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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2023년 10월) 의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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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06 ㅣ No.596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 

제1회기(2023년 10월)


의안집

(Instrumentum Laboris)

 

 

- 차례 - 

 

서문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

시노드 여정의 2단계를 위한 작업 도구

의안집의 구조 

 

제1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하나의 통합적 체험 

 

1.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특징적인 표징들 

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향하여 나아갈 방법: 성령 안에서 대화하기 

 

제2부. 친교, 사명, 참여.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한 세 가지 우선적 질문

 

1. 빛나는 친교. 어떻게 더 충만하게 하느님과 이루는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2. 사명에서 공동 책임. 복음에 봉사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물들과 임무들을 공유할 수 있을까?

3. 참여, 책무와 권위.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에서 어떤 절차들, 구조들, 제도들이 있을까? 

 

시노드 총회를 위한 ‘작업 목록’


머리말


‘제2부 1. 빛나는 친교’를 위한 작업 목록

 

1.1 사랑에 대한 봉사, 그리고 정의 및 공동의 집 돌봄의 임무가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친교를 증진시키는가? 

1.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어떻게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리라.”(시편 85[84],11)라는 약속을 믿을만한 것이 되게 하는가?

1.3 동방 교회들과의 역동적인 선물 교환 관계를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을까?

1.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교회 일치 운동의 쇄신을 통해서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까?

1.5 어떻게 복음의 빛으로 문화들이 갖는 풍요로움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종교간 대화를 발전시킬까?

 

‘제2부 2. 사명에서 공동 책임’을 위한 작업 목록 

 

2.1 어떻게 사명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2.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온전히 직무적인’ 선교적 교회이기 위하여 무엇을 할까? 

2.3 우리 시대 교회는 어떻게 여성들이 세례성사로 받은 품위를 더 많이 인정하고 증진시킴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더 잘 수행하게 할 수 있을까?

2.4 수품 직무는 선교적 전망에서 어떻게 세례성사로 인한 직무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까? 

2.5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 안에서 주교 직무를 어떻게 쇄신하고 증진할까? 

 

‘제2부 3. 참여, 책무와 권위’를 위한 작업 목록

 

3.1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에서 권위의 봉사와 책임의 수행을 어떻게 쇄신할까?

3.2 성령이 주인공이심을 존중하면서, 식별 수행과 결정 과정이 어떻게 참으로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진행되게 할 수 있을까?

3.3 더욱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하여 어떤 구조들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3.4 지역 교회들의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과 관련하여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collegialitas)은 어떤 형태를 취할까?

3.5 온전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주교직의 단체성의 표현이 되도록 어떻게 시노드 제도를 강화할까?

 

 

의안집 


서문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로마 15,5-6).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

 

1. 하느님 백성은, 2021년 10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회 전체에 시노드를 소집한 이래 그 여정을 계속해 왔다. 전 세계 지역 교회들은 중요한 상황과 환경에서 시작하여, 『예비 문서』 2항에서 제기한 다음과 같은 질문에 기초해서 하느님 백성의 자문 과정을 시작하였다. “오늘날 지역 차원부터 보편 차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이 ‘함께 걷기’가 어떻게 이루어져, 교회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게 해 주는가? 성령께서는 우리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자라나기 위하여 어떤 순서를 밟아 가도록 초대하시는가?” 자문의 열매들은 교구 차원에서 수합되어 동방 가톨릭 교회 시노드와 주교회의에 보내져 종합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작성된 종합 의견서는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로 보내졌다.

 

2. 이렇게 취합된 문서들을 읽고 분석하여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가 작성되어, 진행 중인 시노드 여정의 새로운 단계에 기여하였다. 전 세계의 지역 교회에 이 문서를 되돌려 주어 각 지역 교회가 이 문서를 다룬 후, 7개 대륙별 회의에서 서로 만나 대화하도록 초대되었다. 그러는 중에 디지털 시노드 활동도 진행되었다. 이 과정의 목적은 각 대륙에서 교회의 체험과 더 크게 공명하는 통찰들과 긴장들에 초점을 맞추고, 각 대륙의 관점에서 시노드 총회 제1회기(2023년 10월)에서 다루어야 할 우선적 질문들을 추출하려는 것이었다. 

 

3. 경청의 단계 동안 얻어진 모든 소재들, 특히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에 기초해서 이 의안집이 마련되었다. 이 문서의 발행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의 시노드 1단계가 마무리되고, 2단계인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가 열리며, 이는 2회기(2023 10월과 2024년 10월)1)로 구성된다. 시노드의 목표는 이 여정을 다시 시작하고,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더 큰 결정을 통하여 어떤 길을 가도록 초대하시는지 확인하면서, 그 여정을 교회의 일상생활 안에 구현하려는 것이다. 주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사명에 충실한 가운데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함께 걷는다는 것이 이번 총회를 통하여 우리가 요청하는 선물이요 결실이다. 사실 시노드 여정의 목표는 “문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 수행을 위하여 희망의 지평을 여는 것이다”(『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6항).

 

4. 지금까지 진행된 여정, 그리고 특별히 대륙별 단계는 교회가 살고 있는 세상의 여러 다른 지역의 다음과 같은 고유성들을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의 지구를 피로 물들이는, 그래서 우리에게 정당한 평화 건설을 위한 임무를 쇄신하도록 요청하는 너무나 많은 전쟁부터 공동의 집을 돌보는 우선적 과제로 이어지는 기후 변화의 위협이 있다. 또한 착취, 불평등과 ‘버려짐’을 낳는 경제체제부터 소수민들을 짓누르는 문화적 식민주의를 승인하는 압제에 이르는 특징도 있으며, 순교에까지 이르는 박해 경험부터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여 점차 공동체를 텅 비게 만드는 이주 문제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온 세상의 특징인 문화적 상대주의의 증가부터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점점 더 증가하면서 때로는 공격적이기도 한 세속화에 맞서면서, 종교적 경험을 경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 때문에 끊임없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목말라하게 되는 그런 곳에 사는, 이제는 약한 소수자가 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겪는 경험이 있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 교회들은 성적 학대, 권력과 양심의 남용, 경제적 및 제도적 남용으로 충격을 받고 있다. 그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고, 아직도 그 결과들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남용으로 인하여 고통받은 희생자들을 향하여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요청 앞에서, 교회는 앞으로는 그와 유사한 상황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회심과 개혁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5. 다양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통점을 갖는 이 상황 안에서 시노드 여정이 진행되었다. 시노드 총회에도 이 상황에 대한 깊은 경청이 요청되는데, 이 상황 안에서 교회는 살아가고 또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곧,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제기될 때만 앞에서 언급한 근본 질문이 구체적일 수 있고 그 선교적 긴급성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 함께 걸어가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능력이 중요하며, 거기에 특별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교회들과 함께 걸으며 행하는 살아 있는 보편성(catholicitas)의 실천이 있다(교회 헌장 23항 참조). 

 

6. 우리는 경청의 단계에서 얻은 열매들을 가지고 시노드 총회에 도달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신앙 안에서 진실하고 마음을 다하여 만나는 것이 기쁨의 원천이다. 곧 우리가 서로 만나는 것은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라는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의 보편성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는데, 보편성은 나이, 성별, 그리고 사회적 조건의 차이 속에서 은사들과 교회적 성소들의 놀라운 풍요로움을 드러내고, 언어, 문화, 전례적 표현들과 신학적 전통들의 다양함이라는 보물을 보호한다. 그것들은 각 지역 교회가 다른 모든 교회에 주는 선물이고, 시노달리타스의 역동성은 그것들을 서로 관계 맺게 하며, 획일성 안에 뭉개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도적 전통의 공통된 유산에 기초해서 세계 각지에서 시노달리타스가 경험되고 이해되는 방식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유되는 질문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각각의 질문을 다루는 가장 적합한 수준을 식별하는 일은 하나의 도전이다. 마찬가지로 긴장들 가운데에도 공통된 것들이 있었다.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놀라거나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해결하려 하는 대신, 계속해서 시노달리타스 방식의 식별을 하였다. 이 방식을 통해서만이 긴장들은 힘의 원천이 될 수 있고, 파괴적인 양극화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7. 더욱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된다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과 소명을 나타낸다는 것을 시노드 여정 1단계에서 더욱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함께 걷는다는 것, 곧 시노드를 한다는 것은 당신 스스로 “나는 길이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신 우리의 스승이요 주님이신 분의 참된 제자요 벗이 되는 방법이다. 오늘날 그것은 또한 다음과 같은 깊은 바람을 낳는다. 선물로서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날, 곧 하느님의 은총으로 요한 묵시록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그 무리에 속하게 될 때에 이 여정이 완성되리라는 것을 알면서, 이를 계속하기를 원한다. “그 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묵시 7,9-10) 이 구절은 모든 차이 간에 완전한 친교가 이루어진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에서 차이들은 유지되면서도, 완성되어야 할 유일한 사명, 곧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일치 안에서 성부께 드리는 찬미의 전례에 참여하는 그 사명 안에 결합된다.

 

8. 이미 성도들의 충만한 친교 안에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의 전구에(교회 헌장 50항 참조), 특히 그 무리의 첫 자리에 계시는(교회 헌장 63항 참조)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의 전구에 시노드 총회의 활동과 우리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한 임무를 계속할 수 있기를 맡겨드린다. 시노드 총회가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시간이기를, 온 세상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상생활 안에서 그 열매를 실천할 때가 올 때 은총이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를 더욱 청한다. 

 

시노드 여정의 2단계를 위한 작업 도구

 

9. 2021-2024 시노드가 갖는 새로움은 시노드 총회의 가치와 그 역동성에 필연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따라서 시노드 진행에 사용할 이 의안집의 구조에도 반영되어 있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순차적으로 진행된 경청 단계는 『예비 문서』, 지역 교회들의 종합 의견서,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와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 등 이미 많은 문서들을 준비시켰고, 이 문서들은 지역 교회들과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사이에 순환적 소통을 확립했다. 이 의안집은 이 모든 풍요로움을 무효화시키지도 흡수해버리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이 풍요로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계속해서 그것을 참조한다. 또한 총회를 준비하면서 시노드 대의원들은 이전의 문서들, 특히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와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 그리고 그 외 디지털 시노드 문서를 자신들의 식별 작업의 도구로 고려하도록 요청받았다. 서로 다른 대륙들의 구체성과 각 대륙이 제시한 도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는 특히 귀중하다. 시노드 총회의 공동 작업은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 밖에 취합된 원천 자료들, 특히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Episcopalis Communio)와 국제신학위원회의 두 문서,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 2018)와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Sensus Fidei in the Life of the Church, 2014)은 2021-2024 시노드 웹사이트 www.synod.va 에서 볼 수 있다. 

 

10. 이미 사용할 수 있는 풍부한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의안집은 2023년 10월에 개최되는 시노드 총회에서 사용할, 따라서 그 준비를 위한 실제적 보조자료로 여겨진다.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의 성격에 대하여 기술한 다음과 같은 내용은 이 의안집에도 충분히 유효하다. 이 문서는 교회 교도권의 문헌도 아니고 사회학적 조사 결과 보고서도 아니다. 이 문서는 활동 지침 그리고 목표와 목적들의 형식을 제공하려는 것도 아니며, …… 어떤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는 작업 문서인 것은 아니다”(『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8항). 의안집은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와 달리 이 의안집은 그 다음 단계를 구성한다. 곧 제1단계 특히 대륙별 회의 작업에서 얻어진 통찰에서 출발하여,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경청함으로써 드러난 몇몇 우선적 질문들을 표현한다. 그러나 선언의 형태를 띠지도 어떤 입장을 취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의안집의 표현들은 시노드 총회에 던지는 질문 형식을 취한다. 시노드 총회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서 계속해서 성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발걸음들을 확인하는 식별 작업의 임무를 받게 될 것이며, 그런 다음 교황께 제출할 것이다. 오직 그때에 경청의 그 특별한 역동성이 완성될 것이며, 경청에서 “신앙을 가진 백성, 주교단, 로마 주교, 그 각자는 다른 이들을 경청하고, 모든 이는 성령, 곧 ‘진리의 영’(요한 14,17)을 경청하여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묵시 2,7)을 알게 된다.”2) 이로부터 이 의안집이 그에 기초해서 하게 될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차원에 대한 초기 이해를 개략적으로 보여 주지만, 그렇다고 수정되고 교정되어 시노드 총회 최종 문서가 되는 첫 번째 초안으로 여겨지면 안되는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노드 총회 대의원들이 의안집을 받게 될 주요 사람들이며, 이 의안집은 공개될 것인데, 단지 투명성 때문에만은 아니며 교회적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보조자료이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지역과 광역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 역동성에 참여하도록 촉진할 수 있으며, 지역 교회들은 기도하고 성찰하며, 실행하고 기여하도록 요청받게 될 최종적이며 권위 있는 내용들을 시노드 총회의 결과가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11. 의안집이 제안하는 질문들은 의안집이 그 출발점으로 삼은 시노드 여정의 풍요로움을 표현한다. 곧,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담고 있고, 하느님 백성의 신앙 체험을 증언하며, 따라서 초월적 의미가 각인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그 질문들은 하나의 지평을 가리키고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차원의 실천을 심화하기 위한 다음 발걸음을 신뢰심을 갖고 내딛도록 초대한다. 지역 교회를 탁월한 기준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제1단계에서 나타나는데,3) 지역 교회는 세례 받은 이들이 함께 걷는 체험을 구체적으로 하는 신학적 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후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데, 어떤 지역 교회도 사실 특히 로마 교회와의 관계를 포함해서, 자신을 다른 모든 지역 교회들과 결합시키는 관계들을 벗어나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에는 그 목자의 직무를 통하여 일치에 봉사하는 것이 맡겨져 있으며, 이 목자가 교회 전체에 시노드를 소집했다. 

 

12. 이렇게 지역 교회들에 초점을 맞추려면 지역 교회가 갖는 문화, 언어, 표현 방식의 차이와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권위 또는 리더십과 같은 어떤 단어들은 언어와 문화 영역에 따라, 특히 어떤 용어가 이론적인 또는 이데올로기적 설정과 결합되어 있을 경우에, 매우 다른 의미와 울림을 가질 수 있다. 의안집은 다양한 지역 또는 전통들로부터 오는 시노드 총회 대의원들 간에 더 나은 이해를 돕고자 분열적인 언어 사용은 피했다. 공유되는 기준점은 하느님 백성의 보편성을 비롯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망이다. 이 보편성의 힘으로 “각 부분이 그 고유한 은혜를 다른 부분들과 온 교회에 가져다주어, 전체와 각 부분은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일치 안에서 충만을 함께 도모하는 가운데에 자라나게 된다. …… 그러나 베드로 교좌의 수위권은 온전히 보존된다. 사랑의 모든 공동체를 다스리는 베드로 교좌는 정당한 다양성을 보호하고 또 동시에 개별 요소들이 일치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일치에 이바지하도록 감독한다”(교회 헌장 13항). 이 보편성은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들 사이의 상호 내재성의 관계 안에서 실현되며, 지역 교회 안에서 그리고 지역 교회로부터 “유일하고 단일한 가톨릭 교회가 존재한다”(교회 헌장 23항). 제1단계에서 지역 교회들 안에서 진행된 시노달리타스 과정은 이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의 두 차례 회기 개최로 제2단계로 나아간다.

 

의안집의 구조 

 

13. 이 의안집은 총 2부로 나뉘어 있으며, 이는 대륙별 회의에 위임된 작업에(따라서 관련 최종 문서의 내용에) 상응한다. 무엇보다도 제1단계 동안의 여정을 다시 읽는 과정을 밟았는데, 이는 각 대륙 교회가 사명에 봉사하여 시노달리타스 차원을 산 덕분에 경험하게 된 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알기 위해서였고, 따라서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와 비교했을 때 각 대륙의 지역 교회에서 어떤 울림이 있었는지 확인하여 총회 동안 식별해야 할 우선적 질문들을 추출하기 위해서였다.

 

 14. 의안집 제1부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라는 제목하에 지나온 여정을 다시 읽으며 얻은 결실들을 모으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근본적인 특징 또는 구별되는 표징들을 열거하여 추출하였다. 그러므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나아가는 방식에 의하여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인식을 보여주는데, 1단계의 경험은 성령 안에서의 대화 안에서 이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총회는 그것들을 명확하고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이 다시 읽기의 열매들에 응답하도록 초대될 것이다. 제2부는, “친교, 사명, 참여”4)라는 제목하에 모든 대륙의 작업에서 강력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총회의 식별을 요청하는 세 가지 우선적 질문들을 표현한다. 총회의 역동성에, 특히 그룹 작업(Circuli Minores: 소모임)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이 세 가지 질문들은 다섯 개의 ‘작업 목록’(Worksheets)으로 구성되며 다양한 관점에서 이에 접근할 수 있다. 

 

15. 제2부의 세 가지 질문은, 각각의 작업 목록을 통하여 발전시킬 것인데, 광범위하고 매우 중요한 주제들을 다룬다. 많은 것이 시노드의 주제일 수도 있고, 어떤 것들은 이미 그렇기도 하다. 많은 주제에 대하여 교도권에서 많이 그리고 분명하게 다루었다. 질문들은 총회 작업 동안 산만하게 다루어질 수도, 특히 다른 것들과 독립적으로 다루어질 수도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들은 작업의 실제 주제, 곧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와의 연관성으로부터 출발해서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과 젊은이들에 대한 적절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긴급성에 대한 언급은 가정 사목이나 청년 사목을 새롭게 다루도록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은 2015년과 2018년 시노드 총회의 결론들 그리고 각각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과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의 지침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 문서들은 규범, 구조와 절차상 필요한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환대하고 동반할 수 있는 교회로서 함께 걷는 것이 적절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토론 과정에서 나타날 다른 많은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16. 총회와 그 대의원들에게 요청된 임무는 제1부에서 시작하는 작업의 특징인 전체적 관점과, 제2부에서 시작하는 작업이 목표로 하는 필연적이고 구체적인 수행해야 할 순서들의 확인 사이에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시노드 총회가 행할 식별의 결실이 있을 것이며, 시노드 총회의 임무는 교회가 성령의 소리를 전적으로 환대하도록 개방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특성과 초점에 있어 다른 “두 부분으로 구성된”, 그러나 “온전히 하나인”(사목 헌장 각주 1) 사목 헌장의 구성이 이 점에 있어 시노드 총회 활동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하나의 통합적 체험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코린 12,4-7). 

