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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19년 10월 15일 (화)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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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조심하라(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루가 12;13-21)

132468 김종업 [rlawhddjq] 2019-09-11

   그림성서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탐욕을 조심하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루가 12;13-21)

13 군중 속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자 14 예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 하고 대답하셨다.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탐욕에도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하시고는 16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17 '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18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 두어야지.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고 말했다. 2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 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고 하셨다. 21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티코 아세요 한국에서 제일 작은 차. 옛날에 지나가다가 껌 밟으면 서는 거. 코너 돌때 흐흐 쇼트트랙 선수들처럼 손잡고 돌아야 되는거 있어요. 그렇게 모든 인간이 자신의 현실을 티코로 인식을 하고 되고 싶은 나라는 그 로망의 자리에 이상의 자리에 벤츠를 딱 올려놓습니다. 그리고는 평생을 이 티코와 벤츠 사이의 갭을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일로 매진하면서 살아요. 모든 인간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러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그 괴리를 채우려 하는 모든 시도를 가리켜 에피뛰미야, 탐심, 탐욕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사는데 성경은 그렇게 사는 것을 탐심 탐욕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주님께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런 맥락의 말씀인 거예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에서의 그 내일은 부사가 아니라 주어입니다. 그 말은 내일 일은 너희들이 내일에 염려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주관하는 하느님이 염려하게 놔두라는 거예요. 내일의 나! 그 나를 그리면서 염려와 불안 속에 살지 말고, 내일은 내일을 주관하는 그 하느님께 맡기고 오늘의 이 현실에 순종하며 살라는 거예요. 그렇게 탐심이라는건 단순히 돈이나 물질 등의 남의 것을 탐내는 마음 정도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든 인간들이 가진 죄성을 다른 말로 표현한게 탐심이에요.

 

피조물이라는 존재는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현실로 주시는건 그냥 순종하고 순응해야 돼요. 그게 절대 의존적 존재거든요. 그런 절대 의존적인 존재로 살아야 한다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죄인들 '나도 하느님처럼 될거야' 라는 모든 죄인들은 라는 우상! 나라는 우상의 그 위상과 자랑을 위해서 끊임없이 탐심을 부리게 돼요. 욕심이 끝이 없거든요. 그래서 미래의 되고 싶은 나와 현재의 나는 끊임없이 간격이 벌어지게 되어 있어요. 모든 인간이 이걸 채우기 위해서 사는게 이게 탐심이며 이게 죄란 말입니다.

그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탐심의 자리는 하느님이 빠져나간 자리에요. 그래서 그건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요. 그래서 그걸 한문으로 무저갱(無低坑)이라고 부르죠. 밑바닥이 없는 동굴같은 거예요. 그게 지옥입니다. 그 끊임없는 공허 그걸 채우려고 시도하는 끊임없는 인간의 노력 이것이 전부 다 탐심이며, 그 자체가 지옥인 거예요.

모든걸 다 소유했던 에덴동산 위의 아담이 선악과에 대한 탐심을 억제하지 못하고요, 그는 모든걸 다 소유했었거든요. 딱 하나 선악과만 먹지 말라 그랬어요. 그런데 고걸 포기 못하는 거예요. 그렇게 선악과에 대한 탐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에덴에서 추방이 되는 수모를 겪었던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현실이 아무리 풍요하고 풍성하다 할지라도 그 탐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모든걸 가졌던 아담도 탐심을 부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이 완벽하게 거기에 채워지기 전에는 탐심 속에서 살아요. 죄 속에서 살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탐심을 가리켜 우상숭배라고 불러요

(골로사이서 35) 5 여러분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십시오. 음행과 더러운 행위와 욕정과 못된 욕심과 우상숭배나 다름없는 탐욕 따위의 욕망은 6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진노를 살 것입니다.

(에페소서 23) 3 실상 우리도 다 그들과 같아서 전에는 본능적인 욕망을 따라서 육정에 끌려 살았던 사람들로서 본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든 행사가 다 탐심이에요. 다 우상숭배에요. 왜 그게 우상숭배인지가 오늘 본문에 잘 나와 있어요. 야고보는 그러한 인간의 탐심을 이렇게 고발을 합니다.

(야고보서 413-17) 13 '오늘이나 내일쯤 아무 아무 도시로 가서 일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 보겠다' 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합니다. 14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15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 보겠다' 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16 그런데도 당신들은 지금 허영에 들떠서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담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17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됩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다 성도가 착하게 사는게 뭔지 알면서 착하게 살지 않으면 죄다 이런 말인가요 너무 서둘러 그렇게 결론 내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그 반대 이야깁니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야 그래 맞아 우리는 이 세상의 삶에 너무 집착하면 안 돼. 그러니까 장사도 하지 말고 이윤도 남기지 말고 그냥 그렇게 대충 살다 가자' 그것도 안돼요. 야고보는 장사를 하여 이윤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허탄한 자랑을 위해 그러한 계획을 세우는 거라고 자랑이라는 단어를 거기다가 쓰죠 자랑 그리고 그러한 모든 시도는 악한 것이다 그래요. 장사를 하는게 악한게 아니에요. 이윤을 챙기는게 악한게 아니에요. 그러면 장사하는 분들 전부 이윤 없이 장사하실 수 있으세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뭐하러 장사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먹고살아요 이윤없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겨 버리면 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또 안돼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에요. 성경이요.

