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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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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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08-07-22 ㅣ No.37857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Stop holding on to me, for I have not yet ascended to the Father."
(Jn.20.17)
 
제1독서 아가 3,1-4ㄴ
복음 요한 20,1-2.11-18
 
하느님께서 소를 만드시고 소한테 말씀하시기를 “너는 60년만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일만 해야 한다.” 그러자 소는 60년은 너무 과하다면서 30년은 버리고 30년만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개를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30년을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집을 지켜라.” 그러자 개 역시도 30년은 너무 과하다면서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원숭이를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30년을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재롱을 떨어라.” 그러자 원숭이도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을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25년만 살아라. 단 너한테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주겠다.” 이 말에 사람은 앞선 동물들이 버린 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가지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래서 하느님께 말하기를 “그럼 소가 버린 30년, 개가 버린 15년, 원숭이가 버린 15년까지 다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25살까지는 주어진 시간을 그냥 살고요, 소가 버린 30년으로는 26살부터 55살까지 소 같이 일만 하고, 개가 버린 15년으로 퇴직하고 개처럼 집 보기로 살고요, 원숭이가 버린 15년으로는 손자손녀 앞에서 원숭이처럼 재롱을 부린다고 하네요.

우스갯소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인간들의 욕심을 꼬집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로 우리들은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지요. 심지어 갖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가지려 하기에 이 세상에 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욕심은 우리들이 반드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년 전부터 그러니까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이 알려지면서 이상한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새벽 묵상 글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인 글이라고 말하고, 새벽 방송에 틀어드린 노래가 자기를 생각하면서 제가 특별히 선곡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는 새벽 묵상 글과 새벽 방송을 누구 한 사람을 염두하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만의 언어로 이해하기 때문이지요.

자기만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욕심입니다. 물론 사랑이라는 이유를 대지요. 그러나 욕심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입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이었지요. 그는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한없이 울고 있었지요.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인간적인 사랑을 내세워서 예수님을 구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지요. 바로 세상에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셨고, 이를 깨달은 성녀는 곧바로 제자들을 비롯해서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욕심을 떠올려 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그를 구속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랑을 내세워서 사람을 구속하지 맙시다.
 


받아들이지 않는 비방(‘행복한 동행’ 중에서)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에 얽힌 일화다. 석가모니에게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어느 곳에서든 석가모니를 만나기만 하면 온갖 트집을 잡으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누가 들어도 억지가 틀림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석가모니가 그의 욕설을 잠자코 듣고만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날도 길에서 우연히 석가모니를 본 사내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러고는 “당신이 얘기하는 모든 것은 다 썩어 빠진 이론이야! 그러니 이 동네에서 얼씬거리지 말고 썩 꺼져 버려. 당신을 보기만 해도 난 밥맛이 떨어지니까!”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별 대꾸 없이 잠자코 있다가 돌연히 그에게 물었다.

“이것 보게, 만약 자네가 누군가에게 어떤 물건을 주려고 하는데 그가 받지 않는다면 그 물건은 누구의 것인가?”

예상치 못한 석가모니의 질문에 당황한 사내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야 뭐, 당연히 물건을 주려고 한 내 것이지.”

사내의 대답을 들은 석가모니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받지 않는 물건은 원래 주려고 했던 사람의 것이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지금까지 자네는 나를 항상 욕했지만 나는 그 욕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러면 그 욕설은 누구에게 향하는 것이겠나?”

그제야 석가모니의 뜻을 깨달은 남자는 아연실색하여 급히 자리를 떠났고, 그 뒤로 다시는 석가모니에게 욕설을 퍼붓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갖고 날을 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작정 맞서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 상대 스스로가 비방의 칼을 거두게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Une Longue Absence / Andre Gag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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