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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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어떠한 경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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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의 [leejeano] 쪽지 캡슐

2005-03-14 ㅣ No.9918

2005년3월14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ㅡ다니엘13,1-9.15-17.19-30.33-62<또는13,41ㄷ-62>;요한8,1-11ㅡ

 

              어떠한 경우라도

                                이순의

 

 

오늘의 복음은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의 양심을 흔들어 놓고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죄 없이 살 수 없다는 필연적인 결론을 선포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옛 속담에 남의 죄를 보기 전에 자기의 들보를 먼저 보라. 손톱 밑에 비접 든 것은 보이는데 염통에 쉬 실는 것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다음 주일은 사순시기의 절정을 맞는다. 이번주 안으로 모든 신자가 고해성사를 마쳐야 하며 고통의 시기인 성주간의 희생으로 가진 죄를 사함 받고 주님과 함께 부활이라는 은총의 대열에 동행해야 한다.

 

묵상글을 올린지가 300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300회를 기점으로 양심에 관한 본질적인 어두움을 고백하려고 했으나 오늘의 복음이 나에게 주시는 의미가 깊어서 오늘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내가 묵상글을 처음 쓰러 왔을 때는 내 자신이 병중이었다. 육신의 병도 육신의 병이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엎친데 덮쳐서 내 자신을 건져 보자고 찾아들었던 것이다. 이곳에 와 보았더니 다른활동과 달라서 사람이 지닌 사고로 이러쿵 저러쿵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니 각자가 지닌 생각과 사고들이 그대로 내게 전달되지 않아서 다행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외부와의 관계를 터 주려고 짝궁이 컴퓨터를 사주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거부해버린 심각한 상태에서 어떤식으로든 그 돌파구를 찾아주려고 했던 것이다. 인터넷을 처음 시작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나의 마음을 올려 놓았을 뿐이었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를 실감하지 못했고, 그 파장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내가 평소에 가졌던 의식대로 내가 쓴 글에는 내가 책임을 진다는 고집스러운 신념 뿐이었다.

 

그것이 단순한 외골수의 기질이었을 것이다. 인터넷이라는데는 교회활동보다 더 본질이 외곡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선행의 관점조차 얼마나 제 각각인지 아는데도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굳혔다. 내 나름의 인터넷 철칙을 세워서 정하였다. <어떠한 경우라도 본질을 떠난 인신공격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는데는 본당활동에서 내가 정한 철칙을 지키는 것 만큼 동일한 자기 절제가 따라야 했었다.

 

그냥 많은 분들처럼 나도 글을 읽기만 하는 입장이었다면 좀 수월 했을텐데 쓰는 입장이다 보니 여러 생각들을 접해야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내가 처음 이곳에 온 절박한 자기 구제를 벗어나는 목적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참으로 적응이 잘 안되는 손님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노출해 본적이 없었던 경우는 당사자 보다 상대편이 받을 상처가 염려되어서 침묵하고 있었던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한 예일 뿐이다.

 

어느분께서 글을 써서 올리셨는데 참으로 여러분들이 칭찬을 하는 리플을 달았었다. 물론 나도 칭찬과 부러움에 담긴 리플을 달았었다. 그런데 어느분이 나에게 쪽지를 보내왔다. 본인이 굿뉴스가 생긴이래로 어떤 분에게 혜택을 주었는데 그분이 이 분에게 양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잘난척 한다는 내용과 내가 원한다면 그런 기회를 부여할 테니 말씀만 하라는 것이었다. 경로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좋아하는 모습을 그런식으로 자기를 내세워 그 글을 모욕하는 쪽지를 받았을 때는 황당하였다.

 

아~! 감이 왔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하며 읽어 보았다. 판단은 하나마나였고...... 나는 활동을 통해 그런 모습을 수도 없이 경계해 온 사람이다. 정말로 수고하고 짐을 지어 봉사하는 사람을 두고 때로는 성직자나 수도자들에게 자기를 내세워 차단해 버리는 교우들을 보아왔기에 그 쪽지를 받은 이후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걷어낼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이 무슨일을 하는지도 관심이 없고, 그 사람이 얼마나 잘났는지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묵상글은 쓰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뭘 부탁해야하지?

