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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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촉촉해요/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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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숙 [michelleoh] 쪽지 캡슐

2012-01-15 ㅣ No.70454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까지도 깊어가는 가을의 스산함을 더해 주는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더니 미사를 마치고 밖에 나가보니 저편 하늘에서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 대로, 태양이 뜨면 태양이 뜨는 대로 가을은 나뭇잎이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마음을 조금은 심란하고 심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지난여름부터 시작된 무릎의 통증은 마치 가을 낙엽처럼 내 인생도 정점을 지나 조금씩 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었고 그에 따라 계절에 대한 나의 선호도 역시 점차 봄에서 가을로 바뀌어 가게 만들고 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신의 기능은 점점 퇴화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세상을 대하는 지혜와 사람을 대하는 인격의 깊이를 더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붉은 색 벽돌로 포장된 산책길 위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지렁이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어떤 놈들은 뱀처럼 굵고 긴 몸뚱이를 한 채 몸뚱이를 쭈욱 늘였다 줄이기를 반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를쓰고 있었다. 그런데 크나 작으나 어느 놈 하나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놈이 없었다. 비가 내릴 때 땅 속에서 기어 나와 젖어 있는 벽돌 길 위에 올라와서 비를 맞고 있던 놈들이 비가 멎어 산책로가 건조해 지자 자기들 몸뚱이도 점점 건조해 지면서 몸놀림을 자유로이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습기가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는 그 놈들의 운명은 이제 포장된 벽돌 길 위에서 서서히 그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얼른 불쌍한 마음이 들어 물뿌리개에 물을 채워서 그 놈들의 몸뚱이에 물을 뿌려주고 돌아다니다가 그것이 뭐 그리 큰 의미가 있는 짓이 아니다 싶어서 곧 그만 두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물줄기에 어떤 놈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 놈들은 몸뚱이는 포장된 산책로 위에서 그렇게 서서히 매말라가고 있었다.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몸에 적당한 수분이 유지되지 않으면 산책로 위의 지렁이와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세포와 세포 사이의 수분, 세포 내의 수분, 그리고 혈장의 수분이 감소하게 되면 우선 혈액의 양이 감소하게 되어 근육세포에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체내의 노폐물이 쌓이게 되어 서서히 모든 기능이 저하된다. 운동을 한 뒤 갈증을 느끼는 정도가 체내수분 상실이 1~2% 정도 진행 된 상태라고 보면 되는데 이것이 10% 대에 이르게 되면  죽을 위험에 처한 상태이다. 물의 섭취가 부족하면 결국 피가 부족해져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우리들의 몸이 그렇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떨까? 물이 없으면 우리들의 몸뚱이가 점점 매 말라 가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 역시 그때 그때 적당한 수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점점 감정이 매 말라 가다가 나중에는 회복 불가능한 고사枯死 상태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주위에 보면 마른 나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그들은 아무 것에도 감동 받지 못하고, 또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려고 하지도 않은 채 패쇄적이고 기계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서는 어떤 생기를 느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만큼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의 작은 희생에도 깊은 감동을 받고 더 큰 희생을 되돌려주며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엄마들은 처음으로 ‘맘마’라는 발음을 성공해 낸 아이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갖난 아기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어눌한 입놀림에 하나에 피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감동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순간순간 아이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감동을 받는 엄마는 이제 평생을 바쳐 아이에게 감동을 주는 어머니가 된다. 아이는 엄마의 감동을 받아먹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간다.

삶의 무게에 눌려 무뎌진 우리들의 마음에 다시 사랑의 비가 내리게 해 보자. 다시애정어린 시선으로 살아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다시 살아있는 것들이 들려주는 사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사랑이 무엇인가? 지극한 시선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예민한 감각으로 상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럼으로 우리들 마음이 촉촉해 지는 것! 무엇이 당신의 이 사랑 가득한 시선을 막을 수 있고, 무엇이 당신의 이 사랑 가득한 예민한 감각을 막을 수 있겠는가. 허전한 마음이라, 허무한 인생이라 탓하는 이들이여, 이 가을만큼 깊은 사랑에 우리 한 번 빠져보자. 사람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고린 13,2)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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