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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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6일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3.Credo-빈소년합창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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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6월26일 San Josemaria Escrivá de Balaguer Sacerdote, Fondatore dell'Opus Dei Josemaría = composto di Giuseppe e Maria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JOSEMARIA ESCRIVA) 몬시뇰은 1915년 그의 부친의 방직사업이 실패하자 가족을 데리고 부친의 새 일자리인 로그로뇨(스페인 북부)로 이사하였다. 1924년 그의 부친이 돌아가신 후 그는 가장이 되었다.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종교박해가 심해져 그는 여러 장소로 피난을 다녀야했다.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에 마드리드로 돌아가 드디어 시민법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1946년부터 성 호세마리아는 로마에 거처를 마련했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1975년 6월 26일 선종했다. 1992년 5월 17일 오푸스 데이 창설자의 시복식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길>은 그의 저서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1939년 초판에 이어
오프스 데이(Opus Dei) 특징과 사명 오푸스 데이(Opus Dei)는 가톨릭 교회의 praelatura personalis 중 하나입니다 오푸스 데이는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에 의해 1928년 10월 2일 마드리드에서 오푸스 데이의 사명은 세상 한복판에 있는 모든 사회 계층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본회는 회원들에게 영성적, 목자적 교육배려를 제공하고, 본회 신자들이 하는 일의 성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서약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해서 세상은 성화될 것이고, 본회 신자들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부분에서
오푸스 데이의 정신 오푸스 데이는 만인이 성성에로 부르심을 받고 있는다는 메시지를 세상 한복판에 퍼뜨리는 일을 추구합니다. 30년 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인이 되려고 분발해야 하고 영적 부자(父子)관계.
성 십자가 사제회 성 십자가 사제회는 오푸스 데이와 결속되어 있는 사제회입니다(정관 57-68 참조). 이 사제회에 속해 있는 교구 사제는 오푸스 데이 정신에 따라 영적 도움을 구하며 자치단은 그들에 대해 법적 관할권이 없습니다. 사제회가 제공하는 영적 도움은 그들의 성직 의무 수행을 통해 성성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주어집니다.
1902년 1월 9일 스페인의 바르바르또르에서 태어나 1925년 사라고사에서 사제로 서품된 그는 ’오뿌스 데이’는 1950년 교황청으로 부터 승인 받고, 1982년에는 추기경의 직속 단체로 승격되었다. * ’오뿌스 데이’란 "하느님의 일"이라는 뜻으로 기도와 회개와 성무 활동을 열심히 하여 나날을 성화 하자는 운동이다.
"여러분들의 모든 영적, 물질적인 필요에 성 호세마리아에게 간청하시라고 권고 합니다" 지난 2003년 6월 26일, 로마 교구 성 호세마리아 본당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6월 26일, 성 호세마리아의 축일도 전 교회에게 기쁨의 날이고, 지난 10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시성 하셔서, 성 호세마리아께서 우리에게 가까운 인물이었고 항상 그렇게 될 것입니다. Gratias tibi, Deus, gratias tibi: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2. 오늘 미사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심을 한번 더 묵상할 기회입니다. 성 호세마리아는 이 복음 말씀을 자주 묵상하셨습니다. 1928년부터, 오푸스데이의 창설자께서는 이 메시지를 쉬지 않고 설교하셨고, 오푸스데이의 창설자께서 천국에 가진지가 28년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시는 여러분께 저는 물적이거나 영적이거나, 3. 1928년 10월 2일, 하느님께서 성 호세마리아에게 그 거대한 사업을 보여주셨을 때부터 성 호세마리아의 인물과 가르침의 보편적임은 명백하게 존경받는 장소가 다양함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복음 말씀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시성식 미사 강론때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성 호세마리아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께 하셨던 초대를 의심 없이 받아드리셨다" 하시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가까이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 호세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심어주신 요구를 들어 주시라 빕니다. 아멘.