 

17. 1단계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들에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곧 참여자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마주했다는 놀라운 표현을 한다. 시노드 과정은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가 관여하고 또 공동체를 역동적으로 만듦으로써, 참여한 이들에게 주님과의 유대, 사람들 사이의 형제애, 그리고 교회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신앙 안에서 만나는 기회를 선사했다. 그 경험은 교회를 위하여 열린 희망의 지평, 역사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걸어가는 교회를 이끄시는 성령의 현존과 활동의(교회 헌장 5항 참조) 분명한 표징을 보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시노드의 주인공은 성령이시다.”5) 이런 방식으로 함께 걸어가자는 초대를 강하게 받아들였던 만큼, 그만큼 더 시노드는 하느님 백성이 열정적으로, 그러나 단순하지 않게 걸어가는 길이 되었다. 사실, 문제들, 저항들, 어려움과 긴장들을 감추지도 숨기지도 않았으며, 그와 반대로 자유와 진실함 안에서 말하고 경청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참된 대화의 환경 덕분에 식별되고 또 명명되었다. 종종 적대적 방식으로 제기되거나 오늘날 교회의 삶에서 환대와 식별이 부족한 몇몇 문제들을 복음적 방법으로 실제 마주하는 장을 시노드 과정은 형성한다. 

 

18. 시노달리타스처럼 그 자체로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어떤 용어가 이렇게 구체적 경험 안에서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으로부터 시노달리타스를 ‘안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것은 어떤 원리나 이론, 형식의 선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이고 존중하며 기도하는 말, 그리고 경청과 대화의 역동적 과정 안에 기꺼이 들어가려는 태도로부터 나온다. 이 과정의 뿌리에는, 선물이자 동시에 도전인 어떤 것, 곧 그리스도 안에 서로 경청하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점차 성령에 의해 변화될 형제자매들의 교회가 되는 것에 대한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인 받아들임이 있었다. 

 

제1부 1.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특징적인 표징들 

 

19. 이 통합적 이해로부터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어떤 특징들 또는 뚜렷한 표징들에 대한 인식이 나온다. 시노드 총회가 수행할 작업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다듬고 명확하게 해야 할 지속적 여정이라는 점에서, 이는 함께 멈추어 성찰해야 하는 공통된 신념에 대한 것이다. 

 

20. 모든 대륙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세례성사로부터 유래하는 공동의 품위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났는데, 세례성사는 그것을 받은 이들을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 가족의 구성원이 되게 하며,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형제요 자매가 되고, 유일하신 성령의 거처가 되며 공동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파견된다. 바오로의 표현대로,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1코린 12,13). 세례성사는 이렇게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참된 공동 책임성을 만들며, 이것은 모든 이들이 각자의 은사를 가지고 사명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건설에 참여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친교는 인간 실존의 모든 차원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육화하게 하는 사명이기도 하며, 이 친교의 지평 안에서가 아니라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이해할 수 없다. 친교와 사명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잘 결합되고 연결된”(에페 4,16) 하나의 몸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성체성사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데에서 자양분을 얻는다.

 

21. 세례성사로 받은 공통된 품위와 사명에 있어서의 공동 책임성이 단순히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되고 실천될 수 있는 장을 구성할 수 있도록, 제도들, 구조들 그리고 절차에서도 더욱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 인식에 뿌리박고 있다. 이러한 장에서 교회 안의 권위 행사는 선물로 존중되고,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자 몸을 굽히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요한 13,1-11 참조) “참섬김” 곧 “성경에서는 이를 뜻 깊게도 ‘디아코니아’(διακονἰα) 곧 봉사라고 하는”(교회 헌장 24항) 그 모습을 더욱 닮아가기를 원한다.

 

2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경청하는 교회이다.”6) 이 인식은 시노드 여정 체험의 열매로서, 지역 교회부터 대륙 그리고 보편 교회 차원에 이르기까지 말씀의 경청, 역사의 사건들에 대한 경청, 사람들 사이의 상호 경청, 그리고 교회 공동체들 사이의 상호 경청을 통하여 성령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어떤 경우에는 처음으로 공동체에게 경청되는 체험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고, 그렇게 당신 자녀들에 대한 성부의 사랑을 증거하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주고받는 경청은 단지 실용적인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과 만났던 사람들을 어떻게 경청하셨는지 그 모범을 따르기 때문에 신론적이며 교회적인 깊이를 가진다. 이런 형태의 경청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 사이에, 그리고 다른 신앙 공동체, 사회, 특히 가장 종종 그 소리가 무시되는 사람들과 이루는 모든 관계들을 특징짓고 또 변화시키도록 초대한다. 

 

23. 경청의 교회로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겸손하기를 원하고 또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안다. 1단계 동안 얻은 몇몇 문서들은 우리가 교회 공동체의 구성적 차원인 시노달리타스를 항상 살아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시노드 여정이 필연적으로 참회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오늘날 교회의 얼굴에는 신뢰와 신빙성에 있어 심각한 위기에 처하였다는 표징들이 있다. 많은 환경에서 성적, 경제적 남용, 권력과 양심의 남용과 결부된 위기들이 교회로 하여금 “성령의 활동 아래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쇄신”(교회 헌장 9항) 하기 위하여 화해와 치유, 정의의 여정을 여는 회심과 참회의 길에서 양심 성찰을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2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만남과 대화의 교회이다. 우리가 걸어온 여정에서 이것은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과의 관계에서 특별히 강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단일한 세례성사로 인하여 우리와 결합되어 있다. “교회 일치의 원리”(일치 교령 2항)이신 성령께서는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 안에서 활동하시며 상호 인식과 공동의 삶을 공유하고 건설하는 여정을 취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지역 차원에서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 구성원들과 이미 함께하고 있는, 특히 박해에까지 이르는 적대적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공동의 증언 – 이것은 순교의 교회 일치 운동이다.- 또는 생태적 위기를 맞아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과 일치하여 교회 일치적 여정을 심화하려는 갈망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참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는 단일한 세례성사를 공유하는 모든 이가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25.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다른 종교들과 문화들, 그리고 교회가 살고 있는 사회들과, 무엇보다도 교회 자신을 관통하는 많은 다름들 사이에서 만남과 대화의 문화를 실천하도록 부름받았다. 이 교회는 그 다름으로 인한 다양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강제로 획일성 안에 밀어 넣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한다. 시노드 과정은 우리가 나아갈수록 그 여정이 점점 더 분명해질 것임을 확신하면서, 계속해서 탐구해야 할 현실인 다양성 안의 일치를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기 시작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므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나’에서 ‘우리’로의 이동을 촉진하는데, 그것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렇지만 유일한 성령에 의하여 하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는, 한 몸의 구성원이 되라는 부르심이 울려 퍼지는 장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촉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라는 유일한 사명에 봉사하는 백성으로서 주님께 응답하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이는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그 누구도 자신의 것을 버리도록 요청받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이해하고 최대한 깊이 구현하도록 요청받는다. 1단계를 경험한 후 이 전망으로 돌아가면, 시노달리타스는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는 역동성으로 나타난다. 더욱 보편적 차원으로 나아가면서, 이 추동성은 교회의 모든 차원과 현실을 참된 보편성의 운동 안에 포용한다. 

 

26. 다양한 상황과 문화 안에서 살기 때문에 시노달리타스는, 비록 그 기원에서부터 미완성의 길에 있지만, 교회의 구성적 차원임이 드러난다. 사실 그것은 회심, 변화, 기도, 그리고 모든 이를 향한 행동에 대한 근본적 요청을 표현하면서, 더욱더 충만하게 실현되기를 촉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두를 환대하며 포용한다. 성령의 이 움직임이 그 역동성으로 모든 이를 이끌기 위하여 뛰어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 그런 경계는 없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어떤 특별한 성소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녀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살고 증언하는 공동체, 사랑의 진리를 구현하는 공동체, 선물과 무상성에 기초한 공동체를 구성하라는 초대에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 부르심은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으로 함께 매력적이고 구체적인 교회, 곧 밖으로 나가는 교회, 그 안에서 모두가 받아들여짐을 체험하는 그런 교회를 건설하라는 것이다. 

 

27. 동시에,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바오로 성인의 다음 말씀에 따라 사랑과 진리 사이의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라는 부르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에페 4,15-16). 그러므로 참으로 모두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분께서 사랑과 진리 사이의 관계를 사셨던 그 방식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28.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특징은 긴장에 짓눌리지 않으며, 그 긴장들을 친교와 사명 그리고 참여를 이해하고 사는 방식을 심화하도록 자극하는 것으로 여기고 살면서 다루는 능력이다. 시노달리타스는 회심의 탁월한 길인데, 왜냐하면 교회를 일치 안에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곧 교회가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자신의 기억과 화해하며, 다름들을 환대하고, 삭막한 분열로부터 구해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처럼”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교회 헌장 1항)가 되라는 자신의 소명을 더욱 충만하게 구현할 수 있게 한다. 참된 경청과 분열과 양극화를 넘어 계속해서 함께 걸어갈 방법을 찾는 능력은 교회가 살아 있고 활력을 유지하려면 그리고 우리 시대 문화들을 위한 강력한 표징이 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29. 함께 걸어가려고 하는 것은 또한 우리가 짊어질 수 없는 것들이 아직도 많다는 인식과 함께(요한 16,12 참조)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건강한 불안과 만나게 한다. 이것은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가 아닌, 가꾸어야 할 선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무궁무진하고 거룩한 신비 앞에 있으면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를 계속하는 동안(교회 헌장 8항 참조) 하느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들에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시노드 여정에서 나온 질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그 질문들에 대하여 즉각적인 해결책을 성급히 내놓으려 하지 말고, 첫 단계로 경청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0. 이 질문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그것에 짓눌릴 위험을 무릅쓴, 특정 역할을 맡은 개인의 짐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임무이며, 공동체의 관계적이며 성사적인 삶은 종종 가장 효과적인 직접적 응답이다. 이 때문에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전례 헌장 10항)인 전례 안에서, 특히 성체성사에서 거행하는 신비로 끊임없이 양육된다. 

 

31. 한계에 대한 불안을 극복했다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불가피한 불완전함과 그들 자신의 나약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구성원들의 태도는 성령의 활동을 위한 자리가 되며, 성령께서는 당신 현존의 표징을 알아보도록 초대하신다. 이 때문에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또한 식별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그리고 다양한 영적 전통들이 강조하는 풍요로운 의미에서의 식별을 하는 교회이기도 하다. 1단계는 하느님 백성이 성령 안에서 대화를 실천함으로써 식별을 맛보기 시작할 수 있게 하였다. 주의 깊게 각자의 삶의 경험을 들으면서, 우리는 상호 존중 안에서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영의 움직임을 식별하기 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의 열매인 예언적 결정을 더욱 잘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한 노력과 또 그렇게 되리라는 희망 안에서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묵시 2,7)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제1부 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향하여 나아갈 방법: 성령 안에서 대화하기 

 

32. 모든 대륙에서 1단계 동안 사용하였던, 그리고 어떤 문서들에서는 ‘영적 대화’ 또는 ‘시노드 방법’이라고 부른, 우리가 ‘성령 안에서의 대화’라고 부르는 이 방법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를 인정한다. 그림 참조. 

 

33. 어원적 의미에서 ‘대화’라는 말은 생각의 일반적 교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화되고 경청된 말이 친밀함을 낳음으로써 참여자들을 서로 가까워지게 하는 역동성을 가리킨다. ‘성령 안에서’라는 말로 표현하려는 것은 성령께서 참으로 그 주인공이시라는 것이다. 대화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성령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며, 이들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 같으신 분의(요한 3,8 참조) 자유로운 행동을 향하여 기도 안에서 자신을 개방한다. 신앙 안에서 형제자매들 사이의 대화는 점차 ‘함께-의식하는’(con-sentire), 곧 성령의 소리에 함께 동의할 공간을 열어 준다. 구체적인 행동을 가리키는 정확한,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없다면 성령 안에서의 대화가 아니다.

 

34. 1단계 동안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실천하였던 지역 교회들 안에서, 성령 안에서의 대화는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게 하는 분위기라는 것, 그리고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식별의 공간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들에서 성령 안에서의 대화는 성령 강림의 순간으로, 교회임을 체험하는 기회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에 대한 경청에서 참된 주인공이신 성령께 대한 경청으로 건너감으로, 그리고 성령으로부터 사명을 받는 것으로 체험하는 장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동시에 이 방법을 통하여 말씀과 성사들의 은총은 체험되고 변화시키는, 그리고 실현된 실재가 되었고, 이 실재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주도권을 증명하고 실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성령 안에서 성부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도록 당신에게 우리를 결합해 주신다. 이 때문에 모든 대륙에서 이 방법이 교회의 일상생활을 이루고 또 그것을 더욱더 활기차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35. 성령 안에서의 대화는 오랜 교회적 식별의 전통 안에 있으며, 여기서 많은 방법과 접근법을 볼 수 있다. 탁월하게 선교적인 그 가치가 강조되었다. 이 영적 실천은 우리가 ‘나’에서 ‘우리’로 넘어갈 수 있게 한다. 곧 ‘나’의 개인적 관점을 잃어버리거나 개인적 차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공동체적 차원 안에 포함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참여자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경청하는 것은 전례요 기도가 되며, 그 안에서 주님께서 현존하게 되시며, 더욱 참된 형태의 친교와 식별로 이끈다.

 

36. 신약 성경에서 이런 방식의 대화하기의 예는 무수히 많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와 만나는 이야기이다(루카 24,13-35 참조;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237항에서 설명). 두 제자의 경험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성령 안에서의 대화는 친교를 형성하고 선교적 역동성을 가져온다. 사실 두 제자는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파스카 선포를 공유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떠났던 공동체로 되돌아갔다. 

 

37. 구체적으로 성령 안에서의 대화란 공동 식별이라는 관점에서 공유하는 기도라고 묘사할 수 있으며, 참여자들은 성찰과 개인적 묵상으로 그 공동 식별을 준비한다. 순간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아니라 묵상과 기도로 준비된 말로써 서로에게 선물이 될 것이다. 참여자들 간의 역동성은 세 가지 근본적 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준비하는 시간 동안 기도 안에서 다시 읽은 각자의 체험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논쟁이나 토론을 하지 않고, 저마다 이바지할 귀중한 무언가를 갖는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경청한다. 

 

38.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데에 침묵과 기도가 도움이 된다. 다음 단계에서 각자는 타인들을 위한 그리고 타자이신 하느님(Altro)을 위한 공간을 자신 안에 마련하도록 초대된다. 다시 각자 말을 하는데, 이는 들은 것에 반응하고 반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되 경청하는 동안 무엇이 자신을 가장 깊이 건드렸는지 어떤 질문이 가장 강하게 느껴졌는지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형제자매들을 경청함으로써 각자의 내면에 만들어진 흔적들은 성령께서 당신의 소리가 울리도록 사용하신 언어이다. 각자 주님과의 친밀함이 증대되고 말씀 묵상과 성사들로 성장하면 할수록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능력도(요한 10,14.27 참조) 커질 것이다. 또한 교도권과 신학이 동반함으로써 이를 돕는다. 마찬가지로 참여자들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사명감의 공유와 사명에 대한 개방적 감각도 성장할 것이다. 

 

39. 세 번째 단계는, 마찬가지로 항상 기도의 분위기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진행될 것이며, 이 단계는 나타난 핵심 사항을 확인하고 공동 작업의 열매에 대한 동의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각자는 그 과정의 진행에 충실하다고 느낌으로써 자신이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낀다. 가장 자주 언급된 것들을 열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식별이 필요한데, 주변부의 그리고 소외된 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이견이 발생한 것들에 대해서 그 의미를 간과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건물’이 서도록 하는 머릿돌이시고, 조화의 스승이신 성령께서는 불협화음이 교향곡이 되도록 도우실 것이다. 

 

40. 이 과정은 우리가 얻은 경험에 대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로 이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영성을 실현할 때, 우리 마음은 주님의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은총에 더 활짝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눈을 떠 다른 이를 알아볼 때, 우리 신앙의 빛이 더욱 밝아져 하느님을 알아 뵙게 됩니다”(「복음의 기쁨」, 272항). 이것은 성령 안에서 대화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선물을 종합적으로 말한 것이다. 

 

41.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 작업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고, 항상 그것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각자 말하고 다른 이들은 듣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게” 하는 그것을 찾기 위하여 서로 다른 관점들 사이의 관계들을 도출해내는 것이 필요하며(루카 24,32 참조), 또 어떤 상황에서는 명확한 동의를 구축하고 성령께서 어떤 것을 시작하도록 하시는지 그 방향을 식별하기 위한 공동 작업을 우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합한 구체적인 적용을 넘어, 이 세 단계를 결합하는 의도와 역동성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나아가는 방식의 특징이며 또 그 특징으로 남는다. 

 

4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서 성령 안에서의 대화가 삶의 경험을 활기 있게 하는데 가지는 의미를 염두에 두면서, 이 방법을 위한 양성, 특히 거기에 참여하는 공동체를 동반할 수 있는 협력자들의 양성은, 공동 책임의 정신과 다양한 교회적 소명에의 개방성 안에서 교회 삶의 모든 단계에서 그리고 수품 직무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세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우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위한 양성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 위한 양성이다.

 

 

 

제2부 친교, 사명, 참여.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한 세 가지 우선적 질문


“우리가 한 몸 안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지체가 모두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 않듯이,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로마 12,4-5).

