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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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칫솔/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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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숙 [michelleoh] 쪽지 캡슐

2011-11-22 ㅣ No.69046




한국에 있을 때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던 사람들 중에 목욕탕에서 돈을 내고 자기 몸에 밀린 때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떻게 다른 이가 자기의 겨드랑이며 옆구리를 만질 때의 간지럼을 참을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낯선 사람이 자기의 엉덩이며 사타구니에 밀린 때를 벗겨내도록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전동 칫솔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팔을 움직여 이빨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닦아내는 수고마저도 귀찮아서 이빨 닦는데 까지 전기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라는 거부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선물 받은 전동 칫솔을 우연히 사용하게 되었다. 그 전에도 몇 차례 전동 칫솔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돌리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침 사용하던 칫솔을 모두 여름을 지내던 곳에 두고 오는 바람에 당장 쓸 칫솔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꺼내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생 처음 써보는 이 전동 칫솔이 그 동안의 그릇된 판단을 깨뜨려 주었다. 일반 칫솔을 쓸 때와는 다르게 저 끝에 있는 사랑니까지 구석구석 얼마나 시원하게 닦아 주는지 이를 닦을 때마다 재밌어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직접 사용해보니까 사람들이 전동 칫솔을 쓰는 이유가 단순히 이를 닦는데 팔을 움직이는 수고를 덜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전동 칫솔을 써보니 자꾸 이를 닦고 싶어질 정도로 상쾌함이 더하다. 혹 어쩌면 그 사람들도 나처럼 ‘파르르’ 떨면서 돌아가는 칫솔 부분을 살짝 깨물면서 윗니와 아랫니를 빠르게 때리는 ‘타다다다’ 소리를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전동 칫솔 이야기는 아주 단순한 한 예에 불과하다. 사실 우리들이 지금 보고 만나고 느끼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껏 접했던 어떤 정보나 지식에 의해 형성된 선입견에 따라 모두 미리 판단되고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선입견이 없이 우리는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무작정 선입견을 부정하고 세상을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안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아닌 선입견이 무비판적으로 작용하여 객관적 사실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판단을 내린 주체가 그 사실을 모르고 오히려 그 판단을 확신하게 될 때 선입견은 우리와 세상과 사람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돈을 내고 자기 몸의 때를 남에게 맡기는 사람들, 자기 이빨을 닦는 데도 전기 에너지를 쓰는 사람들은 형편없이 게으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다’라는 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여기까지는 아직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다. 이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을 아무런 비판 없이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인식체계가 너무나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고대 그리스 철인哲人이 말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목욕을 빨리 하거든 ‘그 사람은 목욕을 빨리 한다’라고 까지만 말하시오.”

나 역시 전동 칫솔을 재밌게 쓰게 되었으니 그 동안 전동 칫솔을 쓰는 사람들에게 가졌던 그릇된 판단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고 앞으로는 돈을 내고 때를 미는 사람들을 보게 되더라도 나는 여기까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내고 때를 밀게 하는구나.”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 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마태7,1-2)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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