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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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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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4-12-04 ㅣ No.8621

 12월 5일 대림 제2주일-마태오 3장 1-12절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그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것>


매주 한번 저희 공동체에서는 그룹별 복음나누기 미사를 봉헌합니다. 대여섯 명의 수도자들이 작은 방에 옹기종기모여 서로 얼굴을 마주대고 미사를 드립니다. 복음낭독이 끝나면 주일 복음을 주제로 한 생활나누기를 시작하지요. 참으로 은혜로운 순간입니다.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만남을 통해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진지한 삶의 나눔이 솔직하게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24시간 아이들과 직접 온 몸으로 부딪치는 한 수사님은 '회개'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한 아이가 식탐으로 인해 식사량을 조절하지 못한 탓에 위장장애를 일으켰습니다. 계속 속이 아프다고 하니 할 수 없이 주방 이모님들에게 부탁해서 죽을 끓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죽을 먹으면서도 욕심은 버리지 않더군요. 조금씩 먹어야 위가 빨리 나을텐데...세상에 죽을 한꺼번에 세 그릇씩이나 먹더군요. 그리고는 또 속이 아프다고 난리치고. 너무도 안타깝고 속이 상했던 저는 아이에게 심하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상습적인 가출이 일상화된 우리 아이들 특징이 먹을 기회 있을 때 왕창 먹어두는 것, 그래서 최대한 저장시켜두는 것이 자연스런 일인데, 그리고 습성이 되었는데...하루아침에 그 습성을 고칠 수 없을텐데...하는 마음이 들어 크게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틈에 사느라, 바쁘고 지쳐서 아이 각자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뉘우쳤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서 마음만 앞섰지 아이들 내면의 오랜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못했음을 반성했습니다.


이 대림 시기 제게 있어 ‘회개’란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형성되는 아이들과의 피상적인 관계, 사무적인 관계를 탈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아이의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위로해주는 일, 그것이 제게 있어 회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다른 수사님 한분은 이렇게 의미심장한 한 말씀을 건네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지요. 단체사진이 나오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제일 먼저 자기 얼굴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 단체 사진이 잘 나왔나 안나왔는가의 평가 기준은 내 얼굴이 잘 나왔나 못나왔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의 삶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완전히 탈피한 삶, 온전히 예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순간 순간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떠나고, 자신을 소외시킨 특별한 예언자였습니다. 자기 뒤에 오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비운 ‘자기 이탈의 명수’ ‘완전한 비움의 명수’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세례자 요한의 생애처럼 그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이 저리 빛날 수 있는 것은 어두운 밤하늘이 배경으로 서있기 때문입니다. 한 송이 꽃이 저리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대지가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연어, 안도현, 문학동네 참조)."


세례자 요한의 삶은 철저하게도 오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배경으로서의 삶이었습니다.


한때 잘 나가던 세례자 요한을 사람들이 그냥 두었을 것 같습니까?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저녁 사겠다, 차 한대 빼드리겠다, 특히 예루살렘 부인들은 메뚜기와 들 꿀로 연명하는 세례자 요한을 보며 ‘저런저런’ 하면서 음식을 싸들고 따라다녔겠지요.


그럴수록 세례자 요한은 더욱 더 깊은 내적인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더욱 더 청빈한 삶, 더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이토록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지속적인 겸손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 평생 예수님의 선구자로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여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가난함을 추구하고, 더욱 더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같은 ‘조연으로서의 겸손함’을 몸에 익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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