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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 임상사목교육(CPE) 100년: 현대인의 영적 고통을 돌보는 CP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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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돌봄에 힘써온 임상사목교육(CPE) 100년] (1) 현대인의 영적 고통을 돌보는 CPE (상) 환자들 고통 공감하며 환대 · 지지하는 훈련
올해는 주변의 이웃을 영적으로 돌보고 치유에 나서고 있는 임상 사목 교육(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이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CPE 100주년을 맞아, 본지는 한국CPE협회(협회장 정무근 다미안 신부·예수회)와 함께 CPE의 의미와 CPE의 역사, 그리고 한국CPE의 활동을 5회 걸쳐 짚어본다.
현대사회는 생산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뒤처지는 이들에는 무관심하고 가장 약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개인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그리고 고령화 사회로 인하여 노년의 외로움 속에 버림받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런 사회는 “함께 고통을 겪음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안으로 견디도록 돕지 못하는 무정하고 비인간적인 사회”(「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38항)의 모습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런 영적 위기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는 영적 요구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웰다잉(Well-dying)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교회는 어떻게 살아있는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런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교회의 사명은 말씀만으로의 전달이 아니라 살이 있는 관계의 돌봄으로서의 실천이 필요하다.
돌봄의 정의와 개념
예수님께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라고 말씀하셨듯이 ‘돌봄의 관계’는 인간 생명을 증진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이중적 정의를 포함한다.(「중증 말기 병자의 돌봄에 관한 서한 착한 사마리아인(Samaritanus Bonus)」)
교회의 돌봄 사명은 “모든 사람 일생의 ‘돌봄’”(「생명의 복음」 87항)을 통해 삶의 원천인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모든 병자가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자기 존재의 깊은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게 하는 돌봄의 과정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한 영적 돌봄에 특화된 교육이 CPE, 즉 임상사목교육이며, 이 교육 중에 이루어지는 영적 돌봄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환자의 돌봄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거의 주검이 되어 길가에 버려진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병자와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여 사랑에 기초한 관대함을 지니도록 초대하신다.(루카 10,29-37) 환자의 돌봄에서는 우선 환자 자신의 죽음과 신체적 통증에 의한 고통 속에서 혼자이고 버림받았다는 느낌, 기능 및 역할 상실의 여정 중에서 사회적 가치로 평가하는 시선들, 자신이 타인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는 그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를 있는 그대로 경청해 줄 돌봄이 필요하다.
특히 만성질환 환자나 생의 말기에 있는 환자의 돌봄에서는 그들의 고독과 고통 속에 함께 머물며(「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38항)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환자가 자신의 죽음 너머의 새로운 생명의 희망으로 나아가기 위한 영적돌봄이 필요하다. 그들의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에 직면하면서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만남 안에서 지지와 경청이 제공되는 영적돌봄(「착한 사마리아인」, 12항)인 것이다.
교회의 돌봄의 사명
이런 사목적 돌봄 즉 영적 돌봄은 그리스도교 덕행의 실천인 연민의 마음으로 공감하며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 짊어짐으로써 위로하고 그들의 고독과 고통으로 들어가 사랑하고 환대하며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을 임상실습을 통해 이러한 영적 돌봄을 훈련하는 것이 임상사목교육(CPE)이다. [가톨릭신문, 2025년 5월 11일, 최선경 가타리나 박사(동백 성루카병원 CPE & 호스피스교육 담당)]
[영적 돌봄에 힘써온 임상사목교육(CPE) 100년] (2) 현대인의 영적 고통을 돌보는 CPE (하)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전인적 치유와 돌봄
예수님이 보여주신 영적 돌봄
복음에서 예수님의 치유는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환자의 심리와 그의 영적인 부분까지 읽어주고 들어줌으로써 전인적 치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루카 복음 ‘마귀들과 돼지 떼’(루카 8,26-39)에서 병자의 이웃이나 공동체는 그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의 과한 행동을 제지하려고만 하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행한 치유의 모습을 살펴본다.