 

43. 1단계 동안. 특히 대륙별 회의에서 앞서 개괄했던 진행 방법 덕분에 얻어진 열매들 가운데에서 2023년 10월에 개최되는 시노드 총회에서 식별하도록 이제 제안할 세 가지 우선적 질문들을 분별하였다. 이것들은 교회의 모든 차원과 다양한 관점에서, 교회 전체가 앞으로 나아가고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성장하기 위하여 전념해야 하는 도전이다. 곧 그것은 신학과 교회법의 관점에서 다룰 것을 요청하며, 사목적 그리고 영성적 관점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교구가 계획하는 방식과 하느님 백성 각 구성원의 일상의 선택과 생활 방식에 대해서도 질문을 제기한다. 또한 그것들을 다루려면 백성으로서 모든 구성원이 함께 걸어갈 것을 요청하기 때문에 참으로 시노달리타스의 성격을 갖는다. 세 가지 우선적 질문은 시노드의 다른 세 가지 핵심 단어, 곧 친교, 사명, 그리고 참여와 관련하여 설명될 것이다. 그것은 명료한 단순성을 위하여 선택한 것이지만, 한 가지 위험도 있는데, 그것들이 마치 서로 독립적인 세 개의 ‘기둥’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삶에서, 친교와 사명, 참여는 서로를 설명하고 성장시키며 지탱한다. 이러한 통합을 핵심적으로 염두에 두고 세 개의 질문을 생각하고 제안해야 한다.

 

44. 사명을 중앙에 놓음으로써 세 용어들의 순서를 바꾼 것은 1단계 동안 세 가지를 결합시키는 관계들에 대한 인식이 성숙해진 데에 근거한다. 특히 친교와 사명(선교)은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서로 얽혀 있고 서로를 비춘다.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교호 작용을 하며, 서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친교는 원천이고 결실이며, 친교는 선교적이고 선교는 친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32항; 「복음을 선포하여라」 1.4에서 재인용).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내적 관계들에는 친교가 우세하고, 교회 밖으로의(ad extra) 추동력과 관련해서는 사명이 우세하다고 보는 이원론적 개념을 극복하도록 초대받았다. 1단계는 그와 달리 젊은이, 신앙, 그리고 성소의 식별을 주제로 했던 세계주교시노드 제15차 정기 총회의 통찰을 상기하면서,7) 친교가 복음 선포의 신뢰성의 조건임을 강조하였다. 그와 함께, 사명(선교)을 지향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내적 조직화, 역할과 임무의 분배, 그리고 제도와 구조 운영을 위하여 복음적으로 기초한 유일한 기준을 구성한다는 인식이 성장한다. 참여가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친교와 사명의 관계 안에서이기 때문에 참여는 다른 두 개를 다룬 후에 다룰 수 밖에 없다. 한편 참여는 사명과 친교가 구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곧 절차, 규칙, 구조와 제도들에 대한 주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명을 견고해지게 하고, 친교를 감정적 즉흥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다른 한편 그것들이 끝내 일치보다는 불가피하게 파편화로 끝나버리게 될 개인적 권리 주장의 광란으로 변질될 위험을 피하게 하는 방향성과 목적론적 역동성을 받게 한다.

 

45. 준비를 동반하고 총회 작업을 구조화하기 위하여, 우선적 질문 각각에 대한 다섯 개의 작업 목록을 준비하였으며, 제2부 마지막에 소개하였다. 이들 각각은 그것이 결합된 우선적 질문을 다루기 위한 출입문 같은 것으로서, 이런 방식으로 우선적 질문은 대륙별 회의 작업 덕분에 얻게 된 교회의 삶의 다양한 측면들과 관련된 서로 다른 그러나 서로 보완적인 관점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어떤 경우이든 세 개의 문단이 뒤따르고 거기에 세 개의 작업그룹이 상응하는데, 서로 소통하지 않는 별개의 기둥들처럼 이 문단들을 읽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동일한 실재, 곧 교회의 시노달리타스의 삶을 다양한 관점에서 비추는 빛살로서, 계속해서 서로 얽히고 서로를 요청하면서, 우리가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성장하도록 초대한다. 

 

제2부 1. 빛나는 친교. 어떻게 더 충만하게 하느님과 이루는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46. 친교는 어떤 정체성을 가진 집단의 구성원이 함께 모이는 사회적 만남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물이요, 동시에 하느님 백성의 ‘우리’를 구성하는, 결코 완전하게 수행될 수 없는 과제이다. 대륙별 회의가 경험한 것처럼 친교는 강한 종말론적 역동성 안에서, 교회 헌장이 ‘하느님과의 결합’이라고 부르는 수직적 차원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라고 부르는 수평적 차원을 갖는다. 곧 친교의 여정은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될 때까지”(에페 4,13) 성장하도록 초대받은 여정이다.

 

47. 우리는 교회가 자신의 지상 여정에서 친교를 체험하고 키우고 구축하는 장인 전례 안에서 그 순간을 미리 받는다. 사실 “전례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생활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데에 가장 크게 이바지”(전례 헌장 2항)하고 그렇다면, 교회의 시노달리타스의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할 때 바라보아야 할 그것이 바로 전례이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매일 동일한 기도 안에서, 그러나 언어와 예법의 다양성 안에서 근본적 일치를 체험하는 것은 전례적 행위 안에서, 특히 성체성사의 거행 안에서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한 기회에, 대륙별 회의 동안에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유일한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다양한 예법들은 보호하고 증진시켜야 하는 참된 축복이다. 

 

48. 시노드 총회는 다수결의 역동성을 가진 의회 조직과 유사하게 대표성을 갖는 입법 모임처럼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전례 모임으로서 유비적으로 이해하도록 초대되었다. 옛 전통은 시노드 거행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먼저 성령 청원으로 시작하고, 신앙 고백이 이어지며 교회적 친교를 보증하거나 재수립하기 위하여 공유하는 어떤 결정에 도달한다. 어떤 시노드 모임에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행동하시며, 역사와 일상의 사건들을 변화시키신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어떻게 함께 걸어갈 것인가에 대하여 동의를 찾도록, 그리고 인류가 일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돕도록 교회를 이끄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말씀과 형제자매를 경청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일치 안에서 함께 걸음은 유일한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감사드리는 행위로 이끈다. 시노드 총회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또 상호 경청하면서 성령께 대한 순종 안에서 식별하며, 교회의 여정을 위한 빛으로 알아듣고 인정한 것을 선언한다.

 

49. 이 전망 안에서, 시노달리타스의 삶은 교회 조직화의 어떤 전략이 아니라 같은 신앙 고백 안에서 하느님과의 일치에 기초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포용하는 일치를 발견할 수 있는 체험이다. 이 역동성은 친교의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하도록 촉구하는, 그러나 역사의 모순과 한계, 상처를 생각하게 하는 추진력을 갖는다.

 

50. 시노드 여정으로부터 나온 첫 번째 우선적 질문은 이 점에 뿌리박고 있다. 곧 우리의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 안에서 친교를 지키고 증진하는 것은 다양성 안에 일치를 살아내는 데 있어 불완전함의 짐을 질 것을 요청한다(1코린 12장 참조). 역사는 분열을 만들어내고, 이 분열은 돌보아야 할 상처를 야기하며 화해의 여정을 시작하도록 요청한다. 이 상황에서 참호와 울타리를 복음의 이름으로 넘어서면서 어떤 관계들이 발전되어야 하고, 어떤 피난처와 보호막이 있어야 하며, 누구를 보호해야 할까? 어떤 분열이 비생산적인가? 언제 감사가 완전한 친교를 향한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가? 이론적 질문들이 등장하지만, 그 구체성은 1단계에서 자문이 요청되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상생활에 뿌리 박고 있다, 곧 그것은 사실 개인과 집단들을 기꺼이 환대할 가능성에 한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 우리의 정체성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다른 문화와 종교와 대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방식, 또는 변두리에 속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려는, 그리고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우리의 결정 등에 대한 것이다. 이 우선적 질문과 관련 있는 다섯 개의 작업 목록에서는 다섯 개의 보완적 관점에서 이 질문들을 탐구해볼 것이다. 

 

제2부 2. 사명에서 공동 책임. 복음에 봉사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물들과 임무들을 공유할 수 있을까?

 

51.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다”(일치 교령 2항). 사명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하여 역동적 지평을 구성하며,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이의 행복을 추구하는”(「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63항; 참조: 「모든 형제들」, 88항) “황홀경”을 향한 추진력을 부여한다. 사명은 성령 강림의 경험을 살도록 한다. 곧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는 다른 열한 제자와 함께 일어나,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예루살렘에 모인 이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한다(사도 2,14-36 참조). 시노달리타스의 삶은 동일한 역동성에 뿌리박고 있는데, 1단계에는 삶의 체험을 이 용어들로 묘사하는 증언이 적지 않으며, 시노달리타스와 사명을 분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결하는 증언들은 더 많다. 

 

52. 하느님과의 결합 그리고 온 인류의 일치의 표징이요 도구로 정의되는 교회 안에서(교회 헌장 1항 참조), 선교에 대한 담론은 표징의 투명성과 도구의 효과를 주제로 삼으며, 그것들 없이는 어떠한 선포도 신뢰성의 문제와 충돌하게 될 것이다. 선교는 종교적 산물의 마케팅(marketing)이 아니라 관계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공동체의 건설이고 따라서 삶 자체가 선포가 된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연설에 이어 곧바로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이 친교의 기회가 되었으며(사도 2,42-47), 교회에 매력을 부여했다. 

 

53. 이 노선에서, 사명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들이 받은 세례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직접적 관계 그리고 그들 안에 성령의 내주로 인한 각각의 환원 불가능한 고유성에서 시작해서 기꺼이 공유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것은 세례받은 모든 이가 각자 할 수 있는 기여를 귀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만든다. 1단계에서 나왔던 경이로움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기여 가능성과 관련 있다. “정말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 동시에 각자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도록 곧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이가 필요하다는, 또는 다른 말로 해서 사명도 시노달리타스 차원을 구성적으로 갖는다는 인식을 갖도록 초대되었다. 

 

54. 이 때문에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로 자신을 이해한 교회가 확인한 두 번째 우선적 질문은 은사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교계 제도적 선물들과 은사적 선물 사이의 관계를 통합하면서 저마다 선물과 임무를 가진 모든 이들의 기여를 참으로 독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8) 사명의 전망은 은사들과 직무들을 공통인 것의 지평에 삽입하고, 그 풍요로움은 이런 방식으로 보존되며, 그것들이 배제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특권이 될 때 그 풍요로움은 손상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는 세례 받은 각 사람이 자신으로부터 나가서 다른 이와 함께 더욱 큰 어떤 것에 참여함으로써 어떻게 선교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 그 기여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지 질문할 의무를 갖는다. “인류의 공동선에 능동적 기여를 한다.”(「백주년」, 34항)는 것은 인간의 품위의 포기할 수 없는 구성 요소이며,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도 그렇다. 모든 이가 제공할 수 있는 첫 번째 기여는 선교에 대한 의식이 성령의 움직임과 계속해서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는 것이다(사목 헌장 4항 참조).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비롯한 모든 관점이 이 식별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단지 그들의 필요와 고통을 짊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의미한다. 이것이 복지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가 향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논리를 가능한 한 앞당기면서 그들을 동등한 품위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는 방법이다. 

 

55. 이 우선적 질문과 관련된 작업 목록은 소명과 은사 직무의 다양성 인정, 여성들의 세례성사로 인한 품위의 증진, 수품 직무자 특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 안에서 주교의 역할 등에 대한 주제와 관련하여 이 근본적 질문을 구체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제2부 3. 참여, 책무와 권위.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에서 어떤 절차들, 구조들, 제도들이 있을까? 

 

56. “친교와 사명은, 모든 이가 그리고 저마다 실제로 더욱 관여하면서 함께 걷는 그리고 모든 활동 단계에 있어 시노달리타스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교회적 실천을 해 나가지 않는다면, 조금 추상적 용어에 머물 위험이 있습니다.”9) 교황 성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이 두 단어와 참여를 연결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구체적 사안이라는 이유로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되는 절차적 차원에서, 참여는 매우 중요한 인간학적 밀도를 갖는다. 사실 인간적 발전, 곧 친교와 사명을 위한 노력의 중심에 있는 관계들의 인간화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로의 전환이 무분별한 집단성의 익명성, 권리의 추상성, 또는 조직의 수행을 위한 노예화에 ‘나’를 매몰되게 하지 않기 위하여, 각 사람의 얼굴이 갖는 고유성을 보존한다. 참여는 본질적으로 창조성의 표현이며, 사명과 친교의 중심에서 환대와 환영, 그리고 인간적 성장을 진작시킨다. 

 

57.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통합적 의미에서의 참여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대륙 단계에서 나온 세 번째 우선적 질문이 나타난다. 곧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권위 그리고 그 의미와 행사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특히 그것은 세속적 의미의 한계 안에 있는가 또는 봉사의 선상에 있는가?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마태 20,26; 참조: 마르 10,43)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후 이렇게 가르치신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5). 어원적으로 ‘권위(auctoritas)’는 성장하게 하는 능력을 가리키며, 따라서 각자의 인간적 고유성에 대한 봉사, 창조성을 방해하는 통제가 아니라 창조성에 대한 지지, 그리고 인간의 자유 건설에 대한 봉사로서, 인간을 묶어 두는 끈이 아니다. 시간 속에 구체화하고 계속하여야 한다는 관심이 담긴 두 번째 질문이 이 질문과 연결된다. 어떻게 우리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의 역동성을 구조들과 제도들에 새길 수 있을까? 

 

58. 이런 관심으로부터 역시 구체적인 마지막 주제가 나오는데, 그것은 시간 속에서 참여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양성에 대한 이 주제는, 1단계의 모든 문서에서 나타난다. 사실 제도와 구조가 교회를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만드는 데 충분한 것은 아니다. 대륙별 회의들과 그에 앞서 지역 교회들이 끊임없이 강조했던 것처럼, 회심에 대한 원의로 활기를 띠고 적합한 양성으로 지지되는 문화와 시노달리타스 영성이 필요하다. 양성에 대한 요청은 내용의 쇄신에만 제한되지 않고, 선교에의 지향, 관계 능력과 공동체 구성 능력, 기꺼이 영적 경청을 하려는 태도와 개인적 공동체적 식별에 대한 친숙함, 인내, 끈기와 담대함 등 인간의 모든 능력과 태도가 관련된 통합적 범위를 갖는다. 

 

59. 양성은 교회의 삶과 활동에 관련된 사목적 모델이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진행되기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방법이다. 우리는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에 대한 통합적 양성, 그리고 초기 양성과 지속 양성을 필요로 한다. 세례 받은 이는 누구도 이 노력에서 제외되었다고 느낄 수 없으며, 따라서 시노달리타스를 진행하는 방식에 적합하도록 모든 신자의 양성 방식을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특히 교회에 봉사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일수록 양성의 긴급성은 더 요구된다. 곧 주교, 신부, 부제, 남녀 축성 생활자들, 그리고 직무를 수행하는 모든 이가 권위의 행사 방식과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에 따른 결정 절차들을 쇄신하기 위하여, 그리고 공동체적 식별과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동반하는 방식을 익히기 위하여 양성되어야 한다. 시노달리타스 문화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친교와 사명, 그리고 참여의 삶을 위한 더욱 명확하고 결정적인 방향성을 갖도록, 신학교의 현행 교육과정과 양성 담당자 그리고 교수 양성과정을 쇄신하는 것을 포함한다. 시노달리타스 영성을 위한 양성은 교회 쇄신의 심장에 있다. 

 

60. 많은 의견서가 전례, 강론, 교리 교육, 성 예술, 그리고 신자들에게든 또는 넓은 범위의 여론에 대해서든 새로운 매체나 전통 매체를 통한 온갖 소통의 형태 등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쇄신을 위하여도 이와 유사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언어의 쇄신은 교회가 선포하는 신비 또는 교회 전통의 풍요로움의 심오함을 변형시키거나 손상시키지 않아야 하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는 방해물이 아니라, 접근 가능하고 매력적인 것이 되게 해야 한다. 복음적 언어의 신선함에 대한 영감, 교회 역사가 보여주는 토착화 능력,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도 이미 하고 있고 또 기대할만한 노력들은, 신뢰와 결의를 가지고 복음 선포의 효과를 위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로 나아가도록 초대한다. 복음 선포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로마에서

2023년 5월 29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 


시노드 총회를 위한 ‘작업 목록’

(제1회기 – 2023년 10월)



시노드 총회를 위한 ‘작업 목록’


머리말 

 

의안집이 “2023년 10월에 개최되는 시노드 총회에서 사용할, 따라서 그 준비를 위한 실제적 보조자료로 여겨진다.”(의안집, 10항)라면, 이것은 여기에 제시하는 작업 목록에 특별한 방식으로 유효하다. 작업 목록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서 우리가 성장하기 위하여 성령으로부터 부름받았다고 여겨지는 구체적인 발걸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모든 대륙별 작업에서 강력하게 제기된 세 가지 우선적 질문”(의안집, 14항)에 대한 식별을 촉진하도록 준비되었다. 그러므로 작업 목록의 제안, 그 구조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작업 목록 사용 지침들은 무엇보다도 시노드 총회 작업의 역동 안에 놓여야 한다. 

 

총회의 역동 

 

시노드 총회는 「주교들의 친교」 14항에서 예고한 바와 같이, 전체 모임(Congregationes Generales)과 그룹 작업(Circuli Minores: 소모임 회기)을 번갈아 하면서 의안집이 제안한 질문들을 다룰 것이다.

 

특히 총회는 의안집이 제안하는 순서대로 다양한 주제들을 마주하면서 진행될 것이다. 먼저 제1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하나의 통합적 체험”(의안집, 17-42항)에 대한 작업부터 시작할 것인데, 이는 지난 2년 동안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감으로부터 경험한 것을 비롯하여 목자들의 식별 덕분에 1단계 동안 산출된 문서들로부터 수합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근본적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회는 하느님 백성 전체의 체험 그리고 그 복합성을 고려하면서 하나의 통합적 관점에서 움직일 것을 요청받았다. 

