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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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신약] 성경 인물 이야기: 향유를 부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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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10-04 ㅣ No.10105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향유를 부은 여인 (1)

 

 

지금부터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아주 특별한데요, 그보다 더 긴밀한 신체 접촉을 예수님과 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입니다.

 

이 대범한 여인의 이야기는 네 복음서 모두에 나옵니다(마태 26,6-13; 마르 14,3-9; 루카 7,36-50; 요한 12,1-8). 하지만 단순히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아니라, 각각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의미가 다릅니다. 이것이 우리가 네 복음서를 읽을 때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건성으로 읽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때 오히려 미세한 차이점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익명의 여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온 동네에 알려진 죄인이고, 요한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예수님의 벗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 여인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는데, 루카와 요한 복음에서는 발에 붓습니다.

 

이 외에도 이야기들 사이에는 예수님을 초대한 인물과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 등 여러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이제 이 차이점이 각각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의 이야기는 예수께서 베타니아 동네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식사 초대받으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때 어떤 여자가 등장하여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이 행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몽땅 붓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여자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이유는 여인의 행위 자체가 부적절해서가 아니라, 비싼 향유를 낭비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팔아서 자선이라도 베풀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자를 기특하게 보시며 그가 자선보다 더 값진 선행을 베풀었다고 하십니다. 곧 돌아가실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도유 예식을 앞당겨 행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중에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은 향유도 바르지 못하고 급하게 매장되게 됩니다. 그리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비롯한 몇 여인이 늦게나마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른 이는 이 여인이 유일합니다. [2026년 10월 4일(가해) 연중 제27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향유를 부은 여인 (2)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서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위를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 짓는 것은 성경과 교부들이 뒷받침합니다.

 

예를 들어, 예로니모 성인에 따르면 옥합이 깨어지는 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는 유다 지도자들과(26,1-5) 스승을 배신하기로 결심을 굳힌 유다 이스카리옷(26,14-16)에 대한 이야기 사이에 자리합니다.

 

유다 전통에 따르면 장례를 돕는 일은 매우 값진 선행입니다. 이는 죽은 이로부터 그 선행의 대가를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스로 장례를 준비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일은 가장 선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여인은 자선에 사용될 수 있는 비싼 향유를 그냥 바닥에 흘려 낭비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선행을 실천하는 데 사용한 것이죠.

 

요한 복음의 이야기도 등장인물과 설정은 다르지만, 예수님의 벗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의 향유를 부은 행위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 여인이 향유를 부은 행위에는 예수님의 장례 외에도 다른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발이 아니라 머리에 향유를 부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왕, 예언자, 사제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따라서 이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그분이 참된 왕이요 종말의 예언자이며 영원한 대사제이심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루카 복음이 보여 주는 여인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사이 시몬의 연회에 초대받아 당시의 관습대로 비스듬히 누워 식사하시는 중에 한 여인이 와서 예수님의 발치에 섭니다.

 

다른 복음과 달리 루카 복음은 이 여인을 죄인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그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이 ‘그 고을의 죄인’이라 지칭되는 점은 그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공개적인 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은 후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릅니다.

 

추측하기로, 이때 여인이 흘린 눈물은 회개의 눈물일 수도, 감사의 눈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만일 전자라면 이 여인의 죄는 아직 용서받지 못한 것이고, 후자라면 이전에 이미 예수께서 이 여인을 어디선가 만나 용서한 일이 있는 것이죠. [2026년 11월 1일(가해) 모든 성인 대축일 가톨릭안동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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