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0일 (수)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의 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8) 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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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9-04 ㅣ No.2196

[영성의 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8) 쉼을 위하여...

 

 

똑같은 일상에서, 매일 반복되는 삶의 무료함에서 우리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떠남을 계획합니다. 아니면 많은 스트레스로 답답했던 일상에서 생각 없이 먹고 마시며,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남을 바랍니다. 그 떠남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목적은 “쉼”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서 떠나 몸도 마음도 생각도 쉬면서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활력을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쉼의 방법은 각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쉼 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집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쉼을 만끽하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설레고 들뜬 기대감에 부푸는 것이 나름의 쉼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나는 어떻게 쉬고 있는지, 무엇을 하며, 무엇을 바라며, 어떤 모습으로 쉬고 있는지 나의 쉼의 모습을 찾고, 그 쉼의 모습을 통해서 일상을 떠나봤으면 합니다. 그런 우리의 쉼을 찾는다면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일상에서 떠날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쉼

 

떠난다는 것이 쉬기 위해서라면 하느님께서는 쉬셨을까요?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마지막 날에 쉬셨습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는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그 생성은 이러하였다.”(창세 1,1-2,4)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모든 일을 마치시고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는 쉬셨습니다. 그 쉼은 복을 내리시고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함’은 하느님의 다른 이름과 같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홀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의 히브리말은 ‘코데쉬’라는 단어를 쓰는데, ‘떼어 놓다’, ‘자르다’, ‘분리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과 완전히 ‘다른’ 분이기에 거룩하시고, 거룩하시기에 인간의 이해와 인간의 범위를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분은 절대 다른 분, 절대 타자이십니다. 인간은 그런 하느님의 거룩함을,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닮아 갈 수도 없는 그분의 거룩함을 배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나가라고 얘기하시면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고 명령하십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함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히브 12,10). 우리는 하느님의 그 완전함, 그 거룩함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분의 거룩함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쉼은 어쩌면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함을 닮아가라는 또 다른 가르침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쉼을 배워가며 거룩해지라고, 그러면서 당신의 완전함을 배워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하느님은 어떻게 쉬셨을까요? 각자가 자신만의 쉼의 모습을 가지고 있듯이 하느님께서도 쉼의 모습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쉼을 배워간다면 하느님의 그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마치시고 어떻게 쉬셨는지는 설명되지 않고 그저 쉼의 목적, 거룩하게 하시기 위한 쉼임을 성경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일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분의 쉼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6일의 시간에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쉬셨습니다. 첫날의 창조 이야기만을 살펴보아도 일상의 쉼의 흔적이 드러납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창세 1,1-5)

 

하느님께서는 첫날뿐 아니라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이 창조하시고 자신이 해 왔던 일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좋음”을 찾으십니다(창세 1,3.10.13.19.21.25).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쉬셨는지에 대한 정답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쉼은 바쁘게 살며 내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나에게만 집중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걸어왔던 길, 내가 바라보고 있는 목표, 내가 원하는 꿈들을 바라보고, 내가 했던 행동과 일들이 그 목표와 꿈들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방향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또한 나의 말과 행동, 나의 삶들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위에 누가 있는지, 그 주위의 환경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미움과 나의 분노와 나의 걱정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하느님의 쉼은 그 안에서 ‘나쁨’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봄의 목적, 쉼의 목적은 ‘좋음’을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그 ‘좋음’은 당신의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쉼을 배워나가야 하는 우리도 여유를 가지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 좋음을 찾았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다른 것’ 안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전혀 거룩하고, 사랑스럽고, 좋은 것이 아닌 것에도 당신의 사랑과 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미움과 걱정,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어쩌면 당신의 좋음이 있음을 우리는 그 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쉼을 우리 모두가 지금의 일상에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한 발짝 물러서서.

 

[성모님의 군단, 2025년 8월호, 최종훈 토마스 신부(가톨릭목포성지 담당, 광주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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