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8일 (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순교자들 이야기1: 대부와 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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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9-07 ㅣ No.2589

[순교자성월 – 순교자들 이야기] (1) 대부와 대자

 

 

배론에서 사목할 때, 어느 해 늦가을에 버스 2대가 순례를 왔습니다. 여쭤보니 한 분의 대모님을 모시고 대녀 80여 분이 순례를 오신 것입니다. 그 대모님은 대녀들이 120여 명이 되는데, 시간이 가능한 대녀들이 해마다 대모님을 모시고 순례나 피정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대모님의 삶과 신앙이 대단히 훌륭한 분이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병인박해의 순교자 이성욱(베드로, 1828~1867) 회장과 탁 서방(1837~1867)은 대부와 대자 사이입니다. 이성욱 회장은 황해도 출신으로 경기도 용인으로 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경북 봉화로 다시 배론 윗마을(上里) 비둑재로 이주해 왔고, 교우촌 회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의 형 이성천(베드로)은 배론 아랫마을 회장으로 살다가 1868년 5월에 체포되어 제천에 갇혔다가 청주로 이송된 지 7일 만에 순교하였습니다. 이성욱 회장은 5형제 중에서 수계(修誡)와 행동을 제일 착실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본성이 착하여 교우들에게 화목하게 잘 살도록 권유하였습니다.

 

1866년 12월 20일 간에 배론 윗마을에서 체포되어 제천에 갇혔습니다. 이때 관장이 포교를 꾸짖으며 “내가 너희더러 양인(선교사)만 잡으라 하였지, 조선 사람 잡으라고 하였느냐? 다 내보내라.”고 하였고, 교우들을 풀어주면서 “잘들 나가서 농사들 지으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이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이들은 “이성욱이 잡혀갔다가 (풀려) 나왔으니 아마 입불리고(배교하고) 나왔나 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1867년 10월 초순에 포졸들이 체포하러 마을에 오자, 대자인 탁 서방이 “이 위에 포교(捕校)가 오니 피하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성욱은 “나는 피하지 않고 주명(主命)만 기다리겠으니, 자네나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탁 서방은 “대부가 아니 피하시면 나도 안 피하겠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함께 체포되었고 청주로 이송된 지 7일 만에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이때 함께 체포된 정임려는 처음에 배교했다가 그 다음날 취소하였습니다. 청주 영장에게 “내가 처음 배교한 문서를 가져오라. 내가 어제 한 맹세가 헛 맹세이니 나도 성교하는 사람이라. 주님을 위하여 죽겠노라.”고 하면서 손도장을 짚어주고 순교하였습니다.

 

「교회법」 제872조에 “대부모의 소임은 세례받을 어른을 그리스도교 입문 때 도와주고 … 세례받은 이가 세례에 맞갖은 그리스도교인 생활을 하고 이에 결부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돕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맺어진 관계로 나의 영적인 성장을 책임지고, 세상에 넘어지지 않도록 등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대부님과 돈독한 관계를 새롭게 하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026년 9월 6일(가해) 연중 제23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단양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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