영혼을 일깨우는 다이너마이트 - 라몽 로페즈 몬시뇰
(...) 그곳에서 저는 "길"이라는 작은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제게 마치 ‘영혼을 일깨우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았습니다. (한국 가톨릭다이제스트 2003년 4월호 "내가 만난 가톨릭"에서) 저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 "가톨릭다이제스트"의 상냥하지만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스페인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거슬러 더듬어 봅니다. 1968년이 되던 해, 저는 고등학교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수학, 화학, 물리 등의 과목을 공부하고 또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저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자기와 함께 오푸스 데이 센터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저를 이끌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푸스 데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요. 그곳에서 저는 "길"이라는 작은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제게 마치 ‘영혼을 일깨우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았습니다. “그대의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십시오. 유익한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중에 올 사람을 위하여 길을 내십시오. 그대의 믿음과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십시오. 불순한 미움의 씨를 뿌린 자들이 남긴 더럽고 비열한 흔적을 그대의 사도적 삶을 통해 지워버리십시오. 그리고 그대 가슴 속에 간직한 그리스도의 불꽃으로 세상의 모든 길을 밝히십시오.”("길" 중에서)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어떤 느낌이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어떤 것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한 인간이 하느님의 계획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마주하였을 때 그의 영혼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 지…. 그것은 밝고 눈부신 깨달음이었습니다. 반드시 굉장한 이적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계획과 마주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생한 각성을 통해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 사제나 수도자에게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열려있다는 것을 그 때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베드로, 안드레아, 요한, 야고보 그리고 그 밖의 제자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결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지만 삶의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일과 친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유익한 일을 했고, 그들이 속한 마을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으며, 설령 그들이 몰랐다 할지라도 국가에 기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의사라는 직업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품위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의대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오푸스 데이 센터에 처음 발걸음을 하고 난지 바로 얼마 안 되어 저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 성인, 즉 진정한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의 놀라움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혹은 이후 제가 원하는 무엇을 하는 동안이라도 제가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아신다면….’, ‘하느님께서 내가 얼마나 바쁜지를 아신다면….’ 그런데 주님께서는 저의 개인적인 처지와 가능성을, 또 저의 꿈과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바로 그때 저에게 성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5,48)는 말씀을 여러번 읽었습니다. 저는 매사에 신중을 기했고 저의 일상생활을 하느님께 봉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좀더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들을 통과하는 것이 어떤 새로운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러한 일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새로운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드리드에 있는 의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오고 가며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의학 공부를 마친 후, 다른 전공의처럼 의사로서의 앞날을 준비하고 있던 중, 저는 일본에 있는 오푸스 데이의 사도직사업을 위해 일본에 갈 것을 부탁 받았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 그대로 멀고 먼 나라 극동아시아의 일본에 가게 되었습니다.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15년이 흘렀습니다. 일본어를 배우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으며, 또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수 많은 개종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언제나 모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말씀하셨듯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모험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어떤 사람의 꿈보다 더 크고 더 흥미진진합니다. 먼 과거는 아니지만, 1975년 당시 저는 일본에서 문자 그대로 정말 ‘외국인’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저와 마주친 일본인들의 놀라움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시골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했지요. 