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일 (목)
(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까마귀보다 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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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9-02 ㅣ No.1024

[허영엽 신부의 ‘나눔’] 까마귀보다 못한 사람들

 

 

‘반포지효(反哺之孝)’는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는 사자성어다. 우리나라에서 흉조로 여겨지는 까마귀마저 부모를 향한 효성이 지극하다는 이야기이다. 성경에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의 눈은 까마귀가 쪼아낸다는 표현이 나온다(잠언 30,17).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까마귀보다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오래전 제주도에서 사목하시는 어느 신부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효도 관광차 제주도에 왔다가 자식들에게 버려지는 노인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제주도 정도는 노인들이 집으로 찾아가기가 쉬워 동남아 지역이 인기(?)란다. 물론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참 슬픈 일이다.

 

아들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고 외국에 버려진 80대 노부부의 충격적인 사연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외국에서 사업을 하던 아들이 부모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했다. 노부부는 아들의 말만 믿고 전 재산을 처분해 아들에게 송금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도착 사흘 만에 아들은 재산을 빼앗은 채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 땅에 부모님을 내몰았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노부부는 자식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충격으로 몇 개월째 눈물로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외신에는 인도판 고려장 실태가 보도되기도 했다. 인도 노인들이 자식들의 초청으로 뉴질랜드에 정착해 어린 손자들을 돌보다가 손자들이 커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게 되자 가족들에게 버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신종 고려장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부모 공경은 인간의 도리 이전에 하느님의 계명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자식들에게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노인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노인보호전문기관들의 학대 신고 접수 통계를 보면 대부분이 자녀들의 학대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학대받은 노인들의 반응과 사례가 대개 비슷하다고 한다. 노인들은 학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지극히 꺼리고, 그 때문에 만성화된 문제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담 기관이나 경찰 조사에서도 자식들의 신원에 대해서는 더욱더 말을 아낀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식이 다칠까 봐 그렇단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노인학대나 가정폭력은 더 이상 가정사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국가 정책적인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부모 공경에 관해서 성경의 가르침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아버지를 버리는 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와 같고 자기 어머니를 화나게 하는 자는 주님께 저주를 받는다.”(집회 3,16) 이 말씀은 불효자에 대한 징계를 단호히 경고하고 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처벌받듯이, 부모를 홀대하는 불효자는 불행과 파멸을 각오하라는 것이다. 부모 공경은 인간의 도리 이전에 하느님의 계명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 신달자 엘리사벳 시인의 이야기다. 1973년 첫 시집 출판 기념회에 참석한 어머니 김복련 여사는 방명록에 ‘일생의 잊지 못할 날일세. 엄마의 기쁨이다’라고 썼다. 신달자 시인은 경남 거창에서 1남 6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는 딸을 공부시키기 위해 도시로 보냈다. 당시에는 아들은 공부시켜도 대부분의 딸들은 초등교육만 겨우 마치는 시절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어머니는 도시로 떠나는 딸에게 세 가지 당부를 하셨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라. 여자도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여자로서 행복해라.” 어머니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시인에겐 가장 좋은 스승이었다. 

 

어머니는 늘 “달자야, 니는 뭐가 돼도 될끼다. 엄마는 믿는다”라고 하셨다. 그 한마디가 평생의 힘이 되어 시인은 장마 폭우, 불난리와 같은 인생에서 잿더미 위에 피어나는 풀포기 같은 기운으로 일어서곤 했다.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신달자 시인은 어머니의 말씀을 평생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래서 99번의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100번째 도전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무조건 믿어 주고 사랑해 주는 것만큼 큰 힘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때 어머니가 “너는 왜 만날 그 모양이냐”라는 꾸중을 했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교육의 열성도로 따지면 한국의 부모들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예로부터 비록 밥을 굶더라도 자녀는 학교에 보내서 공부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우리의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우려한다. 교육을 개선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교육 정책을 내놓고 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가 왜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는 신앙인의 눈으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모만큼 훌륭한 교사는 없어

 

교육을 잘 시키는 민족이라면 많은 이가 이스라엘 민족을 떠올린다. “자녀 교육은 어머니의 무릎 아래서 시작한다”라는 이스라엘의 격언이 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임없이 가르친다. 이스라엘 부모들의 교육 목표는 자녀들이 살아계신 하느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건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지식을 발전해 나가도록 힘껏 도와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종교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도 중요시해 교육을 통해 전수해 주었고, 모든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자녀가 성장하기 전에 어머니의 가르침이 자녀들의 몸에 배도록 해준다. 그래서 가정은 최초의 교육의 장이 되고, 부모는 최초의 교사가 된다. 이처럼 이스라엘인들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사실 부모만큼 훌륭한 교사는 없다. 어린이들에게 신앙 교육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이스라엘 가정에서 자녀 교육의 목적은 지적 능력보다도 사람 됨됨이를 더 중요시한다. 누구에게나 부모의 삶만큼 가장 큰 비중의 교육은 없다. 같은 어린 나이에도 식당에서 큰소리를 치고 돌아다니면서 남의 밥상까지 가서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빨강 신호등에 차가 서는 것은 당연한데 지나가면서 공손히 운전자에게 인사하는 아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차이는 바로 그의 부모가 만드는 것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8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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