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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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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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6-05-04 ㅣ No.104135

우리는 4 복음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의 복음서만 있다면 예수님의 한 모습만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4복음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영성적인 사유를 하게 해 줍니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태초부터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주론적인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약의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했던 임마누엘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르코복음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루가복음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갇힌 이들, 아픈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각자의 복음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복음서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박해의 시기였고, 아직까지 교회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철학과 로마의 법과 페르시아의 문학과 대화를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세상에서는 문명과 문화의 변방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살던 사도들이 문명의 중심지인 로마와 아테네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보이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성령의 도우심과 뜨거운 열정으로 마침내 복음을 전하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철학과 법과 문학을 뛰어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십자가의 힘을 증언하였습니다.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당당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제 역사의 중심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들 각자의 복음서를 가지면 어떨까? 가브리엘 복음서, 안드레아 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로사 복음서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한 복음사가처럼 깊은 영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처럼 성서에 대한 깊은 묵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루가 복음사가처럼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처럼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도전은 그리스의 철학, 로마의 법, 페르시아의 문학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기술은 신화와 종교의 틀을 벗겨버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블랙홀처럼 다른 모든 가치와 의미를 빨아드리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의 사고는 함께 살아야 하는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푸른 별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 위로의 성령, 굳셈의 성령, 지식의 성령, 지혜의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따뜻함과 온유함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전해 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생태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눔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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