14절을 보시면 야고보는 자신의 경고 속에 자랑이라는 단어와 함께 아주 중요한 단어 생명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습니다. 생명! 그러니까 이 말은 장사를 해서 이윤을 챙기려 하는 것이 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의미와 생명의 중요성 그리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 그냥 미래에 되고 싶은 나! 내가 정해 놓은 그리고 세상이 합의해 놓은 그런 가치있는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나만을 위해 사는 것! 그게 전부 다 허탄한 자랑을 위한 것이며, 그것이 악한 것이다라고 설명을 하는 거예요. 나만을 위해서 사는거! 나만을 위해 이윤을 챙기는거! 생명에는 관심 없는거! 그 말은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은 생명과 관계없는 일이라는 암시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안에요. 그러한 자들에게는 천국도 사은품 정도라고만 여겨져요.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신이 신이 되어 사는 이 세상 나라가 하느님께 완전히 순종을 해서 그분의 종으로 살아야 하는 그 천국보다 훨씬 좋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예수 믿는 유익은 이 세상에서 다 받아 챙기려 그러죠. 40일기도 별짓을 다하면서 예수 믿는 유익을 이 세상에서 다 받아 챙기려 그래요. 그리고 천국은 죽어서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곳 가도되고 안 가도 되는 그런 곳으로 생각해요. 이게 사은품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은, 나라는 우상이 깨어지는 삶을 살게 되어 있어요. 나라는 우상이 깨어져야 비로소 탐심이 내게서 떠나가는 거거든요. 나라는 존재가 요만큼이라도 존재하는한 탐심은 내게서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도의 삶은 나라는 우상이 깨어지는 삶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나라는 우상이 만들어 놓은 미래의 되고 싶은 나를 성취해 주는 그런 것으로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 있다면 거기에 예수님의 힘을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면 그게 어떻게 그리스도교인이겠냐구요.

 

15절을 보시면요 인생이 원래 어떻게 살야야 하는지가 잘 나와요. 뭡니까 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하라 너희들은 이렇게 고백해야 된다란 뜻이에요. 이 말은 하느님이 살으라 그러면 살고, 죽으라 그러면 죽는 거예요. 하느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하느님이 살라는대로 순종하며 사는게 올바른 삶이지, 하느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계획과 뜻을 세워서 그리로만 달려가는 그런 삶은 안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제 17절의 말씀이 쉽게 이해가 가죠.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됩니다. 이 말은 착하게 살아야 되는데 착하게 안 살면 죄짓는거다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 인간은 하느님이 살아라 하면 살고 이거 해라 하면 이거 해야 하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선이다 근데 하느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그 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선을 행할 줄 아는 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교회야 선을 행할 줄 아는 자들이 왜 너희들까지도 미래의 되고 싶은 나를 목적 삼아 그리로만 일로 매진하느냐! 그게 죄다 이놈들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을 행하라는 말은 착하게 살라라는 고런 단순한 한계적 개념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을 위해서 너희들의 계획을 세워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이 살라고 하는 현실에 순종하며 살아야 되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반드시 내가 그렇게 만들어 내고야 말거라는 뜻이에요.

 

지금은 안되지만 천국이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 하느님이 개털모자 쓰고 살으라면 사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나는 거기서 개털모자 모면하려고 이 땅에서 상급 받을 수 있는 행위를 공로로 쌓고 가는게 아니라 하느님이 판자촌에서 개털모자 쓰고 살으라 그러면 살을게요. 아니 한발 더 나아가 하느님이 저 거기에 안 보내 준다고 할지라도 저는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존재입니다까지 고백을 하는게 하느님이 이렇게 살라 하면 사는 존재에요. 우리는 거기까지 내려가는 거죠. 그렇게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일을 보리라 하면서 미래에 되고 싶은 나를 향하여 달리는 자들이 행하는 모든 행사는 다 죄예요. 그게 탐심입니다. 그게 비록 정당하고 옳아 보여도 그리고 착하고 선하게 보여도 하느님이 맡기신 역할이 아니면 다 악인 거예요. 그게 죽은 자들의 삶이에요. 그러면 산자들의 삶이 뭔지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산자의 삶이란 뭘까 ...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이 내가 생명이래요. 나만 살아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말이 나만 생명이다!

(요한복음 11-4) 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생명이 먼저 있었고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생명이 먼저 있었고, 사람이 그 후에 탄생됐어요. 피조물이 그 후에 탄생됐습니다. 사람이 먼저 있고 사람이 소유한 생명이 있는게 아니라 생명이라는 예수가 먼저 있고 사람이 그 후에 생명에 의해 창조가 되는 거예요. 따라서 생명과 연관이 없는 사람은 사람 아닙니다. 티끌인 거예요. 죽은 거예요. 생명과 연관이 없는 존재는 존재 아닙니다.

산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산 것도 아닌 자들을 위해 인간과 교회가 무언가를 해야한다라는 그런 억지. 그리고는 그게 건강하고 건전한 교회의 표상인 것처럼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이죠. 그거 아니에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존재만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자기 목숨이 아직 붙어 있다고 해서 나는 살아있는 존재이며 이 살아있는 존재가 원하는 모든 것은 가치 있는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에게는 살아있다라는거 자체가 가치있는 거니까 .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은혜의 그 생명을 입은 자만 산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살아서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이 다 가치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말이에요. 그러나 인본주의자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걸 가치있다고 여기고 그걸 살아있는 것이다라고 여긴다 말입니다. 인간세상은요. 근데 우리는 죽은 흙들이 가치라고 힘이라고 합의해 놓은건 역시 죽은 거다라고 인정해야 되는게 하느님 나라 백성이고 이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가치다라고 이야기하고 그걸 추구하는 자들은 죽은 자라 말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을 죽었다라고 단언하고 시작이 되는 거예요. 다 죽은 거예요. 어둠인 거예요. 그 어둠에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형국으로 하느님이 아침으로 바꿔버리는 거예요. 빛만 있는 세상으로 바꿔 버리는 거예요. 세상은 다 혼돈과 공허 어둠이란 말입니다. 어둠이란 말이에요.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그래요. 거기에 새 창조가 일어나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 본문을 보시면 어떤 청년이 예수님께서 講話를 하고 계시는 중간에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서 형이 유산을 나눠주지 않으니까 그것 좀 받아주세요 라고 부탁을 해요. 당시에는 랍비들이 민초들의 재판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건 정당한 요구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형이 유산의 3분의 2를 갖고 동생이 3분의 1을 갖게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형이 그 3분의 1 마저도 안 준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그 예수라는 랍비에 대한 소문을 이미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랍비가 온다라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간 겁니다. 그리고 강화를 듣다 보니까 아 이분이면 되겠구나 하고 부탁을 한 거예요.

