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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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살렘의 임금 멜키체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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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25 ㅣ No.8926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살렘의 임금 멜키체덱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예표(豫表) 구실을 하는 인물이 여럿 등장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그러하고, 그 이전 아브라함 시대의 멜키체덱도 그렇습니다. 특히 멜키체덱은 창세 14장에서 “살렘 임금”으로 소개됩니다. 살렘의 원어는 [샬렘]으로 예루살렘의 옛 이름입니다. 신도시로 성장한 현재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정복한(2사무 5,6-12) 고대 성읍입니다(사진). 샬렘의 어원은 대개 ‘평화’를 뜻하는 [샬롬]과 같다고 보지만, 가나안 신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옛 가나안의 우가릿(현 시리아 해안가에 자리했던 옛 도시국가) 신화에 따르면, 신들의 아버지 ‘엘’이 인간 여자 둘을 아내로 맞아 ‘샤하르’와 ‘샬림’이라는 아들을 얻는데, 그 가운데 ‘샬림’과 관련된다는 해석입니다.

 

멜키체덱이 등장하는 창세 14장의 맥락은 이렇습니다. 롯이 아브람과 함께 살다 소돔으로 분가한 뒤(13,12) 납치당하자, 아브람이 크도를라오메르와 그의 동맹군을 상대로 전쟁하여 롯을 구해냅니다. 그런 다음, 살렘의 임금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 멜키체덱과 만나게 됩니다.

 

멜키체덱의 이름 뜻은 보통 ‘정의의 임금’으로 풀이됩니다. 멜키체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가, 크도를라오메르 무리를 물리친 아브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를 축복합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듯 “축복은 …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7,7)이므로, 아브람은 십일조를 바치며 이에 화답합니다. 이때 멜키체덱이 가져온 빵과 포도주가 훗날 예수님의 희생으로 제정될 성찬례를 예표합니다. 옛 유다교 전통에서도 멜키체덱의 빵은 제사 빵을, 포도주는 제주를 뜻한다고 보았습니다(「창세기 라바」 43,6).

 

다만 멜키체덱은 이 대목에만 등장한 뒤 창세기에서 사라지는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족보도 없고, 언제 어디서 죽었다는 내용도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언급하듯,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7,3). 이렇게 레위 집안이 생겨나기도 전 영원한 사제로서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훌륭한 예표가 됩니다(히브 7장; 시편 110,4 참조).

 

창세 14장은 멜키체덱과 아브람이 살렘에서 만난 일을 통해 하느님의 사제직이 아브람의 가나안 도착 전부터 예루살렘에 존재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아브람은 해당 대목에서 소돔 임금에게 제안받은 전리품을 취하지 않은, 재물에 욕심이 없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주님께서 후손과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는 계약을 체결하셨고(창세 15장),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17장). 이후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세상에 태어나시지만(마태 1,1), 아브람이 예루살렘에서 십일조를 바치며 공경한 멜키체덱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사제이자 임금이 되셨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11월 23일(다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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