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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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부활, 큰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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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13-11-09 ㅣ No.85030

 

작은 부활, 큰 부활

 

부활이란 것, 인류 역사 안에서 전무후무한 것이고, 너무나 엄청난 일이기에 그게 과연 내게 해당이나 되는 일이겠는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이자 믿을 교리입니다. 이 부활 신앙이 없다면 우리 그리스도교의 근본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 교회의 기반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부활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시고 우리에게도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최초로 영원히 풀리지 않았던 숙제였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내 삶 안에 적용시켜야할 부활 신앙입니다. 그로 인해 머지않아 다가올 죽음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홀가분하게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힘든 순간이 있었습니다. 인간관계 안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이 발단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억울했고 분노로 치가 떨렸습니다.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다보니 몸과 마음도 점점 병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크게 마음먹고 내가 먼저 뒤로 물러났습니다. 내가 먼저 용서했습니다. 내가 먼저 자세를 낮췄습니다. 한 마디로 내가 죽었습니다. 일종의 작은 죽음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죽기보다 지기 싫어 죽지 않았는데, 내가 죽으니 그때에 내가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여유가 생겼고 조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네 일상 안에서도 죽음을 통한 부활이 지속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부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우리네 일상 안에서 부활을 체험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안에 숨 쉬며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때 우리가 죽어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순간입니다. 누군가와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우울과 낙담, 절망 속을 헤맬 때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져 죄 속에서 방황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내 뜻만 찾을 때입니다. 그 순간은 어떤 면에서 목숨이 붙어있지만 죽어있는 순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부활신앙이 꼭 필요할 때입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크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남을 통해 가능합니다. 죄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설 때 가능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헤아릴 때 가능합니다. 죽기보다 힘든 용서지만 죽을 각오로 내가 먼저 용서할 때 가능합니다.

 

때로 완벽해 보이는 이승의 삶이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이승의 삶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맞이하게 될 또 다른 삶에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세상은 한낱 서곡에 불과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정과 평화 기쁨이 무척이나 커 보이지만 언젠가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서 맞보게 될 영원한 삶, 부활의 삶에 비교하면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자질구레한 우리들의 일상사 안에서도 작은 부활을 맛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 언젠가 또 다른 생을 맞이한 때 다가올 결정적인 부활에서도 제외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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