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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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사순 제2주일 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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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예수님이 보이시는 영광 사람은 자기의 삶에 영광을 바랍니다. 자기의 삶에 실현될 기쁨을 찾고, 삶에 활기를 주는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표현을 말할 때, 기쁨과 영광과 즐거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사람이 생각하는 기쁨과 활기와 즐거움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삶에 찾아온다고 말하겠습니까?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계획을 개인의 삶에서 실천하면 그가 바라는 기쁨과 활기가 찾아오고 즐거운 일이 실행된다고 말하겠습니까? 인류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신 예수님의 삶은 즐겁고 활기차고 항상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시고, 사람들의 삶을 바꿔주는 기적을 행하셨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죽음 다음에는 부활이라는 놀라운 일이 하느님의 계획으로 실현되기는 했습니다만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계획으로 세우고 그 계획대로 실현하신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뜻도 없이 갑작스레 예수님의 삶에 찾아온 영광이었다는 표현은 아닙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사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바뀌신 모습의 얘기에는 그에 앞서는 고통과 힘겨운 수난에 관한 내용을 제자들이 먼저 겪은 것은 아닙니다. 고통과 수난이 앞서야만 영광이 나를 찾아온다는 것도 아니고, 영광을 우리가 누리려면 고통과 수난에 대한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사람은 사람의 삶에는 영광을 말할 수 있어야 현실에서 겪는 수난과 고통을 이길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삶에서 겪는 과정에 관한 것일 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과정은 아닐 것입니다. 드넓은 평야의 우뚝 섰던 타보르 산에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습은 우리가 머리를 들고 하느님께로 향하면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할 것입니다. 삶에서 좋은 결과는 우리가 갖는 자세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들은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그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했던 아브라함이 보인 삶의 태도는 지금 당장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하느님께서 베푸실 축복에 참여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준비하는 자세에 따라서 하느님께서 축복을 주신 다고. 우리가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지만, 사람의 삶에는 순서대로 연결되는 일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축복을 마련해 줄 것입니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삶의 태도가 실제로 나의 삶에 하느님의 영광이 찾아오게 하는 놀라운 조건이 되과 실현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충실하게 산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1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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