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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미움받을 용기 하느님의 종 권중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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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미움받을 용기 하느님의 종 권중심(1825-1866)
욕을 먹고도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온라인 대전 게임 문화 안에는 독특한 풍경이 있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된 게임 채팅장에서는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분풀이로 온갖 욕설을 퍼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낯 뜨겁고 저속한 말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승리의 기쁨도 한순간에 식어 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비방과 욕설을 ‘극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의 표현이 거칠면 거칠수록 나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반증이라는 역설적인 말이지요.
한국의 순교자들을 알아가다 보면 ‘치명일기’나 ‘병인치명사적’ 같은 교회 측 문헌뿐 아니라, 박해자들의 시선으로 쓰인 관련 기록도 마주하게 됩니다. ‘포도청등록’이나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기록에 남은 체포와 신문 기록은 순교자들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사료이면서, 당시 사회가 천주교와 교우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보여주는 창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기록 속 표현들은 한결같이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학의 무리’, ‘요망한 도’를 따르는 ‘악당’과 같은 낙인은 시복시성 조사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는지를 드러내는 표지가 되기도 합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수원에서 순교한 권중심은 충정도 내포 지방 신창 참말(현 충남 아산시 선장면 대흥리)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박해가 일어나기 몇 해 전에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박해가 시작되어 신창 지역에 파견된 포교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신자를 체포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권중심은 자신도 천주교 신자라며 자수하였고 압송되기 전 아내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살다가, 만일 체포되거든 부디 배교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순교하여 영원한 천당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울지 말아요. 이는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오. 대사(大事)를 그르치면 안 되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포교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옵니다. “제법이다.”
내포 지방을 순례하다 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마주합니다. 박해 시대의 신앙 선조들은 보통 깊은 산속 교우촌으로 숨어들기 마련이었을 텐데, 그와 반대로 이 지역에는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고 숨을 곳 없어 보이는 곳에 교우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수의 모습으로 병사들에게 옷 벗김을 당하신 그분처럼, 사방에서 몰려드는 폭력과 죽음 앞에 발가벗겨진 채 홀연히 서 계신 주님의 모습처럼, 내포 지방의 교우촌은 그렇게 ‘드러나’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삶의 자리에는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앞에서도 숨지 않고, ‘사학의 무리’라는 낙인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 때문에 마음 받을까 두려워 숨어들기보다, 주님께서 서 계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의연히 서 있기를 바랍니다. 욕을 ‘극찬’으로 돌려 말하는 세상의 기술이 아니라, 미움 속에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복음의 용기를 청합시다.
하느님의 종 권중심 저희가 사람들의 시선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시고, 미움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2026년 3월 29일(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수원주보 4면, 백정현 요셉 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 0 3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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