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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열 손가락은 모두 더러워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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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열 손가락은 모두 더러워졌지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흠짓 놀라고 말았다. 얼굴 한쪽은 화상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코도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예전에 코가 있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순간 할 말을 잃고 있다가 내가 온 이유를 생각해내곤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회복지과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어쩌다 그렇게?" "어렸을 때 집이 불이 나 다른 식구는 죽고 아버지와 저만 살아남았어요." 그때 생긴 화상으로 온 몸이 흉하게 일그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는 매일 술만 드셨고 절 때렸어요. 아버지 얼굴도 거의 저와 같았거든요.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집을 뛰쳐나왔어요. 집을 나온 아주머니는 부랑자를 보호하는 시설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몇 년 간을 지낼 수 있었다.
"남편을 거기서 만났어요. 이 몸으로 어떻게 결혼을 했냐고요? 남편은 앞을 못 보는 시각 장애인이었지요. 그와 함께 살 때 지금의 딸도 낳았고, 그 때가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행복도 정말 잠시, 남편은 딸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후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철역에서 구걸하는 일뿐.
그녀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나는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쌀은 바로 올 거예요. 보조금도 나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막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장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뭐죠?" 검은 비닐 봉지였다. 봉지를 풀어보니 그 안에는 100원짜리 동전이 하나 가득 들어 있는게 아닌가?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하는 것이었다.
"혼자 약속한 게 있어서요. 구걸하면서 1000원짜리가 들어오면 생활비로 쓰고, 500원짜리가 들어오면 자꾸 시력이 나빠지는 딸아이 수술비로 저축하고, 100원짜리가 들어오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쓰겠다고요. 좋은 데 써 주세요."
내가 꼭 가지고가야 마음이 편하겠다는 그녀의 말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와서 세어보니 모두 1006개의 동전이 들어있었다. 그 돈을 세는 동안 내 열 손가락은 모두 더러워졌지만 감히 그 거룩한 더러움을 씻어 내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한밤을 뜬 눈으로 지새고 말았다.
남승희/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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