“무덤에서 살고 있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란 표현은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영혼의 상태를 말하며, ‘더럽다’는 표현은 그의 영혼이 그만큼 ‘처참한’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그의 행동만을 제지하려고 했지, 그의 내적 상태나 영적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육체적인 질병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의료진, 가족과 이웃 공동체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일반 환자들의 심리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에게 ‘마주 오며’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면하는 영혼과 육체가 조화된 인간관계를 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마주 온 그의 처참한 상태를 보시고 “먼저 말을 건네며 다가가신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갇혀 타인과의 대화나 신뢰가 어려웠다. 예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것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와 한을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다는 영적 진단을 내리시고 그의 존재를 초대하심이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환자의 외적인 병의 상태뿐만 아니라 내적인 상태와 영적인 고통을 보시고 연민의 마음으로 치유의 손길을 먼저 내밀며 다가가신다. 그리고 치유된 그에게 제일 먼저 자신의 어둠 때문에 단절되었던 가족, 이웃 공동체와 화해하라고 초대하신다. 예수님의 전인치료는 몸과 함께 환자의 영적인 차원까지 치료의 범주로 인식하는 돌봄의 차원을 보여준다. 임상에서 의료진뿐만 아니라 돌봄의 직분을 맡고 있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의 전인적 차원의 치유적 돌봄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CPE이며, 이는 현대 사목에서 치유적이고 영적인 돌봄의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CPE를 통한 영적 돌봄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교회: CPE는 단순히 대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다. 사목자는 자신의 상처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며 타인의 고통에 머무르며 동반할 힘을 키워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는 돌봄을 배운다. 이는 헨리 나우웬이 말한 ‘상처 입은 치유자’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이는 현대 사목에서 중요한 사목자의 자질인 경청과 영적 돌봄 동행의 모습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특수 사목 영역에서의 영적 돌봄의 필요성: 교회 사목은 단순히 교회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목의 분야는 점점 전문적으로 세분화되어 병원·교정시설·군대·학교 등 다양한 특수 사목의 현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목 현장의 다양화는 사목자들이 직접 고통 가운데 있는 양떼를 찾아 나서는 적극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사목자의 자질은 각 분야의 전문성과 인간적 성숙, 돌봄의 전문성일 것이다. CPE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가장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CPE의 신학적 성찰을 통한 사목자의 내적 성장과 정체성 확립: CPE는 사목 현장에의 돌봄 경험을 CPE의 순환 반복되는 교육방법론에 따라 분석하고 신학적 성찰을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돌봄 대상자의 영적고통에 직면하여 더 깊이 공감하며 전문적인 영적 돌봄의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는 사목자의 정체성 성숙을 위한 통합의 여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CPE는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이 신학적 성찰로 확장되기에 현대 사목에서 돌봄의 직분을 더 깊이 이해하며,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치유와 화해의 도구’로서의 정체성을 실천하는 길이 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25년 5월 18일, 최선경 가타리나 박사(동백 성루카병원 CPE & 호스피스교육 담당)]
[영적 돌봄에 힘써온 임상사목교육(CPE) 100년] (3) CPE 탄생의 역사와 영적 돌봄터의 변화 (상) 예수님이 가진 '치유의 권위'에서 시작
영적 돌봄의 역할을 요구받은 교회
1900년대 전후로 남북전쟁(1861~1865)과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겪고 난 미국인들은 극심한 경제난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암담한 현실에서 미국인들에게는 주일에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종교 지도자들의 강론이나 설교를 듣는 게 유일한 위로와 낙이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신학 과목만 가르쳤던 신학교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목을 배운 적이 없었다. 때문에 정서적으로 피폐했던 신자들을 위해 할 수 있던 것은 강론이나 설교 뿐이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정서적으로 힘든 신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더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고, 이에 대한 해답을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가르치는 교회에서 돌봄과 치유의 교회로: CPE의 태동
‘정신 분석 이론’을 사용해 정서적으로 힘든 신자들을 도우려 했던 종교지도자들 중에 성공회 엘우드 우스터(Elwood Worcester, 1862~1940) 신부가 있었다. 그는 뉴욕성공회신학교(GTS) 과정에 ‘실제적으로 사목에 도움이 되는 과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독일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품 후 보스톤에 있는 ‘엠마뉴엘 교회’의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신자들을 위한 개혁적인 일을 많이 하였는데, 특히 1906년에 신자들의 암울한 정서를 돕기 위해 의사들과 함께 상담을 하였다. 이것은 성직자가 교회에서 신자들을 위해 상담을 한 최초의 사건으로, 엠마뉴엘 교회에서 시작했다고 하여 ‘엠마뉴엘 운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엘우드 우스터 신부가 이런 일을 한 이유는 그동안 교회가 소홀히 하였던 ‘예수님의 치유의 권위’를 다시 세워 신자들을 ‘돌보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치유 사목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의 이러한 생각은 CPE 정신의 뿌리가 되었다. 그의 엠마뉴엘 운동은 훗날 CPE가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고 CPE는 사목 상담이 생겨난 기반이 되었다.