 

그러므로 시노드 총회는 자문 단계에서 나온 그리고 의안집 제2부에서(43-60항) 제안한 세 가지 우선적 질문들을 마주할 것이다. 그 질문들 각각은 제2부에서 “시노드의 다른 세 가지 핵심 단어, 곧 친교, 사명, 그리고 참여와 관련하여”(43항), 그리고 44항에서 설명한 것처럼 세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서 구분한 세 부분 각각에 해당한다. 작업 목록은 이에 상응해서 구분되어, 이 또한 세 부분으로 나뉘며, 그 각각은 제2부의 해당 부분의 제목을 취한다. 이렇게 그들을 결합시키는 연결을 강조한다. 

 

제2부. 1. 빛나는 친교. 어떻게 더 충만하게 하느님과 이루는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46-50항)

제2부. 2. 사명에서 공동 책임. 복음에 봉사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물들과 임무들을 공유할 수 있을까? (51-55항)

제2부. 3. 참여, 책무와 권위.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에서 어떤 절차들, 구조들, 제도들이 있을까? (56-60항)

 

특히 세 우선적 질문 각각에 다섯 개의 작업 목록이 상응한다. 각각은 “그것이 결합된 우선적 질문을 다루기 위한 출입문 같은 것으로서, 이런 방식으로 우선적 질문은 대륙별 회의 작업 덕분에 얻게 된 교회의 삶의 다양한 측면들과 관련된 서로 다른 그러나 서로 보완적인 관점으로 다루어지게 된다”(의안집, 45항).

 

연속적 단계들로 작업을 구성한 것이 제1부와 제2부를 결합시키는 역동성을 없애지는 않는다. 곧 제1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느님 백성의 체험은 제2부에서 제시한 다양한 질문들을 다루게 되는 지평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총회에 요청되는 노력은 바로 “전체적 관점과 …… 수행해야 할 단계들의 확인 사이에 긴장을 유지하는 것”(의안집, 16항)이 될 것이다. 수행해야 할 단계들의 확인은 전체적 관점에 구체성과 깊이를 부여하고, 그 보답으로 세부적인 것으로 분산될 위험에 대항할 전망과 결속력을 받게 된다. 

 

총회의 마지막 단계는 하느님 백성의 경험을 다시 읽으면서 그리고 2024년 10월 시노드 총회 제2회기에서 무엇보다도 신학적 및 교회법적 심화를 촉진하면서, 그때까지 이루어진 과정의 결실을 모으는 것, 곧 계속해서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분별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 전체 과정에서 총회는 성령 안에서의 대화 방법을 적절하게 적용하면서 진행할 것이다(의안집, 32-42항 참조). 이렇게 해서 전체 시노드 과정의 특징인 진행 방법(26쪽 그림 참조)과의 연결을 유지할 것이지만, 특히 그 직접적 경험을 통하여 어떻게 그 방법이 교회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고 또 하느님 뜻을 식별하기 위하여 공유하는 진행 방법이 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더욱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작업 목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작업 목록은 2023년 10월 총회 동안 제2부에서 제안한 세 가지 우선적 질문들을 다루기 위한 작업 도구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연속해서 읽어야 할 책의 장(章)들과 같은 것도, 어떤 주제에 대해 완성된 짧은 논문 같은 것도 아니다. 작업 목록은 그룹 작업과 전체 회의를 준비하기 위하여 기도와 개인 성찰의 윤곽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해야 할” 것이지 “읽어야 할”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작업 목록은 교회의 삶의 모든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주제를 심화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그것들을 연속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각은 의안집 제2부의 모든 부분과 함께 고려해야 하지만, 다른 것들과 독립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작업 목록은 모두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먼저 1단계에서 나왔던 것에서 출발하여 제목에 표현된 질문들의 맥락을 개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다음 식별을 위한 질문 하나가 제안된다. 마지막으로 심화해야 할 것 몇 가지를 제시하는데, 이것들은 신학적, 사목적, 교회법적 등의 다양한 관점들, 본당과 교구 등 삶의 차원들을 표현하는데,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의 얼굴, 그들의 은사들과 직무들, 경청의 단계 동안 표현된 질문들 등의 구체적 특성을 다시 소환한다. 각 작업 목록에 제안된 풍요로운 자극들은 경청으로부터 얻어진 풍요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충실성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으로서, 각 질문에 대하여 응답해야 하는 설문지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특히 지구상 어떤 지역에서 자극적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은 또 다른 지역에서 그럴 수 있다. 각자는 ‘자신의’ 교회 체험에 다른 이들과 공유할만한 풍요로움이 더 많다고 느끼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우선시하도록 요청받았다. 이것이 공동의 작업에 대한 그 교회의 기여일 것이다. 

 

각 작업 목록은 제목에서 가리키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의안집이 나타내는 참조 틀을 당연시하며, 그 내용을 반복하거나 또 명시적으로 인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경청 단계와 관련된 모든 문서와 함께 작업의 기초이다. “총회를 준비하면서 시노드 대의원들은 이전의 문서들, 특히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와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 그리고 그 외 디지털 시노드 문서를 자신들의 식별 작업의 도구로 고려하도록 요청받았다”(의안집, 9항). 그러므로 아무것도 없는 데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여정을 계속하는 것이다. 공간이라는 명백한 이유 외에 바로 이 때문에 작업 목록은 다양한 질문에 대한 체계적 정리를 제공하지도, 문제를 모두 심화하지도 않는다. 시노달리타스 과정을 통하여 어떤 질문이 우선적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다른 질문들이 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 백성의 자문에 기초하여 작업 목록에서 제안한 질문들은 전체 과정을 독려하고 안내하는 다음의 깊은 질문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위한 출입문이다. 그 질문이란 “오늘날 지역 차원부터 보편 차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이 ‘함께 걷기’가 어떻게 이루어져, 교회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게 해 주는가? 성령께서는 우리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자라나기 위하여 어떤 순서를 밟아 가도록 초대하시는가?”(예비 문서, 2항)

 

작업 목록들 사이에는, 또한 서로 다른 부분들과 관계해서도 분명한 접촉지점도, 서로 겹치는 지점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의 문제는 아닌데, 편집 과정에서 작업 목록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사용될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해서 다루어지는 주제들 사이에 풍요로운 상호 연결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느님 백성의 자문 과정에서 나타난 어떤 질문들은 이미 교도권과 신학에서 발전을 이룬 문제들이다. 두 가지만 예를 들면,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의 환대 문제는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전례의 토착화는 경신성사성 훈령 「합법적 다양성」(Varietates legitimae, 1994)에서 다루었다. 이런 주제들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사실을 성급하게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식별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시노드 총회는 그것을 하기 위한 탁월한 장이다. 특히 이전 문서들이 제안한 단계들을 실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실제적 또는 인식적 장애물이 무엇인지 탐구할 것이고, 그것을 제거하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식별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방해가 정보의 일반적 부족 때문이라면 소통을 위하여 더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면 그것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문서들의 함의를 이해하기 어렵거나 문서들이 제안한 것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면, 하느님 백성이 효과적으로 내용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이 그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른 경우는 현실의 변화 또는 은총의 ‘흘러넘침’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주는 질문들인데, 이것은 신앙의 유산 그리고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으로 돌아가 질문할 것을 요청한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의 작업에서는 이 많은 주제들에 대하여 공유되는 결론적 방향성을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교황께서는 시노드 총회를 2회기에 걸쳐 진행하도록 하셨다. 제1회기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이루어야 할 심화 과정을 개략적으로 그리는 것으로서, 다루어야 할 주제들과 그 결실을 거둘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2024년 10월 제2회기에서는 식별을 완료하고, 시노드 정신으로 살아가는 교회로서 성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마련하여 교황께 제출할 것이다. 

 

 

 

       

제2부 1. 빛나는 친교


어떻게 더 충만하게 하느님과 이루는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요 도구일 수 있을까?


제2부 1.1 사랑에 대한 봉사, 그리고 정의 및 공동의 집 돌봄의 임무가 어떻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친교를 증진시키는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로 성장하기 위하여 대륙별 회의는 다양한 방향을 제안하였다.

 

가) 가난한 사람들은 결핍과 사회적 배제의 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그 근원적 의미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중심에 있다. 이들은 돌봄의 대상자들이지만 무엇보다도 복음의 운반자들로서 전체 공동체가 그 복음을 들어야 한다. 곧 그들에게는 교회가 배워야할 무언가가 있다(루카 6,20; 「복음의 기쁨」, 198항 참조).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그들이 주인공임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긴다. 

 

나)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은 함께 행동하도록 초대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 같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 가족 전체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에서는 이미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 구성원들, 타 종교인들, 그리고 선의를 가진 남녀들과의 만남과 협력을 강하게 체험해 왔다. 이 노력은 교리 교육, 사목적 활성화, 삶의 방식 개선, 교회 재산(부동산과 금융)의 관리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행동하기를 요청한다.

 

다) 이주의 흐름은 우리 시대의 한 표징이고, “이주민들은 우리 시대를 비출 수 있는 ‘패러다임’이다.”10) 그들의 존재는 함께 걸으라는 호소가 되는데, 특히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에 그렇다. 또한 그들의 본국 교회들과의 관계를 만들도록 초대하며, 일례로 동방 가톨릭 교회의 디아스포라 경우처럼, 교회의 다양성을 체험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라)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파편화되고 양극화된 세상 안에서, 무엇보다도 그 구성원들이 공동선의 건설을 위하여 다른 시민들과 함께 걸어가도록 노력할 때, 예언자적 증거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깊은 충돌로 얼룩진 곳에서 이것은 화해의 일꾼이자 평화의 장인일 수 있기를 요청한다, 

 

마) “모든 그리스도인과 모든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의 자유와 성장을 위하여 하느님의 도구가 되도록 부름받았다”(「복음의 기쁨」, 187항). 이것은 또한 공적 논쟁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입장을 기꺼이 취하는 태도를 수반하는데, 그들을 위하여 소리를 내고, 불의와 차별 상황에 책임 있는 이들과 공모하지 않으면서 그런 상황을 고발한다. 

 

식별을 위한 질문 

 

함께 걷는다는 것은 누구도 뒤처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우리는 교회와 역사 안에서 가장 끝자리에 있는 이들을 더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을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정의와 자비를 위한 일은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하는 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이들 각각은 이 분야에서 노력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이 의식을 일깨우고, 키우고, 강화할 것인가? 

 

2)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불평등은 교회의 몸 또한 관통하면서 예를 들어 부유한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 같은 나라 안에서 더 부유한 지역 공동체와 더 가난한 지역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이 불평등을 넘어 선물의 참된 순환성을 체험하면서 교회들이 함께 걸어가기 위하여 어떤 도구들이 필요할까? 

 

3) 시노드 여정 동안, 가장 가난한 이들의 소리에 장을 열어 주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기여를 통합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가난한 이들이 주인공임을 지지하는데 있어 우리 교회들은 어떤 체험들을 성숙하게 하였나? 우리의 함께 가는 여정에 그들이 더 관여할 수 있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하며, 우리의 활동 방식이 충분히 포용적이지 않을 때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그 활동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도록 할 수 있을까?

 

4) 특히 같은 신앙을 공유할 때, 이주민 환대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가는 하나의 기회가 되는가? 통상적 사목에서 이주민 공동체들은 어떤 공간을 갖는가? 어떻게 동방 가톨릭 교회의 디아스포라가 다양성 안의 일치를 체험하는 기회로서 소중히 여겨지는가? 이주민들의 본국 교회와 이민 온 나라의 교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만들어지는가?

 

5)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공동선 건설에 있어서 사회 전체와 함께 걸어갈 줄 아는가 또는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에 관심 있는 주체로만 보이는가? 정치적 양극화를 넘어 조화의 가능성을 증언하는가? 어떤 도구가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져야 하는가?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려면 동맹과 연합을 형성할 것을 요청한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식별 기준들이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는 정치 영역에서 일하는 자신의 구성원들을 동반하는가? 

 

6) 우리는 가톨릭 교회에 속하지 않은 개인, 단체, 운동 들과 공동의 집을 돌보기 위하여 함께 가는 체험을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공동의 집을 돌보기 위하여 행동해야 할 다양한 차원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7) 가난한 이들과 이주민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걸을 가능성은 종종 그들의 삶을 기꺼이 경청하려는 태도로부터 시작한다. 이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경청과 동반의 특별한 직무를 인정하는 것이 의미 있을까? 정의로운 사회 건설과 공동의 집을 돌보기 위한 임무의 형태를 참된 소명에 대한 응답으로 그리고 또한 직업적 선택으로 교회가 인정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2부 1.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어떻게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리라.”(시편 85[84],11)라는 약속을 믿을만한 것이 되게 하는가?

 

환대하고 동반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는 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1단계의 여러 과정에서 핵심이었다.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는 잘 뿌리내린 그래서 스스로를 개방할 수 있는 공동체로 부름받았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천막을 넓힌다는 성경적 표상을(이사 54,2 참조) 선택하였다. 대륙별 회의는 다양한 감각에 기초해서 교회의 사명에 속하는 환대의 차원을 표현하기 위하여 또 다른 표상들을 제안하였다. 아시아는 다른 사람들과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겸손함의 표징으로서 문지방을 넘기 위하여 신발을 벗는 사람의 표상을, 오세아니아는 배의 표상을, 아프리카는 다양한 모든 구성원에게 소속감과 환대를 제공할 수 있는 하느님의 가족을 교회의 표상으로 강조하였다. 

 

이 다양한 표상들에서 우리는 그 의도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세계 곳곳에서 교회는 맞아들이고 환대하는 공동체가 되는, 받아들인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리고 그분의 현존의 표징이요 모든 이들의 삶 안에서 복음의 진리의 신빙성을 선포하는 자신의 사명을 쇄신할 방법을 찾고 있다. 역설처럼 보이는 것을 살아내는 능력에는, 스승이요 주님이신 분을 본받으라는 절실한 요청이 있는 것이다. “용기 있게 자신의 참된 가르침을 선포하고 동시에 식별에 기초한 사목적 동반을 통하여 근본적 포용과 수용에 대한 증언을 하는 것이다”(「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30항). 

 

이 점에 있어 시노드 여정은 겸손과 진실함으로 깊은 만남을 시작하는 기회였다. 놀라운 것은 시노드가 사명의 이 쇄신을 위한 촉진제가 되고 교회의 관계 조직을 개선하리라는 희망을 키우면서, 시노달리타스 방식이 이 만남에서 생겨난 질문들을 마비시킨 채 버려두는 대신, 사명의 전망 안에 위치시킨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참된 환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많은 방향성으로 표현되었는데, 그것들은 서로 다르고 공통점이 없다. 

 

가) 대륙별 단계 최종 문서는 종종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 일부다처제의 사람들, 또는 성소수자(LGBTQ+) 등 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언급한다. 

 

나) 마찬가지로 하느님 백성 안에서조차 나타나는 인종, 부족, 민족, 계급이나 카스트에 기초한 차별의 형태가 부각되고, 이런 차별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공동체 안에서 덜 중요하거나 덜 환영받는다고 느끼게 만든다. 

 

다) 어떻게 실천적인 것부터 문화적 편견에 이르는 다양한 장벽이 장애인들의 배제 형태를 낳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지에 대한 지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라) 또한 복음이 가장 먼저 향하는 가난한 이들이(예를 들어, 망명자, 이주민과 난민, 거리의 아이들, 집 없는 사람들, 인신매매의 희생자들 등) 너무나 자주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변두리에 처해 있다는 염려 또한 나타난다. 

 

마) 마지막으로 대륙별 회의 문서들은 시노달리타스 회심의 필요성과 교회 안에서 희생자들및 소외된 사람들의 돌봄 사이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주목한다. 교회 구성원들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 특히 온갖 형태의 남용의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환대하는 형태로서 정의를 실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한다. 

 

바) 가장 자주 간과되는 소리의 경청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복음이 증언하는 정의 안에서 성장하는 길이라고 제시된다. 

 

식별을 위한 질문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모든 이와 함께 걸으셨고, 복음 진리의 충만함을 선포하신 자신의 스승이요 주님을 더 잘 본받기 위해서 어떤 과정들을 밟아 나갈 수 있는가?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우리는 어떤 태도로 세상에 다가가야 하는가? 세상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인정할 줄 알며, 동시에 사람과 인간 공동체, 그리고 피조물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예언자적으로 규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2) 우리 공동체를 부서지게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악의 원인을 드러내는 데 있어 예언적 소리가 울리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갈등을 숨기지 않고, 서로 동의하지 않는 여지를 남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3) 어떻게 우리는 교회 사명의 핵심인 친밀함과 관계 돌봄을 회복하며,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거나 사람들에게 말하는 대신 그들과 함께 걸어갈까? 

 

4)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따라, 어떻게 우리는 젊은이와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젊은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 시노달리타스를 열쇠로 하는 우리의 사목 전략의 핵심이 될 수 있을까?

 

5) 어떻게 우리는 직무자 또는 교회적 책임을 맡은 이들이 행한 성적, 영적, 경제적 남용 그리고 권력과 양심의 남용으로 인한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에게 정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구체적 절차들을 계속해서 밟아 나갈까?

 

6) 어떻게 우리는 교회로부터 상처받았다고, 공동체로부터 배척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환대받으며 경청되고 또 판단받지 않는다고 느끼며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에 비추어 그들의 감정과 성 정체성으로 인하여 교회로부터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어떤 구체적 과정들이 필요할까? (예를 들어,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 일부다처제의 사람들, 성소수자들[LGBTQ+])

 

7) 오래전부터 교회에 속해 있지만 종종 변두리에 있는, 이주민들과 난민들, 소수민족, 문화적 소수자, 원주민 공동체들을 향하여 어떻게 개방적이고 환대적일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그들의 존재가 선물임을 증언할 수 있을까? 

 

8) 장애인들이 온전한 자격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느낄 수 있기 위해 무너뜨려야 하는 물리적, 문화적 장벽은 무엇인가?

 

9) 노인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의 삶에 기여하는 바에 대하여 어떻게 그 가치를 평가할까? 

 

제2부 1.3 동방 교회들과의 역동적인 선물 교환 관계를 어떻게 증진할 수 있을까?

