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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130410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19-06-16

사물을 인식하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추하고, 생각하는 인식입니다. 문학, 철학은 이런 방법으로 인식합니다. 다른 하나는 경험하고, 체험하는 인식입니다. 예술, 과학은 이런 방법으로 인식합니다. 아이는 어떤 방법으로 인식할까요 아이는 경험과 체험으로 세상을 인식합니다. 어머니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어머니를 알게 됩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손, 아버지의 가슴을 체험하면서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형제, 자매가 누군지 모르지만, 함께 뒹굴면서 형과 동생을 알게 됩니다.

 

199112월에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28년 동안 운전을 하지만 자동차의 구조나, 자동차의 기능은 잘 모릅니다. 운전은 좀 큰 신발과 같다고 생각했고, 가능하면 안전하게 운전하려 합니다. 운전의 목적은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차의 구조와 기능은 몰라도 운전할 수 있습니다. 차의 기능과 구조를 알면 좋겠지만, 올바른 운전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교통신호와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합니다. 운전자, 자동차, 교통법규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 운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어떻게 인식하였을까요 철학적인 사유와 생각으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알려주는 교회의 전승이 있습니다. 위대한 교부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신학적으로 풀어보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도, 생각해도 어려웠습니다. 그런 어느 날입니다. 성인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데 한 아이가 작은 웅덩이에 바닷물을 손으로 퍼 담았습니다. 성인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니 아이가 대답하였습니다. 저 바닷물을 이 웅덩이에 모두 담으려고요. 성인은 아이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란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도 성인에게 지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의 머리에 담아내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뒤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의 생각으로 해결하지 않았고, 신비로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믿었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 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요한 14, 1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 30)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역할에 대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16, 13)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마태 28, 19)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해서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통해 계시가 된 하느님의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리는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드러난 삼위의 역할을 통해 본다면, 세상을 창조하신 일은 성부께서 이루셨고, 죄로 인해 하느님과 멀어진 인간을, 자신을 완전히 내놓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신 일은 성자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깨달음과 능력을 주시며 성화의 길을 가도록 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는 마치 촛불이 정전(停電)되었을 때는 어둠을 밝히는 ''으로 역할을 하고, 어떤 것을 태우거나 녹일 때는 '()'로서 역할을 하고, 어떤 장식 할 때는 갖가지 '()'으로 예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촛불은 항상 빛과 열과 색을 같이 지니고 있듯이 세상 창조와 구속사업과 성화에 항상 성부 성자 성령은 함께 계십니다.

 

초대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체험하였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신앙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을 배울 때 문법과 이론을 먼저 배우지 않고 체험과 반복을 통해서 배우듯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도 이론과 신학이 먼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과 초대교회 공동체는 삼위이신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 체험이 교회 역사를 통해서 신학이 되고 교리가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체험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친교, 나눔, 사랑의 하느님이셨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권한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권한을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셨습니다. 성령은 이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를 따뜻하게 감싸 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삼위이신 하느님은 교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가정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 나눔, 사랑이 드러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입니다. 아빠의 권위는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행사되어야 합니다. 엄마의 사랑은 가족들을 위한 배려와 희생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아빠의 보살핌과 엄마의 사랑을 받은 자녀들은 가정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본당 공동체에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 나눔,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불화와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일치의 삶을 사는 것,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누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의 이상입니다. 성호경을 할 때마다, 영광송을 바칠 때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도록 다짐하고 그 은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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