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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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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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9-02 ㅣ No.149473

오늘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입니다. 590년에 교황으로 뽑힌 그레고리오 성인은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교황입니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도 교황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듯이,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뿐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겼습니다. 교회에 그레고리오 교황이 있다면 우리 역사에는 세종대왕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지금 우리가 쉽게 쓰고 있는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한글은 목에서 내는 소리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입술, , , 목구멍의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소리글자인 한글은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까지 모두 적을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는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다른데 중국의 문자를 쓰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문을 배울 수 없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당시 집현전의 학자들과 대신들의 반대로 반포되지 못할 뻔했습니다. 반대를 했던 대신 중에 최만리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하였습니다. 대국인 중국의 문자인 한문을 대신해서 우리의 문자를 만들면 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대국의 비위를 건들면 국가적인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간악한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적을 수 있게 되면 국가의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법을 알면 법을 이용해서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국과 다른 문자를 가진 나라는 모두 오랑캐인데 우리도 우리의 문자를 가지면 오랑캐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은 글을 모르기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백성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백성이 글을 알면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근본적으로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신뢰하였고, 사랑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면 나라의 품격이 높아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입니다. 그 만들어진 목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문자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문자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담긴 문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치와 의미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이 역시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치와 의미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면, 섬김을 받을 수 있지만 섬기는 삶을 산다면 그런 사람은 늘 새 포도주이고, 새 부대입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면, 말은 많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면, 타성에 젖어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그런 사람은 언제나 낡은 포도주이며, 낡은 부대입니다.

 

신앙은 우리를 억누르고,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신앙은 우리 안에 맺힌 것들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 관해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냈다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았다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 제자들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들에게는 신앙은 삶을 구속하고, 죄의식을 심어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부가 갈등을 일으키는 많은 경우도 미리 판단하고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절친했던 친구가 갈라지는 경우도 충분히 듣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남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참된 신앙은 이해와 용서, 인내와 관용이라는 그릇에 담아야만 더욱 빛을 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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