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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또(LORE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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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rbk2236] 쪽지 캡슐

2005-03-24 ㅣ No.80752

로레또(LORETO)
 
성 가정을 방문한 교황

포텐자와 무소네의 계곡들 사이에 있는 로레또는 아드리안

 

해안의 안꼬나시에 속하며, 해발 127m, 면적은 17.7평방 킬로

 

미터이며 인구 11,000여명이 사는 작은 언덕에 있는 마을이

 

다.

 

 

이곳이 고통받는 이들의 휴식처로서 또한 많은 순례객들의 발걸음을 끄는 이유는 이

 

천여 년 전 나자렛에서 성 가정의 모범을 이루었던 성모 마리아의 집을 그대로 보존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세상에서의 마리아의 집은 나자렛에 두 부분으로 지어졌다

 

고 하는데, 하나는 바위에 구멍을 뚫어 형성한 동굴로 아직도 나자렛에 숭배지로 있는

 

<수태고지 성당>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로레또에서 보존하고 있는 벽으로 형성된

 

<성스러운 집>이다.

 

 

전설에 의하면 1291년에 십자군이 팔레스티나의 아콘<Accon> 항구에 파괴와 함께

 

결정적인 피해를 줄 때 마리아의  <성스러운 집>이 1294년 12월 10일 로레또로 천사들

 

에 의해 옮겨졌다고 한다.

 

 

또 다른 새로운 학설로 바티칸 자료 보관소의 기록에 의하면 13세기 비잔틴의 안젤리

 

<Angeli>가문에 의해 나자렛의 <성스러운 >집의 벽돌을 무술마니의 훼손으로부터 구

 

하여 로레또의 예배당을 축조하기 위해 옮겼다고도 한다.

 

 

고고학자들은 이 전해 내려져오는 몇 가지 설에 대해  <성스러운 집>이 결코 일반적

 

인 방법이나 인간의 손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벽을 형성하고 있는 빗살

 

무늬의 벽들은 실제로 1세기 당시의 것임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로레또의 성 가정 700주년을 기념하는 서한에서 <로레

 

또 성가는 가장 중요한 국제적인 기념 성당이며 여러 세기를 거쳐 모든 가톨릭 신자들

 

에게 있어 마리아 신심의 진정한 심장부>라고 말씀하셨다. 오랜 전설을 지녀온 로레또

 

기념 성당은  근래의 역사적, 고고학적인 연구에 의해 증명된 바와 같이, 실제로 나자렛

 

에 있던 마리아의 집을 보존하고 있다. 나자렛에 있었던 마리아의 집은 두 부분으로 되

 

어 있었다. 한쪽은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부분으로, 지금도 나자렛의 성모영보성당 안

 

에 보존되어,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한쪽은 그 굴 앞에 벽으

 

로 둘러싸인 부분이다.

 

 

전설에 의하면 십자군이 팔레스티나에서 철수하던 1291년에 천사들에 의해서 집 전

 

체가, 처음에는 일리리아(지금의 크로아티아)로, 그후 1294년 12월 10일에 다시 이곳

 

로레또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나자렛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과, 로레또 성 가정 지하

 

의 연구 (1962-65), 문헌학과 성화 연구를 통해서 나타난 새로운 자료에 의하면, 당시

 

에삐로(그리스 서북부 지방)를 다스리던 안젤리 가문이 주도하여 성 가정의 벽돌들을

 

로레또까지 배로 실어 왔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발견된 1294년 9월의

 

한 기록에는, 에삐로 군주 니체체포로 안젤리가 자신의 딸 아타마르를 나폴리의 왕 단

 

지오 카를로 2세의 넷째 아들인 따란토의 필립뽀에게 시집보내면서 준 많은 혼수감들

 

내역속에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 하느님의 모전의 집에서 가지고 온 성스러운 돌들>이

 

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성 가정의 돌담사이에서 십자군들이 지녔던 붉은 천으

 

로 된 5개의 십자가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중세때 성지와 유적을 지키던 기사들

 

이 지녔을 가능성이 더 크다.또한 타조의 알 부스러기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은 바로

 

팔레스트리나와, 육화의 신비에 관련된  상징을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성 가정의 건

 

축 구조나 건축에 사용된 돌들이 마르케 지방이 아닌 타지 사람의 손으로 빚은 솜씨와

 

방법인데다, 나자렛에 남아있는 동굴 부분과  로레또 성 가정의 담벽 부분이 서로 일치

 

한다는 점도 주목 할 만하다. 전설을 확증해 주는 아주 중요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세공된 돌들의 모양이 나바테이 (고대 다마스코 지방의 유태인족)들이 사용하던 것으

 

로, 예수 당시의 갈릴레아 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다. 또하나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성

 

가정의 벽돌들에 새겨진 글씨들이 나자렛에서 발견된 것과 아주 흡사한 것으로, 유대

 

그리스도교인들의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가정의 본체는 삼면이 모두 벽으로 되어있다. 제대를 향하고 있는 동쪽 부분이 동

 

굴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있던 길 위에 아무런 토대없이 쌓아 올린 본체의

 

벽은 땅에서 3m 높이이다. 그 본체 위에 추가해서 쌓은 벽과 둥근 천장은 전례의 분위

 

기를 살리기 위해 현지의 벽돌로 1536년 쌓은 것이다. 또한 이 성 가정은 교황 율리우

 

스 2세의 원의에 따라, 르네상스시대의 이태리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브라만테의 설계

 

대로 새롭게 대리석으로 장식한 것이다. 14세기의 성모상이 1921년 화재로 인해 소각

 

되자, 그 자리에 레바논 삼목으로 된,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을 세워 놓았다. 장구한

 

세월동안 위대한 예술가들에 의하여 기념 성당이  가꾸어지고, 그 이름이  삽시간에 세

 

상에 알려지게 되어, 지금은  수많은 순례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순례지의 하나가 되

 

었다. 훌륭한 유적지인 마리아의 성 가정은, 구원의 기쁜 소식과 육화의 신비와 관련된

 

깊은 신학적이고 영적인 메시지를 묵상할 수 있도록 당신을 초대한다.

 
성 가정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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