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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단체활동도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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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0.72.245.*]

2017-05-20 ㅣ No.11494

 

신심단체 활동도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요. 하지만 자매님의 그것처럼 좋은 욕심이랍니다. 어떤땐 베드로도 순 욕심장이로 보일때가 많치요? 이럴때 바오로는 막달라 마리아 앞의 기도하는 마리아로서 얄밉게 보이기도 하겠지요. 그것이 사람의 눈이랍니다. 눈은 뇌신경의 창이기에 뭐눈엔 뭐만 보인다.도 있고 뭐 눈에는 뭐도 뭐도 다 보인다.가 있겠는데 이때 묵묵히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사람들은 어둠으로 인하여 뒤안길형 무기력함을 바라보기도 할 것입니다. 누가 봐도 공동체 생활을 잘했는데 권모술수에 속은 사람들에게 비토 당하여 신앙 공동체 활동 테입을 끊었고 그 안에서도 묵묵 수행으로 잘하고 있지만 무기력을 만나기도 할테지요. 그만큼 물질주의, 생명경시는 강적으로 비추어진답니다. 하지만 이는 무기력이 아닌 "네가 나를 위해 수고한 뒤 지쳐있는 것이란다."로서 보람의 기쁨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쿼바디스와 다마스커스의 논리인 것이지요.

 

성당내 청년활동들 보면 기성세대로서 참 대견함을 보게 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하나되길 갈망하시는 하느님 이하 모든 성인, 성녀들 바램을 담아 기성세대들이 이루고 있는 사목 단체들의 축소형 형태들을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배타주의를 자비주의로 바꿔주시는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매님 역시 필자의 그 시절처럼 낀세대로서 고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필자의 경우는 청년도 아닌 장년도 아닌 31~40까지는 장년 성가대에서 만년 삼겹살 굽는 군번이었답니다. 순 졸병이지만 돈은 안들어 좋았지요.ㅋ 성당내 삼대 직책 성직자, 사무장, 기관장(왈: 성당 화장실은 이용자 없을때도 왜 빛이 환할까? 가정에서는 안쓸땐 반드시 끌텐데 ㅡ,ㅡ? 등등)은 누구랑 낀세대일까 급궁금해지네요. 필자 경우는 기관실 한달 땜빵중 화장실 불 99번 다 끄다가 100번째 그 여인에게 짜증내 사람 많은데서 엄청 혼난적도 있답니다. 아무말 못해야 했지요.ㅎ 그 모든것 삼위일체로 지나가는 여정에 있어 자매님처럼 좋은 욕심, 의문이 든다면 수녀님께도 한 번 물어보세요. 그러면 수녀님이 귓속말로 그럴거에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사실 나는 더 낀세데예요."라며 비밀이라며 하소연 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일단 오늘 저녁 아이들과 신랑에게 물어보세요. 당신도 낀 입장인가요?라고요.ㅎ 결론이 섞갈리면 성체 모실때 성부께도 그리 여쭤보는건 어떨까요?

 

에필로그

 

사람은 미사전 대인관계에 있어 배타주의를 자비주의로 변모 묵상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입당시 제일 먼저 그리스도 제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배타는 배타를 낳기에 도시인들이 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기에 전례를 우선 지향하는 가톨릭 교회는 문밖에 성수대를 준비해두고 있다. 같은 그리스도안의 한핏줄로서 말씀을 우선 지향하는 기독(그리스도)교인들과 자연 친화적인 불자들은 죽음 앞에서 가장 먼저 배반하는 것이 돈과 명예이기에 절대 경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에 부메랑 배타 효과를 보여준 대표적인 인사가 박근혜(율리아나), 최순실이라 할 수 있는데 배타는 죽음을, 자비는 부활을 낳고 있기에 사람은 계속하여 삶과 죽음의 이정표를 갈망하고 있다. 박과 최 역시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너와 나 또한 영육 거울을 육하 원칙 등으로 여하히 지향하고 즐겨 살피며 쇄신, 대처하는 자세가 관건이다.

 

배타가 아닌 자비로서 큰것에서 작은것 하나라도 즐겨 화합으로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너와 내가 대처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무기력함과 지쳐있음.의 차이점을 규명하는 것이기에 꿈을 훌륭한 기도로 잠이 완전한 기도인 것을 규명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좋은일을 하다가도 지치기 마련이다. 착한 신앙인이 어둠의 세력에게 실직되는 도미노 현상으로 그는 공동체 봉사 활동까지 진일보하지만 삶의 뒤안길에서 무기력함이라는 증상이 다시 나타날수 있는데 이는 어둠 위에 빛이 내리는 새벽 또는 빛 위에 어둠이 내리는 노을 현상과 다르지 않다. 이때 그는 무기력이 아닌 지치도록 선행을 이루었기에 보람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는 것이 좋다.

 

너와 내가 믿는 대상은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하느님께 갖가지 따지고 응석 부리는 너와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내와 별거하여 세상을 부유하는 남편들이 많고, 남편의 검은돈을 경계하지 못하고 박아지부터 긁어야 했던 아내들의 눈물이 강줄기를 이루는 가운데 정화된 그 물로 심장 투석을 하는 미혼 처녀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 사회에서 갖가지 유혹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도시인들은 시끄러움과 침묵의 파도를 넘는것 같다.

 

사랑은 떨어져 있기에 편지일때가 더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하는 독백은 더 단단해 보이기도 한다. 풀어주어 가게하는 것, 다만 대화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일을 지향하며 대화와 노래 어조 또한 쇄신시켜 나갈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잠재된 무한한 능력을 일깨워주는 것이 될 것이다. 빨리빨리 근성으로 뿌리박은 한국 사회는 이러한 모순된 현상 앞에서 그리움과 기다림 역시 하늘과 바다로 흐르고 있다. 이에 용서와 화해를 더한다는 것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용서의 하늘 화해의 바다를 지나는 오월의 토요일 오후가 이어지고 있다.

노을빛 부끄러운 고백으로 걸어가는 나그네는 미움, 환멸 등으로 거부하고 분노한 그것의 타협점을 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두 사람 현실에 안주하며 가끔 불꺼진 창 마주하는 벤치에 홀로 앉아있을 것이다.

달밤이면 더욱 고독해지는 벤치에게 등불 밝혀주는 가로등의 고마움도 잊은채 말이다.

 

잊는다는 것 그것은 가장 커다란 복수다. 이에 순진하고 맑은 여인들은 혐오감, 증오 등으로 무례하게 다가온 남자를 잊지 못하고 집에서 요리해야 할 부엌칼로 그를 난도질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잦다. 미움은 인간의 확대해석과 비례하기에 맑은물에 진한 잉크 한 방울이 더 퍼지듯 그러나 잉크는 곧 숨고 물도 고이면 썩기에 흐름으로서 상쇄되는 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海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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