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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철학상담50-53: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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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2-30 ㅣ No.641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50)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 


초월 기법의 핵심은 인간 본성인 ‘초월성’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을 가르치다 보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초월 기법은 절대적 존재자에게 의존해 인간을 치유하는 종교적인 상담 방법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월 기법은 이것과는 무관하며, 그보다는 인간 본성과 인간의 삶,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통찰에 근거해 인간을 치유하는 철학상담의 고유한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규정하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정신의 초월성’에 근거한 자기 초월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철학적 통찰에 근거한다. 초월 기법의 핵심은 인간의 본성인 ‘초월성’에 있으며, 이 초월성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자유’와 ‘개방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존재로서 삶 안에서 자기를 실현하며, 이때 자유로운 정신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새롭게 규정하는 가운데 자기를 넘어서는 초월의 경험을 하게 된다.

 

초월 기법의 본질은 초자연적이며 이데아적인 초재적 실재를 지향하는 데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에도 자유로운 정신을 통해 자기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는 ‘초월적 경험’에 있다. 초월 기법은 무엇보다도 제약된 조건 속에서도 거기에 자기를 내맡기지 않고 끊임없이 이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정신과 삶의 역동성에서 그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인간 정신의 역동성은 본성적으로 앎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기반한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자기와 세계 사이의 인식론적 일치를 추구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를 통해 진리 인식에 이른다. 그러나 초월 기법에서 물음은 치유를 위한 시작이자 그 자체로 방법이 된다. 초월 기법의 물음은 단지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인식 차원에 한정되지 않고, 치유 차원의 더 본질적이며 근본적인 것을 지향한다. 즉 이 물음은 존재의 절대적 긍정과 그 의미 지평 위에서 실행되는 치유를 위한 이해의 근본 행위다. 그렇다면 철학상담에서 물음은 치유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물음의 촉발은 자기가 근본적으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하는 ‘무지의 앎’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언제 자기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한 각성으로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에 주목한 바 있다. 우리가 물음을 던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알려고 하는 것이지만, 초월 기법의 물음은 치유를 위한 출발점이자 그 자체로 치유의 과정이다.

 

이는 우리가 평소 자신의 무지를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도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비로소 이를 자각하고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물음은 우리 스스로 고통과 위기를 넘어서고 극복하려는 치유 행위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사태 혹은 사물(사람)이 다가와 심기를 건드릴 때, 혹은 -이는 특히 상처·치유와 관련하여 중요한데- 한계 상황에 직면해 좌초하여 완전히 방향을 잃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해에 다가서고자 물음을 던진다.

 

무엇보다 이 물음은 자기 존재와 삶 그리고 그 의미에 관한 물음과 직결된다. 정신과 의사 프랭클이 유다인 강제수용소에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 던졌던 존재와 삶의 의미 물음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1월 1일, 박병준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51)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 ②  


‘거리두기’는 상처 치유의 중요한 출발점

 

 

초월 기법에서 물음은 ‘감성·이성·영성’의 3가지 단계로 실행된다. 감성과 이성과 영성은 인간의 정신이 자기를 표현하는 3가지 핵심 기능이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의 자기표현은 바로 이 정신의 3가지 기능이 통합적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완전하게 발휘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즉 어느 하나가 결핍될 경우,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비합리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반대로 감정이 둔감하여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영적으로 무의미나 공허에 빠질 수도 있다.

 

초월 기법의 물음은 우선 외부의 사건이나 사태를 통해 수동적으로 제기된다. 외부의 사건이나 사태는 내 밖에 있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항상 나에게 저항하는 힘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지각과 함께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고 감염시키면서 기쁨과 슬픔, 분노와 화, 두려움과 공포 등의 다양한 ‘감정(느낌)’과 함께 나의 ‘정서(격정)’와 ‘기분’을 이끈다. 이렇게 감성은 수동적이지만 나의 마음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우리가 삶에서 물음을 던지는 것은 바로 이 감성에서 시작된다. 평온하다가도 무엇인가 나에게 저항적으로 다가올 때 이는 우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게 만든다. 외부 사물과 함께 있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항상 다양한 감정이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격정(정서)적 상황 속에 놓여 있다.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 이 격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평온해지기 위해서는 격정을 잘 다스려야만 한다.

