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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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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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3-09 ㅣ No.170444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루카 18,9-14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와 세리 두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을 비교하여 보여주심으로써 우리가 어떤 자세로 하느님께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바리사이와 세리는 기도하는 방식이 극단적으로 다른데, 그런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들이 지닌 ‘관점’, 즉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지요.

 

첫째,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을 의로운 사람으로 보았고, 세리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바리사이는 자신을 본모습보다 더 대단하게 우러러보았고, 세리는 자신을 본모습보다 더 부족하게 낮춰보았지요. 자신을 우러러보면 자존감이 높아지지만 객관성이 없어지고 교만해집니다. 반면 자신을 낮춰보면 철저한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고 겸손해지지만 반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그렇기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게 중요합니다.

 

둘째, 그들은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을 우러러보는만큼 타인을 업신여겨 보았고, 세리는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는만큼 타인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랬기에 바리사이는 감히 하느님 앞에서도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고, 세리는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죄책감과 후회로 가슴을 치며 마음 아파했지요.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비교와 막말로 다른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 바리사이보다, 겸손과 바른 양심으로 자기 가슴을 아프게 한 세리를 더 어여삐 보셨을 겁니다.

 

셋째, 그들은 바라보는 방향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는 기도하면서도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었고, 세리는 기도하는 동안 철저히 하느님만을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바리사이가 ‘혼잣말로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자신을 향해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즉 바리사이는 하느님을 앞에 두고 기도하긴 했지만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만 바라보며 제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며 그분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들러리’로 세워두고 자화자찬 하기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건 제대로 된 대화라고 할 수 없기에 오늘 복음에서는 그의 기도를 ‘혼잣말’이라고 번역한 것이지요. 반면 세리는 하느님을 바라봄으로써 그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고 약하며 비천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자기 모습이 죄스럽고 부끄러워 자기도 모르게 이런 기도가 튀어나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입어 거룩해지지요.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지녀야 할 태도인 참된 겸손은 자기를 무조건 비하하거나 하찮게 여기는게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그렇기에 더더욱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함을 깨닫고 간절히 필요한 바를 청하는 것이지요. 이는 자신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그래서 자신을 위해 모든걸 내려놓을 수 있는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입니다. 오늘 복음 속 세리가 바로 그런 모습이지요. 우리도 그 세리처럼 겸손한 자세로 주님 앞에 서서 그분의 은총과 사랑을 청해야겠습니다. 그렇게 청하는 만큼 받을 것이고 받은 만큼 거룩해질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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