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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19년 10월 18일 (금)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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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3주간 목요일]남이바라는 그대로 (루카 6,27-38)

132472 김종업 [rlawhddjq] 2019-09-12

 

[연중 제23주간 목요일]남이바라는 그대로 (루카 6,27-38)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답게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콜로 3,12-17)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화답송 시편 150,1ㄴㄷ-2.3-4.5-6ㄱ(◎ 6ㄱ)
◎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 거룩한 성소에서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웅대한 창공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위대한 일 이루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크시오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
○ 뿔 나팔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비파 타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손북 치고 춤추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거문고 뜯고 피리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
○ 바라 소리 낭랑하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라 소리 우렁차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루카 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콜로3,12-17)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6)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서 3장 12-15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사람으로서 성도가 실천해야 할 덕목을 말하면서, 하느님의 성품에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12-14절)과 더불어 평화와 감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권면을 주었다(15절).

 

이제 이어지는 16절과 17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전례와 영적 친교와 생활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권면을 준다.

 

이러한 내용을 지닌 16절과 17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현재 명령형으로서 직역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풍부히 머무르게 하여라'(Let the word of christ in you richly)이다.

 그리스도께서 전례와 영적 친교와 생활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 속에 풍성히 간직해야 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번역된 '호 로고스 투 크리스투'(ho logos tu  hristu; the word of christ)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또한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것은 곧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서(요한6,68) 곧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성경을 가리킨다(2티모3,16).

 

무엇이 옳으며, 어떤 일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별하는 자리인 마르코의 다락방에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요한17,8)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없이 이 세상에서 복음 선교를 감당해야 할 제자들에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주신 것이다.

 

한편 '머무르게 하십시오'로 번역된 '에노이케이토'(enoikeito; let dwell)의 원형 '에노이케오'(enoikeo)는 '~안에'라는 뜻의 전치사 '엔'(en)'살다', '머무르다'라는 뜻의 동사 '오이케오'(oike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안에 머무르다'라는 뜻이다.

 

실제적으로는 '~안에 거하여 그에게 영향력을 끼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성도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리잡아 그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또한 '풍성히'로 번역된 '플루시오스'(pllusios; richly)부족함이 없이 흘러 넘치는 모습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머무르게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도의 내면에 자리잡아 때에 따라 부족함이 없이 방향과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전에 머물렀던 속되고 불순한 모든 생각과 말들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그 대신에 생명의 말씀이 자리잡아 언어 생활 뿐 아니라 사상과 지식까지 새로워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콜로3,10).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시편119,105)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성도들 속에 풍성히 머무르게 해야 할 시점이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할 때이고, 그리고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할 때임을 밝히고 있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친교할 때와 하느님께 예배할 때에 그리스도의 풍성한 말씀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편'으로 번역된 '프살모이스'(psalmois)의 원형 '프살모스' (psalmos; psalm)는 '문지르다'는 뜻의 동사 '프살로'(psalo)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수금을 문질러 탈 때 나는 '수금의 소리'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진다.

 

본문의 시편이 다른 노래들과 구별되는 요소가 있다면,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면서 드리는 찬송이라는 말이다.

특히 '프살모스'는 구약의 시편(the Book of Psalms)을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어(루카20,42; 사도1,20) Psalm으로 번역되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유다인의 전통을 이어 받아 예배에 모였을 경우, 하느님을 찬양하는 찬송시를 지어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기도 했을 것이다(1코린14,26).

그리고 '찬미가'에 해당하는 '휨노이스'(hymnois)의 원형 '휨노스'(hymnos)영어에서 '찬송'이라는 뜻의 단어 'hymn'의 어원이다.

 

'시편'(Psalmos)은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단어인 반면에 '찬송'(hymnos)은 이방 세계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이방 종교에서 어떤 신이나 신화적 인물들을 칭송하는 노래를 '휨노스'(hymnos)라고 불렀다.

 

이방 종교를 위해 사용되던 노래를 가리키는 용어를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곡들을 빌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영가'(신령한 노래)에 해당하는 '오다이스 프뉴마티카이스' (odais pneumatikais; spiritual songs)일반적인 성가곡을 가리킨다.

예배 때에 사용되는 송시(頌詩)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도 바오로가 시편, 찬미가, 영가로 구분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개별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향해 가져야 할 찬양의 마음을 극대화 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도 '성령충만'과 마찬가지로 '찬양'은 의무 사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 2인칭 복수 현재 분사 명령형이 사용되었는데, 그리스어에서 현재 시제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을 의미하므로, 찬양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복음(루카6,27~38)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29)

 

루카복음 6장 27절과 28절에는 2인칭 복수 인칭 대명사 '휘민'(hymin)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명령의 대상'너희'라고 하는 데 반해, 루카복음 6장 29절부터 31절까지는 2인칭 단수 인칭 대명사 '세'(se) '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2인칭 복수에서 단수로 전환한 것은 이 말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개인을 보다 깊게 성찰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리고 '뺨'에 해당하는 '시아고나'(siagona; cheek)는 정확히 사람 얼굴의 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턱' 또는 '턱뼈'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39절에서는 '오른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근동에서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쳤을 경우뒤에서 손바닥으로 쳤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대 풍습으로 볼 때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렸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의의 공격을 받은 것이 된다.

 

그러나 본문은 이때에 오히려 '다른 뺨'도 돌려대라고 말한다.

이것은 실제로 왼편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라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교훈이다.

 

원수들의 경멸적인 폭행을 당하더라도, 같이 대적하여 맞서기보다는 사랑의 원리로 무저항, 무보복의 행동을 보이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하여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다.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라'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40절루카 복음 6장 29절의 후반절과는 달리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사가속옷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을 수 없다는 율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탈출22,25~26).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것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므로, 전당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이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양도하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조차 취하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다.

반면에 루카복음중요한 것을 달라는 이에게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주라는 의미로 겉옷을 먼저 언급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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