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수)
(백)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성경자료

[신약] 다시 만난 신약 성경: 바오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7-21 ㅣ No.9820

[다시 만난 신약 성경] 바오로

 

 

사도행전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교회 공동체는 박해가 시작되면서 유다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기 시작하고(사도 8,1-3 참조), 그 이후에는 페니키아, 키프로스, 시리아로도 신자들이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13-28장에서는 주로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행들에 대해 전합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의 죽음에 대해 전해주지 않습니다. 이 책은 바오로의 전기라기보다는 복음 전파에 대한 기록이지만, 이제 우리가 읽을 사도행전 후반부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서간들을 이해하려면 바오로 사도의 일생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가능한 한 간단하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이를 생략하고 일반적인 의견을 따르면서, 바오로 사도의 일생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가 쓴 것도 아니고 저자가 편의상 편집한 부분도 있을 것이어서, 때로는 서간들을 우선하여 그의 생애를 알아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유다인이면서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그는 출생 배경에서부터 이미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많은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이 그랬듯이 바오로도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울’과 ‘바오로’라는 그의 두 이름은 그의 문화적 배경들을 드러냅니다. 사울 임금에게서도 알 수 있듯이 ‘사울’은 셈어적인 이름이고 ‘바오로’는 그리스-로마적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사도 21,39) 기원후 5-10년경에 태어났습니다. 타르수스는 지중해 북동쪽에 자리한 킬리키아의 수도로서 헬레니즘 문화의 학문 중심지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이었지만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그의 편지들은 모두 그리스어로 작성되어 있었고,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도 70인역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합니다. 타르수스는 로마의 자유 도시였기에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황제에게 상소하여(사도 25,1-12) 재판을 받으러 로마로 가게 됩니다.

 

그는 열렬한 유다교 신봉자였습니다. 사도 22,3에서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에게서 율법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바오로 서간에는 그러한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친서들을 볼 때 그는 오히려 그리스 문화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그는 열심한 바리사이였습니다(필리 3,5-6 참조).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느라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에 회심을 하게 됩니다(사도 9 참조). 그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를 만나고, 제1차 선교여행을 한 다음(사도 13,1-15,35) 사도들이 이방인 선교와 관련하여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를 갖게 되며, 제2차(사도 15,36-18,22)와 제3차(사도 18,23-21,16) 선교 여행 후에 마지막으로 성전에서 체포된 다음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떠납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끝나고, 그 후 64년경에는 바오로 사도가 네로 황제에 의하여 순교하게 됩니다.

 

오늘은 간략하게 순서만 살펴보았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선포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다음 주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저서 「이사야서」 「이사야서 쉽게 읽기」 「예레미야서 쉽게 읽기」 「구약의 역사설화」 등.

 

[2026년 7월 19일(가해)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의정부주보 2면, 안소근 실비아 수녀] 



1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