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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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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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2-06-20 ㅣ No.7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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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 마태오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골방으로 들어가십시오.>

 

 

    기도란 한 인간이 자신의 근원이자 시초인 하느님께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몸과 마음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마음을 활짝 여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거룩하고 진지해야할 기도 행위에서 조차도 하느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위선자들의 대표 선수로 손꼽히는 자들이 있었으니 율법학자들이요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평소에는 가만히 집에 잘 들어앉아 있다가도 기도하는 시간인 9시, 12시, 오후 3시만 되면 길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왕래가 잦는 회당 앞이나 큰 길 모퉁이에 멈춰 서서 멋들어진 폼, 거룩한 표정까지 지으며 열렬히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숨은 일도 다 보시는 예수님께서 가증스런 그 꼴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기도의 가치와 위상을 추락시키고 기도를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이 아니라 한 인간을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도구로 훼손시킨 위선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제대로 한방 날리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을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오 6장 6절)

 

    공동체 전례, 하느님 백성과 함께 바치는 공적인 기도도 중요하지만 가끔씩 골방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고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자신의 골방을 성전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성당이나 수도원만이 영성의 보고이며 곡창지대가 절대 아닙니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 하느님과 내가 편안하게 통교할 수 있는 내 작은 독방 역시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자신의 골방에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은 성당은 물론이고 이 세상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각 개인차가 있습니다.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포괄적입니다. 따라서 한 가지 형태의 기도만 고수하고 거기에만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적 기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기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장엄한 공동체 전례가 더 빛나기 위해서는 거기에 참석하는 개개인의 열정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공동체와 무관한 개인기도는 자칫 고립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골방에서도 열심히 기도하지만, 똑같은 열성으로 공동체 전례가 장엄하게 거행되는 성전으로도 나아가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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