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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마태 22,34-40)

141650 김종업 [rlawhddjq] 스크랩 2020-10-24

 

2020년 10월 25일 주일

[연중 제30주일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마태 22,34-40)

1독서<과부와 고아를 억누른다면 나는 분노를 터뜨릴 것이다.>(탈출 22,20-26)

20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21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22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

23 그러면 나는 분노를 터뜨려 칼로 너희를 죽이겠다그러면 너희 아내들은 과부가 되고너희 아들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24 너희가 나의 백성에게너희 곁에 사는 가난한 이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그에게 채권자처럼 행세해서도 안 되고이자를 물려서도 안 된다.

25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26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뿐이고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줄 것이다나는 자비하다.”

 

화답송 시편 18(17),2-3.3ㄴㄷ-4.47과 51(◎ 2)

◎ 저의 힘이신 주님당신을 사랑하나이다.

○ 저의 힘이신 주님당신을 사랑하나이다주님은 저의 반석저의 산성저의 구원자시옵니다

○ 주님은 저의 하느님이 몸 숨는 저의 바위저의 방패제 구원의 뿔저의 성채시옵니다찬양하올 주님 불렀을 때저는 원수에게서 구원되었나이다

○ 주님은 살아 계시다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주님은 당신 임금에게 큰 구원 베푸시고당신의 메시아에게 자애를 베푸신다

 

2독서 <닥쳐오는 진노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예수님> (1테살 1,5-10)

우리가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의 모든 신자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시작하여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에 울려 퍼졌을 뿐만 아니라하느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곳곳에 알려졌습니다그러니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 계신 참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10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그분의 아드님곧 닥쳐오는 진노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 환호송

○ 주님이 말씀하신다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요한 14,23 참조)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태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연중 제30주일 제1독서 (탈출22,20-26)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된다." (20~21)

 

'너희는 억압해서는 안된다'에 해단하는 '로 토네'(lo thone)와 '너희는 학대해서는 안된다'에 해당하는 '웰로 틸르하첸누'(wello thillhatsennu)에서 절대 금지 명령의 뜻을 지닌 ''(lo; not)가 두 번이나 반복 사용되어 결단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억압하다'에 해당하는 '토네'(thone; mistreat; vex)는 '난폭하게 행동하다','압박하다'는 뜻의 '야나'(yanah)의 사역 능동형 미완료로서 '거듭하여 몰아내다','내던지다'는 뜻을 지닌다.

 

또한 '학대하다'에 해당하는 '틸르하첸누'(thillhatsennu; oppress)는 '억누르다','억압하다'는 뜻을 지닌 '라하츠'(lahats)의 단순 미완료로서 '지속적으로 해를 주다','계속 짓눌러대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고대 근동의 어느 지역에서든지 다수의 본토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이방인들을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탈출 1,8~14; 2,23~25).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후손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대할 것을 요구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하느님의 계약과 신실하심이 없었으면지속적으로 이집트에서 이방 노예처럼 억압당하고 학대당했을 것이다.

 

이런 과거를 되돌아 볼 때에도 그들이 이방인들을 하느님의 명령대로 평등하게 대해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이방인'에 해당하는 '웨게르'(weger; a stranger)의 원형 '께르'(ger)는 '묶다','거주하다','살다'는 뜻을 지닌 '꾸르'(gur)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것은 다만 잠시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와 머물다가 떠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이방 출신으로서 이스라엘 안에 들어와서 영구히 살기 위해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혈통상으로는 이스라엘과 분명히 구분되는 이방인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적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기가 쉬웠고또 민족적 결속력이 강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따돌림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소외되기 쉬운 계층인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이방인들을 특별히 보호의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한편하느님께서는 보호와 대상으로 특별히 '과부'와 '고아'를 지목하신다.

당시 중근동 사회는 강력한 가부장적인 제도와 관습 속에 놓여 있었으므로 경제적인 활동이나 재산의 상속가족 부양의 책임 등은 아버지와 장성한 아들들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남편이 없거나 아버지가 없는 이들은 자연히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사회적으로도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약자(弱者)이며 경제적으로 빈자(貧者)인 과부와 고아들에게 사랑의 보호막을 쳐 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억눌러서는 안된다'에 해당하는 '로 테안눈'(lo theannun)은 강력한 금지의 뜻을 담고 있는 부정어 ''(lo)와 '수고하다'는 뜻을 지닌 '아나'(ana)의 강조 능동형 동사로서 '누르다','억압하다','괴롭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테안눈'(theannun; afflict; take advantage of)이 결합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과부나 고아에 대해 육체적인 학대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천대하고 멸시하며 전인적인 억압과 학대를 가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연중 제30주일 복음(마태22,34~4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7)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8)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39)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40)

 

원문과 한글 새 성경의 단어 배열 순서가 다르다.