그때까지 스페인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저를 당연히 미국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성패는 하느님께 달려있다.”는 의미를 그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늘 아름다웠습니다. 이 시기에 오사카, 교토, 나가사키, 오이타 등의 도시에 오푸스 데이 센터가 지어졌고 선교사업도 확장되었습니다. 성스러운 믿음의 씨앗이 모든 곳에서 싹을 틔우고 이질적인 문화적, 정신적 전통에 융화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제 인생의 ‘모험’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으며 거기에 전혀 후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더 많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성직자로서의 저의 소명을 받아들이고 로마에서 은총의 귀중한 3년을 보내고 다시 일본에 돌아왔을 때 제 친구들은 온통 검은색 사제복 차림으로 바뀐 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겉모습이 조금 바뀐 것만으로도 저는 그들에게 이미 멋진 교리 교육을 한 셈이지요. 새로운 책임을 맡게 되어 저는 필리핀으로 갔고 지금은 홍콩에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를 다시 돌아보아도 모든 시간 제 손을 잡고 이끌었던 분은 바로 하느님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성서에서 다음 구절을 읽을 때면 거기에서 언제나 압축된 제 인생을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잔치 시간이 되자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자기 종을 보내어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오라고 전하였다.”(루가14,16-17) 고귀하고 아름다운 파티에 참석하라는 초대를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느님이 계획하고 불러주신 모든 초대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도 하셨지만 또한 베다니아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도 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일이 잘 안 풀려 어려울 때나 혹은 순조로울 때나 아주 작은 일에서 거룩한 의무를 다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성인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매 순간 작은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십시오.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십시오.” ("길" 중에서) 하느님께서 부르시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거룩함은 전 우주의 보편적 소명입니다. “하느님이 직장에서 그대를 찾으셨다고요? 그대는 놀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이것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서 저를 찾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물질하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셨고 세관에 앉아있던 마태오를 찾으셨던 것과 같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바울로는 그리스도인의 씨를 아주 없애버리려고 박해 활동에 열중해 있을 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길" 중에서) 일상의 노동과 평소 수행하는 직업이야말로 완전함에 이르는 우리의 거룩한 소명의 한 부분입니다. 오푸스 데이는 이렇게 우리를 거룩함에로 이끄는 보편적 소명을 깨우쳐주고, 정직하게 직업활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제 글을 마무리해야겠군요. 지금까지 제 자신의 나약함과 투쟁하고 저의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과연 거룩함이란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은 하느님과 그가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과 친구가 되는 것, 그리고 우리를 이루고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던 과거 어느 날, 아마도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저와 나누고 싶어 오푸스 데이 센터로 절 초대했던 친구처럼 말입니다. ![]() ♬3.Credo-빈소년합창단
San Josemaria Escrivá de Balaguer Sacerdote, Fondatore dell'Opus Dei Il 2 ottobre del 1928 il Signore fece vedere con chiarezza a don Josemaría Escrivá ciò che aveva sempre presagito fin dai 15/16 anni e fondò allora l’Opus Dei. Si apriva così nella Chiesa una nuova via, volta a promuovere, fra persone di ogni ceto sociale, la ricerca della santità e l’esercizio dell’apostolato attraverso la santificazione del lavoro, in mezzo al mondo e senza cambiare di stato. L’Opus Dei, che dall’inizio aveva contato sull’approvazione dell’autorità diocesana, dal 1943 sull’appositio manum e poi sull’approvazione della Santa Sede, è stato eretto in Prelatura personale dal Santo Padre Giovanni Paolo II il 28 novembre 1982: è un’istituzione della Chiesa che intende promuovere fra cristiani di tutte le condizioni sociali una vita coerente con la fede in mezzo al mondo e a evangelizzare così tutti gli ambienti della società. L’Opus Dei pone l’accento sulla santificazione attraverso le cose ordinarie: il lavoro, la cultura, la vita familiare, ecc. Etimologia:Josemaría = composto di Giuseppe e Maria E' presente nel Martirologio Romano. A Roma, san Giuseppe Maria Escrivà de Balaguer, sacerdote, fondatore dell’Opus Dei e della Società sacerdotale della Santa Croce. Dal 21 maggio 1992 il corpo del beato Josemaría Escrivá riposa nell‚altare della chiesa prelatizia di S. Maria della Pace, nella sede centrale della Prelatura dell'Opus Dei, costantemente accompagnato dalla preghiera e dalla gratitudine delle tante persone di