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ABC 초콜릿>

점심식사 시간에 한 아이가 제게 다가오다니 심각한 표정으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더군요. ’뭔가 또 큰 문제가 생겼구나‘ 했었는데, 제가 볼 때는 별게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신부님, 요즘 담배를 못 피우다 보니 단 것이 엄청 땡기는데, ‘ABC 초콜릿’ 한 봉지만 구해다주실 수 없으세요?”

심각한 문제인줄 알았는데, 겨우 ‘ABC 초콜릿’ 문제여서, 저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별 녀석 다보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 “이 녀석, 웃기는 놈이구나. 그런 건 사감수사님에게 사달라고 해라”며 무시했습니다.

아이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어디서든지 저만 만났다하면 집요하게 ‘ABC' 이야기를 꺼내며 저를 괴롭히더군요.

한 다섯 번 그 이야기를 들었더니, 귀찮은 마음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ABC’ 문제가 나름대로 꽤 중요한 문제이겠구나. 금단현상을 극복해보려고 그러는데, 그까짓 것 도와줘야지.”

저는 귀찮기도 했지만, 집요하게 졸라대는 아이 앞에 생각을 바꿨습니다. 또한 그렇게까지 노력하는 아이가 무척 대견스러웠습니다. 외출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슈퍼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그냥 물에 물 탄 듯 미지근한 기도가 아니라 열렬한 기도를 바칠 것을 요구하십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가 아니라 꼭 이루어질 것을 목표로 삼고, 온 마음과 정성,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바쳐 기도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한 율법학자의 말입니다.

“귀찮게 구는 사람은 악한조차도 이겨내지 못한다.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께서도 귀찮게 계속 졸라 대는 사람을 이겨내지 못하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집요하게, 지속적으로 바치는 기도는 즉시는 아닐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응답을 받기 마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그가 바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도지향으로 삼아야 할까요? 어떤 목표를 향해 열렬히,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해야 할까요?

나 자신과 우리 가족만의 만사형통? 이 세상에서의 끝도 없는 부귀영화? 120세까지 탱탱한 젊음의 유지? 내 자식만의 합격? 돈벼락맞기?

위와 같은 기도 역시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씩 들어주시겠지요. 그러나 위와 같은 기도지향들이 가장 궁극적인 기도지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바쳐야 할 기도 지향은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이웃,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언젠가 우리 모두 함께 그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들어가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보다 가치 있고 한 차원 높은 삶이 되도록 염원하는 기도 역시 중요합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에로 건너가게 해달라는 기도 말입니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걸지 말고, 이 세상에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너무 기대도 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선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계평화, 공동선과 사회정의, 가난한 사람들의 보다 인간다운 삶....이런 기도지향을 두고 열렬히 기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타적인 기도, 수준 높은 기도, 복음적인 기도, 예수님의 기도를 열렬히 바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눈여겨보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청하지도 않는, 그러나 그에게 꼭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