 

교회가 부름받은 친교는 선물 교환의 역동적 관계이고, 이는 다양성 안에서 초월적 일치를 증언한다. 지금까지의 시노드 여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선물 중 하나는 다양성의 풍요로움과 우리의 상호연결의 깊이를 재발견한 것이다. 이 다양성과 상호연결은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창조와 소명 그리고 운명의 일치를 더욱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시노드 과정은, 특히 성령 안에서 대화하는 기회가 실현될 때, 지역 교회에서 열정적으로 그리고 활기 있게 경험되었다.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는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활력을 드러나게 하려고 노력했고, 동시에 다양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질문들과 주제들이 놀랄 정도로 수렴하는 것을 강조하려 하였다. 그리고 대륙별 회의를 하면서 매우 다양한 상황 안에서 교회의 삶의 몇몇 측면이 소중한 선물로서 발견되었다.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다양성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곧 동일한 대륙 안에서 종종 이주민들의 유입과 디아스포라 공동체 형성의 결과, 같은 영토 안에서 라틴 가톨릭 교회와 동방 가톨릭 교회가 공존하게 되는데, 교회들 간에 나타나는 차이는 보편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륙별 회의가 관찰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공동체들의 공동체’로서 매우 구체적으로 체험했고, 이로 인하여 받게 되는 선물들과 발생할 수 있는 긴장들에 주목하였다.

 

이 만남은 다음과 같이 공유된 관찰과 분명한 요청으로 이어졌다. 

 

가) 종종 라틴 서방 교회의 목소리가 지배적인 교회적, 신학적 대화에서 특별한 지역들과 교회들의 다양한 전통들이 경청될 수 있고 또 그들이 거기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동방 가톨릭 교회는 정교회와 공유하는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오랜 그리고 뚜렷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 경험이 이 시노드 과정에서의 토론과 식별에서 주목받기를 바란다. 

 

다) 동시에, 디아스포라 동방 교회들이 정교회 형제자매들과 함께 새로운 환경에서 마주하는 특이하고 특별한 현실들이 존재한다. 디아스포라 동방 가톨릭 교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단순한 민족적 공동체 이상의 무엇으로 곧 오늘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교회의 사명에 기여하는 풍요로운 영적, 신학적, 전례적 전통을 가진 자치 교회로서 인정받기를 바란다. 

 

식별을 위한 질문 


오늘날 자신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사명의 주체인 각 지역 교회는, 어떻게 유일한 가톨릭 교회의 지평 안에서 다른 지역 교회들과의 선물 교환을 증진하고 통합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역 교회들이 각자의 고유성을 보존하면서도 일치와 다양성의 조화로운 관계 안에서 교회의 보편성을 증진하도록 도울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하나이고 보편된 교회가 이미 그리고 처음부터 풍요롭고 다양한 형태의 다양성을 품고 있다는 인식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2) 서로 다른 지역 교회들은 교회적 선물의 교환으로부터 혜택을 얻기 위하여 어떤 행위들로 서로를 환대할 수 있으며, 전례와 영성, 사목과 신학적 성찰에서 교회적 친교를 드러낼 수 있을까? 특히 어떻게 동방 가톨릭 교회와 라틴 교회 사이에 시노달리타스의 경험과 전망을 교환하는 데에 이를 수 있을까?

 

3) 라틴 교회는 동방 가톨릭 교회들의 영적, 신학적, 전례적 전통들에 대한 개방성을 더 키울 수 있을까? 

 

4) 디아스포라 동방 가톨릭 교회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단순한 민족 공동체 이상의 무엇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5) 어떤 교회들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어떻게 다른 교회들은 관대한 마음으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지원해 달라고 그리스 공동체에게 요청하던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면서 그들의 고통을 짊어지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2코린 8,14). 이 점에 있어 국제기구와 사랑의 봉사 임무를 맡은 교황청 기관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6) 보편적 차원에서 교도권과 교회 규범의 가르침에 지역 교회들이 하는 기여와 경험을 어떻게 고려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7) 점점 더 세계화되고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어떻게 동일 지역의 그리고 서로 다른 대륙의 지역 교회들 사이에 관계망을 발전시킬까? 어떻게 인간의 이동성 증가와 이주민 공동체의 존재가 교회들 사이의 유대 구축과 선물 교환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들을 가진 신자들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긴장과 오해를 건설적 방식으로 다룰까? 

 

8) 어떻게 교황청과 교황청 각 부가 책임지고 있는 기관들을 비롯하여 교회의 국제적 기구들이 교회들 사이에 선물의 순환을 촉진할까?

 

9) 어떻게 서로 다른 지역 교회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축성 생활회, 사도 생활단, 평신도 단체와 운동, 새로운 공동체 등 서로 다른 소명, 은사, 그리고 영성 들 사이에서도 경험과 선물의 교환이 활발하고 유익하게 이루어지게 할까? 관상 생활 공동체가 이 순환에 참여하는 것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제2부 1.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어떻게 교회 일치 운동의 쇄신을 통해서 자신의 사명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까? 

 

“가톨릭 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은 교회 일치적이고 또 그래야 하며, 이렇게 교회 일치적 여정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이다.”11) 시노달리타스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과 관련된 공동의 도전이며, 교회 일치 운동이 무엇보다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가는 공동의 길인(Syn-odos) 것처럼 말이다. 시노달리타스와 교회 일치 운동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가야 할 두 길로서, 가장 좋은 그리스도교적 증거이다. 시노달리타스는 서로 다른 신앙 고백을 하는 이들 사이에 이루어진 결혼을 포함하여 여러 차원에서 ‘삶의 교회 일치 운동’ 안에서 공존의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또한 순교의 교회 일치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증거로서 생명을 내놓는 최고의 행동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건설하는 임무 수행에는 다양한 교회 일치적 함의가 있다. 

 

가) 유일한 세례성사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앙 감각 또는 신앙의 초자연적 감각(교회 헌장 12항 참조)에 참여하며 이로 인하여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서 모든 사람은 주의 깊게 경청되어야 한다. 

 

나) 교회 일치적 여정은 선물의 교환이고,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선물 중의 하나는 바로 그들의 시노달리타스 체험이다(「복음의 기쁨」, 246항 참조). 교회의 구성적 차원으로서 시노달리타스를 재발견한 것은 교회 일치적 대화, 무엇보다도 정교회와의 대화의 결실이다. 

 

다) 교회 일치 운동은 시노달리타스의 실험실이고, 특히 교회 안에서 다양한 수준에서 동의에 도달하는 체험, 그리고 대화의 방법론에 영감을 주는 원천일 수 있다. 

 

라) 가톨릭 교회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가는 것은(일치 교령 4.6항 참조) 무엇보다도 시노달리타스가 본질적 역할을 하는 그 내적 개혁을 통해서라는 의식에서,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계속되는 개혁’에 속한다. 

 

마) 가톨릭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질서와 교회 일치 운동의 신뢰성 사이에는 상호 관계가 있다. 

 

바) 다양한 전통들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정규적인 자문과 각 시노드 과정에의 참여를 통해서는 물론, 기도와 행동 그리고 공통의 증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일 때마다 교회들 사이에서 시노달리타스가 체험된다. 

 

대륙별 회의의 모든 문서가 시노달리타스와 교회 일치 운동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고, 어떤 문서들은 한 개의 장 전체를 할애하고 있다. 사실, 시노달리타스든 교회 일치 운동이든 둘 다 세례성사로 인한 하느님 백성 전체의 품위에 근거한다. 둘 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라는 전망에 기초해서 임무를 쇄신하라고 초대하며, 다양한 수준에서의 결정과 행위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지체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둘 다 경청과 대화의 과정이고, 공동 책임성의 정신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기억의 치유로 갈 수 있는 회심의 대화 안에서 회개와 용서, 화해의 영적 과정이다. 

 

식별을 위한 질문 


어떻게 교회 일치적 여정의 경험과 결실이 더욱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가톨릭 교회의 건설을 촉진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시노달리타스는 가톨릭 교회가 예수님께서 바치신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1)라는 기도에 더 잘 응답할 수 있도록 도울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이 시노드는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부터 배우기 위한 그리고 “성령께서 그들 안에 씨를 뿌려 주신 것, 우리에게도 선물 되는 열매를 거두어들이기”(「복음의 기쁨」, 246항) 위한 기회이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회 일치 운동의 시노달리타스 체험으로부터 무엇을 (다시) 배울 수 있을까?

 

2) 어떻게 하느님 백성 전체가 교회 일치 운동에 더 참여하게 할까? 특히 축성 생활, 서로 다른 신앙 고백을 하는 부부들과 가족들, 젊은이들, 교회적 운동들과 교회 일치적 공동체들이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3)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과의 관계와 관련해서 기억의 치유는 어떤 영역에서 필요한가? 어떻게 우리는 ‘새로운 기억’을 함께 만들 수 있을까?

 

4) 어떻게 다른 전통들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더 잘 걸어갈 수 있을까? 이 점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325-2025)의 공동 기념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5) “일치에 관한 주교 직무는 시노달리타스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12) “일치의 가시적 원리요 기초”(교회 헌장 23항)인 주교는 어떻게 지역 교회 안에서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으로 교회 일치 운동을 촉진할 수 있을까?

 

6) 현재 진행 중인 시노드 과정이 어떻게 “수위권의 사명에 대한 본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상황에 개방적인 수위권 행사 방식을 찾는 데에”13) 기여할 수 있을까?

 

7) 라틴 교회가 시노달리타스와 교회 일치적인 노력을 기울임에 있어 동방 가톨릭 교회는 어떻게 도와주고 지원하고 자극할 수 있을까?

 

8) 프란치스코 교황의 “함께 걸어라, 함께 일하라, 함께 기도하라”14)라는 교회 일치 운동의 모토는 어떻게 일치를 위한 시노달리타스 방식의 노력을 쇄신하는데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제2부 1.5 어떻게 복음의 빛으로 문화들이 갖는 풍요로움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종교간 대화를 발전시킬까?

 

사람들의 소리를 경청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속한 문화를 경청할 것을 요청하며, 이는 모든 문화가 계속해서 진화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성령께서 교회에 어떤 문화든 예외 없이 환대할 수 있는 관대함을 선사하신다는 확신에서 비롯되는 식별을 통하여 각 지역의 문화와 상황에서 복음을 더 잘 표현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지역 교회가 이미 커다란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며, 이 다양성은 축복이다. 지역 교회들 안에 다양한 국적과 민족들, 동서방 전통의 신자들이 공존한다. 이 풍요로움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든 항상 단순하지만은 않으며, 분열과 갈등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 시대에는 디지털 환경과 새로운 매체들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압도적으로 만연하고 있다. 디지털 시노드에서 보듯이, 교회는 많은 그리스도인, 그 다수가 젊은이인 그들의 활동을 통하여 이미 그곳에 있다. 그러나 이 환경이 복음화에 제공하는 잠재력에 대한 충분한 인식 그리고 특히 인간학적 면에서 그것이 제기하는 도전들에 대한 성찰은 아직 부족하다. 

 

대륙별 회의 문서에는 다양한 긴장들이 나타나는데, 그 긴장들에 압도당하지 말고 오히려 역동성의 원천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 복음과 지역 문화의 관계에 대하여 다양한 경험과 입장이 있다. 어떤 이들은 타 종교에서 교회의 전통을 받아들이는 것을 일종의 식민주의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성령께서 모든 문화 안에 활동하시면서 그 문화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에 대한 표현일 수 있게 하신다고 여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문화적 관습을 채택하거나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그리스도교와 타 종교의 관계. 타 종교 신자들과 풍요로운 대화와 활동의 체험도 있지만, 그와 함께 어려움과 한계, 불신의 징후들, 종교적 충돌, 그리고 직간접적 박해 또한 있다. 교회는 평화, 화해, 정의와 자유 증진을 위한 다리를 놓고자 하지만,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많은 인내와 희망이 요청되는 상황도 있다.

 

다) 한편으로는 교회와 서구 문화 사이의 관계, 다른 한편으로 교회와 문화적 식민주의 형태 사이의 관계. 신앙에 반대되는 전제들에 기초한 철학적,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비롯하여 세상에는 교회의 사명과 반대인 힘들이 작용한다. 모든 이가 이 긴장들을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데, 예를 들어 세속화 현상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위협으로 어떤 이들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때로 변화를 원하는 이들과 그것을 두려워하는 이들 사이의 충돌로 이 긴장을 축소 해석한다. 

 

라) 원주민 공동체와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한 서구식 모델 사이의 관계. 가톨릭 교회의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의 신앙을 나누는 데에 커다란 헌신과 관대함을 보여주었지만, 어떤 경우 그들의 활동은 지역 문화가 교회 건설에 독창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방해했다. 

 

마)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젊은이의 관계에서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교회 상황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는데, 그들에게는 그런 언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긴장들은 무엇보다도 지역 차원에서의 식별을 통하여 다루어져야 하는데, 완성된 해결책이 미리부터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륙별 회의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가져야 할 유용한 몇 가지 특성을 강조했다. 곧 겸손과 존중, 성령 안에서 참된 대화를 할 수 있고 경청할 수 있는 능력, 교회의 구체적인 삶의 형태와 관련해서도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적 역동성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변화하려는 태도, 문화적 식별을 위한 양성, 그리고 감성과 영성 사이의 비교 능력 양성,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과 함께 하는 법 양성 등이 그것이다. 

 

식별을 위한 질문 


우리 시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더 잘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양한 상황과 문화 안에서 어떻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할 수 있을까? 만남과 대화의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타 종교 신자들과 어떤 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지역 교회들은 어떤 수단들로 자신이 속한 문화들을 읽고 식별할까? 다양한 지역 상황들을 어떻게 복음의 빛으로 존중하고 그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 지역 문화에 비추어 교회의 가르침을 건설적 방식으로 읽기 위하여 어떤 기회들을 만들 수 있을까? 

 

2) 소수자들과 이주민들의 문화가 지역 교회 안에서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은 무엇인가?

 

3) 다양한 교구, 주교회의, 대륙별 회의 등은 영속적 토착화 과정에서, 공동체의 삶 특히 전례를 지역 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새롭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떤 시노달리타스 역동성을 도입할 수 있을까?

 

4) 어떻게 문화적 식별을 위한 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번역가들’, 곧 종교들과 문화들,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들의 은사와 소명을 장려하고 교육하고 인정할까? 

 

5) 타 종교와 어떤 화해와 평화의 제스처를 취하도록 부름받았다고 느끼는가? 어떻게 편견과 긴장, 충돌을 건설적으로 마주할까?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소수인 나라들에서 교회가 신앙의 증거를 약화시키지 않고,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위협이나 박해에 조금이라도 노출되지 않게 하면서 복음을 증거할까? 

 

6) 식민주의 형태를 피하면서, 교회 내 관계를 포함하여, 서구 문화와 다른 문화들 사이의 관계들을 어떻게 솔직하고 예언적이며 건설적 방식으로 마주할까? 

 

7) 세속화된 사회는 어떤 이들에게는 대항해야 할 위협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영감과 기회의 원천이다. 교회는 어떻게 세속적이 되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대화할 수 있을까?

 

8) 디지털 환경에서 식별의 기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영토적 차원이 없는 환경의 복음화를 위하여 어떤 형태의 구조와 협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가?

 

 

제2부 2. 사명에서 공동 책임 


복음에 봉사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물과 임무를 공유할까? 

 

 

제2부 2.1 어떻게 사명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다. 이 임무는 세례 받은 모든 이의 것이다(「복음의 기쁨」, 120항 참조). 시노달리타스는 구성적으로 선교적이며, 선교 자체는 시노달리타스 행위이다.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을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으로 쇄신하면서 우리는 이 부르심에 대한 응답에 있어 계속해서 성장하도록 초대받는다. 대륙별 회의의 성찰에서 이 사명은 다양한 차원들로 표현되는데, 이것들은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에서 촉진하고 「복음의 기쁨」에서 채택한 통합적 전망으로 서로 대립시키지 않고 조화시켜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 강론의 질과 전례 언어를 강조하면서 말씀과 성사들을 통한 선포의 장인 지역 교회의 전례 생활을 쇄신해야 한다는 가슴 아픈 호소. 전례 언어는, 예법의 일치 안에서도 표현되는 교회 일치와 올바른 토착화가 고려해야 하는 정당한 다양성 사이의 올바른 균형을 요청한다.15)

 

나) 고통받는 이에게 다가가는 가난한 교회,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사랑과 친밀함을 통하여, 그리고 순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임무, 곧 ‘사마리아인’으로서의 교회의 소명을 증언함으로써 복음화할 수 있는 그러한 교회에 대한 열망이 강조되었다. 교회가 상처를 초래한 상황들과 상처를 받는 상황들을 언급한다. 이런 상황에 관련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이 상황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다) 새롭고 파괴적인 식민주의에 예언자적으로 반대하기 위한 열쇠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무조건적인 봉사의 장을 여는 것으로서,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오셨다(마르 10,45 참조) 그런 장은 인간의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고, 사람들이 판단받는 대신 경청된다고 느끼며, 우리가 지닌 희망의 이유에 관하여 자유롭게 질문하고(1베드 3,15 참조) 자유롭게 떠나고 돌아오는 곳이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있어 사명은 항상 다른 이들과 함께 수행하는 것이지 단순히 다른 이들을 위하여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라) 또한 교회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그곳에 나타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함께 걷는 새로운 형태를 체험할 수 있는 관계망의 구축을 복음화의 기회로 발견하고 있다. 디지털 시노드의 시작은 현재 이 세계를 구성하는 미디어 네트워크에서도 소통하는 존재인 인간 실재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요청한다.

 

선교를 위하여 더욱 노력하고자 하는 원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실수를 인정한다고 해서 방해받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믿음과 희망, 사랑의 자극을 받아 자신으로부터 나가는 움직임은 이 불완전함을 마주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 이 갈망에 대한 선언과 더불어, 대륙별 회의는 교회 사명의 의미, 가능성, 그리고 내용에 대한, 또는 다양한 방향으로 활동을 추진하는 데에 필요한 명확한 준거들과 그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것은 함께 가는 우리의 여정에 방해가 되고 우리를 분열시킨다. 따라서 더 나은 양성에 대한, 그리고 교회의 풍요로움을 구성하는 다양한 관점들과 영성, 감성들 사이에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하는 만남과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다.

