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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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惡緣)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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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01-30 ㅣ No.9257

 

1월 30일 연중 제4주일-마태오 5장 1-12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악연(惡緣)은 없습니다>


끼~익! 꽝!


너무도 바빴던 나머지 벼락같이 대문을 박차고 나가 황급히 좌회전을 감행하던 제 티코를 미처 피하지 못해 들이받은 상대방 승용차는 거의 신차 수준이었습니다. 신차에 걸맞게 운전자 역시 갓 30을 넘은 ‘싱싱한’ 청년이었습니다.


출근길에 너무도 어이없는 사고를 당한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할말을 잃었습니다. 갓 뽑은 새 차 범퍼가 망가지고,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고,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허리 통증은 상당하고...그분의 눈 빛을 통해 저를 향한 분노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 늦가을, 우리는 그렇게 악연(惡緣)으로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쪽저쪽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고, 어떻게 사고를 처리할 것인지 상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었습니다. 이왕 발생한 사고,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고, 싸울 일이 아니기에, 함께 하나 하나 해결책을 찾아나갔습니다.


일단 허리 통증이 심한 그와 함께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갔습니다. 응급실 침대에 그를 눕혀놓고, 저는 수속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접수를 하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치료비 지불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약을 타고,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그러면서 조금씩 서로 보기 민망했던 얼굴이 편해져만 갔습니다.


누워있는 그에게 제가 먼저 할말이 없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하니, 그런 말씀 마시라고, 저한테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서 일보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한걸음 크게 물러나니, 그는 더 크게 두 걸음을 물러났습니다.


그가 지난 연말, 저를 찾아왔습니다. 봉투 하나를 들고.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보험회사로부터 보상금을 조금 받았는데, 아저씨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저는 엑스레이도 찍고, 한 몇 일 입원도 하고 그랬는데, 아저씨도 말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혹시 모르니 이 돈 가지고 꼭 병원에 가보셨으면 해서요. 혹시라도 후유증 생기면 안되잖아요?”


그리고 어제 이런 내용의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저씨, 우리 악연으로 만났지만, 한 평생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빨리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한데요, 저 사실 좋은 조건으로 취업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도착하는 대로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그와의 묘한 인연을 통해, 이 세상에 악연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선물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 크게 먹고, 한 걸음 크게 양보할 때, 우리의 모든 이웃은 다 하느님의 선물이고, 좋은 인연인 것입니다.


행복은 진정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있음을 늘 확인하고 삽니다. 마음 한번 크게 비우면 거기서 행복이 싹트기 시작하고, 그 순간 천상적 삶이 시작됩니다. 크게 한번 양보하고, 크게 한번 물러설 때 신기하게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평화가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마음, 작은 마음, 물러나는 마음을 지닌다는 것. 어렵지만 행복한 삶의 지름길임을 언제나 체험하며 삽니다. 아쉽지만 내 의견을 접고 이웃 뜻에 따른다는 것, 서운하지만 내 의지를 접고 공동체 결정에 순응한다는 것, 정말 괴롭지만 내 계획을 포기하고 하느님 뜻을 추구한다는 것, 그것이 행복의 보증수표이자 평화로운 수행생활의 본질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수도자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내 뜻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비의 품에 온전히 안기는 때라는 것을 요즘에야 깨닫습니다. 내 의지를 과감히 접고, 바보처럼 이웃 품에 안길 때 상상할 수 없는 천상 평화와 내면에서부터 진정한 행복이 어느새 소리 없이 제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느님 손 안에 노는 것, 그분 품에 안기는 것, 그분 선택에 따르는 것, 그것이 때로 서운하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 신앙인들 본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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