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눔마당

sub_menu

자유게시판
지역 감정을 논하는 사람들에게...!

44491 조상래 [sanctus7] 2002-12-01

--(앞부분 생략...)--

계간 <철학과 현실> 99년 봄호 에서.

저 또한 영남인이기에 이 글을 사심없이 올려 봅니다.

 

김상봉/전 그리스도 신학대학 교수

 

 

3. 영남 사람들이 지역차별을 말할 수 있는가

 

야당이 여당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권리이자 국민에 대한 의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국민의 지역감정을 악용하여 국가권력을 독점했던 사람들, 그리고 바로 그 권력의 독점이 낳은 부정과 부패로 나라를 아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던 사람들이, 권력을 상실한 뒤에는 이제 자기들의 과거 비리와 현재의 무능을 은폐하고 호도하기 위해 천박한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선동하고 다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지금까지 지역차별을 무기로 수십 년 동안이나 정권을 독차지해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 정권이 바뀐 지 겨우 1년이 지난 지금 뻔뻔스럽게도 새 정부가 영남 지역을 차별하고 있다고 영남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게 된다. 과연 경상도 사람들이 지역차별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지역차별이란 무엇인가? 호남 기업만 살리고 영남의 기업은 죽인다는 것인가? 그리고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호남 사람이 많아지고 영남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인가? 아니면 호남에서보다 영남에서 기업의 부도율이 더 높은 것이 지역차별 때문이라는 말인가? 고작 이런 것이 경상도 사람들이 느끼는 지역차별인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고향 친구들이여, 부끄러움을 배워 다시는 지역차별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말라.

 

지역차별이란 무엇인가? 나는 80년 광주의 일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하려 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일회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차별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가 단지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내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해서 어떤 기업체의 입사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고서도 거기 취직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이 호적을 서울이나 경기도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조상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호적을 옮긴 뒤에도 나의 원적지가 호남이기 때문에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가능하면 내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해 전라도 사투리, 전라도식 억양을 숨기고 서울말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차별이란 이런 때나 쓸 수 있는 말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호남 사람들이 호적을 옮겨야 했는가? 그것은 우리가 해방된 조국에서 동족에게 강요했던 창씨개명(創氏改名) 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호남 출신 젊은이들이 서울말을 쓰기 위해 애쓰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고 좌절하였겠는가? 마치 일제가 마지막에 우리의 모국어를 말살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해방된 조국에서 동족에게 그들의 정든 고향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서울에서 살면서 나는 전라도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온 사람들이 반듯한 서울말을 쓰지 않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서울 생활을 하면서 반듯한 서울말을 쓰는 것 또한 거의 보지 못하였다. 아니 그것은 고사하고 경상도 출신들은 경상도 말씨가 무슨 대단한 자랑이라도 된다는 듯이 단정한 표준말을 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나는 서울생활을 시작한 뒤부터 그리고 특히 강단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한 뒤부터, 빠르고 시끄러운 나의 경상도 말씨를 부드러운 서울 말씨로 바꾸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다. 그거나 나는 말씨를 바꾸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고향 말씨를 감추지 못하는데 호남 친구들은 완벽하게 서울말을 쓰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막연히 경상도 말씨 자체가 전라도 말씨보다는 더 바꾸기 어려운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나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 때부터 서울 생활을 한 사람이 경상도 사람인 줄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서울 말씨를 쓰는 것을 보고 나는 경상도 말씨를 바꾸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더불어 전라도 사람들이 완벽하게 서울 말씨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전라도 말씨 자체가 유연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의 출신 지역을 감추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경상도 말씨를 버리지 못한 것은 내겐 나의 출신지역을 감추어야 할 아무런 절박한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말씨가 나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였더라면, 나도 전라도에서 온 친구들처럼 반듯한 서울 말씨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느꼈던 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았으면 내가 20여년을 노력해도 배우지 못한 서울 말씨를 그들은 그렇게 빨리 배울 수 있었을까.

 

 

 

4. "호남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차별이란 그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호남 사람이 단지 호남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온갖 유형무형의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호적을 바꾸는 것도 모자라 몸에 밴 말씨까지 바꾸어야 할 때,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지역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물을 머금고 호적을 바꾼 적도 없고 경상도 말씨를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본 적도 없는 경상도 사람들이 모든 국민이 같이 겪는 경제난을 두고 지역차별을 입에 올린다면, 이것은 가히 세상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 볼 때 정말로 염려스럽고 유감스러운 사람들은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정치인이나 그런 선동에 놀아나는 군중이 아니라, "호남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마치 자기는 호남 차별에 대하여 아무런 역사적 책임이 없다는 듯이 지역감정의 문제가 나오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호남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안이한 양비론(兩非論)이 무슨 대단한 지혜의 증거라도 된다는 듯이 이쪽 저쪽을 모두 훈계하려 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호남 차별에 관한 한, 호남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은 공범이다. 그리고 호남 차별에 대해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역사적 부채는 호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고 해서 유태인들에 대한 독일의 역사적 채무관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해방되고 독립을 얻었다고 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부채가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호남 사람들에게 "너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주제넘은 애국 지사들이 학계에 또는 언론계에 너무도 많이 있다.

 

그렇다. 어쩌면 피해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공연히 피해자의 책임을 지적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가해자의 몫은 아니다. 가해자의 집단에 속한 사람은 그가 가해자의 일원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피해자에 대해서는 비록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물을 머금고 호적을 바꾼 적도 없고 고향 말씨를 감추고 서울 말씨를 배우기 위해 이를 악물어 본 적도 없는 이 땅의 행복한 지식인 애국지사 여러분, 부디 기억 하시라, 적어도 지역감정이나 지역차별에 관한 한, 나처럼 그대들에게도 호남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훈계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35 1,032 0

추천  35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