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거룩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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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07 ㅣ No.899

[레지오 영성] 거룩한 일상

 

 

절의 경내에 들어가면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전당이 있지요. 모시는 부처님에 따라 대웅전, 대적광전, 극락전 등으로 불리는 이름이 다릅니다. 여하튼 그 중심에 있는 전당의 가운데를 차지한 문으로는 일반인들이 드나들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성당에도 양쪽 장궤틀을 가로지르는 한가운데의 복도는 전례 때가 아니라면 다니지 못하게 합니다. 그곳이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성당은 이미 그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게 합니다. 거룩한 곳에, 거룩한 마음가짐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평범함과 거룩함을 많이 구분하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렇게 구분하기 때문에 거룩함이 우리에게 더 귀하게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거룩한 때와 평범한 때, 거룩한 곳과 평범한 곳, 거룩한 사람과 거룩하지 않은 사람. 이런 구분이 거룩한 무언가를 더 돋보이게 하고 소중히 여기게 하지요.

 

얼마 전에 우연히 어떤 그림 한 장을 보았습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 성녀와 만나신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림의 제목도, 작가도, 그림에 대한 다른 어떤 내용도 알 수 없었지만, 그림에서 풍겨오는 여러 가지가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엘리사벳 성녀께서 성모님의 배를 만지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꾸밈없이 환하게 웃는 그 표정은 기쁨과 설렘,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을 한껏 담고 있습니다.

 

아직 앳된 얼굴의 성모님은 엘리사벳 성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놓고,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왠지 그 얼굴에는 다소의 부끄러움도 보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신 상황이었으니 그러실 수 있지요. 그렇게 성모님과 엘리사벳 성녀께서 함께 기쁨을 나누는 그 모습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모습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뜻이 성취되는 거룩한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일상’과 ‘거룩함’이라는, 어쩌면 서로 반드시 구분되기만 할 것 같은 두 가지가 한자리에서 어우러지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거룩한 일상’이었지요.

 

늘 고상하고 단아하신 성모님, 거룩함을 드러내며 기도하시는 성모님의 모습만을 뵈었던 저에게,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생생함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거룩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생생한 거룩함도 있구나, 어쩌면 일상의 한 장면일 수 있는 이런 상황도 기도가 되고 찬미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에 따라 상상해 보면서도 단 한 번도 그려보지 못했던, 그 순수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거룩하고 귀한 그 장면에 흠뻑 빠져들어서 가만히 그 안에 함께 머물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성모님과 엘리사벳 성녀께서 누리시는 기쁨과 찬미의 자리에 저도 함께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성모님께서 지내셨던 하루하루가 바로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일상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순간들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천 년 전 이스라엘의 한 여성으로서 평범했고, 그러면서도 늘 주님과 함께하셨으니 거룩한 나날들이었겠지요. 평범함과 거룩함이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거룩한 삶을 사셨을 것 같습니다.

 

 

평범함과 거룩함이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거룩한 삶을 사셨을 성모님

 

성경, 특히 구약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결같이 드러나는 핵심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던 것,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던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과의 사이에서 몰락하고, 가뭄과 흉년, 전염병으로 고통받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께 함께 해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이적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드러내어 예언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서면서 수적으로 한참 불리해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그것만으로도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고, 만남의 천막을 통해 백성들 가운데 머무시는 그분께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때에만, 특별한 곳에서만, 특별한 사람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늘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언젠가 영원한 나라에서 그렇게 살아가야 할 우리의 내일이기도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1월호, 조영수 마태오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춘천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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