tutto il mondo che si sono avvicinate a Dio attratte dall‚esempio e dagli insegnamenti del fondatore dell'Opus Dei e dalla devozione di quanti ricorrono alla sua intercessione. Fra gli scritti pubblicati del beato Josemaría Escrivá si annoverano, oltre al saggio teologico-giuridico La Abadesa de las Huelgas, libri di spiritualità tradotti in molte lingue: Cammino (Ares, 39ª ed., Milano 2000), Il santo Rosario (Ares, 6ª ed., Milano 1996), E' Gesù che passa (Ares, 6ª ed., Milano 2000), Amici di Dio (Ares, 6ª ed., Milano 1999), Via Crucis (Ares, 4ª ed., Milano 2001), La Chiesa nostra Madre (Ares, 2ª ed., Milano 1993), Solco (Ares, 10ª ed., Milano 2000), Forgia (Ares, 8ª ed., Milano 2000), fra i quali gli ultimi cinque pubblicati postumi. Una raccolta di interviste concesse alla stampa interna-zionale ha dato luogo al volume Colloqui con monsignor Escrivá (Ares, 5ª ed., Milano 1987). Tra le raccolte di scritti Amare il mondo, scritti scelti a cura di Luciano Santarelli (Città Nuova, Roma 1990), Il lavoro rende santi. Antologia a cura di Saverio Gaeta (San Paolo, Cinisello Balsamo (MI), 1997) e Tra le braccia del Padre. Antologia a cura di Andrea Mardegan, (Ed. I Rombi Marietti, Genova, 2000). Per maggiori informazioni sulla vita e sul messaggio di san Josemaría: http://www.it.josemariaescriva.info/ Fonte: _______________________
Josemaria Escriva Assigned for a while to a rural parish, and then in Zaragoza. Moved to Madrid in 1927 to study law. Following a profound spiritual retreat, he founded Opus Dei in Madrid on 2 October 1928, which opened a new way for the faithful to sanctify themselves in the midst of the world through their work and fulfillment of their personal, family and social duties. The next few years were spent studying at the University of Madrid, teaching to support his mother and siblings, ministering to the poor and sick, and working to build the foundation of Opus Dei. Religious persecution in the Spanish Civil War forced him into hiding, and he ministered covertly to his parishioners. He escaped across the Pyrenees to Burgos. At the end of the war in 1939, he returned to his studies in Madrid. Doctor of law. Retreat master for laity, priests, and religious. On 14 February 1943, he founded the Priestly Society of the Holy Cross, united to Opus Dei. Moved to Rome in 1946. Obtained a doctorate in theology from the Lateran University. Consultor to two Vatican Congregations. Honorary member of the Pontifical Academy of Theology. Named a prelate of honor by Pope Pius XII. Opus Dei received the approval of the Holy See on 16 June 1950. Josemaria travelled frequently throughout Europe and Latin America to work for the growth of Opus Dei. By the time of his death, Opus Dei had spread to five continents with over 60,000 members of 80 nationalities, and today has over 80,000 members, most laymen. In 1976 Carmelite sister Concepcion Boullon Rubio was at the point of death when she was suddenly and completely cured of lipomatosis after members of her family prayed to God for a cure through the intercession of Saint Josemaria. His Cause for canonization was introduced in Rome on 19 February 1981. On 9 April 1990, Pope John Paul II declared that he lived the Christian virtues to a heroic degree. The cure of Sister Rubio was unanimously approved by the Board of Physicians for the Congregation of the Causes of Saints on 6 July 1991. On 20 December 2001 a second miracle attributed to Monsignor Escriva's intervention was decreed by the Congregation and approved by Pope John Paul II. -Pope John Paul II in his homily at the beatification of Saint Josemaria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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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1 | 6월28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5.Benedictus-빈소년합창단 | 2004-06-28 | 유화정 |
| 1840 | 6월27일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Salve Festa-monastic cha ... | 2004-06-27 | 유화정 |
| 1839 | 6월26일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3.Credo-빈소년합창단 | 2004-06-26 | 유화정 |
| 1838 | 6월25일[트라피스트]성 굴리엘모 아빠스♬2.Gloria-빈소년합창단 | 2004-06-24 | 유화정 |
| 1837 | 6월25일[시노드]토리노의 성 막시모 주교♬1.Kyrie-빈소년합창단 | 2004-06-24 | 유화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