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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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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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1-07-20 ㅣ No.148432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냐?)

2021년 7월 20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봄이 되면 잔디밭에 불청객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잡초입니다.

그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것은

클로버(토끼풀)입니다.

클로버의 엄청난 번식력에

애물단지가 됩니다뽑아 버리지 않고

그냥 두면잔디밭을 클로버밭으로

만들어 버리니까요.

어렸을 때는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참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알게 된 뒤에

행운을 상징한다고 해서 시간만 나면

잔디밭에 앉아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친구들만 계속해서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것입니다.

이때 생각했습니다.

행운이 내게 오지 않는구나.’

하긴 소풍 가서 보물찾기를 해도

늘 이었습니다보물을 찾지 못하는

저는 행운도 찾지 못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세 잎 클로버의 의미를

듣게 되었습니다. ‘행복이랍니다.

이제까지 세 잎 클로버만 봤다는 것은

행복만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보다 행운을

더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요?

행복과 행운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클로버처럼 행복은 지천으로 깔렸지만,

행운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행운보다 행복이

더 큰 가치니까요이 행복을 위해

주님께 더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나 계신 주님을 체험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심지어 가족의 관계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그래서 당신 제자를

가리키며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은 것,

미사에 빠지지 않고 나갔다는 친분만으로

모든 것을 얻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하지만

청하기에 앞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청하기에 앞서 먼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으며,

이 안에서 우리가 간절하게 원하는

행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이다.

(마르티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한 도공 선생님이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각 그룹마다 다른 과제를 주었습니다.

첫째 그룹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완벽한 도자기 하나를 제출하라고 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퀄리티와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도자기를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3개월 후,

어느 그룹에서 훌륭한 도자기가 나왔을까요?

두 번째 그룹이었습니다물론

학기 중에 만든 몇백 개의 도자기 중에는

실패작도 많았지만학기가 끝날 무렵에

만든 도자기들은 아름답고 전문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연습하면 할수록 창작의

재미를 발견하면서 멋진 도자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그러나 첫 번째 그룹은

완벽한 도자기 하나라는 함정에 빠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책하며 만족스럽지 않은

도자기를 제출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모습을 첫 번째 그룹처럼

완벽한 모습이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그래서 죄 중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사회 안에서 철저하게 단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실패를 단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을 배반했음에도 제자들에게 평화를

빌어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실제로 제자들은 계속된 실패 속에서

점점 완벽한 제자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홍해의 갈라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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