실용적인 교육 방법론에 발맞춘 신학교육의 변화: CPE 교과목 도입
1870년 이후 미국 교육은 ‘이론 중심’에서 벗어나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교육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하버드대학교 법대 교수들은 ‘사례연구(Case Study)’ 과목을 개설하여 법대생들에게 ‘강의가 아닌 실전을 위한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획기적인 새로운 방법론의 탄생은 신학교의 교수들에게도 도전을 주었고 그래서 생겨난 교육이 바로 ‘CPE’ 교육이었다. CPE 교육은 신학교에서만 공부하던 신학생들을 병원 임상 현장으로 이끌었다.
신학생들은 임상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면서 성찰하게 되는 ‘신학적 주제’와 신학교에서 배운 이론적 신학을 통합시키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신학교의 이런 교육 방법론의 변화는 이론 중심이었던 신학 교육을 현장의 사목 경험과 통합시켜 적용하는 이른바 ‘임상 신학’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가톨릭신문, 2025년 5월 25일, 정무근 다미안 신부(한국CPE협회장 · 예수회)]
[영적 돌봄에 힘써 온 임상사목교육(CPE) 100년] (4) CPE 탄생의 역사와 영적 돌봄터의 변화 (하) 그리스도 닮은 치유자로 살아가는 일
미국 CPE의 창시자와 영적 돌봄터의 변화
CPE 창시자는 미국 장로교 목사인 안톤 보이슨(Anton Boisen, 1876~1965)이다. 그는 ‘CPE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된 후 1920년, 그의 나이 43세 때 갑자기 정신발작을 일으켜 가족들에 의해서 정신병원(Boston Psychopathic Hospital)으로 옮겨지게 된다. 병명은 긴장성 정신분열증으로, 회복불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안톤 보이슨은 입원해 있는 동안 읽었던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을 통하여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고 치료하려고 노력한 결과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전 어느 날, 그는 ‘종교와 심리학 사이에 가로놓인 벽을 허무는 꿈과 같은 환영’을 보게 되었으며 이것은 나중에 그가 처음으로 실시한 CPE의 기본 정신이 된다.
15개월 간의 정신병원 생활을 끝내고 보스턴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멘토였던 엘우드 우스터 신부의 ‘엠마뉴엘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또 그의 친구인 하바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였던 리차드 캐봇(Richard Cabot)을 만나게 된다. 당시 신학생들을 위한 ‘병원현장 실습 교육’을 하고 있었던 리차드 캐봇은 ‘임상 신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제창한 사람이다.
1925년 6월 20일, 보스턴 근교의 정신병원인 우스터 주립병원(Worcester State Hospital)에서 원목자로 일하던 안톤 보이슨은 성공회 신학생 4명을 대상으로 미국 최초의 CPE 교육을 실시했다. 안톤 보이슨은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은 바로 살아있는 인간 기록(Living Human Documents)을 대면하고 보살피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하곤 하였다. 이 말은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적 지식은 살아 숨쉬며 끊임없이 삶에 영향을 주는 과거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환자들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에 사목자 자신을 바로 그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이 표현은 CPE 교육방법론의 핵심이 된다.
한편, 안톤 보이슨은 CPE 실습지는 ‘정신병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정신병원 환자들의 증상 대부분은 ‘종교적 망상과 환청’이었고, 신학생들은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환자들의 이런 정신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스터 주립병원에서 안톤 보이슨의 제자에게 CPE 훈련을 받은 러셀 딕스(Russell Dicks) 목사는 “신학생들이 성직자가 된 후 만나는 신자들은 대개 정상인들이기에 일반병원에서도 CPE 훈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일반병원으로는 최초로 하버드 의과대학병원인 매사추세츠주 주립병원(M.G.H.)에서 CPE 훈련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후 CPE는 정신병원에서 일반병원으로 확대되었고, 어린이병원, 호스피스병원, 양로원, 교도소, 군대, 학교, 쉼터, 복지기관, 지역교회 등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돌보는 곳이면 어디든 CPE 실습지가 되었다. 교육 대상도 종교를 초월한 성직자, 수도자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에게도 확대되었다.