근데 예수님이 이 세상거 사랑하지 말라였어요. 이 세상 힘 사랑하지 말라 그런데 그 설교 중간에 툭 튀어나와서 '우리 형한테 돈 좀 받아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의 도덕과 윤리관으로 보거나 그리고 또 이 세상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으로 볼 때 그의 행위는 전혀 나쁜 행위가 아니에요. 우리는 지금 성도의 눈으로 이 청년의 행위를 보니까 '에구 철도 없이 어떻게 하필 고때 나와서 그런 부탁을 하니'라고 하지만 세상적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봤을 때 정당한 일이란 말입니다. 이거는. 그런데 예수님이 이 청년의 행위를 제가 서두에 그래서 탐심이라는 에피뒤미아라는 단어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린건데 탐심 에피뒤미아라는 단어를 써서 '탐심있는 자야'라고 이야기를 해요. 너의 그 행위가 탐심이다라고 이야기를 한다니깐요. 우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것처럼 탐심은 죄이며 악이며 우상숭배라 그랬어요. 근데 이 청년이 뭐 그렇게 대단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까 무슨 우상을 섬기고 있나요. 여기에서. 그런데 왜 하느님이 에피뒤미아라는 단어를 여기서 쓰냐 말이에요. 중요한건 여기에서도 이 에피뒤미아라는 단어와 생명이라는 단어가 같이 나온단 뜻이에요. 아주 중요한 단어에요.

(루가복음 1215)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탐욕에도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이 청년이 뭐 살려달라 그랬어요 돈 좀 받아달라는데 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냐고요. 갑자기. 주님은 지금 그 청년의 정당한 행위가 세상적 관점에서 옳으냐 그르냐를 지적하시는게 아니에요. 하느님은 그런 도덕 윤리에 전혀 관심 없어요. 그 청년의 행위가 아무리 정당해 보여도 그게 생명과 무관한 일이라면 그게 바로 탐심이요 우상숭배라는 말씀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현장에 있던 聽者들이 알아듣기 쉽게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어떤 부자가 밭의 소출이 기대 이상으로 풍성해서 뭐 편법을 쓴 것도 아닌데 그냥 소출이 기대 이상으로 풍성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지금 우리 집 곳간의 규모로는 이 소출을 다 담아둘 수 없으니까 이 통장 몇개로는 내 재산을 다 담을 수 없어서 통장 한 열개 더 만들어야지' 이런 뜻이에요. 내 곳간으로는 이 소출을 다 담아둘 수 없으니 지금 있는 곳간을 헐어버리고 더 큰 곳간을 지어서 내 소유를 모두 담아 넣겠다 내 영혼아 이제 노후준비가 완벽하게 되었으니까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랬어요. 그 이야기잖아요.

그게 뭐가 잘못입니까 여러분 모두가 바로 그러한 노후 대책 은퇴 뒤에 삶을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계신거 아니에요 늙어서 조금 편하게 살자고 아니면 지금 자식들 열심히 가르쳐서 걔네들 보험으로 삼으려고 '유 아 마이 인슈어런스 내가 너한테 이렇게 쏟아부으니 넌 나중아 나 무시하면 안 돼' 어찌됐던 우리는 미래의 되고 싶은 나를 위해 투자를 하는 거예요. 내 현실을 현재를 그렇죠 이 부자가 그 일 한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러한 부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세요.

(루가복음 1220)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 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고 하셨다.

왜 심통을 부리시냐고요 여기에서, 돈 좀 많이 모아놨다고 협박하시는 거예요 내가 너 오늘 죽이면 그거 누구꺼 되겠니 이거 협박하시는 겁니까 누구께 돼요 마누라나 아이들꺼가 되겠죠 그래도 보람은 느끼잖아요. 천만의 말씀! 그거 남기고 가서 싸우지 않는 자식들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그게 보람느낄 일입니까 주님은 풍성한 미래를 기뻐하고 있는 부자에게 '내가 니 영혼을 오늘 밤 찾는다면 그 저축해 놓은게 다 누구께 되겠느냐'라고 물으시면서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꺼내세요. 지금 주님은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건 참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인데 그 생명은 니 돈으로 살 수 없는거란다를 지적하시는 거예요.

'니가 곳간에 쌓아 놓은 돈으로는 그 생명을 만져볼 수도 없단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인기나 명예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을 한단 말이에요. 그 말은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이 세상의 힘과 가치를 모으고 모으면 그것이 바로 생명이 된다라는 억측을 하면서 살아요. '에이 누가 그렇게 살아요' 다 그렇게 살아요! 그게 생명인 줄 알아요. 살맛 난다 그러죠 어떨 때 살맛이 납니까 이 세상의 힘과 가치 인기 명예 만족 얻었을 때 살맛 나잖아요. 그걸 생명으로 여기고 있다라는 증거에요. 아무리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결국 자기의 소유나 명성이나 인기가 상실이 되면 금방 죽을 것만 같은 비명을 지르고 심지어 죽어요 .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아직도 엄청난걸 갖고 있으면서도 그 상실감을 못 이기고 죽습니다. 그 불안함을 그 염려를 못 이기고 목을 매달아요.  

