 인간이라서 지레 짐작으로 남에 대해 자신의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판단 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한 게 어떤 명확한 사실에 기초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건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가령 잘못되고 사리분별력이 없는 행동을 했을 때 만약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그런 행동을 보고서 모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정상적으로 영적인 식별이 가능한 판단력이 있어야 그런 일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가 있고 또한 반면교사로 삼아 더욱더 자신의 신앙을 잘 가꿀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런 게 아니고 단지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상대방에 대해 자신의 잣대로써 재단을 한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씀에 비추어본다면 성경에 이런 말씀의 내용도 있지 않습니까

 

복수하는 일은 전적으로 하느님 소관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넓게 본다면 복수도 하느님 소관인데 하물며 복수를 하려고 하는 생각이 있다면 그 일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까 또 그런 이유에 대해서 자신이 합당하다고 판단해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처럼 상대방에게 되갚아 주려고 하는 그런 상황에서조차도 하느님께 맡겨야 된다고 하는 말씀이지 않겠습니까

 

저도 잘은 모르지만 오랫동안 연옥에서 단련을 하면서 이걸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왜 복수는 하느님께 맡기라고 하셨는지 말입니다. 참으로 저도 이 말씀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어렴풋이 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완전하지가 못합니다.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도 완전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 인간은 바로 완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진 분의 고유 권한을 우리가 함부로 잘못 사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걸 인간세상에 살 때는 몰랐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런 걸 알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처음엔 나도 여기에 온 거에 대해 마음속으로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원망이 감사함으로 바뀌였습니다.

 

물론 이곳의 고통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왜 감사하다고 생각을 한지 아시겠는지요 여기 있으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서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야만 하십니다. 하느님은 사랑 덩어리 그자체입니다.

 

우리가 만약 내 이웃, 형제를 내 몸처럼 생각했다면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여기 있으면서 사랑이라는 게 뭔지를 배웠습니다. 사랑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사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말로써 하는 하는 사랑은 누구나가 할 수 있습니다. 말로써가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벗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세상을 살 때 이런 걸 좀 일찍 깨달았더라면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 자신이 연옥에서 그동안 살면서 배우고 깨달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경험담을 알려주셔서요.

 

연옥에서 있은 경험으로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이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원망과 미움의 마음을 다 흘려보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런 마음이 없어져야만이 그때 비로소 몸은 힘들지만 천국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더 잘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연옥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난 후에 자신의 몸이 어디론가에 가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이 사람은 여기서 생활을 하면서 연옥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서 언젠가는 하루 빨리 연옥을 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며 연옥 생활에 잘 적응을 했습니다.

 

어느날 하루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 자신이 신앙생활한 공동체가 보였습니다. 마침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자고 있을 때 이 사람의 꿈에 나타나서 자신이 연옥에 있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상에 살면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세상을 살면서 사랑을 많이 실천해서 자신처럼 연옥에 오지 않고 바로 천국을 갈 수 있도록 하라고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꿈에 나타나 하소연을 했지만 지상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이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습니다.

 

자신은 세상에 살 때 어땠는지를 말입니다. 교회에서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라고 권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생활을 게을리 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도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더라면 그때 연옥에 있었던 영혼들이 천국에 들어갔더라면 지금 나를 위해서 천국에서 많이 기도를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후회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모든 자신의 현재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걸 담담히 받아들이며 연옥에서 잘 단련되어 언젠가 하느님 곁으로 갈 거라는 희망만 가질 뿐이었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연옥을 벗어날 시간이 되어 하느님의 천사가 이 사람 앞에 나타났습니다. 연옥 영혼이시여! 지금까지 잘 견디고 잘 생활하였기에 이제는 천국에 올 수 있는 몸이 되어서 나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당신을 천국으로 데려가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자 이제 나랑 하느님께서 사시는 천국으로 함께 갑시다. 여기까지가 상상의 천국여행 2입니다.

 

이젠 상상의 천국여행 3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천국의 모습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겠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상상이고 허구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걸 한번 상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소설을 읽습니다. 이미 소설은 허구입니다. 허구임에도 소설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허구의 내용이지만 그 허구를 바탕으로 해서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 허구 속에서 삶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고 상상이지만 그 상상을 통해 간접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짧은 삶을 사는 존재라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소설을 통해 또 다른 삶을 간접체험을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소설을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어쩌면 허무맹량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혹시라도 한 번쯤은 이런 걸 생각해봄으로써 한번 우리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가 있지 않을까 해서 제가 이런 걸 한번 구상을 해봤습니다. 이런 저의 의도를 이해를 하시고 글을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게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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