 

식별을 위한 질문 


오늘날 교회는 확신과 영의 자유를 가지고 그리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얼마나 준비되었고 수단들을 잘 갖추고 있는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전망이 어떻게 선교에 대한 이해를 변화시키고 다양한 차원에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사명을 함께 수행하는 체험이 어떻게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해를 풍요롭게 하는가?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공동체의 전례 생활은 사명의 원천이다. 어떻게 직무와 은사, 소명에 대한 평가, 그리고 환대와 관계의 공간 제공을 시노달리타스의 관점에서 쇄신하도록 지원할 수 있을까?

 

2) 어떻게 강론과 교리 교육, 사목이 사명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증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명이 세례 받은 모든 이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부르심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증진할 수 있을까? 

 

3) 주교회의들의 종합 의견서와 대륙별 회의는 젊은이와 가족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강조하는데, 이들은 사목의 대상이 아닌 주체라고 여겨진다. 또한 2014-2015년, 그리고 2018년 시노드 결과들의 실현을 포함해서, 어떻게 교회의 이 사명에 대한 시노달리타스 방식의 쇄신을 구체화할 수 있을까?

 

4) 하느님 백성의 대다수에게 사명은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교회 헌장 31항; 참조: 평신도 교령 2항) 사명을 완수한다. 직업적, 사회적, 정치적 임무, 자원봉사 등이 사명 수행의 장이라는 인식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어떻게 특히 적대적이고 어려운 환경에서 이 사명을 수행하는 이들을 동반하고 지원할까?

 

5) 교회의 사회 교리는 종종 전문가와 신학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져서 공동체의 일상생활과 분리되어 있다. 어떻게 그것을 하느님 백성 편에서 선교의 차원으로 다시 취할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을까? 

 

6) 이제는 디지털 환경이 사회의 삶을 형성한다. 어떻게 교회는 그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환경에서 선포와 동반 그리고 돌봄의 형태를 재구성해야 할까? 어떻게 그 안에서의 선교적 임무와 그것을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적합한 양성 과정을 인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공간에서 교회의 사명에 대한 공동 책임자인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서 격려할 수 있을까? 

 

7) 많은 상황에서 선교 수행은 동방 교회와 개신교 공동체 신자들, 타 종교 신자들, 선한 의지를 가진 남녀 등 많은 사람과 그리고 다양한 영감에서 나오는 조직들과 협력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걷기’로부터 무엇을 배우며, 그것을 더 잘 해내기 위하여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

 

제2부 2.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온전히 직무적인’ 선교적 교회이기 위하여 무엇을 할까? 

 

모든 대륙 회의가 종종 매우 분명한 표현을 사용하여 교회 안에서의 직무를 언급했다. 시노드 과정은 직무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회복시켰는데, 수품 직무를 더욱 넓은 교회적 직무성 안에서 그리고 그것과 대립시키지 않으면서 이해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에 참여하는 하느님 백성 안에서 은사들과 세례성사에 기반한 직무 수행의 적합한 형태들에 대한 식별이 긴급하다는 것 또한 부각되었다. 이 작업 목록은 하느님 백성의 이 직무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서 수품 직무와의 관계와 주교의 임무에 대한 문제는 다른 작업 목록에서 다룬다. 

 

가) 세례 받은 이들의 참여를 종속된 협력으로 축소하면서, 교회 안에서 모든 능동적 역할을 오직 수품 직무자들(주교, 신부, 부제)에게만 유보하는 전망을 극복해야 한다는 요청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성품성사의 선물이 지닌 가치를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직무들은 교회 전체의 직무 개념에서 출발해서 이해된다. 교회의 삶에 모든 이가 참여한다는 것의 기초가 세례성사로 인한 품위라는 인식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평온하게 수용하고 있다. 세례성사로 인한 품위는 세례성사로 인한 직무의 뿌리로서 보편 사제직에 쉽게 연결되고,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 사이의 필연적 관계가 선언된다. 이 두 사제직은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교회 헌장 10항).

 

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모든 이가 가장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장, 수품 직무를 그 고유성 안에서 평가할 수 있는 그리고 동시에 그 다양성 안에서 세례성사로 인한 직무들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은 지역 교회로서, 지역 교회는 특정 사회적, 문화적, 교회적 상황에서 모든 이의 선을 위하여 어떤 은사와 직무가 유용한지 식별하도록 부름받았다. 축성 생활자들이 지역 교회의 삶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은사로 기여하는 바를 귀중하게 여길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환경에서 복음화에 대한 평신도들의 고유한 참여에 새로운 자극을 줄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다) 지역 교회 안에서 함께 걷는 경험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봉사할 새로운 직무를 상상하게 했다. 종종 교회 헌장 10-12항의 언어와 전망을 참조하면서 대륙별 회의는 세례성사로 인한 직무들에 대한 더 큰 인정과 교회의 다양한 수준들 사이의 보완성 노선에서 그것을 실현할 가능성을 요구한다. 이 선상에서 이 요청들 중 많은 것이 지역 교회 안에서 더 깊은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통하여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 교회 안에서, 공동체에 필요한 세례성사적 직무를 식별을 통하여 확인하면서,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에 대한 분화된 참여의 원리에 기초하여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 사이의 보완성을 분명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욱 용이하다.

 

라) “온전히 직무적인” 교회가 필연적으로 “제정된 직무들의 전체”인 교회일 필요는 없다. 세례성사적 소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직무들이 합법적으로 있다. 자발적 직무들,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인정되는 일부 직무들, 그리고 물론 제도를 통한 직무도 있어서 어떤 특별한 양성, 사명과 안정성을 받기도 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성장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봉사라는 요청에 응답하기 위하여 시대의 징표에 비추어 어떤 직무가 만들어지거나 개선되어야 하는지 식별하는 과제를 수반한다. 

 

식별을 위한 질문 


교회 안에서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의 소명과 은사 그리고 직무를 더욱 충만히 실현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교를 중심으로, 실제적이며 효과적인 공동 책임성을 향하여 움직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욱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또한 ‘온전히 직무적’이 될 수 있을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세례와 견진과 성체 성사가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모든 이가 능동적 주체로서 그 참여와 공동 책임성을 증언하고 증진하기 위한 기회가 되게 하려면, 그것을 어떻게 거행해야 할까? 교회 안에 수품 직무로 축소되지 않는 직무성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하여 어떤 양성 과정이 있어야 할까?

 

2) 지역 교회에서 어떻게 사명 수행에 필요한 제정된 직무들 또는 그렇지 않은 세례성사적 직무들을 식별할까? 지역 수준에서 체험할 수 있는 자리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직무들에는 어떤 가치가 부여되어야 하는가? 어떤 조건들하에서 교회 전체가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3)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로부터 직무성과 직무와 관련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4) 공동 책임성은 무엇보다도 모든 이가 사명에 참여할 때 드러나고 실현된다. 특히 지역 교회 안에서 공동체적 임무, 그리고 교회적 임무의 조화에 봉사하는 (개인의 능력과 자격에 결합된 것들과 전문적인 것들로부터 축성 생활회와 사도 생활단, 운동들, 단체 등 제도화된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사와 소명의 고유한 기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5) 다양한 이유로 (노인과 병자, 장애인, 가난한 사람, 문화적 양성을 받지 못한 사람 등) 공동체 삶의 변두리에 있는, 복음의 논리에 따르면 대체 불가능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신자들이 사명에의 공동 책임성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리와 시간을 어떻게 마련할까?

 

6) 많은 사람이 참된 소명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리고 선택한 삶으로서, 또한 더 나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포기하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과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을 수행하며 산다. 이것이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실현하는 행동임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헌신을 어떤 형태로 인정할 수 있을까? 

 

제2부  2.3 우리 시대 교회는 어떻게 여성들이 세례성사로 받은 품위를 더 많이 인정하고 증진함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더 잘 수행하게 할 수 있을까?

 

세례성사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례 받은 모든 이, 온 인류,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간다. 유일하신 성부의 자녀로서, 성령께 결합되어 그리스도와 공통된 유대를 맺음으로써, 세례 받은 이들은 유일한 몸의 구성원으로서 서로에게 선사되며 이 몸 안에서 동일한 존엄성을 갖는다(갈라 3,26-28 참조). 경청 단계는 이 사실에 대한 인식을 재확인했으며, 이것이 교회의 삶 안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상호성, 호혜성, 그리고 보완성의 관계를 통하여 더욱더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드러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이 언급되었다. 

 

가) 비록 각 대륙의 전망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대륙 회의가 실질적인 만장일치로 여성의 체험과 지위, 역할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외딴곳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 곳에서, ‘예언적 변두리’에서 기여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복음화의 주체, 그리고 때로는 신앙의 첫 번째 양성자로서 많은 여성 평신도와 여성 수도자들이 온 세상에서 보여 주는 신앙과 참여, 증거를 치하한다.

 

나) 또한 대륙별 회의는 세례성사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정체성을 더욱 충만하게 실현하기 위한 영속적 회심의 과정에 초대하면서, 관계적 실패의 현실에 대하여 더 깊이 성찰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런 실패는 또한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구조적 실패이기도 하다. 

 

다) 시노드 여정 1단계 동안, 여성의 참여와 인정,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상호 동반 관계, 책임과 협치에 있어 여성의 참여 등에 대한 문제들은 교회가 더욱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으로 살아가라는 사명 수행에 있어 결정적 요소로 나타났다. 1단계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다음과 같은 희망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사회와 교회가 모든 여성을 위하여 성장, 능동적 참여 그리고 건강한 소속의 장을 만들기를 바란다. 그들은 이 희망의 실현을 동반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교회가 자신들 옆에 있어 주기를 요청한다. 참으로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기를 원하는 교회에서 이것은 함께 다루어야 하는 요구이고, 여성들이 세례성사로 받은 품위를 더 인정하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사회에서 그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온갖 형태의 차별과 배제와 싸우기 위하여 함께 그 구체적인 답을 만들어가야 할 문제이다. 

 

라) 마지막으로, 대륙별 회의는 여성의 체험과 관점, 전망의 다양함을 강조하고, 여성을 동질적 집단, 또는 추상적이며 이데올로기적 논쟁 주제로 취급하는 것을 피하면서 이러한 다양성을 시노드 총회 작업에서 인정하기를 요청한다. 

 

식별을 위한 질문 


친교와 사명의 관점에서 여성을 인정하고, 협치에서도 그리고 결정 자체를 포함하여 그들이 결정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도록, 교회는 적합한 절차들, 제도적 장치들과 구조들을 쇄신하고 개혁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들을 밟아 나가야 할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여성은 가정, 본당, 축성 생활, 단체들, 운동들, 그리고 평신도 단체들 안에서, 그리고 선생이요 교리교사로서 신앙 전달에 있어 일차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미 주목할만한 기여를 하고 있는 그들을 어떻게 인정하고 지원하며 동반할까? 더욱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그것을 어떻게 강화할까? 

 

2) 여성이 받은 은사들은 이미 오늘날 교회 안에 존재하고 또 작용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식별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그리고 성령께서 여성들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 모든 대륙 회의는 여성이 협치, 결정 과정, 교회의 모든 수준에서 사명과 직무에 참여하는 문제를 단순히 일반적 열망에 머물지 않도록 하고자 적합한 제도적 지원을 함께 다룰 것을 요구했다. 

가) 어떻게 더욱 많은 여성이 더 새로운 방식으로 이 영역들 각각에 포함될 수 있을까?

나) 어떻게 축성 생활에서 여성이 협치와 결정 과정에 더 잘 참여할 수 있으며, 온갖 남용으로부터 보호받고 그들의 노동에 대한 더 평등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다) 어떻게 여성들이 더 큰 책임성과 투명성을 증진하는 데에 도움을 주면서, 통치에 기여하고 교회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까?

라) 어떻게 신학적 성찰과 공동체 동반에 대한 여성의 기여에 대하여 더 깊게 성찰할 수 있을까? 그런 기여의 자리와 그런 기여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교회의 모든 수준에서 행하는 공식적 식별 과정에서 제공할 수 있을까?

마) 여성들이 식별과 결정 기관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단과 기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떤 새로운 직무들을 만들 수 있을까? 외딴곳에서 그리고 문제가 많은 사회적 상황에서, 그러한 곳에서 종종 사목과 복음화의 주체이곤 하는 여성들이 결정 과정에서 그들이 갖는 공동 책임성을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을까? 시노드 여정의 1단계 동안 나온 의견들은 공동 책임성의 역동성과 공유된 결정 과정이 부재할 때 수품 직무자와의 긴장이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4) 대부분의 대륙 회의와 수많은 주교회의 종합 의견서는 여성 부제직에 대한 문제를 새롭게 고려할 것을 요청한다. 그것을 예상할 수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5) 사목 직무를 수행할 때, 그리고 서로 관련된 책임을 수행할 때, 남성과 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더 잘 협력할 수 있을까?

 

제2부 2.4 수품 직무는 선교적 전망에서 어떻게 세례성사로 인한 직무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까?

 

대륙별 회의 최종 문서들은 수품 직무들과 세례성사로 인한 직무들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며, 공동체의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시노드 과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한편으로는 세례성사에 근거한 성소, 은사, 직무들의 풍요로움과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선물이요 임무인 수품 직무 사이의 상관 관계에 초점을 맞출 귀중한 기회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러하다. 

 

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발자취를 따라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 간의 필연 관계가 재확인되었다. 둘 사이에는 대립이나 경쟁 또는 권리 주장을 위한 여지가 없다. 요청되는 것은 둘의 상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 대륙 회의들은 직무 사제직의 가치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으며, 동시에 시노달리타스의 관점에서 그것을 쇄신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문서들은 일부 사제들의 경우 시노드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고 지적하고, 수품 직무의 수행이 종종 전례-성사적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사람들의 삶과 필요로부터는 동떨어진, 우리 시대의 도전에는 부적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을 우려한다. 또한 많은 사제들이 외로움 속에 살고 있음을 염려하면서 그들에 대한 돌봄과 우정, 그리고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교회 직무는 이미 옛날부터 주교, 신부, 부제라고 불리는 이들이 여러 품계로 수행하고 있다.”(교회 헌장 28항)라고 가르친다. 수품 직무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모든 이에게 복음적 무상성의 논리 안에서 친교와 봉사의 살아 있는 증언이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대륙별 회의에서 나왔다. 또한 주교, 신부, 부제가 자신의 직무를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수행하기를, 곧 공동체에 존재하는 선물과 은사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공동체가 사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격려하고 동반하며, 복음과 함께 그리고 성령께 귀 기울이며 결정들을 보증해 주기를 희망한다. 또한 신학교 교육 과정이 시노달리타스의 의미를 더욱더 지향하고, 하느님 백성 전체와 더 많이 접촉할 수 있는 방식으로 쇄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라) 세례성사의 삶에 봉사하는 수품 직무에 대한 이러한 개념과 관련하여, 성직주의를 온전히 직무적인 건강한 하나의 교회를 고립시키고 분리시키며 약화시키는 힘이라고 강조하면서, 양성이 그것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한편 성직주의가 단지 수품 직무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며,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강조한다.

 

마) 많은 이유로 교회 기관과 전체 교회 안에서 교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직무 사제들에 대한 신뢰가 남용들로 인하여 위협받고 있다. “성직에 속한 사람들 또는 교회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행한 남용 추문들로서,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성년자와 약자에 대한 남용이 있고, 또한 영적, 성적, 경제적 남용, 권위의 남용, 양심의 남용 같은 종류의 남용도 있다. 이것은 피해자들과 피해 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공동체에 계속해서 상처를 주는 아물지 않은 상처이다”(「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20항).

 

식별을 위한 질문 


교회 안에서, 세례성사로 받은 직무들과 수품 직무 사이의 관계가 풍요로운 결실을 맺도록 공동 책임성에 대한 인식과 그 구체적 형태들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까? 교회가 온전히 직무적이라면 어떻게 우리는 하느님의 유일한 백성 안에서 수품 직무자들이 받은 특별한 선물을 선교적 전망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교회 헌장 28항) 사제 직무는 세례성사로 받은 직무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수품 직무자들의 이 삼중 직무는 예언자적, 사제적, 그리고 왕다운 백성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2) 지역 교회에서 사제들은 “자기 주교와 더불어 유일한 한 사제단을 구성한다”(교회 헌장 28항). 주교의 돌봄에 맡겨진 하느님 백성에 대한 봉사를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주교와 그 사제 간의 이 일치를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을까?

 

3) 교회는 축성 생활회와 사도 생활단에 속하는 많은 사제의 직무에 의하여 풍요로와진다. 자신들이 소속된 단체의 은사를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직무는 어떻게 더욱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는 것을 촉진할 수 있을까? 

 

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에서 종신 부제 직무를 어떻게 이해할까?

 

5) 신학교와 신학 대학에서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모습에 부합하는 양성 교육과정을 개혁하기 위하여 어떤 지침들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제 양성 과정이 사목 과정, 그리고 그들이 봉사해야 할 하느님 백성의 삶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갖게 할 수 있을까? 

 

6) 수품 직무로 축소될 수 없는 동시에 이 직무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직무성에 대한 이해를 교회 안에서 발전시키기 위하여 어떤 양성 과정이 있어야 할까? 

 

7) 수품 직무자와 평신도들의 성직주의가 교회 안에서 수품 직무의 성소와 하느님 백성의 다른 구성원의 성소가 충만하게 표현되는 것을 방해하는 방식을 어떻게 함께 식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성직주의를 극복할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을까? 

 

8) 수품 직무자들이 매우 부족한 곳에서 평신도들이 공동체의 책임자 역할을 맡는 것이 가능한가? 수품 직무에 대한 이해에 이것은 어떤 함의를 갖는가?

 

9) 몇몇 대륙에서 제안한 바와 같이,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는 기혼 남성에 대한 사제직 부여 규범에 대하여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을까? 

 

10)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라는 전망에 기반한 수품 직무 개념과 후보자 양성이 어떻게 성적 남용과 그 외 온갖 남용의 재발을 피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제2부 2.5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 안에서 주교 직무를 어떻게 쇄신하고 증진할까? 