지금 여러분의 인생을 온통 누가 통제하고 장악하고 있습니까 솔직하게 여러분 자신에게 대답해 보세요. 돈이죠! 인기입니다! 명예에요! 아무리 아니라 그래도요. 여러분은 그것들에게 끌려다니고 있어요. 이 세상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믿는 성도는요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이런 비유들을 읽으면서 섣불리 '아이 그래 돈은 악이야 일만 악의 근본이야 그러니까 돈은 다 갖다 버려야 돼' 그런 교훈 받아서 갈려고 하지 마세요. 할 수도 없으면서 괜히 그런 교훈 받았다라는 것으로 자기 영광 챙기지 마세요. 그건 여러분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돈이나 명예나 인기는 한시적이며 유한한 거죠. 심지어 돈은 몇 년에 한 번씩 새 모양으로 바뀌기도 해요. 그러면 그 이전 모양은 쓰레기입니다. 그 정도로 한시적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힘은... 따라서 그러한 것들에게 통제되고 장악된 인생은요 그것들과 함께 결국 멸망하게 돼요. 왜 한시적인 어떤 것에 내 마음이 가 있는 상태를 생명이라고 하거든요 인간들은요. 그래서 내 마음이 자식에게 가 있었는데 그 자식이 죽으면 어미가 따라 죽는 거예요. 내 생명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돈에 가 있었는데 그 돈이 줄어들면 내 생명이 줄어들었다라고 생각하고 목을 매다는 것입니다. 그걸 생명이라 그래요 인간들은요.

그런데 내 생명이 한시적인 것일 때 내 마음이 한시적인 거에 가 닿아 있을 때 그건 가짜 생명인 거예요. 그것과 함께 소멸된다니깐요. 고걸 사망이라 그래요. 이 세상의 한시적인 것들이 영원히 멸망되는게 마지막 심판날인데 그 이후로 없음의 상태로 영원한 없음의 상태가 되어 버리는게 사망이거든요. 우리는 이 땅에서 없음의 상태로 가다가 그 없음을 하느님이라는 있음으로 채우고 영원한 있음으로 사는 거고 참 생명에 의해서 통제되고 장악된 인생은 영원까지 그 생명에 의해 끌려가요. 그런데 그 생명이 누구라 그랬어요 예수! 내 마음이 이 세상에게 가 있던 내 마음이 거두어져서 예수에게 가게 되면 이제 예수가 내 생명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예수는 영원히 사시는 하느님이라 말이에요.

내 마음을 예수에게로 자꾸 빼앗기는 그걸 영생을 산다라고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영생을 사는건 여러분이 마음을 두고 있는 그 세상 가치들로부터 마음을 자꾸 거두어들이게 되는, 그러니까 하느님께 털리고 비워지는 인생 이게 영생이에요. 그런데 나중에 이게 털리고 비워지다가 하느님으로 완전히 채워지는걸 진짜 영생의 완료 종결이라고 하는 거죠. 지금 그 생명에 의해 장악되고 통제된 사람은 그런 식으로 고통스러운 영생을 살게 되지만 사랑하는 것들을 자꾸 빼앗기는 영생을 살게 되지만 영원속에서는 진짜 좋은 것으로만 우리에게 부으시는 그 생명의통치에 의해 영원한 행복 속에 사는 거예요.

우리가 조금전에 요한복음에서 찾아 읽었던 것처럼 생명이 먼저 있었고 그다음에 사람이 창조되었어요. 예수라는 창조주 안에만 생명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살맛을 느끼면 안 돼요. 그런 것은 살맛을 나게 하는게 아니라 너희들을 죽이는 것이다를 가르치는게 성도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이신 예수와 관계없는 자,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다 죽은 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죽은 자들이 참 생명이신 예수를 알지도 못하면서 은혜를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들이 생명의 에너지라고 미루어 추측하고 있는 이 세상의 힘이나 인기나 명성들만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어찌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느냐가 생명과 물질의 대조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비유들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단순히 부자로 사는게 나쁘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본문 21절이 거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거예요. 21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비유의 핵심 어구. '자기를 위하여' 이 말을 어디서 봤어요 출애굽기에서 봤죠. 우리를 위하여 뭘 만들어라 금송아지 만들어라 인간이 원하는게 그게 뭔지 한번 만들어 봐 라고 하느님이 기회를 주셨더니 하느님이라는 이름의 금송아지를 만들어 놨어요. 이게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에요. 우리는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우리는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가 필요한 거예요. 자기를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쌓는 것은 어리석은거고 하느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하는데 그러면 하느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뭐예요

 

병행구절 마태복음 6장으로 가보세요. 19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 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 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헌금 많이 하고 救濟 많이 하면 그게 하늘의 내 창고에 쌓이나요 그렇게 배웠잖아요. 내가 교회에 헌금 많이 하고 착한 일 많이 하면 그 돈은 하늘에 쌓이고 내가 먹고 마시는데 유흥과 사치를 위해 쓰는 그 돈은 사라지는 거다. 그러니까 그런데 돈 많이 쓰지 말고 교회에 헌금 많이 하자 좋은 얘기에요. 그 이야기인가요 그러면 진짜 하늘에 보물이 쌓이나요 러면 하늘에 쌓이는 보물도 돈이네요. 아니면 돈과 비슷한 능력과 효능을 갖고 있는 어떤거 그겁니까

