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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대학의 이념 - 대학은 무엇하는 곳인가? 대학에 대한 가톨릭적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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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2-27 ㅣ No.112

[도서칼럼] 도서 '대학의 이념'


대학은 무엇하는 곳인가? 대학에 대한 가톨릭적 비전?

 

 

대학 입학 철이 다가옵니다. 대학에 진학하게 된 새내기들 축하합니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열은 유별납니다. 그런데 왜 대학에 진학했냐고 신입생들에게 물어봤을 때 소신 있는 답변을 들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많이 들은 답변은 “남들이 가니까.”, “부모님이 가야 한다고 해서.” 등이었습니다. 기성세대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는 학벌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 대학에 간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대학, 특히 명문대를 통해 얻게 되는 상징적, 문화적 자본뿐 아니라 교우 관계를 통해 맺게 되는 인맥이 사회적 자본이 되어 일생에 도움이 된다는 관찰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정부의 대학 정책도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성숙한 시민의 양성이라는 관점보다는 경제성, 효율성의 관점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대학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비전은 무엇일까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교회의 심장으로부터>(1990)라는 가톨릭계 대학교에 관한 교황령이나, 21세기 예수회 대학의 방향을 밝힌 예수회 총원장 콜벤바흐의 《예수회 대학 교육에 있어서 신앙의 봉사와 정의의 구현》(2000)은 훌륭한 안내가 되지만, 일단 2019년 시성된 존 뉴먼 추기경의 《대학의 이념》(1852)은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이 책은 서양 대학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고전입니다.

 

뉴먼에게 대학은 전공 중심의 단편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습득·활용하는 ‘지식기술자’를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이를 넘어서서 학생들이 사유하는 훈련을 받고 판단력을 형성하여 보편 지식을 배우고 활용하는 ‘지성인’으로 성장하도록 교육하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뉴먼은 포괄적 능력을 갖춘 정신의 함양을 위해 교수와 학생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일반적인 지식은 집에서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그 지식의 분위기, 색조, 열정, 그것을 담지하고 사는 삶 등을 배우는 것은 교수와 상호관계를 통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혼이 담긴 교수와 이루는 만남이 중요합니다. 마치 아이가 부모와 인격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정신의 계발에도 스승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대학은 … 자신의 자녀들을 한 사람씩 다 알고 있는, 영양을 주는 어머니(Alma Mater)이지, 주조장이나 화폐 주조소, 혹은 밟아 돌리는 바퀴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가톨릭적 지성인 교육은 오늘날 시급합니다. 법률, 의료 등 분야마다 전문가는 많지만 ‘지식기술자’ 또는 ‘영혼 없는 전문가’처럼 보이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익히 이런 전문가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 인공지능(AI), 양극화, 민주주의의 위기 등 현시대의 이슈는 단지 양심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성적으로도 기술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서 문제나 사안을 포괄적으로 볼 수 있도록 훈련된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안건들입니다.

 

한국의 대학, 적어도 가톨릭계 대학은, 학생들을 이런 지성인으로 양성하는, 학문과 교육의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2024년 2월 25일(나해) 사순 제2주일 서울주보 5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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