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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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꼴찌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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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05-17 ㅣ No.10918

5월 17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마르코 9장 30-37절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꼴찌의 행복>


언젠가 고만고만한 ‘초딩’ 아이들만 올망졸망 모여 살던 그룹홈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집에는 아직 개념 없는 초등학교 1학년 1명부터 시작해서 2학년 1명, 3학년 1명....6학년 1명해서 모두 6명이 보육사 자매님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있었지요.


오랜만에 방문한 저였기에 아이들과 이런저런 최신 버전 농담도 주고받고, 게임도 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니 평소에 제일 에너지가 충만해서 감당하기 힘든 2학년짜리 꼬맹이가 거실 한 구석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아무리 물어도 묵묵부답이던 아이를 간신히 ‘꼬셔서’ 사연을 들어보니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자기보다 한 학년 밑인 막내 1학년짜리가 요즘 통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자주 ‘개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살 형인데, 그러지 말라고 해도 ‘반말 까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등의 불편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고 있는 꼴이 귀엽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애나 어른이나’ 똑같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도 ‘서열’은 꽤 중요 했던가 봅니다. 유다 회당 안에서의 종교 집회 때, 원로회의 때, 공동식사 때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느 자리에 앉느냐 하는 문제는 그들에게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히 괜히 속에 든 것도 없으면서 나대기 좋아하고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대제관들, 랍비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그들의 그런 가식적인 행동은 참으로 한심스러웠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더욱 실망하신 것은 그토록 오랜 기간 계속 반복해서 특별교육까지 시킨 제자들마저도 아직 자리다툼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측근 제자들끼리, 그것도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싸웠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쫀쫀하게’ 누가 높은가 하는 문제로 싸운 제자들, 사무실에 들어가 조용히 대화 한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길에서 누가 더 고참이냐 하는 문제로 싸우다니 진정 창피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말입니다.


이런 제자들 앞에 예수님은 할 말을 잃으십니다. 너무도 한심하셨겠습니다. 너무도 어이가 없으셨겠습니다.


제자들의 미성숙한 모습, 아직도 갈 길이 먼 모습에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든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정신 교육을 실시하십니다. 열두 제자들을 당신 가까이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참된 높음, 위대함이란 다른 모든 사람을 자신보다 앞세우고 자신은 제일 끝자리에 놓습니다.


신앙 안에서 첫째가는 사람은 기꺼이 다른 사람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쁘게 내려가는 사람입니다.


밑바닥체험이 전혀 없었던 사람, 오로지 높이높이 올라가기만 한 사람, 그가 행복해보이기도 하겠지만, 어찌 보면 진정 불행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그에게도 인생의 내리막길, 정리해야 하는 황혼의 길도 닥쳐올 텐데, 그때 겪어야할 쓰라림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잘나가던 유명인사들, 탄탄한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대단한’ 사람일수록 밑으로 내려오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다. 평소 내려오는 연습을 자주 못했기에, 조금만 내리막의 기미를 보이면 그렇게 힘들어 한다지요. 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죽어도 용납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때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꼴찌가 행복한 것입니다.


꼴찌로 산다는 것, 종으로 산다는 것, 그것도 자원해서 바보처럼 산다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진정 견딜 수 없는 힘겨운 일이겠지만 그 길이 바로 우리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길입니다. 오늘 또 다시 우리가 선택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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