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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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유한한 인간과 무한하신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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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유한한 인간과 무한하신 하느님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의 출발점, 핵심, 결론이 무엇인가요? 요한복음서 마지막에는 ‘복음서를 쓴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믿음과 고백은 요한복음의 결론이자, 신약성경의 중요 주제이며, 결국 그리스도교 전체의 핵심입니다.
‘신학’(神學 Theo-logia)이란 ‘하느님’(Theos)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Logos) 학문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인간은 스스로 깨닫거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인간과 세상을 초월해 존재하시기에 인간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절대 알 수 없고, 오직 ‘계시’(啓示 Revelatio)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계시란 ‘하느님께서 하느님에 대해 알려주신 것’이고, 계시의 대표적 형태가 ‘성경’과 ‘성전’(聖傳, 교회의 전통 내지 전승)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느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초기 교회 공동체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직접 체험한 후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말씀(=로고스)이 사람이 되신 분’(요한 1,14 참조)이 예수님이라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시고, 한 처음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함께하셨기에,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라고 합니다. 예수님 = 하느님 말씀 = 로고스 = 하느님의 외아들 = 유일한 구세주라는 신앙고백이 요한복음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당신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려주셨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계시 중 가장 완전하고 충만한 계시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는 사람입니다(요한 14,7 참조).
신학이란 로고스(Logos)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Theos)을 알고 깨닫는 학문입니다. 또한 신앙의 목적이 ‘하느님을 직접 마주 뵙게 되는 것’(=지복직관, 1코린 13,12; 1요한 3,2)이라면, 신앙의 중심인물 역시 예수님입니다. ‘로고스’(Logos)를 서로 나누는 것이 ‘대화’(Dia-logos) 혹은 ‘친교’이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 인간과 인간 사이 친교의 중심이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신학과 신앙의 출발점, 핵심, 결론이라 이해하고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고, 인간의 은총과 행복과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리스도교 본질은 우리와 함께 사셨던 예수님께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모든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결국 참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초기 교회의 성장과 갈등
오늘날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간혹 초기 교회 공동체와 비교하면서 당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고,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를 상상합니다. 초기 교회는 살아있는 공동체였지만 그 당시도 문제는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다교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갈등입니다. 예를 들어, 신앙을 갖게 된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유다교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문제를 놓고 안티오키아 공동체에서 격론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사도 15장 참조) 율법을 강조하는 유다교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이었는데, 특히 이방인들의 ‘할례’ 문제 때문에 자칫 교회가 분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약속되었기에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이 상황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 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 사도들에게 보고합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했다가 믿게 된 몇 사람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사도 15,5)하고 말했고, 결국 사도들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그리스도교 첫 공식 회의인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개최합니다.(AD 49년경)
이 회의의 중심 주제는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할례가 기본인 유다인들의 율법과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사도들은 이 회의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놀라운 활동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구약의 예언자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하는 규정을 제정하며 율법의 규정을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이는 구원은 우리의 행업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한 것임을 초기 교회가 공식적으로 선포한 내용입니다.
무한하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
‘아모르 파티’(Amor fati), 이 말은 삶을 파티(Party)처럼 즐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fatum)을 사랑하라’, ‘네 운명을 받아들이라’라는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 격언이고, 근대 독일 철학자 니체를 통해 유명해진 말입니다. 좋고 나쁜 것을 포함해 자신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운명적인 것이며, 그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말 ‘체념’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희망을 버리다’라는 뜻이 있고, 동시에 ‘도리를 깨우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후자의 의미는 단념함으로써 더 큰 것을 깨우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기 운명에 체념함으로써, 즉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보다 분명히 깨우침으로써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체념은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인간은 한편으로 무한하고 긍정적인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완성에 이를 수 없고, 절대자의 도움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면 비참해지지만,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살면 비천해집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요? 그리스도교의 모든 답은 예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자 인간이기에 하느님에 대한 답이자 인간에 대한 답입니다. 하느님이 누구신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말씀과 행적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필요로 하고, 하느님 은총을 통해 일치할 때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감사하며 사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올바른 삶의 길로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2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0 55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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