 

고대 스토아 및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이를 다스리기 위해서 철학적 훈련을 거듭했다.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동고트 왕국의 집정관이자 철학자였던 보에티우스(480~524)는 동로마 제국과 내통했다는 정적들의 모함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감옥에서 쓴 「철학의 위안」에서 ‘철학의 여신’(지혜)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격정(분노)을 다스리고 평온을 얻고자 하였다.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에서 격정 속에서 던지는 물음은 감성을 통해 제기된 물음임과 동시에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다스리는 치유의 과정이다. 우리가 평소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당하는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평온을 얻기 위해서 할 일은 오로지 감정을 순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감정이 ‘수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경험적 대상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 한, 감정 또한 자연스럽게 순화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거리두기’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상처의 치유 과정을 위한 첫걸음이 된다.

 

상처의 치유를 위한 ‘거리두기’는 공간적-시간적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이나 사태로부터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은 감정을 순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어떤 사건이나 사태이든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서 감정도 점차 순화된다. 물론 우리의 모든 경험은 항상 기억을 통해 언제든 다시 현재로 소환될 수 있는 만큼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경험과 기억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 부여가 요구된다. 이런 강한 의지를 통해서만 우리는 격한 감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초월해 갈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1월 4일, 박병준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52)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 ③

 

초월 기법에서 이성은 물음을 이끄는 원리

  

 

초월 기법에서 감성이 물음을 촉발하는 계기라면, 이성은 물음을 이끄는 원리가 된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겪을 때 이성적으로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성적 물음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정의 격정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격한 감정은 우리의 판단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성적 물음을 통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이다. 이런 이해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그 어떤 의미 있는 행동도 할 수 없을 것이며, 상처의 치유도 불가능할 것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성이란 무엇인가? 이성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단어 ‘누스’(νοῦς)와 ‘로고스’(λόγος)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스’에서 라틴어 ‘스삐리뚜스’(spiritus) ‘인뗄렉뚜스’(intellectus) ‘멘스’(mens), 그리고 ‘로고스’에서 라틴어 ‘라찌오’(ratio) ‘베르붐’(verbum)이 각각 파생됐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성은 ‘로고스’ 및 ‘라찌오’에 상응한 개념으로서 그 의미가 한정적이다. ‘누스’가 전체를 포착하려는 인간 정신의 포괄적인 직관력과 관련이 있다면, ‘로고스’는 더 구체적으로 비례적 관계의 분별 및 논리적 추론과 관련이 있다. 라틴어 ‘라찌오’ 역시 비례 관계를 따져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초월 기법에서 이성적 물음의 일차적 목적은 당면한 문제를 이치에 맞게 원인 관계를 따져 논리적이며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의 긍정적 해석의 가능성과 의미 있음을 타진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편견 없이 어떻게 사건(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판단중지’를 통해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우리가 충만한 의미에로 나아가려 할 때 항상 걸림돌이 되는 것은 고정된 관념과 이념이다. 이런 생각은 사태가 그에 상응한 본질을 이미 갖고 있다는 우리의 성급한 판단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것이 후설이 강조하는 판단중지이다. 후설은 성급한 판단을 중지하고,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 직관에 이르는 길을 현상학적 환원의 초월적 방법을 통해 밝히려 했다. 여기서 초월 기법을 위해 중요한 것은 의미가 바로 우리 의식의 지향적 작용을 통해 자유롭게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즉 의미 부여의 주체는 밖에 있지 않으며,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초월 기법의 이성적 물음의 단계에서 ‘의미’만큼 중요한 것은 ‘이해’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해는 철학적 해석학적 통찰에 의하면 항상 ‘이해 지평’에서 수행된다. 이해 지평은 인식의 차원에서 ‘선지식’(선이해)에 해당하며, 구조적으로 이해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세계를 의미한다. 이는 경험적인 주변 세계이자 우리가 거기서 살아가는 생활 세계이며, 전승된 전통이자 세계 그 자체이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이해가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해의 확장이야말로 ‘더 큰 실재(實在)’로 나아감이자 바로 치유에 이르는 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1월 11일, 박병준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53)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 ④