 

묵상글이란 순간의 자기 묵상을 글로 올려 놓는 것이다. 아픔이 있는 사람은 아프게, 기쁨이 있는 사람은 기쁘게,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쓰는 사람이 주님을 향해서 봉헌하는 매우 주관적인 글이다. 문학과 관계되는 글이라면 객관화를 시켜서 관점을 비틀어 놓아야하겠지만 묵상글은 객관적인 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한 편의 묵상글 속에는 그것을 쓴 개인의 전후 사정들이 무수히 내포되어 있을 것이고, 그 중에 한 획이 문자화 될 뿐이다. 글을 쓴 당사자가 좋아한 이유가 실렸다면 그대로 존중해 주었어야한다. 슬퍼한 이유라면 그대로 존중해 주었어야한다.

 

그것이 읽기만 하는 입장의 관점이라면 그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리플이 다르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함께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비아냥 거리는 쪽지를 나에게 날릴 이유가 없어야 한다. 그분의 기쁨을 기뻐해 주지는 못할 망정 침묵은 해 주었어야 묵상글을 쓸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그정도의 예의는 서로가 지켜주셔야 자기의 묵상을 공개할 자격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나는 생각했다. 그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뜻을 따른 후에 묵상을 쓰게 되었다면 또 누구에게 자기의 은덕을 팔아서 나를 비아냥 거릴 것인가?! 오늘은 누구에게 쪽지를 보내서 이간을 할 것인가?

 

내가 아무리 투명하게 자신을 가리지 않고 밝히는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격을 만큼의 세상은 격었지 않았겠는가?! 그만큼의 판단력은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이 모든 묵상 내용은 한정되어있는 먼지 한 알의 분량도 되지 못한 세상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나의 고통이 , 나의 삶이 세상의 전부였다고 치부한 적도 없었다. 공감할 수 있다면 위로를 삼을 뿐이고 아니면 말아야 하는게 인터넷 생활이다. 묵상방은 일반적인 논쟁거리의 글을 올리는 곳이 아니다. 특히 나의 입장에서는 좋은 글도 있지만 나쁜글을 쓸적에는 지나온 상처들의 흔적들을 도려내며 글을 쓴다. 사람의 입장이 살아온 환경과 처해본 경험에 따라서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골 깊은 상처가 느껴질 때는........

 

위의 예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예시를 든 이유는 간혹 나에게 구체적인 사과를 해야한다고 권하시는 청을 받는다. 이유를 불문하고 절차상의 사건들이 흘러버린 시점에서 사과문을 올렸는데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므로 개인 개인에게 사과문을 쓰라는, 쪽지라도 보내서 화해를 유도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상당한 수의 벗님들이 나에게 원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워한다고 한다. 그 원인들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요청을 거절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모든 면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죄가 많아서 그저 이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위의 예처럼 내가 묵상방의 대표주자로 착각하지도 않으며. 터줏대감 노릇은 더욱 하고 싶지도 않고, 여기저기 쪽지를 보내서 회유할 성격은 더욱 못 된다. 또 그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와 상관도 없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야 어쩔 수가 없다지만 내가 누구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본질을 벗어나 악질적인 인신공격성의 대자보를 쓰셔서 나를 음해하신분께도 사과문을 요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쓰신 내용들을 수용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이미 그렇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판단처럼 묵상방에서의 나는 인기를 얻으려고 벗들을 찾아다니거나, 리플도 달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먼저 쪽지를 보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원하는대로 하고 있지를 않는가?!

 

조용히 묵묵히 목적한 묵상글만 쓸 것이다. 나에게는 이미 용서가 마음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ㅡ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요한8, 10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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