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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희년에 떠나는 로마: 로마 7대 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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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에 떠나는 로마 IV] 로마 7대 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 I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코린 3,10-11)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출발하여 테베레강을 따라 오스티엔세 가도(오스티아 항구로 가는 길)를 걷다 보면 바오로 사도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 바오로 대성당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 섭리의 표징인 도시 로마는 높낮이가 다른 두 개의 중심축이 있는데, 하나는 언덕 위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강변의 성 바오로 대성당입니다. 교회의 두 기둥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행적과 순교로 인하여 로마는 새로운 예루살렘이 되었고, 사도의 무덤을 방문하여 전구를 청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도시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다음가는 크기를 지닌, 또 하나의 ‘교황의 바실리카’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성 바오로는 네로 황제(54-68년 재위)에게 상소하여 60년경 몰타섬과 시칠리아섬을 거쳐 로마에 도착하였고, 군사 한 명의 감시 속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며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64년경 박해가 일어나 사도는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처형하는 참수터에서 순교하였고 루치나의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첫 번째 성당이 세워졌고,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크게 증축된 두 번째 성당이 세워지며 이후 약 1500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됐습니다. 8세기부터는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에 의해 수도원으로 사용되면서 기도와 영성의 중심지로도 자리매김한 성 바오로 대성당은 안타깝게도 1823년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 소실되었고, 이후 오랜 재건 작업을 거쳐 1854년 12월 10일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세 번째 성당이 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바오로는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체계를 세웠으며,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을 확립하여 이방인 선교를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위협에 자신을 내던진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사도에게 그 기초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만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바오로가 주님과 처음으로 만난 그곳은 성벽 밖이었습니다. 자신이 박해하던 대상인 예수가 곧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주님이심을 확인한 그는 새로운 사도가 되었고, 순교로써 생명을 바치기까지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의 무덤 역시 성벽 밖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순례자들에게 사도의 생애를 깊이 묵상하게 해 줍니다.
네 면이 모두 회색빛의 단일체 화강암 기둥들로 둘러싸인 사각 회랑(回廊, quadripòrtico)의 한 가운데에는 오비치(1807-1878)가 카라라 산 대리석으로 조각한 성 바오로 상이 있습니다. 칼자루를 쥔 오른 손을 가슴에 댄 채 칼날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그분의 순교와 함께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라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한편, 왼손에 들고 있는 책과 머리에 쓰고 있는 베일은 새로운 모세로서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약을 선포하기 위해 성령의 시대에 등장하는 바오로를 상징합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탈출 34,29.35)
![]() 고개는 땅을 향해 떨구어져 있고 눈은 거의 감고 있는 바오로 상 뒤로 서쪽을 향하는 정면부(facciata)의 모자이크가 태양 빛을 가득히 머금습니다. 이처럼 바오로 대성당은 작은 조각(tessera)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작품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테쎄라들은 손상되지 아니하고 다른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다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마치 모자이크 조각들이 와장창 떨어지듯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넘어진 사울을 주님께서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사도 9,15)으로 새로이 창조하십니다. 이제 바오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작품입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 1,21)
정면부를 바라보며 꼭대기에는 ‘유일한 희망(spes unica)’이라고 쓰인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삼각형 공간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단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앉아 계신 바위로부터 네 줄기의 강물이 흘러나옵니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창세 2,10)
다시 하단에는 창문 사이 사이마다 왼쪽부터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다니엘 순으로 4대 예언자들이 각자 자신의 예언이 적혀 있는 두루마리를 든 채로 서 있습니다. 사각 회랑의 네 모퉁이 중에서 한쪽에만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려진, 바오로 사도와 동행한 루카 복음사가만이 조각되어 있고 나머지 세 자리는 비어 있어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2티모 4,11)라는 말씀이 메아리치는 듯합니다. [2025년 7월 27일(다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인천주보 3-4면, 김세웅 디오니시오(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쥬빌레오 로마』 저자)]
[희년에 떠나는 로마 V] 로마 7대 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 II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2티모 4,7)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성 바오로는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며 로마에 도착하기까지 약 15,000km가 넘는 거리를 걸었고, 항해했으며, 스스로 고백한 대로 주님을 위해 달렸습니다. 사도의 머리를 대리석 기둥에 기대어 검으로 내리쳐 떨어뜨린 순교터에서 북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의 무덤을 향해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쪽을 향해 있는 정면부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성문은 모두 5개인데, 희년에는 사각 회랑의 성 루카의 조각상 뒤편에 자리한 성문을 통과하여 들어가게 됩니다. 내부의 길이 135미터, 너비 65미터, 높이 30미터로 로마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인 성 바오로 대성당은 80개의 화강암 기둥들로 이루어진 4열 5랑의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의 성전입니다. 내부를 보면 천장이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노란빛의 설화 석고로 만들어진 창문들을 통해 은은한 태양 빛이 스며들며, 상부의 창문 사이마다 총 36편의 프레스코(fresco)화들을 통해 사도행전에 등장한 바오로의 생애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한편,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황금 모자이크 선을 따라 베드로에게 남기신 주님의 말씀들로 채워졌던 공간이 바오로 대성당에서는 1.4미터 지름의 원 안에 역대 교황들의 초상들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초대 교황인 베드로부터 최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266대)까지 이어지는 지난 2000년 동안 성령께서 베드로의 후계자들을 통해 이끌어 오신 일치된 교회의 역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순례자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계속해서 동쪽을 향해 중랑을 걷다 보면 육중한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고대 로마의 개선문(arco trionfale)처럼 보이는 독특한 건축 구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던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성전 안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이유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념하고, 바오로를 통해 우리가 이어받은 신앙과 진리의 정수를 신자들에게 장엄하게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딸 갈라 플라치디아 공주의 후원으로 제작된 모자이크에는 묵시록에 등장하는 심판자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 24명의 원로들이 손에 든 승리의 화관을 바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타작하실 도리깨를 들고서 위협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엄격하게 바라보십니다.
본능적으로 숨고 싶게 하는 이 두려움의 이미지 앞에서 순례자들은 겸손함으로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잠시도 잊지 않은 채 멈추지 않고, 바오로의 무덤을 향해 더 걸어가야만 합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1코린 15,5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8,35.39)
성 필립보 네리는 바오로 대성당을 향하는 순례의 여정에서 성령칠은 중 효경을 청하였습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갈라 4,6)
성 바오로는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참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알았고, 초인적인 인내로 순교의 화관을 얻기까지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려드렸기에 지금까지 성 베드로와 함께 로마와 교회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1코린 15,57) [2025년 8월 3일(다해) 연중 제18주일 인천주보 3-4면, 김세웅 디오니시오(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쥬빌레오 로마』 저자)] 0 2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