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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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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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7-25 ㅣ No.113431

 

2017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 2코린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어떤 책을 보니,

세상 창조에도 오점이

 하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오점을

하느님도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창세 2,18)
바로 인간의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아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하와를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실제로 외로움은 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로움이 쌓이고

 쌓이면 면역력 감소,

심장질환의 발생,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자살’까지

나아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현대는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여건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현대의 테크놀로지

덕분에 온라인 친구들이

얼마나 많아졌습니까?

 메시지로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원한다면 화상통화까지도

가능합니다.

예전에 힘들게 전화 통화하고

손 편지를 써서

소식을 전하던 것과

 비교할 때 아주 쉽게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어떤 설문조사를 보니

자신의 친구 관계에 대해 겨우

 단 한 명의 믿을만한 친구가

있을 뿐이라고 답한 사람이

답자의 자그마치 48%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조건이지만 실제로는

외로움 속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온라인 친구들은 늘어나는데

왜 우정은 줄어드는 것일까요?

인터넷 안을 잘 보면 행복한

결혼생활의 모습은 있지만,

외로운 싱글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귀여운 아기 사진은 있지만

불임으로 고민하는

부부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보여주기 식의

관계일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터넷 세상은

‘나 홀로 함께’라고 합니다.

‘나 홀로 함께’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은 이러한 삶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양쪽에

앉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하는 제자 공동체이지만

특별한 지위를 청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모습에 다른 제자들은

 아주 불쾌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특별한 자리를 청하는

 모습이나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제자들이나 똑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나 홀로 함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의

관점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너희의 종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주님 스스로가 그 모범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나 홀로 함께’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혼자는 어렵고 힘든 세상이지만,

우리 모두 함께 라면 충분히

기쁘고 즐거운 세상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한 방울에 불과하다.

함께 모이면

우리는 바다가 된다.

(류노스케 사토로)

성 야고보 사도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다섯 가지 룰"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보다보니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다섯 가지 룰’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더군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반복해서 얼굴을

마주대한다.
2. 칭찬한다.
3. 되도록 밝게 행동한다.
4. 철저할 정도로 잘 듣는

입장이 된다.
5.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행동한다.
‘당연한 것 아니야?’ 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당연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따라서 지금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 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부분에서 내가

부족한 지를 말입니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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