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강론자료

2024-07-07.....연중 제14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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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07-06 ㅣ No.2456

                                                                    연중 제14주일 (나해)

에제키엘 2,2-5     2코린토 12,7-10     마르코 6,1-6

2024. 7. 7.

주제 : 우리는 삶에서...

 

사람이 세상에서 하는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로 하는 일이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사정을 좀 더 생각하여 말한다면, 내가 행동하는 일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내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하는 행동이 잘못이라거나 부족한 것이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정치의 모습을 봐도 그렇고, 냉담자가 많다는 신앙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 만드는 문제는 이러한 요소를 느낄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가진 힘으로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으면서 내 삶에 적용할 요소는 무엇이냐를 찾는 차이만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결정을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사정이 그러할 때 나는 어떤 기준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은 삶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것을 목적으로 삽니다. 이익이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돈을 벌거나 내가 남보다 더 마음껏 많이 쓰는 즐거움을 느끼느냐에 있거나,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명예를 높이는 방법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두고 내가 하는 선택이 과연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겠는지 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내게 다가올 삶의 결과에 대하여 불편하게 생각하면, 내가 바라지만 좋다는 것이 나의 삶에 찾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일부러라도 좋은 생각을 해야 하고 일부러라도 좋은 목표를 지향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예수님의 삶을 대하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으니까, 사람을 향해서 당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신 것은 있지만, 예수님은 어찌하여 기적을 베푸시어, 사람의 삶을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고, 하느님과 예수님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고, 끊임없는 반대를 당한다면 굳이 그 사람을 상대로 하여 좋은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므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 없기에 아마도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는 하지 않을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할 수는 있습니다만, 예수님은 우리가 하는 것과 다르게 행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분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신 분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나자렛의 사람을 대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시고, 고향 동네를 떠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딩신을 이해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셨다고 했지만, 사정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을 위하여 기적을 베풀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일까요? 나자렛의 동네 사람들이 받아들일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적을 베풀지 못하신 것일까요? 세상을 향해서 좋은 일을 하게 하는 일의 순서를 우리가 바르게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독서로 들은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시켜 남쪽 국가인 <유다>가 멸망한 뒤, 그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말씀을 선포한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효율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행동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한꺼번에 기적으로 바꾸실 수도 있었을 것인데, 절대로 하느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하느님은 그래도 특별한 뜻이 있으셔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셨다고 말할까요? 그런데도 비뚤어지게 행동한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바오로사도는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실천했으면서도, 자기의 생애에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의 태도로 하루하루를 지내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면서,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충실하게 이해하고, 내 몸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겠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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