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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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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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3-04 ㅣ No.170300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루카 4,24ㄴ-30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오늘 제1독서를 보면 나아만은 처음에 엘리사 예언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시리아에 있는 큰 강들에 비하면 시냇물 수준으로 보일 정도로 규모도 작고 물도 깨끗하지 않아 보이는 요르단 강물에 몸을 씻어봤자 나병이 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또한 나병이라는 불치병이 그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치유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병을 치유하려면 우리 민속신앙에서 무당들이 큰 굿판을 벌이는 것처럼, 적어도 이스라엘 민족들이 믿는 능력 좋은 신을 소환하여 복잡하고 화려한 예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랬기에 그 신에게 예물로 바칠 용도로 여러 재물들을 잔뜩 싣고 온 터였습니다. 자신은 그런 각오로 그 먼길을 달려왔는데, 예언자라는 사람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종을 시켜 ‘요르단 강물에 몸을 담그라’는, 너무나 뻔한 소리를 하니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날 법도 하지요. 하지만 부하들의 만류와 충고에 자기 고집을 꺾고, ‘시키는대로 따라서 손해볼 건 없다’는 생각으로 요르단 강물에 몸을 담갔고, 나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체험을 통해 그는 깨닫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의 규모나 수질도 아니고, 복잡하고 화려한 예식도 아니라는 것을. 자기 뜻과 생각을 고집하는 교만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순명하면 그분께서 당신의 능력과 섭리로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하지만 예수님의 고향인 나자렛 고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기적들을 보면서도 자기 뜻과 고집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려주셔도 그 말씀의 씨앗이 그들의 마음 속에 심어지지 않고,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셔도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표징은 되지 못했지요. 철저하게 듣고 싶은대로만 듣고, 보고 싶은대로만 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비단 나자렛 고을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도 얼마든지 그와 비슷한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나를 돌아보려고 하기보다, 나의 뜻과 바람에 비추어 예수님의 말씀을 재단하려고 할 때, 내 입맛과 기호에 맞는 말씀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말씀,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만드는 말씀들은 가벼이 여기며 흘려버릴 때, 우리도 주님을 눈 앞에 두고 구원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사렙타의 과부 이야기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 이야기를 하신 것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고쳐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그 은총을 받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진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엘리야 예언자 시대에 ‘사렙타의 과부’만 기근을 겪지 않은 것은 그녀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기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예언자를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자기 몫을 기꺼이, 먼저 내어줄 줄 아는 넓은 아량을 지녔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치유의 은총을 입은 것은 그가 작고 약한 어린 소녀의 말도 귀기울여 듣고 엘리사 예언자를 찾아가 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엘리사가 ‘사마리아’인들과 함께 지낸다는 이유로 그를 무시하고, 그에게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믿지 않았기에 그를 찾지 않았지요.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충만한 은총을 베푸시지만, 믿음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그 은총을 간절히 원하며 그것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만이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명으로 따르는 이들에게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지요. 그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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