 

주교 직무는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뜻에 충실하면서 성전 안에서 발전해왔다. 이 전통에 충실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살아 계신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는”(교회 헌장 18항) 주교들에 대하여 매우 풍요로운 가르침을 선언했다. 교회의 교계 제도를 다루는 교회헌장 3장에서는 주교직의 성사성을 선언하고 이에 기초하여 단체성(교회 헌장 22-23항) 그리고 삼중 직무(Tria munera)의 수행으로서의 주교 직무(교회 헌장 24-27항)에 대한 주제를 발전시킨다. 이후 주교들이 로마의 주교와 함께 교회 전체에 관련된 일에 참여하도록 주교 시노드가 하나의 조직으로 설립되었다. 시노달리타스 차원을 더욱 강하게 살아내라는 초대는 주교직이 시노달리타스의 전망 안에 더욱 견고하게 자리하도록 주교 직무를 새롭게 심화할 것을 요청한다. 그 내용은 특히 다음과 같다. 

 

가) 교회의 주체인 주교단의 머리는 “교회 전체에 대하여 완전한 최고의 보편 권력을 갖는”(교회 헌장 22항) 교황이며 교황 없이는 주교단이 성립하지 않으며, 주교단은 로마 교황과 함께 시노드 과정에 참여하는데, 개별 주교가 자신에게 위탁된 하느님 백성의 자문을 시작하고 인도하며 결론을 내릴 때, 그리고 주교들이 함께 모여 동방 교계 제도 구조, 주교회의, 대륙별 회의 그리고 특별한 형태로 시노드 총회에서 식별의 은사를 수행할 때 그러하다. 

 

나)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공동체에 대한 직무”를 받았고, “하느님의 대리로서 양 떼를 다스리는 그 목자들”(교회 헌장 20항)인 주교들에게, 시노드 과정은 모든 이의 참여를 그들을 인도하는 자신의 직무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지 말고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철저히 신뢰하는 삶을 살도록 요청한다. 모든 이(사제들과 부제들, 남녀 축성생활자들, 남녀 평신도들)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함께 걷도록 독려하고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방식을 증진시키면서 지역 교회 안에서 일치의 원리가 되도록 주교들에게 요청한다. 

 

다) 하느님 백성의 자문은, 어떻게 더욱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될 것인가는 또한 모든 이가 더욱 광범위하게 식별에 참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이것은 결정 과정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 결과적으로 더 큰 투명성과 책임성에 영감받은 적절한 통치 구조에 대한 요청이 나오고, 이것은 또한 주교 직무의 수행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또한 저항과 두려움, 당황스러운 감정을 일으킨다. 특히 어떤 이들은 신자들 모두가 더 많이 참여하는, 그래서 주교 역할이 ‘덜 배타적’ 방식으로 수행되기를 요청하고, 어떤 이들은 의심스러워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역동성에 영향받아 표류하게 될 위험을 두려워한다.  

 

라) 또한 교회 안에서 모든 권위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고 성령에 의하여 인도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권위가 없다면 은사는 무질서 상태에 빠지고, 은사와 직무, 소명의 풍요로움이 없다면 권위는 경직성에 떨어질 것이다. 교회는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이자 동시에 교계적이며 이 때문에 주교 직무가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수행되는 것은 일치를 동반하고 수호하는 것이다. 주교 직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길은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이며, 이는 성령께서 교회 안에 일으키시는 다양한 선물들과 은사들, 직무들과 성소들이 일치를 이루게 한다. 

 

마) 더욱 충만하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주교 직무의 쇄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적, 구조적 변화, 깊은 상호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이끄심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륙별 회의는 성령 안에서의 대화라는 역동성이 교회의 일상의 삶 안에 들어가 모임, 자문, 결정 조직들을 활성화함으로써 상호 신뢰감의 형성과 효과적인 동의 도달을 촉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바) 주교 직무는 또한 주교단에 소속을, 그래서 보편 교회에 대한 공동 책임의 수행을 포함한다. 또한 이 수행은 “특별한 ‘친교의 신비’(mysterium communionis)인 교회의 열매이자 표현인” “공동 책임으로 늘 행동”하면서, “목자들이 ‘스승’과 목자로서 ‘자기 고유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그들이 잘 알고 있고 또한 교회의 일치된 교리와 규율과 친교를 건드리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권한을 그들의 관할권에 맡기기” 위하여 “‘건실한 분권화’의 정신에서”(「복음을 선포하여라」, II.2; 참조: 복음의 기쁨 16항; 계시 헌장 7항)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라는 전망 안에 포함된다.

 

식별을 위한 질문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라는 전망 안에서 주교의 소명과 사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공동 책임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 교회 안에서 주교 직무의 구체적인 수행 형태들과 전망을 어떻게 쇄신할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주교들은 탁월하고 가시적인 방법으로 바로 스승이시고 목자이시며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다”(교회 헌장 21항). 이 직무는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예배드리도록 축성된” 사제들의 직무와(교회 헌장 28항)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수품 직무자들의 삼중 직무는 예언자적, 사제직, 왕다운 백성으로서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2) 주교 직무는 어떻게 하느님 백성이 결정 과정에 자문, 협력, 참여하는 것을 요청할 수 있을까? 

 

3) 어떤 준거에 기초하여 주교는 시노달리타스 방식을 통한 자신의 봉사 수행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고 또 평가될 수 있을까? 

 

4) 어떤 경우에 주교는 자문 조직이 제안한 신중한 권고와는 다른 결정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느낄까? 그런 의무는 어떤 것에 기초할 수 있을까?

 

5) “신앙의 초자연적 감각”(교회 헌장 12항)과 주교의 교도적 봉사와의 관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와 주교 직무 사이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주교들은 하느님 백성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또는 따로 식별해야 하는가? 두 경우(함께, 또는 따로) 모두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그 여지가 있는가? 

 

6) 주교의 삶과 직무 안에서 삼중 직무(성화직, 교도직, 통치직)의 돌봄과 균형을 어떻게 보장하는가? 주교의 삶과 직무에 대한 현재 모델은 어느 정도까지 주교가 기도의 사람, 신앙의 스승, 그리고 지혜롭고 효율적인 행정관이 될 수 있게 하고, 창조적이며 선교적인 긴장감 안에서 이 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가? 시노달리타스 전망 안에서 어떻게 주교의 프로필과 주교직 후보자의 식별 과정을 재검토할 수 있을까? 

 

7)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로마의 주교의 역할과 수위권 행사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제2부 3 참여, 책무와 권위: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 안에서 어떤 과정들과 구조, 제도가 필요한가? 

 


제2부 3.1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에서 권위의 봉사와 책임의 수행을 어떻게 쇄신할까?

 

구성적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교회의 삶과 사명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세례성사로 인하여 가진 참여의 권리를, 어떤 이들에게 권위의 봉사와 다양한 형태로 위임된 책임의 행사와 함께 분별하도록 초대받았다. 시노드 여정은 우리 시대에 그것을 표현하는 적합한 방식을 식별하는 기회이다. 이에 대하여 시노드 여정 1단계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가) 통치의 권위와 책임 그리고 역할들 – 때로 영어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용어로 지칭된- 은 교회 안에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축성 생활, 운동들과 단체들, 대학, 재단, 학교, 등 교회에 관련된 기관들에서 권위는 성품성사에 기인하는 권위와는 다르고, 은사와 결합된 영적 권위가 직무적 봉사에 결합된 권위와 다르다. 이 형태들 사이의 차이점은 보존되어야 하며, 모두 교회 안에서 봉사라는 사실에 있어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나) 특히, 모두가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 22,27)라고 말씀하신 스승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는 공통적인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어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유일한 권위는 섬김의 권위이다.”16) 권위의 모든 형태에서 그리고 교회의 모든 삶의 차원에서 권위와 책임의 행사에 있어 성장을 위한 근본적인 좌표는 이것이다. “교회를 그리스도 자신의 사명인 사랑의 사명이라는 표상에 따라 쇄신하려는 목적”(「복음을 선포하여라」, I.2)을 가지는 선교적 회심의 전망이다.

 

다) 이 노선에서, 시노드 여정 1단계의 문서들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 안에서 권위와 책임의 행사가 가지는 몇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것은 권력이나 통제가 아닌 봉사의 태도, 그리고 투명성, 격려와 사람들의 증진, 전망과 식별과 포용, 협력과 위임을 위한 역량과 능력이다. 무엇보다도 경청의 태도와 또 기꺼이 경청하려는 마음이 강조된다. 이러한 까닭에 책임과 권위를 가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런 능력에 특화된 양성이 필요하며, 특히 더욱 참여적인 주교 선출 과정의 활성화가 강조된다.

 

라) 투명성과 책임성의 전망은 참으로 복음적으로 권위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하여 근본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두려움과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까닭에 식별의 태도로 관리와 리더십에 대한 최근의 학문적 연구 성과 등을 함께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성령 안에서의 대화가 신뢰를 구축하고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적합한 권위 행사를 촉진할 수 있는 결정 과정과 동의 형성을 위한 행동 양식으로 지적된다. 

 

마) 대륙별 회의는 또한 권위와 책임을 가진 몇몇 사람들에 의하여 권력과 결정 과정이 전용되는 현상도 언급한다. 이런 현상에 성직주의 문화와 (성적, 재정적, 영적, 그리고 권력에 의한) 다양한 형태의 남용이 결합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특히 권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인 문화 안에서 교회 사명의 효과를 손상시킴으로써 교회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식별을 위한 질문 


하느님 백성 전체의 참여에 봉사하는 권위와 책임을 어떻게 이해하고 행사할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를 위하여, 권위에 대한 이해와 그 구체적인 행사 방식들, 책임, 그리고 통치를 어떻게 쇄신해야 할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교회의 삶과 사명에 있어 모든 이의 참여에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은 지역 교회들의 인식과 실천에서, 특히 목자들과 책임을 수행하는 이들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수용되었는가?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서 무엇이 이 가르침에 대한 더욱 깊은 인식과 인정을 촉진할 수 있을까? 

 

2) 교회 안에 성품성사와 연결되지 않은, 축성 생활회, 사도 생활단, 평신도 단체와 모임, 교회 운동들과 새로운 공동체 등에서 친교와 사명에 봉사하기 위하여 수행되는 권위와 책임의 역할이 있는가? 어떻게 이 권위의 형태들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적합하게 행사되도록 증진될 수 있으며, 목자들의 직무적 권위와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행사될 수 있을까?

 

3) 모든 교회 책임자의 권위 행사와 관련된 양성에 어떤 요소들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성령 안에서의 대화라는 방법과 그 진정하고 분명한 적용에 따른 양성을 장려할 수 있는가? 

 

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적합한 권위 행사 방식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성품 직무 후보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신학교 및 양성소 개혁 방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제 양성 기본 지침』(Ratio Fundamentalis Institutionis Sacerdotalis)과 국가 차원에서 적용한 관련 문헌들을 어떤 방식으로 재고할 수 있을까? 신학교 교과과정은 어떻게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할까?

 

5)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어떤 형태의 성직주의가 남아 있는가? 아직도 평신도들과 목자들 사이에 거리감이 있는가? 거리감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구성적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부적합해 극복되어야 할 권위 및 책임 행사의 형태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6) 일부 지역의 사제 부족 현상은 수품 직무자, 통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의 책임 인수 간의 관계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의문을 제기할 동기를 제공하는가?

 

7)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로부터 권위와 책임 행사와 관련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8) 모든 시대에서, 교회 내 권위와 책임의 행사는 사회에서 지배적인 관리 모델과 권력 행사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이것을 인식할 수 있고 또 교회와 사회 안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현재의 관행에 대하여 복음적 식별을 할 수 있을까?

 

제2부 3.2 성령이 주인공이심을 존중하면서, 식별 수행과 결정 과정이 어떻게 참으로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진행되게 할 수 있을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서 우리는 교회의 삶과 사명에 대하여 모든 이가 가진 권리를 강조하고 또 세례 받은 모든 이의 대체 불가능한 기여를 독려하면서, 복음화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어떤 단계들을 밟아 나갈 것인지 함께 식별하도록 초대되었다. 모든 식별의 바탕에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기도와 말씀에 대한 묵상과 성사 생활을 통하여 더욱 깊어지는 주님과의 친밀함이 있으며, 이것은 우리가 그분께서 선택하셨을 것들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서 식별의 자리는 다음과 같다.

 

가) 대륙별 회의에서 하느님 백성 전체의 기여를 통합하고, 여성과 젊은이, 소수자들,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공동체의 삶의 변두리에 머무는 사람들의 참여는 물론이거니와, 결정하려는 그 일에 관련된 이들이 가진 능력들을 통합할 수 있는 더욱 공유된 결정 과정들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나타났다. 그런 열망은 자문 없이 결정하는 권위 행사 형태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하여 더 강해진다. 

 

나) 시노달리타스 차원과 교계적 차원을 경쟁 관계로 보는 몇몇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의견이 대륙별 회의에서 있었는데, 이 두 차원은 모두 교회의 구성적 차원이다. 그런데그 반대 표징의 신호도 있었다. 첫 번째 예로, 시노달리타스 형태의 과정 안에서 권위가 결정을 내릴 때 공동체는 더 쉽게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체험이다. 두 번째 예로, 공동체와의 교류 부족은 권위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때로는 권위를 권력의 행사에 넘긴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세 번째 예로, 서품된 사제가 매우 부족한 지역에서 수품 직무자의 수가 매우 부족한 지역에서 건설적이며 그 반대의 방식이 되지 않도록 평신도에게 교회의 책임을 수행하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다) 자문의 1단계 동안 성령 안에서의 대화라는 방법을 널리 채택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공동체적 식별 과정의 어떤 요소들에 대하여, 그리고 갈등을 숨기거나 양극화를 초래하지 않고 동의를 이루어 나가는 데 참여하는 방식에 대하여 체험할 수 있었다. 

 

라) 통치와 책임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백성에 대한 경청을 포함하는 공동체적 식별의 과정을 고무하고 수월하게 하며 동반하도록 부름받았다. 특히, 그런 과정이 시노달리타스의 특성을 갖도록 활성화하고 검증하는 데에, 그리고 도달한 결론이 전개 과정 동안 나타난 모든 것에 충실한지 확인하는 데에 근본적 봉사를 하는 것은 주교의 권위에 맡겨져 있다. 특히 자신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열망이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거룩한 유산”(계시 헌장 10항)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책임은 목자에게 있다. 

 

마) 공동체적 식별의 관점은 교회의 모든 차원에 그리고 그 모든 표현과 조직 형태에 도전이 된다. 본당과 교구의 구조들 외에도 평신도 단체들과 운동들 그리고 모임들의 결정 과정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 이런 데서는 일상적으로 투표와 같은 수단들에 의지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있다. (학교, 대학, 재단, 병원, 환대 및 사회 활동 센터 등) 교회 관련 기관들의 결정 조직들이 활동 지침을 구별하고 형성하는 방식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마지막으로 축성 생활회와 사도 생활단은 자신들의 은사와 고유한 권리를 연결하는 방식에 대하여 질문한다(「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 81항 참조).

 

바) 공동체적 식별을 항시적으로 사용하는 결정 과정을 채택한다는 것은 양성에 대한 노력 외에 개인적, 공동체적, 문화적 그리고 제도적 회심을 요청한다. 

 

식별을 위한 질문 


경청과 공동체적 식별에 자리를 제공하는, 그리고 일치에 봉사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권위에 의하여 지지되는 더욱 참여적인 결정 과정을 우리는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우리의 결정 과정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어떤 장을 마련하는가? 주인공이신 성령께 어떻게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리를 내드릴 수 있을까?

 

2) 공동체적 식별의 역동성을 열어 주는 성령 안에서의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정 과정의 쇄신에 기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제도화’ 될 수 있고, 일상적 관행이 되게 할 수 있을까? 교회법에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3) 공동체적 식별을 수행하는 이들이 적절한 양성과 동반을 받도록 보증하면서, 어떻게 공동체적 식별 과정의 촉진 직무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공동체적 식별을 동반하기 위하여 수품 직무자들을 어떻게 양성할 수 있을까? 

 

4) 식별과 결정 과정에 여성, 젊은이, 소수자, 변두리에 처한 이들의 소리의 참여를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까?

 

5) 결정 과정 전체와 결정을 내리는 특정 순간 사이에 대한 더욱 명확한 설명은 어떻게 우리가 각 단계에서 여러 행위자에게 맡겨진 것을 더 잘 식별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결정 과정과 공동 식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까? 

 

6) 남녀 축성 생활자들은 어떻게 지역 교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또 참여해야 하는가? 식별과 결정 과정에 있어서 그들의 경험과 다양한 영성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평신도 단체들과 운동들, 모임들로부터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7) 권위가 공동체적 식별 과정에 의하여 도달한 결론을 인정할 수 없어서 다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어떻게 건설적 방식으로 다룰 수 있을까? 그 권위는 과정에 참여한 이에게 어떤 형태로 돌려주어야 하는가?

 

8) 사회와 문화에서 참여 과정을 수행하는 방식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반면 더욱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건설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모델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9)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의 경험으로부터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다른 종교들로부터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원주민과 소수 민족들 그리고 억압된 이들의 문화로부터 오는 어떤 자극이 우리의 결정 과정을 재검토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디지털 환경에 있는 경험으로부터는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는가?

 

제2부 3.3 더욱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하여 어떤 구조들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대륙별 회의는 지금까지의 여정 동안 체험하였던 시노드 진행 방식이 교회의 일상생활 모든 차원에서, 교구 사목 평의회와 본당 사목 협의회, 재무 평의회, 교구 시노드, 또는 본당 시노드 등 기존의 구조들을 쇄신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 것을 강하게 원했다. 하느님 백성 안에서의 관계 쇄신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않고, 구조들에 대하여 작업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큰 변화를 이루는 데에 필수적이다. 

 

가) 서류상에만 머문다거나 단지 개인의 선한 의지에만 내맡기지 않기 위하여, 세례성사로부터 비롯되는 사명에 있어서 이 공동 책임성은 구조적 형태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공동체적 식별이 정규적 방식으로 실행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적합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권력의 재분배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세례성사로부터 유래하는 공동 책임성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세례성사는 각자에게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며, 그 의무와 권리들은 각자의 은사와 직무에 따라 수행될 수 있어야 한다. 

