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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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를 방문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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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06-04 ㅣ No.11178

6월 5일 연중 제10주일-마태오 복음 9장 9-13절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교도소를 방문하신 예수님>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한 아이가 찾아왔는데, 이제 나이도 나이고 자리 좀 잡아야 할텐데,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치렁치렁한 머리에, 때 아닌 겨울 코트에, 군화에, 거기다 지독한 냄새까지...눈여겨보니 가까운 역에서 노숙을 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찾아온 요지는 직장을 잡으려는데,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꼼짝달싹도 못하겠으니, 원상복귀 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주민등록만 되찾아주면, 어디든 취직해서 열심히 하겠노라고,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습니다.


젊은 녀석이 뭐 할게 없어 이렇게 다니냐고 다그치니, 나름대로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데, 일이 자꾸 꼬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하던 곳이 주유소였는데, 피곤에 지친 나머지 휘발유차에 경유를 집어넣는 바람에 주인한테 혼은 혼대로 나고, 월급은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났노라고 그간의 상황을 제게 설명했습니다.


듣고 있노라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짠해지더군요. 할 수 없이 마음을 크게 먹고 동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말소된 주민등록을 되찾는 수속을 밟기 위해 한동안 같이 있었는데, 그 냄새가 보통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아이와 같이 길을 걸어가는데, 주변 사람들도 힐끔힐끔 저와 그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며 참으로 대단한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밑바닥 인생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들과 함께 한 여정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 다 제쳐놓은 사람들의 동반자가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날 다시 한 번 예수님이 이 땅에 찾아오신다면 친구가 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민족의 반역자, 가난한 사람들을 등쳐먹고 살던 세리 마태오를 당신 제자단에 포함시킨 것을 보았을 때, 예수님 주변에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 임종환자들이 들끓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죄인들, 창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 예수님의 삶을 생각할 때, 그 답은 너무도 명쾌합니다.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교도소와 구치소를 방문하실 것입니다. 분명히 중환자실을 내 집 드나들듯이 출입하실 것입니다. 노숙자들이 모이는 무료급식소나 역 광장에 오래오래 머무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는 당대 가장 손가락질 받던 부류 사람들과 한 식탁에 앉으십니다. 회개한 세리 마태오가 예수님을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마태오의 친구 세리들이 잔뜩 몰려왔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유상종’이라고 세리 못지않게 밑바닥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죄다 몰려와서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메시아가 세리와 창녀들과 한 식탁에 앉았다는 것, 당시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큰 스캔들, 스캔들 중에 가장 큰 스캔들이었습니다. 특히 폼 잡기 좋아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그들은 너무나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서서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의 본질을 명백하게 선포하십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다시 한 번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충만한 위로의 손길을 느낍니다. ‘나이 들면 좀 나아지겠지?’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죄를 덜 짓겠지?’ 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얼마입니까? 눈덩이처럼 불어난 죄와 악습의 굴레를 괴로워하면서도 과감하게 벗어 던지지 못한 부끄러운 날들이었습니다.


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란 기도를 끝도 없이 반복해온 제게 하느님께서 이런 말씀을 건네십니다.


“도저히 현실성 없는 계획-의인이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있는 그대로 살아가거라. 나는 죄인의 하느님으로, 죄인을 도와주러 이 세상에 왔단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건설하고자 하셨던 공동체는 죄인들을 기꺼이 수용하는 공동체, 나약한 인간들의 갖은 악습과 인간적 결함, 그간 쌓아온 깊은 상처를 감싸 안는 공동체, 그래서 결국 인내와 사랑과 진심 어린 형제적 충고를 통해 정화의 길을 걷는 회개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 죄로 인해 깨어지고 부서진 사람들을 단 한 번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던 사람들 그 사이에 자주 머무르셨습니다. 그들의 절친한 친구가 되셨고, 그들의 딱함을 나 몰라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자비의 예수님 앞에 죄인들도 더 이상 실망치 않게 됐으며, 더는 외롭지 않게 됐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죄인들도 새 삶을 희망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우리 예수님은 약자의 주님, 가난한 사람들의 하느님, 죄인들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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