원래가 그 말은 땅의 보물은 땅에 쌓일 수 밖에 없고, 하늘의 보물은 하늘에 쌓일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거든요. 그러면 땅의 보물은 뭐예요 땅의 보물은 자신을 위하여 이 세상이 합의해 놓은 힘과 가치와 명성과 인기를 추구하는거 그리고 거기에서 획득한 수확물들 이걸 땅의 보물이라 그래요. 이걸 많이 쌓으면 내가 잘나지는거 같고 가치가 높아지는거 같죠 그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명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보물은 뭐예요 하느님이 보내시는 보화 보물이 누구라 그랬어요 예수 그리스도! 밭에 감추인 보화. 그런데 그 보화가 이 세상에서는 밭에 감추어진 은닉되어진 보화로 보인다잖아요. 하늘의 보화는 예수에요. 그러면 예수를 하늘에 쌓는다라는게 무슨 뜻이에요 예수를 믿는 믿음만이 내 존재의 근거이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그리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다라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는 그 상태를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예수를 쌓는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하늘이 어디냐고요 여러분에게 지금 하느님 나라가 들어와 있잖아요. 이 세상에서 바로 우리가 바로 그거 하고 가는 거라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은 하늘에 보물을 쌓고 있는 거예요. 점점 하느님의 공격에 의해 여러분이 털려지고 비워지고 있거든요. 하느님 때문에 그 하느님 나라가 너무 좋아서 그렇게 좀 밋밋해 지고 심심해지는 거! 지금 하늘에 보물이 쌓여지고 있는 거예요. 예수를 점점 붙들고 있는 거거든요. 내가 중요한 거는요 돈이나 재물뿐만이 아니라 녹이 슬고 좀이 먹고 도적에 의해 뺏기게 되는 한시적인 이 땅의 보물 중에 자기 라는게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인간들이 이 땅에서 챙기고자 하는 이 땅의 보물은요 돈과 재화뿐만이 아니라 자기만족과 인기와 명성이라는 것도 포함이 돼요. 그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하여의 목록에 들어가는 거거든요. 나를 위하여. 그러니까 나를 위하여 내가 무언가를 소유할려고 하는걸 뭐라 그래요 탐심이라 그랬잖아요. 에피뛰미아. 그게 죄고 그게 우상숭배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나를 위하여 인간은 착함도 챙기고요, 심지어 순교도 합니다. 나를 위하여 나는 너보다 나은 사람이다라는 그 영광과 가치를 챙기기 위해 구제도 하고 선행도 하고 봉사도 하고 헌신도 하고 헌금도 해요. 그런 사람들이 누구였어요 대표적인 사람들 바리새인들이었죠. 여러분 보십시오. 그게 이 땅에 보물을 쌓는 거고 그게 바로 곳간을 늘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행위에요. 성경이 그러한 인간들의 자기 의 쌓기를요 그냥 돈이라는 개념으로 보물 보화라는 것으로 형상화시켜 놓은 거예요. 그거지 꼭 미래를 위해 돈을 챙겨놓는건 나쁜 거다 이 말만 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오는 맘모나스, , 재물, 재화 이거는 단순히 우리 주머니에 있는 지폐 그것만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란 말이에요. 나를 위하여 내가 챙기고 있는 모든 거! 그걸 돈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의 뿌리다라고 하는건 니들이 행하는 모든 행사가 다 일만 악의 뿌리란 이야기에요. 인간은 자기의 영광과 인기와 만족을 생명으로 여겨요. 하느님이라는 진짜 생명이 떠났기 때문에 그게 생명이에요. 그래서 목숨을 걸고 그 영광과 인기를 챙기고 목숨까지도 내놓죠. 불사르라고 내줘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에 휘발유를 뿌릴 수 있고 거기에다가 라이터를 켤 수 있는게 인간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악해요. 인간의 자기 챙기기의 욕망은 이렇게 강해요. 목숨까지도 내놓는다니깐요. 그런데 예수를 몰라요. 은혜를 몰라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뭐라 그러죠 니 몸을 불사르게 내여 줄지라도 사랑 예수가 없으면 헛거다 헛거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몸에다 불 붙인게 죄에요. 탐심입니다. 자기만족 인기 명성 이런 걸 위해 자기 몸에 불 붙이는 것도 죄에요. 탐심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부인의 현장에서 '난 왜 예수를 믿어야만 살 수가 있는가'를 배워야 하는 거지, 내 업적이나 공로를 쌓아서 인기와 명성과 만족을 챙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돼요. 그게 하늘의 보화인 예수를 믿는 거고, 하늘에 보화를 쌓는 행위인 거예요. 그러한 자기 의 챙기기가 이 땅에 보화를 쌓는 것이다라는 것이 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의 이야기임을 밝혀 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게 부자 청년의이야기예요.

 

(마르코복음 1017-22). 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진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19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고 한 계명들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20 그 사람이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께서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22 그러나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 갔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의 질문한 사람과 똑같은 질문이 나오는 거예요. 다른 복음서를 보면 그가 부자일뿐만 아니라 유대관원이었다 그래요.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와 인기를 전부 거머쥔 사람입니다. 그런데 착하기까지 해요.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켰대요. 착하기까지 해요. 그가 주님에게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건 보통 그렇게 안 부르거든요 선한 분에게 선한 일을 배워서 그 선으로 영생에 도달해 보겠다라는 그 마음의 저변이 거기서 드러난 거예요. 아울러 자신은 이미 그 선한 일을 다 하고 있음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예요. 문맥을 보면 알아요. 왜냐면 당시 유대관원 정도 되었다면 구약에 능통했을 거고요. 산헤드린 공회원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다른 민족들 보다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는 뛰어난 민족이기 때문에 택해진 거고 그리고 우리에게만 율법이 주어진 거다라고 믿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라고 믿었던게 유대인들의 유대주의의 신앙관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유대 관원은 그렇게 믿고 있었을 거라 말이에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다 지켰어요. 나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존재다. 그런 그가 선한 선생님!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다라는건 나는 이미 답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선하게 살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니가 나에게 확인 도장 하나 찍어줘라고 온 거예요. 그때 주님은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 그러죠. 이미 주님이 그의 의도를 간파한 거예요. 너는 지금 나에게 너의 선을 자랑할라고 하는데 너 십계명 다 지켰다고 율법 다 지켰다고 나한테 자랑할라고 하는데 선이라는 것은 인간에게서 나오는게 아니란다 선은 하느님에게서만 나오는 거야라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너희는 하느님의 선에 의해 장악당하여 구원받아야 되는 존재지 니가 선을 행해서 하느님을 설득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에요. 그런데 무슨 선한 일을 해서 영생을 얻겠다고 나한테 어떻게 해야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라고 물어보느냐라고 다시 되받아 치는 거예요.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후에 십계명의 여러 세목들을 다 일러 주시면서 그걸 다 지키라 그래요. 아니나 다를까 '저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어요' 그랬어요. 주님은 그 청년에게 갑자기 '그럼 니가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다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그래요. 또 예수님의 심통이 나오는거 같아요 그렇죠 율법을 지킨다는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건데 니가 정말 율법을 올바로 지켰다면 지금 그게 니 삶 속에서 나올거야 그러면 니가 가지고 있는 이 세상 소유 정도는 너의 그 하느님 사랑 앞에서 그리고 이웃사랑 앞에서 이미 배설물처럼 여겨지고 있을 테니까 그 증거를 한번 보여줘 니가 율법지킨게 진짜 올바른 성화였다면, 니 착함이 진짜 하느님이 요구하는 착함이었다면 너는 지금 니 소유를 다 버릴 수 있게 되는거거든. 증거를 한번 보여줘.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 주고 나를 따르라. 그래요.