예수님의 치유 현장인 일상생활을 따라가는 CPE의 영적 돌봄터
CPE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된 오늘날, CPE 전문가들은 CPE 실습지인 영적 돌봄터가 공간을 초월해 일상의 삶의 터전에서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점점 더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CPE 전문가들은 위기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늘 우리 주변에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영적 돌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상에서 CPE를 통해 영적 돌봄을 하는 것은 치유의 권위로 이 세상을 ‘치유공동체’로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내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CPE 교육과 훈련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치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치유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가톨릭신문, 2025년 6월 1일, 정무근 다미안 신부(한국CPE협회장 · 예수회)]
[영적 돌봄에 힘써 온 임상사목교육(CPE) 100년] (5·끝) 한국 CPE의 역사 종교 초월한 한국CPE협회 창설해 적극 활동
한국 CPE의 역사
한국 CPE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 서요셉 신부(Joseph Cahill)와 매리암 신부(Liam McCarron, 2007년 선종)로부터 시작되었다. 1963년부터 서울과 광주, 제주 등지에서 본당 사목을 하던 두 선교사는 1971년 미국에서 CPE 기본과정 4학기를 수료한 후 돌아왔다. 이후 서요셉 신부는 CPE를 접목해 사목상담 강의를 시작했다. 서요셉 신부는 사목상담 강의를 하면서 한국에서 CPE가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 그룹을 만들어 첫 CPE ‘실험’ 교육을 실시했고, 이 교육에는 당시 고(故)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도 함께하였다.
CPE 실험 그룹 실시로 한국에 CPE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서요셉 신부는 미국으로 다시 가서 CPE 수퍼바이저 과정을 시작하였다. 이후 1977년 미국CPE협회로부터 수퍼바이저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이후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정식 CPE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운영되었다. 당시 이한택(요셉) 주교도 제1기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요셉 신부는 아일랜드로 발령받아 귀국하게 되었다.
이후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 명동 성모병원 원목 신부로 사목하던 매리암 신부가 비록 CPE 수퍼바이저 자격증은 없었지만, 서요셉 신부의 뒤를 이어 CPE 교육을 이어받게 되었다. 매리암 신부는 1990년부터 2007년까지 영성상담소와 가정상담소를 운영하고, 서울 대신학교 사목 상담 강의를 하며 CPE 프로그램을 병행하였다.
2002년 예수회 소속의 정무근(다미안) 신부가 미국에서 CPE 기본과정과 수퍼바이저 과정을 모두 마치고 미국CPE협회로부터 ‘Training Supervisor’ 자격증(수퍼바이저 과정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 후 귀국했다. 이후 정무근 신부는 2007년 종교를 초월해 한국CPE협회를 창설하였고, 현재까지 전국에 4대 종교(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27개의 CPE 센터를 운영하며 CPE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CPE 프로그램의 구성
CPE는 수퍼바이저의 교육철학과 방법론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공통적인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1) 교육훈련 목표 설정: CPE는 교육생 스스로 자신을 교육 훈련하는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으로서 자신이 이 교육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훈련할 것인지를 스스로 정한다.
2) 주간 사목 성찰기: 학생은 한 주간 동안 사목을 하면서 혹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일어났던 사건이나 개인적인 이슈들을 자신의 교육훈련 목표와 연관하여 성찰하고 기록하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보게 된다.
3) Case Study와 축어록 세미나: 학생은 자신이 경험한 사목방문 사례를 작성해 발표하고, 동료 및 수퍼바이저의 비평과 조언을 받으면서 사목을 위한 기술과 역량을 기르고 자신에 대한 자각을 통해 좀 더 나은 사목자로 성장하게 된다.
4) 그룹관계 세미나: 대인관계 훈련으로, 그룹원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여 성숙한 대인관계를 완성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5) 개별지도: 학생은 수퍼바이저와 정기적 개별지도를 통해 각자의 교육훈련 목표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에 대해 도움과 지도, 도전을 받게 된다. 이외에도 수퍼바이저에 따라서 상실감 성찰기, 서적/기사 비평기, 가계도식, 임상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지난 4월 한국CPE협회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주제로 10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고(요한 8,12),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안다”(요한 8,14)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하시며 우리 또한 그 광채로 빛나기를 바라신다. 빛의 신비, 사랑의 신비에 머물도록 다시금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25년 6월 8일, 박재한 루카 신부(작은 형제회, 성프란치스코 CPE센터)] 0 38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