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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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에 비해 천주교가 가진,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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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1-07-17 ㅣ No.148363

이틀 전에 사제가 된 친구에게서 고해성사를 봤습니다. 고해서 앞에서 잠시 마주쳤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얼핏 봤기 때문에 아마 제가 중학교 때 동창인 친구인지는 잘 몰랐을 겁니다. 2년 전에 위령성월에 성직자 묘지에서 위령미사를 하는 날 그날 친구 신부가 참석해서 멀리서 얼굴만 봤습니다. 그때 보고 이틀 전에 얼굴을 봤습니다. 생각지도 않했는데 그날 올 초에 인사발령 난 것을 보고 기억을 해서 갔던 것입니다. 이제 3개월만 지나면 영세 받은 지 10년이 됩니다. 친구가 신부가 된 것은 영세를 받고 2년쯤 지났을 때 알게 되었을 겁니다. 주일에 교구보를 보는데 교구보 첫 면에 항상 신부님들의 주일 강론이 올라오는데 그때 사진과 이름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고 또 사진이 예전에 중학교 때 얼굴이 묻어났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침 또 목요일 저녁 미사였는데 평일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이맘 때 세례가 있는 것도 잘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사제가 된 걸 알고서는 어떻게 연락을 해서 그 당시 친구가 진해에서 사목하고 있어서 진해까지 가 오전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가기 전에는 사실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신부가 되었으니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제가 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게 고해성사였습니다. 친구에게 고해성사를 하게 되면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아무튼 어떻게 친구를 한번 만나고 싶어서 갔던 것입니다. 그때 강론을 들었는데 느낌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세례식 때문에 강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8년 전쯤에 만났을 땐 사전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옛날 친구였던 시절로 돌아가서 개인적인 친구로 만나 이야기하고 한 시간 후에는 그래도 신부가 되었으니 신부인 사제로 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사 후에 만났는데 처음부터 제가 저도 모르게 말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둘만 있는 자리였지만 제가 높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높이게 되었습니다. 친구였는데 중학교 졸업 후에 처음으로 만난 자리였고 오랜 세월 공백이 있어서 그랬는지 좀 어색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헤어지고 돌아왔습니다. 이 친구와 같은 동창이면서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 중에 개신교 목사가 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였고 또 초등학교 때 짝꿍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까지 친하게 지낸 친구였습니다.

 

참 묘합니다. 이 친구는 중학교 땐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지만 제가 개종 전에는 연락을 하고 지낸 사이였는데 목사라고 해도 그냥 옛날에 친구였던 것처럼 친근하게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근데 신부가 된 친구도 그럴 줄 알았는데 친구라는 생각보다는 신부, 사제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을 편하게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야기하다 보니 몇몇 신부님께는 신부가 된 친구가 있다고 알려드린 신부님도 계십니다. 제가 이런 사실을 말하면서 하나 말씀드린 게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없다고 하니, 하시는 말씀이 친하지 않았느냐고 하시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그렇지도 않은데 그렇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일 년 동안만 같은 반으로 있었고 지금은 상상을 할 수 없습니다만 그 당시에 전국에서 고등학교 진학이 마산이 가장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중3 때에 이미 야간 자율학습을 10시까지 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중310시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시간을 1년 동안 지냈습니다. 자리도 키가 컸는데도 바로 뒷자리에 있었고 그때 당시 함께 공부한 추억이 아직도 제 기억에는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처음 진해에서 만나고 언제 한번 다른 곳에서 사목할 때 잠시 전화 통화를 한 게 전부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친구이기 이전에 이젠 신부가 되었으니 자주 만나게 되면 좀 서먹서먹한 게 없어지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에 관해 궁금한 게 있거나 하면 편하게 질문도 하고 신앙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저희 본당에 주임 신부로 온다면 지금이야 어렵겠지만 그렇게 되었을 땐 자주 만나게 되면 옛날 동창이었고 친구였던 그 시절의 친구처럼도 지낼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사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공적으로는 신부님으로서 대우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예전에 이 친구를 처음 만나고 돌아오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개신교에 있을 땐 주일을 지키지 못해도 양심에 가책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우리처럼 대죄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친구인데 목사가 된 친구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사제가 된 친구는 이상하게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어쩔 수 없이 주일을 어긴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실제로 성사를 보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했지만 아무튼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이런 사실만 봐도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만이 가지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걸 다 말씀을 드리긴 어렵지만 이것 외에도 사실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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