원문은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너의 온 마음으로, 너의 온 목숨으로, 너의 온 뜻으로'이다. 원문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이 먼저 선언되고, 그 다음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라는 방법론이 제시된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 you shall love; love)의 원형 '아가파오'(agapao)라는 단어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뜻할 때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와 한없는 순종과 내면적 경외심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없는 사랑의 감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신명5,10), 그를 섬기며(신명10,12), 그의 모든 말씀을 실천하는 외적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신명11,22).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이 명령은 죄인을 위해 가장 귀한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당신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순종을 의미한다(요한14,15; 14,21; 1요한5,3).

 

한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서 신명기 6장 5절의 인용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 드릴 때에 이 말씀을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은 일명 '셰마'(shema)라고 불리웠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외모'를 나타내는 '프로소폰'(prosopon)과 대조되는 단어로서 가식없는 내면의 진실함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2코린5,12; 1테살2,17).

그리고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psyche; soul)는 '호흡','생명' 이라는 뜻이 있으며,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생명을 가리킨다.

 

또한 '정신'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dianoia; mind)는 '생각','뜻', '지각'이란 뜻으로서 이해하고 느끼며 갈망하는 기능으로서의 정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전인격(全人格)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껍데기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여기서 '첫째'로 번역된 '프로테'(prote; the first)는 시간적 순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중요성의 경중에 있어서도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며, 그분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분과 친교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영적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영적, 정서적, 인격적으로 균형있고 충족한 상태로 살아가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하며 그분의 말씀과 교훈을 성심껏 순종해야 한다.

코헬렛 12장 13절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라는 마지막 결론을 내리면서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계시한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지 않고, 또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영적, 정서적, 인격적 성숙과 삶의 행복을 성취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서 성심성의껏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신명10,13).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와 같다'에 해당하는 '호모이아 아우테'(homoia aute; is like it)에서 '아우테'(aute; it)는 여성 3인칭 대명사로서 마태오 복음 22장 38절의 여성 명사 '엔톨레'(entole; commandment), 즉 '계명'을 가리킨다.

'같다'로 번역된 '호모이아'(homoia; is like)의 원형 '호모이오스'(homoios)는 '닮은 사람'(요한9,9), '같은 식'(유다1,7), '같은 곳'(묵시18,18) 등과 같이 동등한 두 사물을 비교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와 같다'라는 말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성질이 동일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압축된다는 의미이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 의무를 행하다 보면, 사람, 특히 부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마태15,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의 핵심이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두 가지 의무는 어떤 면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생활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도 요한은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4,20)라고 말한다.

 

한편,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 십계명 중 첫번째부터 세번째가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라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문으로서 십계명 가운데 네번째부터 열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다.

'이웃'으로 번역된 '플레시온'(plesion; neighbor)은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이나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모세 율법이 주어질 당시의 이 표현은 동족이나, 함께 거주하면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외국인들만 가리켰으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의 범위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인들은 물론(루카10,29~37), 원수까지도(마태5,44) 사랑해야 할 '이웃'의 개념에 포함시켰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는 마태오 복음 22장 37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했을 때 사용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이다.

따라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여기서 '율법'으로 번역된 '호 노모스'(ho nomos; the Law)는 율법서인 모세 오경(Torah)을 가리키고, '예언서'로 번역된 '호이 프로페타이' (hoi prophetai; the prophets)는 예언서(Nebim)을 가리킨다.

그러나 '온 율법과 예언서'라는 표현은 단지 율법서 예언서 뿐만 아니라 모세 오경과 예언서와 더불어 구약 성경을 이루는 구성 요소인 성문서 (Kethubim)까지 포함하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정신이~달려 있다'로 번역된 '크레마타이'(krematai; hang)는 '크레만뉘미'(kremannymi)의 직설법 중간태로서 '매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 '의존하다', '요약하다'(summarize)는 뜻이다.

 

당시 랍비들은 도덕 법규들을 세분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율법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누며, 거기에서 공통적 성격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전통에 입각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모든 율법의 근본 정신이요, 원칙이라고 천명하셨다.

 

실제적으로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의 성품과 본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근본 정신이기에 사랑이 결여된 율법 준수는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며 위선일 따름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로마13,10), 사랑의 법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했다(로마13,9; 갈라5,14).

'경천애인'(敬天愛人) 혹은 '애주애인'(愛主愛人)의 계명은 전체 구약 성경의 기둥이요,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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