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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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2026년 제112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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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0:33 ㅣ No.1395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제112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

(2026년 9월 27일)


이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라도(마태 18,10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해마다 맞이하는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은 복합적인 이주 현상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올해 제112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주제는 “이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라도”입니다. 이는 이주와 피난의 경험을 직접 겪는 미성년자들과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돌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다음과 같은 주님의 약속을 환기시킵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강제 이주 미성년자들: 복합적이고 취약한 현실

 

미성년자들은 전 세계적인 이주의 흐름 안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입니다. 이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들을 지니고 우리의 양심을 두드리는 구체적인 얼굴들입니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전쟁과 빈곤, 폭력과 환경 재난, 그리고 그 밖의 비극적 사유로 고향을 떠나야만 합니다. 안타깝게도, 날이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책임은 막중합니다. 이주민 어린이들이 겪는 고통은 주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해서 끝나지 않습니다. 부모와 형제자매, 친구를 잃은 채, 말로 다할 수 없는 가혹한 폭력 행위들을 목격한 매우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가족과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는 고통을 견디며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애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부모와 함께 이주의 여정에 나섰음에도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처지에 놓이고 마는 미성년자들도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본국 송환 조치로 자기 부모와 헤어지게 된 자녀들의 비극적 상황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미 너무나도 참혹한 이 상황에 다음과 같은 비극들이 더해집니다. 이주하는 과정에서 맞는 죽음, 인신매매, 착취, 무장 분쟁에 투입하기 위한 미성년자 모집, 성폭력, 강제 결혼, 이주 여정에서 그들이 겪거나 목격하게 되는 잔학 행위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의 존엄이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짓밟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취약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주 아동”을 주제로 한 2017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에서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이주 아동은 “어린이며 이방인이고 자기방어 수단이 없어서 삼중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 이유들 때문에 고국을 떠나 자신의 가족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을 도와줄 것을 모든 이에게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 깊은 어둠 한가운데서도 연대의 빛은 바래지 않습니다. 길 반대쪽으로 지나쳐 버리지 않기로 한 많은 개인과 가정, 시민 단체와 교회 공동체가 있습니다(루카 10,29-37 참조). 우리는 이 어린이들이 보금자리의 온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자기 집의 문을 열어 주는 가정들을 생각합니다. 또한, 환대 센터에서 봉사하는 교육자들을 기억합니다. 이주 여정에서 그리고 우리의 도시들에서, 이 작은 이들이 받은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치유하고자 날마다 헌신적으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과 구호 활동가들도 떠올려 봅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사랑은 무관심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이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우리 양심을 깊이 일깨우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이 말씀은 숫자나 통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 수를 헤아리지 말라고 초대합니다. 단 한 명이라도 말입니다. 모든 어린이, 모든 인간은 무한한 존엄성을 지닙니다. 저마다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창세 1,26 참조) 주님의 현존을 드러냅니다. 모든 이주 아동 앞에서 우리는 인류애와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부름받습니다. 그 아동 안에 계시는 주님을 환대하고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또 다른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부르심은 더욱 절박해집니다. “너희는 ……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 

 

안타깝게도, 이주 아동들은 그들을 보호하고 지지해 줄 어른들이 없어서 더 쉽게 외면받곤 합니다. 그러하기에, 출신 국가에서는 이들을 피난길에 오르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개입이 필요하고, 경유 국가와 도착 국가에서는 이들에 대한 보호와 환영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동들의 울음소리는 탈출기에서 들려오는 백성들의 부르짖음처럼 하느님께 올라갑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탈출 3,7-8).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들을 해방하시고자 강하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에 호소하시고 행동을 촉구하십니다. 우리는 무관심한 채 그러한 고통에 익숙해질 수 없습니다.

 

 

모든 이가 책임을 다하도록 호소하며

 

이 어린이들은, 그들 가운데 한 명일지라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 안에서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두려움과 꿈에 깊이 귀 기울이고,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통계 수치로 인간을 전락시켜 버리는 무관심을 극복하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이주 아동이 놓인 ‘이주민’이라는 처지를 고려하기에 앞서 그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생명권과 교육권과 같은 기본권을 보호하며, 신체적, 정신적, 영적, 도덕적, 사회적 측면에서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생활 수준을 보장하라는 초대입니다. 

 

이 어린이들은, 그들 가운데 한 명일지라도,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삶 안에서 환대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확고한 사목적 실천으로 옮기도록 부름받습니다. 이 임무를 그저 고유한 은사를 지닌 기관이나 단체에만 맡겨 둘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구체적인 얼굴들 앞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는 이 어린이들을 자신의 아들딸로 여기고 그들 각자의 구체적인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난민과 이주민의 통합을 증진하고 그들을 교회 가족의 온전한 일원으로 소중히 여기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또한, 단순히 원조한다는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개인 맞춤형 여정을 포함한 새로운 교육적 영적 여정들을 육성해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주민 자녀들에게도 자주 영향을 미치는 고독, 고립, 배척을 예방하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과 이주해 온 젊은이들이 상호 존중과 연대와 우정의 길을 걸으며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만남과 통합의 기회를 증진하는 것입니다. 

 

이 어린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일지라도, 서로 다른 종교들의 지평에서 바라볼 때,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어린이들의 취약함은 종교적 경계를 넘어 인도주의적이고 영적인 공동의 책임으로 우리를 묶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구체적인 종교 간 대화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되고, 그 안에서 신앙인들은 저마다 초월에 대한 고유한 감각을 바탕으로 보호망을 촘촘히 엮어 나가는 데에 협력합니다. 신앙 공동체들은 모든 소년 소녀가 고유의 문화 정체성 안에서 존중받고 가치를 인정받는 공간들을 만들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극단주의 집단들이 주도하는 급진화에 휩쓸릴 위험을 예방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한 명의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은 그 어린이 안에 새겨진 하느님 모습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어린이들은, 그 가운데 한 명일지라도,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민 사회의 제도적 맥락에서 ‘아동 최선의 이익’이라는 원칙을 재천명하라고 부름받습니다. 공공 단체와 민간단체는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의 보호와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법적 보호 수단을 마련하고, 가족 재결합을 촉진하며, 가족의 분리로 말미암은 정신적 외상을 예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점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논의의 초점이 단순한 이주 관리에서 벗어나 온전하고 즉각적인 인권 보호로 옮겨져야 하고,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보호와 환대, 진정한 통합의 기회를 보장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지원하는 효과적인 대응책”(레오 14세, 스페인 의회에서 한 연설, 마드리드, 2026.6.8.)을 채택해야 합니다.

 

이주민과 난민 어린이들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 보호에 맡겨 드립시다. 성모님께서는 요셉 성인과 아기 예수님과 함께 헤로데의 잔혹한 폭력과 이집트로의 피난이라는 비극을 겪으셨습니다(마태 2,13-15 참조). 성모님께서 이주민과 난민 어린이들의 발걸음에 동행하시고, 우리 공동체들이 복음의 살아 있고 신뢰할 만한 표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바티칸에서

2026년 8월 11일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레오 14세 교황

 

<원문: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Leo XIV for the 112th World Day of Migrants and Refugees 2026, Even Just One of These Children (cf. Mt 18:10), 2026.8.11., 이탈리아어도 참조>

 

영어: https://www.vatican.va/content/leo-xiv/en/messages/migration/documents/20260811-world-migrants-day-2026.html 

 

이탈리아어: https://www.vatican.va/content/leo-xiv/it/messages/migration/documents/20260811-world-migrants-day-20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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