나냐 니 소유냐 맘모나스가 여기서 나오는 거예요. 재물이야 나야 둘 중에 하나 택하라! 그러는 거예요. 거기서 바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안되겠네요' 가버렸습니다. 보세요 예수님이 지금 그의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그의 삶 속에 있었던 착한 삶 전체를 부정해 버리는 거예요. 너를 하느님 앞에 드릴 수 있어야 돼는데, 너는 너를 위해서 니가 돈을 많이 모아서 너를 위해 쓸려고 모은 것처럼 니 착한 일도 너를 위해서 그렇게 행한 거구나. 그렇게 쌓은 거구나. 그러니까 너는 그 잘난 돈도 못버리는거 아니야. 그러니까 주님은 지금 그 청년의 삶 속에서 돈도 기각시키고 부정시킬 뿐만이 아니라 그가 이루어 놓은 그 훌륭한 성화 자체를 다 부숴버리는 거예요. 진짜 성화는 하느님 앞에서 니 모든 소유 즉 너를 버리는 거! 완전히 그 앞에서 납작 엎드려 부인당하는거! 난 니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다 지킨 그 율법의 행위 그 착한 삶 관심 없어! 그래 많이 영광 챙겨 가져 너 가져. 그건 니꺼야. 땅의 보물이니까 니 꺼야. 주는 거예요. 그 착함은 니가 가져. 니꺼야! 오늘날 교회가 이걸 헷갈리고 있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지금 부정해버린 그 착한 삶을 살아요. 억지로라도 살아보면 하느님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칭찬하시겠지... 그게 땅의 보물 쌓는 것이라는걸 몰라요. 그게 탐심이라는걸 모른다 말입니다. 그게 죽어야 할 죄이며 그게 우상숭배라는걸 몰라요. 나라는 우상을 섬기는 행위라는걸 몰라요.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왜 맞아 죽었습니까 그들의 그 착한 삶 성화의 삶을 부인해 버렸잖아요. 독사의 새끼라고 이 위선자들아 그랬잖아요. '진짜 너희들은 하느님이 기뻐하는 착한 삶 사는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 성화를 지키기 위해 복음을 전한 이를 때려 죽이는 거예요. 제가 다소 과격하게 여러분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최후의 보루까지를 낱낱이 긁어내서 지금 계속 폭로하고 있는 중인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야 그거까지도 아니란 말이냐 그럼 내가 뭘 붙들어야 되니' 여러분은 저를 죽이고 싶어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강의를 잘 들으신 거예요. '야 그럼 옛날에 내가 선교한거, 헌금한거 다 헛거야' 헛거에요. 어떡하실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행한 내 종교행위를 여기서는 하나도 자랑을 할 수 없어' 죽이고 싶어야 돼요. 그게 말씀에 의해 골수와 관절의 쪼개짐을 받는 사람이에요. 지금 아멘한 사람은 저를 죽이고 싶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흐흐~~~~~

왜 주님께서 인간의 선한 행위와 돈이라는 것을 이렇게 결부시켜서 말씀하실까요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않는 인간이 이 세상 선함에 대한 열망과 추구와 행함 그것과 돈을 사랑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과는 똑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선한 행위라는 것과 돈이라는 것을 항상 같이 이렇게 설명을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때요 돈을 써서 착한 일을 하면 그게 하느님이 요구하는 착한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느님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니가 아무리 니 돈을 다 털고 그걸로 착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게 우상숭배라고 이야기하신다 말입니다. 그게 부자 청년의 이야기예요. 근데 성도들이 이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중요한 단어를 자주 빼먹어요. 좀 아까 아멘 하신분들 저를 죽이고 싶어하는 분들은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반전이 여기 있습니다. 이 부자청년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21절의 대견해 하시며 라는 단어에요. 예수님이 그 부자청년을 사랑했단 말이에요. 사랑했으면 좀 다 덮어 주고 얼르고 달래서 데리고 다니시지 왜 그렇게 표독스럽게 그의 정체를 완벽하게 폭로시킨 다음에 쫓아 버리냐구요. 그게 사랑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바로 그렇게 자기의 죄악됨 탐심을 폭로당하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행위가 다 탐심이였구나! 에피뛰미아 였구나!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큰일 나는 거구나! 이게 예수님의 사랑의 나타남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너무 함부로 이 부자청년은 이렇게 예수님을 떠나서 지옥갔을 것이다라고 추측하지 마세요. 어디 그런 결론이 있어요 성경이 내리지 않는 결론을 여러분이 함부로 추측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그를 사랑했다 그래요.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시어의 사랑이에요. 이렇게 이 실체를 폭로하고 끝까지 그를 사랑하셔서 그의 소유를 완전히 털어내어 나중에는 그의 소유 아니 그 존재 자체를 하느님 앞에 납작 엎드리게 만드는게 예수의 사랑이란 말입니다. 그 예수의 사랑이 여러분의 인생에 가입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그렇게 쫓아오는 거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자청년의 이야기에서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게 진짜 선이다라는 그런 어줍지않은 세상 윤리를 교훈받아서는 안되는 거예요. 오히려 이 이야기는 너희들은 절대 스스로 선을 내어 놓을수 없는 자들이니까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라는데 초점이 있는 거예요. 너희들은 그런 질문 할 자격이 없다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그런 자라는걸 지금 여기서 확 폭로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에게 그렇게 폭로당해요.