 

나) 이러한 까닭에, 적합한 절차에 따라 작동하는 구조들과 제도들이 필요하며, 이것들은 투명하고, 사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참여에 개방적이고, 여성과 젊은이, 소수자와 가난한 이들, 변두리에 있는 이들에게 자리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앞서 그 역할을 재확인하고 강화했던 참여 조직들, 축성 생활회와 사도 생활단의 통치 조직들(이들 각각의 고유한 은사에 적합한 방식으로), 많은 다양한 기관들, 종종 사회 규범에 속해 있으면서 선교 활동과 그리스도 공동체의 봉사를 실현하는 기관들, 곧 학교, 병원, 대학, 대중매체, 환대 센터, 사회 활동 센터, 문화 센터, 재단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 투명성을 고려하여 구조들과 제도들, 그리고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개혁 요청은 특히 (성적, 경제적, 영적, 심리적, 제도적 남용, 그리고 양심과 권력, 사법의) 남용에 의한 위기가 두드러진 상황에서 강하게 제기되었다. 종종 남용을 부적절하게 다루는 방식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외에도 구조와 제도의 작동 과정과 메커니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투명성과 공동 책임성에 대한 관점은 또한 두려움과 저항도 불러일으킨다. 이 때문에 모든 수준에서 대화와 만남의 기회를 만들면서 대화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

 

라) 성령 안에서의 대화라는 방법은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 사이에 다양한 이유로 불신의 분위기가 있는 상황에서 신뢰의 구축을 위하여 특별히 중요해 보인다.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가는 대화와 개혁의 여정은 그 여정을 동반하고 지지할 수 있는 구조들과 제도들을 요청한다. 대륙별 회의는 구조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의식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양성을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 또한 교회법의 개입도 필요해 보인다. 곧 현행 규범에서 강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인 권위의 원리와 참여의 원리 간의 관계에 균형을 찾고, 기존의 제도들이 시노달리타스 방식의 방향성을 가지도록 강화하며, 공동체의 삶의 요구에 필요해 보이는 새로운 제도들을 만들고, 규범의 효과적인 적용을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식별을 위한 질문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공동 책임성과 투명성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화되기 위하여 어떻게 제도들과 구조들과 절차들의 개혁을 위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공동 책임성과 투명성을 촉진하기 위하여 어떻게 교회법적 구조와 사목적 절차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현재 가용한 구조들은 참여를 보장하는 데에 적합한가 아니면 새로운 구조가 필요한가?

 

2) 교회법적 구조는 어떻게 구조들과 제도들의 쇄신에 기여할 수 있을까? 어떤 변화가 필요하거나 적합한가?

 

3) 현재 교회법에 규정된 참여 조직들이 효과적인 공동체적 식별 기관으로 변화하는데 방해가 되는 (정신적, 신학적, 실천적, 조직적, 개정적, 문화적) 장애물은 무엇인가? 사명을 효과적이고 창조적이며 활기 있게 지원하려면 필요한 개혁은 무엇인가? 그러한 조직들에 어떻게 여성, 젊은이, 가난한 이들, 이주민들, 소수자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공동체 삶의 변두리에 있는 이들이 참여하고 또 기여하게 할 수 있는가? 

 

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라는 관점은 축성 생활과 다양한 평신도 모임의 구조들과 절차들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교회와 관련된 제도들의 기능에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5) (경제 및 재무 보고, 책임 있는 자리를 위한 후보자 선택과 임명 등) 기관 운영의 어떤 측면에서 더 큰 투명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가? 어떤 수단들을 통하여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가?

 

6) 투명성에 대한, 그리고 자문과 공동 식별 과정에서의 개방성에 대한 관점은 우려도 불러일으킨다. 그 우려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 두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7) 기관의 구성원들과 기관 자체를 어느 정도까지 구별할 수 있을까? 남용 문제를 다루는 것은 개인의 책임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책임인가? 시노달리타스 관점은 어떻게 온갖 종류의 남용을 방지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가? 

 

8)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사회의 요청(권력 분리, 독립된 통제 기관, 몇몇 절차의 공개 의무, 일정 기간 직무 제한 등)에 공공 기관과 공법 및 시민법이 응답하는 방식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9) 시노달리타스 방식의 구조와 제도들의 기능에 대한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제2부 3.4 지역 교회들의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과 관련하여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collegialitas)은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까? 

 

시노드 여정 1단계에서 동방 교회의 교계 조직들과 라틴 교회의 주교회의들(「복음을 선포하여라」, I,7 참조)처럼 여러 지역 교회들을 연합하는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되었다. 이 조직들은 대륙별 단계가 진행되면서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의 요청을 추가적으로 실천하였다. 여러 단계에서 작성된 문서들은 지역 교회에서 그리고 이어지는 식별 과정에서 이루어진 하느님 백성의 자문이 상호 경청을 통하여 성령의 소리를 듣는 참된 경험이었음을 강조한다. 이 풍요로운 경험으로부터 더욱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건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것들을 도출할 수 있다.  

 

가) 시노드 과정은 “교회적인 모든 결정 과정에 영감을 주는 친교의 역동성”17)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참으로 모든 주체가 –하느님 백성, 주교단, 로마의 주교가– 각자 고유한 기능에 따라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 시노드의 질서 있는 전개는 하느님 백성의 자문이 목자의 직무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와 반대로 자문은 자신의 교회에서 ”일치의 가시적 원리요 기초“(교회 헌장 23항)인 각 주교에 의하여 시작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어서 동방 교회의 교계 조직들에서 그리고 라틴 교회의 주교회의들에서 목자들은 지역 교회에서 올라온 의견들에 대한 단체적 식별을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시노드 과정은 온전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주교적 단체성의 참된 실현을 촉진했다.

 

나) 주교회의를 비롯하여, 영적, 전례적, 규범적 전통에 따라 그리고 문화적 근접성과 지리적 인접성에 따라 지역 교회들이 구성한 연합체와 관련하여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 수행은 새로운 신학적 및 교회법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그 연합체들 안에서, 주교회의들은 “신자들의 친교’(conununio fidelium) 에 기초한 ‘교회들의 친교’(communio Ecclesiarum)에 대한 봉사로 표현된 ‘주교들의 친교’(communio Episcoporum)의 가장 최근 형태들 가운데 하나를 나타낸다”(「복음을 선포하여라」, I,7). 

 

다) 이 과제를 다루어야 하는 이유가 「복음의 기쁨」에 나타난다. “교황이 지역 주교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식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건실한 ‘분권화’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16항).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에서 교황께서는 시노달리타스가 지역 교회들과 보편 교회의 차원에서만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관구나 보다 넓은 지역 차원, 특별 공의회, 무엇보다도 주교회의 같은 차원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고 밝히셨다. “고대 교회 구조의 특정 면모들을 통합하고 쇄신함으로써 이러한 조직들을 통하여 단체성의 중간 단계들을 더 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18) 

 

식별을 위한 질문


지금까지의 시노달리타스 체험에 비추어 볼 때, 주교 시노드와 동방 가톨릭 교회의 주교 평의회, 주교회의 그리고 대륙별 회의와 같이 지역 교회들의 연합과 관련된 제도들 안에서 또 그 제도들을 통하여 시노달리타스는 어떻게 더 나은 표현을 찾아내어, 선교적 전망 안에서 그 제도들이 “진정한 교리적 권위를 포함하여 구체적인 권한을 지닌 주체로 여겨지게”(「복음의 기쁨」, 32항) 할 수 있을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상호 경청을 통하여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노달리타스의 역동성은 온전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주교단의 단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더욱 실천적인 길이다. 시노드 과정의 경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가) 어떻게 교회 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하느님 백성에 대한 경청이 결정 과정을 실현하는 일상적 형태가 되게 할 수 있을까?

나) 지역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 백성에 대한 경청을 실현할까? 특히 참여 조직들이 경청과 교회적 식별의 효과적인 ‘장’이 되도록 어떻게 그 조직들을 강화할 수 있을까?

다) 지역 교회의 하느님 백성에 대한 경청을 비롯하여, 동방 가톨릭 교회 교계 조직들과 라틴 교회의 주교회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결정 과정을 어떻게 재고할 수 있을까? 

라) 대륙 관련 문제를 교회법적 규범 안에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2) 지역 교회들 안에 이루어지는 자문이 하느님 백성에 대한 효과적인 경청이기 때문에, 목자들의 식별은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을 통하여 교회에 말씀하신 것을 권위 있게 확인하는 단체적 행위의 특성을 취한다.

가) 주교회의의 식별에는 어떤 정도의 교의적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가? 동방 가톨릭 교회는 어떻게 그들의 교계 조직들을 규제할까?

나) 대륙별 회의의 식별에는 어떤 정도의 교리적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대륙 또는 국제적 규모로 주교회의가 모인 조직들에 대해서는?

다) 로마의 주교는 교회들의 연합과 관련된 이 과정들에 대하여 어떤 새로운 역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행사할 수 있을까? 

 

3) 동방 가톨릭 교회의 교계 조직, 주교회의, 그리고 대륙별 회의가 효과적으로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의 중간 단계가 될 수 있도록 고대의 교회적 질서의 어떤 요소들이 통합되고 쇄신되는 것이 좋을까?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저마다 가진 선물의 상호 교환을 통하여 전체 교회와 그 모든 부분들이 이익을 얻어낸다고 선언한다(교회 헌장 13항 참조).

가) 보편 공의회, 지역 공의회, 주교 시노드 등의 거행은 동방 교회들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나) 동방 가톨릭 교회의 풍요로운 시노달리타스 체험으로부터 어떤 점을 얻을 수 있을까?

다) 동일한 문제에 대하여 (개별 공의회, 주교회의 등) 여러 지역 교회들의 연합에서 수렴이 이루어질 때, 어느 정도까지 로마의 주교는 보편 교회를 위하여 그것을 다루어야 할까?

라) 지역 교회들이 서로 다른 방향성을 택할 때, 로마의 주교에게 위임된 일치에의 봉사는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가? 서로 다른 지역들 사이에 다양한 방향성을 취할 수 있는 어떤 여지가 있는가?

 

5) 단체성과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기 위하여 지역 교회들의 연합과 관련하여 동방 교회들과 개신교 공동체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2부 3.5  온전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주교직의 단체성의 표현이 되도록 어떻게 시노드 제도를 강화할까?  

 

자의 교서 「사도적 관심」(Apostolica sollicitudo, 1965.9.15.)에서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시노드를 “보편 교회를 위한 주교들의 영구적 평의회”로서 설립하셨다. 교황께서는 이렇게 교회 전체를 위한 일에 주교들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공의회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이 시노드는 모든 인간적 기관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명시하셨다.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2018.9.15.)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 예언된 “완전해짐”이 실현되도록 하였으며 시노드를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주교들의 총회에서 단계적으로 전개되는 경청 과정으로 변화시켜 교회 전체가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가 -하느님 백성, 주교단, 로마의 주교가- 실제로 참여하게 되었다.

 

가) 2021-2024 시노드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이 교회의 포기할 수 없는 구성 요소로서, 수위권, 주교단 그리고 시노달리타스의 행사를 위하여 가장 적합한 상황을 구성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 교회 안에서 각 주체는 더욱 잘, 그리고 다른 이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한다. 

 

나) 교회에서 시노드를 소집하는 것은 로마 주교의 권한이며, 또한 보편 교회를 위한 총회를 공표하고, 각 시노드 과정을 시작하고 동반하며 마치는 것 또한 그의 권한이다. 그런 특권은 그가 “주교들의 일치는 물론 신자 대중이 이루는 일치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교회 헌장 23항)이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다.

 

다) 개별 주교는 “자기 개별 교회 안에서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과 토대이다. [...] 그리고 지역 교회들 안에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유일하고 단일한 가톨릭 교회가 존재”(교회 헌장 23항)하기 때문에, 각 교구 주교에게는 자신의 교회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자문을 시작하고 동반하며 마칠 권한이 부여된다. 또한 주교들이 보편 교회에 대해 가지는(교회 헌장 23항) 관심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시노달리타스와 단체성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초교구적 조직들에 협력할 책임을 갖고, 주교 직무 고유의 교회적 식별 기능을 수행한다. 

 

라) 그런 조직들이 주교단 전체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통해 수행된 목자들의 식별은 행위의 목적 자체 때문에 단체적 특성을 갖는다. 사실 시노드 여정에서 주교들의 총회는 지역 교회들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이 나타나는 자문 결과를 검토할 임무를 갖는다. “믿음에 있어 오류를 범할 수 없는”(교회 헌장 12항) 하느님 백성의 자문을 통하여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신 것을 식별하는 것이 어떻게 단체적 행위가 아닐 수 있겠는가? 

 

마) 지금까지의 시노달리타스 체험은 또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단체성의 효과적인 수행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 주었다. 비록 식별이 특히 “교회를 다스리는 이들에게”(교회 헌장 12항) 맡겨진 행위이기는 하지만, 이 여정은 검토할 문제에 대한 깊이와 타당성을 대륙별 회의에 참여한 하느님 백성 구성원들의 기여 덕분에 얻었다.

 

식별을 위한 질문


교회의 시노달리타스, 주교직의 단체성 그리고 베드로 수위권 사이의 역동적이며 순환적인 관계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이의 -하느님 백성, 주교단, 로마의 주교의- 충분한 참여를 보장하면서 그리고 각각의 고유한 기능을 존중하면서, 시노달리타스 실현의 확실하고 보장된 장이 되도록 시노드 제도를 어떻게 완성해야 할까?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2023년 10월)에 ‘주교가 아닌’ 일단의 사람들로 참여를 확대한 시도를 어떻게 평가할까? 


기도와 준비 성찰을 위한 제안

 

1) 시노드 과정은 “교회적인 모든 결정 과정에 영감을 주는 친교의 역동성”19)을 교회 안에 들여왔는가? 

가) 그런 역동성은 어떻게 교회 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방식이 되게 할 수 있을까?

나) 권위의 원리는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가는가?

다) 그것은 어떻게 로마 주교의 권위를 포함하여 교회 내 다양한 차원에서 권위에 대한 이해를 변화시키는가?

 

2) 시노드 여정의 1단계는 먼저 지역 교회, 동방 교회의 교계 조직, 그리고 주교회의들, 그 다음 대륙별 회의에서 이루어진 하느님 백성의 자문과 함께, 특수에서 보편으로의 움직임을 구현했다. 

가) 자문이 개별 교회에 사는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을 참으로 포착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나) 동방 교회의 교계 조직들 안에서, 라틴 교회의 주교회의들 안에서 그리고 대륙별 회의에서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과 목자의 교도적 역할 사이에 풍요로운 관계”(「예비 문서」, 14항)를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가?

다) 대륙별 회의에는 물론이거니와 주교회의 총회에도 자격을 갖춘 하느님 백성 구성원들이 참석하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가? 

라) 최근 설립된 아마존 지역 교회 협의회처럼, 주교들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도 항시적으로 구성된 교회 기관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3) 로마에 소집된 주교시노드 총회에서, 시노드 여정 2단계는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을 경청하는 교회의 보편성을 표현한다. 

가) 이 주교시노드 총회는 어떻게 시노드 여정 안에 들어가나?

나) 시노드 여정 1단계와의 연속성을 어떻게 실현할까? 그것을 보장할 자격을 갖춘 증인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다) 주교회의 총회와 대륙별 회의가 식별의 행위였다면, 이 시노드 총회에서의 식별의 행위는 어떤 특징과 가치를 갖는가?

 

4) 3단계는 지역 교회들에 시노드 총회의 결과를 되돌려주는, 그래서 그 결과를 실현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될 것이다. 유일한 교회의 보편적 차원과 지역적 차원 사이의 ‘상호 내재성’을 충만하게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도움이 있어야 할까? 

 

………………………………………………………………………………………………………

 

1) 이후, 간단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총회’와 ‘시노드 총회’라는 표현들은 2023년 10월에 열리는 제1회기를 지칭하며, 이 의안집은 이 회의 진행에 사용된다.

2) 프란치스코,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 2015.10.17.,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4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99면(『예비 문서』, 15항 참조).

3) 여기에서 “지역 교회”라는 표현은 교회법이 “개별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가리킨다. 

4) 제2부에서 시노드의 부제목에 대한 순서를 바꾼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44항 참조. 

5) 프란치스코, “시노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성찰의 순간”, 2021.10.9.

6)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

7) 예를 들어, 최종 문서 128항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러므로 구조들 안에 참된 관계들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구조들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실 복음화하는 것은 그 관계들의 질적 차원이다.”

8) 교황청 신앙교리성, 서한 「활기찬 교회」(Iuvenescit Ecclesia), 2016.5.16., 13-18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4호(2016), 53면 참조. 

9) 시노드 여정 시작을 위한 성찰의 시간.

10) 세계주교시노드 제15차 정기 총회 “젊은이, 신앙, 성소 식별” 최종 문서, 2018.10.27., 25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1호(2020), 187면 수정 번역.

11) 프란치스코, 동방 아시리아 교회의 총대주교 마르 아와 3세(Mar Awa III)에게 한 연설, 2022.11.19. 

12)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주교와 그리스도인 일치: 교회일치 편람」, 2020.6.5., 4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7호(2023), 155면.

1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1995.5.25.),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2호(1996), 5면; 「복음의 기쁨」 32항과 「주교들의 친교」 10항에서 재인용. 

14) 프란치스코, 교회 일치 기도를 향한 담화, 세계교회협의회(WCC) 교회 일치 본부(제네바), 2018,6,21. 

15)  「합법적 다양성」 참조.

16)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

17)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 

18)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

19)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

 

<원문 : Segreteria Generale del Sinodo, XVI Assemblea Generale Ordinaria del Sinodo dei Vescovi Instrumentum Laboris per la Prima Session (Ottobre 2023) “Per una Chiesa SinodaleL Comunione, Partecipazione, Missione”, 2023.5.29., 최현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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