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5일 (목)
(백)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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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희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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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5-14 ㅣ No.161

[도서칼럼] ‘희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신학생 시절, 철학을 가르치셨던 교수 신부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신부님이 독일 뮌헨에서 유학 중이셨을 때,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미국발 경제 위기로 독일 사회도 어수선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위기 상황을 상세히 진단하고 해결해 나갈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국영방송을 통해 일주일에 한 차례씩 방영되었습니다. 총 4주에 걸쳐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각 주마다 각계 전문가 한 명이 출연하여 자신이 몸담은 분야의 시각으로 당시의 경제 위기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합니다. 첫 주 차에는 애널리스트가, 둘째 주 차에는 경제학 박사가, 셋째 주 차에는 심리학자가 출연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해 나갈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 차에는 놀랍게도 당시의 뮌헨교구 대주교님께서 출연하여 영적인 맥락에서 경제 위기 상황을 분석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세속화가 심화되고 교회의 영향력이 줄어든 독일 사회가, 그럼에도 결정적인 사회문제를 두고서 최후의 조언을 교회에서 듣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독일 사회가 교회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을 통해, 영향력이나 유명세, 외적인 규모와 같은 부분을 두고 교회를 판단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습니다. 아마도 신부님은, 세속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세간의 눈길을 끄는 교회나 지극히 개인적인 능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성직자의 모습보다는 시대적 징표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스스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교회와 성직자들의 모습이, 희망이 희미해진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를 찾게 한다는 점을 후배들에게 일깨우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서전 《희망》의 원제목은 ‘희망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Spera’입니다. 교황님이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해 일깨우시고자 했던 희망은 ‘어떻게든 괜찮아지겠지.’라는 식의 ‘낙관주의’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던 희망은 괜찮지 않다고 드러나는 것들도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현실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희망적이지 못한 상황을 버티고 견디면서, 가능하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마냥 다소곳이 희망을 이야기하시지 않습니다. 교황님은 희망을 사치처럼 여기거나 공허한 메아리로 치부해 버리는 우리 시대를 향해 “지금 당장 희망하라!”고 명령하듯 외치셨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희망을 품기 어려운 시기에 독일 사회가 교회를 최후의 보루로 여긴 모습은 자서전 《희망》에 담긴 “희망하라.”는 교황님의 제언과 맞물려 작금의 교회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하나의 징표처럼 다가옵니다.

 

안미옥 시인은 희망을 ‘모서리가 깨진 서랍장을 이사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끌고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이 낡고 부질없다 치부해 버린 ‘희망’을 끝까지 품으며 포기하지 않고 끌고 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025년 5월 11일(다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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