그러면 이제 어떡해요 예수를 믿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여전히 나를 못버리고... 그거는 우리의 신앙까지도 지금 우리는 탐심 우상숭배의 신앙을 갖고 있는 거예요. 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말이에요 다 죽어야 돼요. 다 지옥가야 돼요. 인제 거기에 대한 해결책까지도 여기에 주님이 제시한단 말입니다.

 

(마르코복음1023-27) 2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둘러 보시며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6 제자들은 깜짝 놀라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27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게 답이란 말이에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으셔서 예수님이 지금 그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쭉 끌고 계시는 거예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을 단박에 부자라고 불렀어요. 부자. 그런데 이 청년은 돈만 많은게 아니라 자기 의라는 자기의 행위도 풍성하게 갖고 있는 자였어요. 그러면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예수가 말씀하시는 부자의 개념이 뭐예요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 아닙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부자는 내 안에 나라는 우상을 풍성하게 갖고 있는 자! 그리고 미래에 되고 싶은 나! 그 나에 대한 가능성을 여전히 붙들고 있으면서 그리로 일로 매진하며 가는 그걸 성취하기 위해 가는 모든 자!가 다 부자에요. 부자. 근데 하느님은 그들을 마음이 가난한 자로 만들어 내시는 거예요!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이 다 부자에요. 그래서 그 누구도 천국에 못들어가요. 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건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거 보다 더 어렵다고 했으니까 못들어 간다는 뜻이거든요. 이걸 갖고 돈많으면 천국 못들어간다고 속여서 그럴거면 교회 갖다 바치라 그래서 다 착복을 한 인간이 있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미련하게 속는 사람들이 있더라니깐요. 그런 부자 이야기하는거 아니에요 .

하느님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갖고 살고 아니면 가난하게 살고 그런거에 별 관심 없어요. 여러분 그 속에서 여러분이 얼마나 돈을 사랑하는지. 가난한 사람들이 돈 안사랑해요 더 사랑해요. 부자 돈 안사랑해요 더 사랑해요. 모든 이들이 돈을 사랑해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모든 인간은 자기만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그걸 돈을 사랑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자에요. 들은 천국에 절대 못들어가요. 그러면 어떻게 하냐 그러니까 너희는 할 수 없으니 하느님이 하신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런데 감히 니가 뭘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로 물어보러와 그까짓 십계명 몇개 지킨거 갖고 근데 자기 소유를 다 털어서 자기걸 다 버리고 착한 일을 열심히 하는 그 일을 하느님이 절대 카운트 안해주실까요 ! 안해주신다고. 고 밑에 베드로의 이야기를 갖다 붙인 거예요. 그 부자청년이 '내 성화 내가 지금까지 착하게 산거 그리고 내 돈 못 버려' 그리고 떠났잖아요. 내 성화 내가 지키겠다는 거예요. 내 제사 내가 지키겠다고 카인이 아벨 때려 죽인 것처럼, 내 성화 내가 지키겠다는 거예요. 나는 그거 무시하고 너 쫓아 못다녀 안간거거든요. 그랬더니 베드로가 금방 '주님 저놈은 저렇게 갔지만 저는 모든걸 버리고 주님을 쫓았잖아요. 저는 뭘 주실 건가요' 바로 고 밑에 그렇게 물어봅니다. 볼까요.

마태복음 192727 그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 나 다버렸는데 뭘 줄거에요 성도는요 하느님 앞에서 " 저는 하느님이 지금 지옥 보낸다 그래도 아무 할말 없는 존재입니다" 이 고백하는 거거든요. 이게 날 버리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천국을 요구하며 어떻게 나의 구원을 요구합니까 난 하느님의 피조물인데... "하느님 절 지옥보낸다고 할지라도 저는 아무 할말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하느님 저를 떠나소서" 이게 완벽한 자기부인의 자리거든요. 그런데 그까짓 자기 가진 소유 조금 나눠주고 자기의 인기, 명성, 영광 챙기는거 이거 아주 악한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유 나를 도저히 쓰레기로 버릴 수 없는 자예요. 배설물로 여길 수 없는 자예요.

