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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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작은 꽃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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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10-01 ㅣ No.12631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마태오 18장 1-5절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작은 꽃이 되고 싶습니다>


9월의 마지막 밤이었던 어제 저녁, 저희 집에서는 아주 소박한 ‘가을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작년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져 깜짝 놀랐습니다. 클래식 기타 연주며 피아노 연주, 생전 처음 보는 악기들을 들고 나와 그간 갈고 닦은 솜씨를 마음껏 발휘하던 아이들 앞에 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한때 ‘잘 나가던’ 아이들, ‘초대형 사건’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아이들이었는데, ‘도저히 이딴 데서 못 살겠다’고 기를 쓰며 도망가던 아이들이었는데, 어제 밤에는 완전히 딴 얼굴로 변모되어 무대에 섰더군요.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한 얼굴, 약간 어색한 표정이지만,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연주하는 진지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정녕 행복했습니다. 그저 흐뭇한 마음으로 ‘꽃 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간식이 끝나고 나니 한 꼬맹이가 저보고 기숙사로 꼭 올라오라더군요. 호기심에 따라 올라갔더니 장롱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주었습니다. 비뚤비뚤, 그러나 꾹꾹 눌러쓴 편지였습니다. 창피하니 지금 여기서 읽지 말고 수도원에 가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여기 온지 한 달이 지났네요. 신부님과 선생님이 저희들을 데리러 ‘비둘기장’(철창이 쳐진 임시유치장)으로 오실 때 솔직히 많이 ‘쫄았어요’(겁났어요). 그런데 나오자마자 점심으로 부대찌개도 사주시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사주셔서 정말 마음이 놓였지요. 그리고 신부님께서 미사를 드릴 때 마다 희한하게 답답한 게 뻥 뚫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신부님이 웃으시며 먼저 인사를 건네주실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신부님, 알라부 소마취 ㅋㅋ.”


아이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우리를 도와주는구나. 아이들, 하나하나 그렇게 말썽꾸러기들이고, 때로 속을 엄청 긁어놓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우리 기쁨의 원천입니다. 우리 삶의 의미입니다. 참으로 정이 많은 아이들, 정말 요즘 보기 드는 녀석들, 천사 같은 녀석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소화 데레사 성녀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데레사의 생애를 읽어보니 엄청 장난꾸러기였더군요. 꼬맹이 시절 데레사는 얼마나 부잡하고 장난이 심했던지 주일날 성당에 데리고 갈 수가 없을 정도였답니다. 어쩌다 한 번 미사를 데리고 가면 성당 안을 온통 휘젓고 다녀,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주일이면 부모가 번갈아가며 집에 남아 데레사를 봐야만 했답니다. 그런 성향은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로 많이 바뀌었지요.


데레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영성의 특징은 아주 독특합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데레사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성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였습니다.


일상 안에서 매일 우리가 접하게 되는 아주 작고 하찮은 일을 열심히 함을 통해서, 매일의 작은 수고와 번거로움, 귀찮음을 기꺼이 참아내고, 그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는 것, 그것이 데레사가 우리에게 선물로 남겨준 영성의 길입니다.


조금 더 노력한다면 좋으신 아버지께 대한 어린이다운 완전한 의탁, 아버지의 품안에 온전히 안기려는 자녀다운 신뢰, 아버지께 모든 것을 다 걸고 모든 것을 다 바치려는 순수한 봉헌, 그것이 데레사가 개척한 성성(聖性)의 특징이었습니다.


데레사는 언제나 사람들의 발아래 짓밟히는 한낱 작은 모래알이 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조그마한 모래알을 찬란히 빛나는 별로 만드셨습니다.


착복식이 끝나자마자, 원장수녀님께서는 데레사에게 명했습니다.


“오늘부터 주방 일을 맡아주세요.”


데레사는 기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예, 수녀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하느님, 오늘부터 갈멜 수녀원의 주방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게 첫 소임으로 이렇게 좋은 일을 맡겨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자신을 낮추고 오만한 마음을 성모님 발밑에 봉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잘 참아내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데레사는 하루 일과 안에 벌어지는 작고 사소한 일에서도 하느님을 찾았고, 그 하찮은 사건을 통해서 크나큰 영적진보를 일구어냈습니다.


데레사는 다른 수녀님들이 함부로 내팽개쳐놓은 이불을 개거나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옷가지를 차곡차곡 정리해서 옷장 안에 넣는 등,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작고 하찮은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데레사는 정리정돈 및 청소의 대가였습니다. 그리고 데레사는 그 모든 것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봉헌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작은 영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선물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돌아본 지난 날, 지나친 욕심 때문에 너무 많은 영혼을 놓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낙심하지는 않겠습니다. 좀 더 희생하고,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데레사는 24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선종하기 직전 데레사는 각혈을 하는 등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럴수록 데레사는 더욱 기도에 매진했습니다.


“하느님, 제 영혼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불과합니다. 저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은혜와 사랑을 가득 주십시오.”


첫 서원식 때 데레사가 품에 지니고 있었던 기도문 가운데 일부입니다.


“오직 예수님, 당신만이 저의 ‘모든 것’이 되어주십시오.”


“제가 절대로 수녀원의 짐이 되지 않게 하여주시고,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말게 하시며, 제가 예수님 당신의 작은 모래알처럼 잊혀져 발에 밟히게 하소서.”


“예수님, 저로 하여금 많은 영혼을 구하게 하시고, 오늘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이 하나도 없고, 또 연옥의 모든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다만 제 존재가 당신께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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