 

초월의 물음, 존재를 치유하다

 

 

초월 기법의 영성적 물음은 이성의 합리성을 넘어서 궁극적 이해에 도달하려는 치유의 마지막 단계이다. 인간의 삶과 존재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 같으며,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 인식의 한계와 불완전함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철학은 바로 이런 삶과 존재의 신비와 경이로움 앞에서 궁극적 지혜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철학적 지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식의 막다른 골목에서 이에 굴하지 않고 궁극적이며 참된 진리를 얻고자 끊임없이 던지는 진지한 물음에서 발휘된다.

 

인간의 이해는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지향되어 있다.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은 ‘의미 전체에로의 지향성’, 즉 ‘의미의 초월성’에 기반한 자기 초월의 과정이다. 의미의 초월성은 의미의 개방성과 전체성에 근거한다. 의미는 결코 개별적인 사건 안에 폐쇄되어 있거나 단절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의미 전체와 절대적 의미를 향해 열려 있다.

 

우리는 이렇게 전체적이며 절대적인 것으로 지향된 의미의 초월성에 기반해 끊임없는 물음을 던진다. 개별적 혹은 부분적 의미는 의미 전체 안에서 밝혀지며, 그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초월 기법에서 감성(감정)이 물음을 촉발하는 계기요, 이성이 물음을 수행하는 원리라면, 영성은 물음을 끊임없이 지속하게 하는 원리이다. 물음의 지속적 원리로서의 영성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삶과 존재가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심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심연 속에서 불가피하게 한계상황에 직면하며, 또 이해하기 힘든 사건과 마주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가능성은 무엇보다 인간의 끊임없는 물음 실행에 있다. 이 물음 실행은 의미 전체로 열려 있으면서 그 안에서 개별 사건의 의미를 포착하려는 정신의 작용인데 바로 이것이 영성의 본질이자 힘이다. 영성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의미 전체와 절대적 의미를 향한 물음을 지속할 수 없다. 영성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게 하는 지속적인 힘이며,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자 삶의 부정적인 경험을 극복하게 함으로써 통합적이며 전인적인 삶으로 나가도록 돕는 치유를 위한 궁극적 힘이다.

 

초월 기법을 ‘영성 치유’로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초월 기법의 영성 치유는 종교적 신념이나 신비에 의존한 치유가 아니라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인식함과 동시에 끊임 없는 물음과 자기 초월을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서 궁극적 이해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정신성에 기반한 철학상담의 고유한 치유 방법이다. 인간의 영성은 무엇보다도 무한성과 절대성을 자기 안에 함축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물음 자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인간은 정신의 끊임없는 물음 실행을 통해 내적으로 초월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것과 만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이며 무제약적인, 절대적인 존재 지평에서 수행되는 물음으로부터 궁극적으로 존재 의미가 밝혀지며, 바로 여기서 인간의 삶에 활력과 생명을 불어넣는 치유를 가능케 하는 ‘존재 긍정’과 ‘존재 강화’로서의 존재 이해가 일어난다. 철학상담의 영성 치유는 우리를 절대적인 존재 의미로 이끌면서 ‘허무’가 아닌 ‘존재’로,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그리고 ‘무의미’가 아닌 ‘유의미’로 초대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1월 18일, 박병준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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