 

그냥 그 자리에서 나는 돈을 너무 사랑해요. 다른 말로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요. 그래서 나는 가난하게 살고 싶은거고 그래서 나는 부자로 살고 싶은 거예요. 이걸 이해하셔야 돼요 하느님 앞에서 이걸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자가 되야 돼요. 하느님 내가 돈을 싫어한다구요 나 돈 너무 좋아요. 어쩔줄을 모르겠어요. 내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나에게는 예수님이 날 살려주시지 않으면 이 지긋지긋한 내 사랑은 도저히 끊어지지가 않습니다! 나는 이웃에게 내것을 나눠주면서도 내 만족을 챙기는 자이고 내 영광을 챙기는 자예요.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면서도 내 만족을 챙기는 인간이 어떻게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어떻게 돈을 사랑하지 않아요. 어떻게 탐심을 부리지 않습니까. 주님 도와주세요. 이런 자가 이런 자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갑니까. 그러나 주님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의 사랑이니까 나를 끝까지 놓지 말아주세요!라는 이 통곡이 있어야 돼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느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반드시 아셔야 돼요. 하느님은 그 싸움을 우리의 삶 속에서 하시는 거예요. 그걸 영적 전쟁이라고 하는 거예요. 밖에 있는 다른 마귀들 하고 싸운다고 이딴거에 속지좀 마세요. 무슨 테리토빗 스피릿은 얼어죽을 무식한 놈들이 말이죠. 내 안에 있는 나와 싸우는 거예요. 내가 마귀라니깐요! 그러한 탐심의 인간 야곱이었어요.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 큰자가 작은자를 섬길 것이다라는 하느님의 언약을 직접 들은 사람이에요. 그때는 하느님이 사람들하고 직접 대화를 하시던 때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언약을 직접 들은 야곱이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못기다려요. 그 탐심이 그 인내를 격동을 시켜서 아버지와 형을 속이게 만들어요. 마누라를 얻는 과정 재산을 얻는 과정 보세요. 얼마나 탐욕스런 인간입니까 오죽하면 이름이 도둑이에요. 강도. 야곱이란 이름이... 그런데 그가 자기가 이제 형을 속이고 아버지로부터 도취한 그 축복을 받기 위해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가요. 외삼촌에게 빼먹을건 다 빼먹었거든요. 그런데 그가 도취한 축복은 약속의 땅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에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그런데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에요. 하느님은 절대 당신의 백성을 죄인의 모양으로 가나안으로 못들여 보내세요. 그래서 얍복강의 사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탐심의 인간 야곱이 평생을 그가 어떤 인간인지... 야곱 강도로 폭로되었어요. 근데 약속의 땅에는 그 모습으로 들어가면 안돼요. 이스라엘로 들어가야 돼요. 하느님이 먼저 와서 샅바를 잡았어요. 씨름을 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샅바 싸움을 하는 거예요. 더 깊이 찔러 넣었어요. 이겨야 되거든요. 일어나더니 하느님께 안졌습니다. 요게 자기의 목숨까지도 끊어가면서 영광을 챙기는 인간들의 죄성인 거예요. 하느님이 못이겼다니깐요. 하느님이 못이기는 인간이 어디 있어요 인간의 죄성은 그렇게 악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숨겨져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고칠수가 없으니까 죽여야죠. 하느님이 못이겨요. 환도뼈를 쳐서 위골을 시킵니다. 환도뼈는 그 존재의 핵심 생식기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죽은 거예요. 전인이에요. 전인 야곱이 거기서 죽은 거예요. 그런데 안죽었죠 그러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거예요. 누가 예수가 죽은 것입니다. '야곱아 너는 이 상태로 하느님 나라 절대 못들어가! 그런데 너는 나에게 이렇게 지지 않잖아. 끝까지 나를 이길려고 하잖아. 목숨까지 건다 아주 목을 매다는 구나. 그냥 그래서 난 너를 죽여야 돼. 다시 만들어야 되거든. 그런데 인간은 한번 죽으면 다시 못 살아난단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어 내 아들을 널 위해 죽일거야!' 그러고나니까 야곱이 평생 그전까지는 지가 생생한 두 발로 가고 싶은데로 돌아다녔는데 하느님의 그 환도뼈 가격을 당하고 난 이후에는 하느님이라는 지팡이가 없이는 다닐 수 없는 죽는 순간까지 그 지팡이를 의지하여 죽었다 그러죠. 시편에 나오잖아요. 주의 지팡이 하느님입니다. 그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걸어가는 절름발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절름발이. 그 야곱의 얍복강가의 씨름이 여러분의 평생동안 진행되는 거예요. 하느님이 여러분과 계속 싸우고 계세요. '야 씨름하자' 그런데 우리는 계속 안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결국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은 '아 이게 악이구나!'를 깨닫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 폭로의 현장에서 그래서 나중에 하느님 나라 바로 앞에서 "하느님 저는 죽어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예수를 보내신 거군요. 예수만이 나의 보화입니다!" 하고 그 하늘나라에 보화쌓기를 딱 마무리짓는 거예요. 그게 성화의 절정입니다.

그러니까 계속 털리세요. 계속 비워지세요. 재산 많은 사람은 그 많은 재산 갖고 털리세요. 나는 너무 돈이 너무 좋아요. 그게 털리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은 난 왜 이렇게 지지리도 가난해요. 하느님 나를 지금 돌아보고 계시는 거예요 원망하면서 털리세요. 나는 돈이 너무 좋아요 라고 폭로당하는 현장이거든요. 그러나 거기에서 성도는 한발 더가야 돼요. '하느님 나는 왜 그렇게 여전히 이게 좋죠' 그러니까 어줍지않게 연극하지 마세요. 마치 그런 것으로부터 다 자유로운 것처럼 '나는 돈으로부터 너무 자유로와요 나는 돈이 싫어' 웃기지 마시고 그냥 난 돈이 좋아요. 난 내가 너무 좋아요. 그냥 인정하세요. 인정하시고 그래서 저에게는 예수가 필요합니다. 그 예수를 고통속에서 붙드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때인가 내가 내 마음을 두고 있었던 그 많은 세상의 가치들로부터 마음을 많이 거두어들이고 있다라는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진짜 성숙인 거예요. 내가 비워짐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오는 진짜 성숙! '낫 프라퍼티 낫 퍼버티' 부자가 될려고도 하지 말아야 되지만 일부러 가난하게 될려고 쑈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냥 하느님이 허락한 현실 속에서 그냥 사세요. 굶어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 굶어죽을 상황이 되면 교회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거 염려하지 마시고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놔두세요.

 

 안전한 한가위되세요(경주 지진을 바라보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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