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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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신앙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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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4-03-06 ㅣ No.170348

 

오늘 업무중에 묵상한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요즘 웬만하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필수인 게 하나 있습니다. 운전면허증입니다.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합니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에 도로연수를 하며 운전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95년도에 서울 강서면허장에서 취득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는 면허증 앞에 95 숫자와 함께 앞에 서울이라고 하는 지명과 함께 면허번호가 있었습니다. 별 거는 아니지만 저는 그게 좋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게 없어졌습니다.

 

기능시험에서 처음에는 아슬아슬하게 떨어졌고 두 번째에서는 만점으로 합격했습니다. 만점으로 합격했다고 운전을 잘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운전은 처음 배운 대로 하면 잘 할 수 있습니다. 과속 안 하고 차선 잘 지키는 것만 해도 사고는 잘 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누구나 다 그럴 것입니다. 처음 초보시절에는 앞만 주시하고 운전을 합니다. 처음에는 양쪽 백미러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전방주시가 잘 되면 그다음에는 좌우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게 되면 마지막에는 룸미러도 같이 볼 수 있는 수준까지 진입하게 됩니다. 사실 보통의 경우에는 잘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대개 다 후방카메라가 장착된 차가 많기 때문에 눈미러가 예전에는 후방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는 후방카메라 역할도 했습니다. 이것도 그렇지만 실제는 후미에서 오는 다른 차들이 어떻게 달려오는지 보는 것도 실제로 방어운전을 한다거나 할 때 필요합니다. 그 정도까지 판단하며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실력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런 수준까지 이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이런 수준에 이른 것일까요? 이 사람이 처음에 룸미러를 본다면 그냥 사고 나기 마련입니다.

 

시야의 이동경로를 한번 보면 처음에는 전방 그다음은 좌우 그리고 나서 룸미러입니다. 운전이 고수가 되면 나중에는 주시하는 눈이 자연스럽게 자유자재로 이동하면서 머리로 판단하며 방어운전도 하고 차선 변경도 하게 됩니다. 차선변경을 하긴 하되 앞 차와의 거리를 생각해서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추월을 한다든지 이런 것까지 나중에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초보운전자가 아무리 기능이 뛰어난다고 해도 이건 기능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실제 도로 필드에서 경험을 쌓아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영세를 받았다면 그때는 초보신앙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기본적인 기도문과 또 미사 예절을 통해서 성당을 다니면서 예비자 교리 때 배운 기본지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갓 신앙의 면허를 따고 면허 이름은 신영세자라는 타이틀로 달리는 것입니다. 처음엔 미사에 참례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강론 말씀과 또 신심단체에 가입하거나 아니면 점차로 성경공부라든지 이런 걸로 초보신앙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초보운전자가 앞만 주시하면서 달리다가 좌우 백미러를 통해 좌우 차선과 차량 이동의 사정을 볼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처음에는 많은 것을 볼 수 없지만 나중에는 차차 시간이 지나면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게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초보운전자가 몇 십년을 운전을 했는데도 초보운전과 같은 실력을 유지한다면 말이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이고 운동신경이 둔한 사람이라도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초보운전 타이틀은 떼게 됩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묵상하게 됐습니다. 저도 아주 드물게 표현을 하긴 하지만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도 변화가 없다면 성당 마당만 밟는 신자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하듯이 그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그런 신앙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정답은 오히려 아주 쉬운 곳에 있는 듯합니다.

 

제가 서두에 운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운전과 똑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운전은 직진만 한다고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좌회전도 할 경우도 있고 우회전도 할 경우도 있습니다. 직진만 하는 눈의 시야를 가진 사람은 평생 직진만 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도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될 때 영원한 초보신앙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미사는 아주 훌륭한 기도입니다. 만약 미사와 묵주기도 기타 등등 레지오 신심단체와 같은 활동도 운전에서 좌우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백미러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능숙한 운전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돌발 변수라는 게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운전기능시험에 돌발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바로 그런 게 있는 이유가 말 그대로 운전하다가 돌발변수가 발생하게 될 때 즉시 대처할 능력을 시험하는 경우입니다. 바로 신앙도 똑같을 거라고 봅니다.

 

신앙에서는 그럼 그게 무엇일까요? 성경공부와 함께 신앙공부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겸비하지 못하면 그냥 직진만 운전하는 초보운전자처럼 우리는 평생 초보신자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앙공부가 절대적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사실은 있습니다. 만약 그게 겸비되지 않으면 믿음은 절대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사실이 될 것입니다. 그건 제가 가톨릭으로 개종을 한 후 지금까지 본 수십 권의 영성서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에 제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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